좀비 아포칼립스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 1화. 이상한 움직임

지겨운 하루의 끝은 언제나 비슷했다. 김민준은 축 늘어진 어깨로 현관문을 열었다. 낡은 복도등 아래에서 삐걱이는 소리를 내며 열린 문틈으로, 익숙한 비좁은 공간이 모습을 드러냈다. 굳이 불을 켤 필요도 없이, 그의 눈은 이미 어둠 속에서도 모든 가구의 위치를 정확히 그려낼 수 있었다. 짙은 회색빛 코트를 아무렇게나 의자에 던져놓고, 민준은 거실을 가로질러 주방으로 향했다. 따뜻한 물 한 잔으로 목을 축이고 나니, 그제야 퍽퍽했던 목이 조금은 풀리는 듯했다.

늘 앉던 소파에 몸을 파묻었다. 푹신한 등받이가 지친 허리를 감싸 안자, 온몸의 긴장이 탁 풀리는 느낌이었다. 오늘따라 유난히 고단한 날이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상사의 잔소리, 끝없이 밀려드는 서류 더미. 이 작은 아파트야말로 그의 유일한 안식처였다.

무심코 고개를 돌려 테이블 위를 보았다. 분명히 그는 방금 전까지 손에 들고 있던 유리컵을 그곳에 놓았다. 물방울이 송골송골 맺힌 투명한 컵. 그런데… 컵의 위치가 조금 이상했다. 그가 놓았던 자리보다, 아주 미세하게, 오른쪽으로 치우쳐 있었다.

‘내가 제대로 못 놨나?’

피곤해서 눈이 침침한가 싶어 눈을 비볐다. 다시 봐도 컵은 제자리를 벗어나 있었다. 별일 아니라고 애써 생각하며 민준은 어깨를 으쓱였다. 가끔 그런 날이 있었다. 너무 피곤해서 헛것을 본다거나, 뭔가에 홀린 듯 자기도 모르게 엉뚱한 행동을 하는 날. 그저 그런 날 중 하나이겠거니 했다.

어둠이 짙게 깔린 창밖으로 도시의 불빛들이 점점이 박혀 있었다. 문득, 거실 한편에 놓인 책꽂이에서 ‘툭’ 하는 소리가 들렸다. 민준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그리로 향했다. 꽂아두었던 책 한 권이 바닥으로 떨어져 있었다. 제목은 보이지 않았지만, 꽤 두툼한 전공 서적이었다.

‘젠장, 책꽂이가 헐거워졌나.’

그는 귀찮음에 한숨을 쉬었다. 이 아파트도 꽤 오래된 건물이라 여기저기 손볼 곳이 많았다. 책꽂이도 조만간 보강해야겠다고 생각하며, 민준은 떨어진 책을 주워 다시 제자리에 꽂았다. 이때만 해도, 그는 그 모든 것을 사소한 해프닝 정도로 치부했다.

***

늦은 저녁을 먹고 침대에 누웠다. 잠들기 전, 습관처럼 휴대폰으로 SNS를 확인했다. 피드에는 여느 때와 다름없는 일상들이 가득했다. 친구들의 술자리 사진, 해외여행 자랑, 키우는 고양이의 귀여운 모습들. 무미건조한 일상 속에서 타인의 삶을 훔쳐보는 것이 작은 위안이 되기도 했다.

문득, 방 안의 조명이 깜빡거렸다.

‘또 시작이네. 이 빌어먹을 전등.’

한두 번 있는 일이 아니었다. 오래된 전선 때문에 가끔씩 전등이 오락가락할 때가 있었다. 그럴 때마다 관리실에 전화를 할까 말까 고민했지만, 막상 다음 날 아침이 되면 괜찮아져서 미루곤 했다.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다시 휴대폰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때였다. 침대 옆 협탁 위에 놓여 있던 유리컵이, ‘스으윽’ 하는 소리를 내며 민준의 눈앞에서 미끄러졌다. 컵은 마치 보이지 않는 손에 떠밀린 것처럼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협탁 끝을 향해 움직였다.

민준은 숨을 멈췄다. 온몸의 털이 쭈뼛 서는 느낌이었다.

눈을 깜빡였다. 혹시 꿈인가? 아니, 너무나도 선명한 현실이었다. 컵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지만, 그가 직접 목격한 움직임은 너무나도 생생했다.

“뭐야…?”

작게 중얼거리는 그의 목소리가 방 안에 고요하게 울렸다.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렸다. 머릿속은 혼란으로 가득했다. 바람? 아니, 창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지진? 진동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침대에서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켰다. 그의 시선은 컵에 고정되어 있었다. 심장이 미친 듯이 쿵쾅거렸다. 어쩌면… 착각일 수도 있었다. 피곤해서 헛것을 본 걸 수도…

그 순간, 거실에서 ‘끼이익’ 하는 소리가 들렸다. 문이 열리는 소리였다.

민준은 온몸이 얼어붙는 것을 느꼈다. 그가 문을 잠그지 않고 잤을 리 없었다. 혹시 도둑인가? 하지만 그건 더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현관문은 이중 잠금장치에, 도어록까지 완벽하게 채워져 있었다.

공포가 심장 깊숙이 파고들었다. 숨을 참고 귀를 기울였다. 거실에서 발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저 묵직한 정적만이 흐를 뿐이었다. 그러나 그 정적은 오히려 그를 더 압박했다. 마치 무언가가 자신을 주시하고 있는 것 같은 끔찍한 기분이었다.

조심스럽게 침대에서 내려와 방문 손잡이를 잡았다. 손잡이가 차갑게 느껴졌다. 최대한 소리를 내지 않기 위해 온 신경을 집중하며 문을 아주 조금 열었다. 틈새로 보이는 거실은 여전히 어두웠지만, 아파트 창문으로 새어 들어오는 도시의 빛 때문에 완전히 암흑은 아니었다.

거실은 쥐 죽은 듯 고요했다.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았다. 민준은 안도의 한숨을 쉬려다가, 이내 멈췄다.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리모컨이, 다시 움직이고 있었다.

이번에는 망설임 없이, 빠른 속도로, 테이블 위를 가로질러 떨어졌다. ‘탁’ 하는 소리와 함께 리모컨은 바닥에 나뒹굴었다.

민준은 눈을 질끈 감았다. 이건 꿈이 아니었다. 환각도 아니었다.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그의 아파트 안에 들어와 있었다. 아니, 어쩌면 처음부터 존재했을지도 몰랐다.

온몸의 털이 다시 쭈뼛 섰다. 머릿속에는 오직 한 단어만이 떠올랐다.

‘폴터가이스트.’

그러나 어딘가 달랐다. 귀신이 장난치는 듯한 가벼움이 아니었다. 리모컨이 움직일 때 느껴진 공기의 미묘한 떨림, 그리고 주변을 휘감는 듯한 기분 나쁜 한기. 마치 무언가가 거친 숨을 내쉬는 듯한, 아주 희미하고 낮은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그의 귓가에 맴돌았다.

“누구… 야?”

떨리는 목소리로 겨우 질문을 뱉었다. 대답은 없었다. 하지만 그 순간, 거실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유리잔들이 일제히 ‘쨍그랑!’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산산조각이 난 유리 파편들이 어둠 속에서 빛을 반사하며 섬뜩하게 흩어졌다.

그리고 이어진 건, ‘쿵!’ 하는 둔탁한 소리였다.

민준은 온몸을 뒤덮는 공포감에 숨도 쉬지 못하고 몸을 웅크렸다. 소리가 난 곳은 거실 벽이었다. 빛이 부족해 정확히 보이진 않았지만, 뭔가 단단한 것이 벽에 부딪히며 생긴 소리였다. 마치 육중한 몸으로 벽을 들이받은 듯한.

이번에는 단순한 폴터가이스트 현상이 아니었다. 그건… 마치 누군가가 발버둥 치는 듯한 격렬함이었다. 억눌린 분노와 광기가 느껴지는 듯했다.

민준의 아파트 안에, 분명히, 살아있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 순간,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거실 한가운데 놓여 있던 오래된 텔레비전이었다. 전원이 꺼져 있던 화면이 갑자기 ‘지직’거리는 소리를 내며 켜졌다. 화면에는 아무것도 송출되지 않고, 오직 회색빛 노이즈만이 가득했다. 그런데, 그 노이즈 속에서, 아주 잠깐, 형체가 일렁였다.

일그러진 얼굴.

기형적으로 벌어진 입.

찢어진 눈.

섬뜩한 이미지는 찰나에 불과했고, 이내 다시 노이즈로 뒤덮였다. 하지만 민준은 분명히 보았다. 그리고 그 텔레비전 화면 속에서, 마치 자신을 바라보는 듯한 섬뜩한 시선을 느꼈다.

다음 순간, 텔레비전이 굉음을 내며 쓰러졌다. ‘콰앙!’ 하는 엄청난 소리와 함께, 화면이 완전히 박살 났다. 깨진 브라운관에서 빛이 폭발하듯 터져 나왔다가, 이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민준은 넋이 나간 듯 그 광경을 바라봤다. 심장이 목구멍까지 치솟았다.

‘이건… 귀신이 아니었다.’

그것은 훨씬 더 원초적이고, 훨씬 더 잔인했다. 마치 굶주린 짐승이 좁은 우리 안에서 몸부림치는 것 같은, 갇혀서 발악하는 것 같은… 그런 섬뜩한 움직임이었다.

아파트의 벽 안에서, 아니, 어쩌면 도시 전체의 심장부에서, 무언가 거대하고 끔찍한 것이 깨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첫 번째 징후가, 그의 아파트에서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