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반 판타지 (현대 판타지)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황량한 잿빛 도시 위로 해가 졌다. 붉게 물든 하늘은 마치 피를 토해낸 상처 같았고, 무너진 고층 빌딩들의 실루엣은 거대한 망자의 뼈대처럼 솟아 있었다. 먼지 섞인 바람이 으스스한 소리를 내며 폐허를 훑고 지나갔다. 우리가 서 있는 곳은 한때 번화했던 도심의 지하 통로 입구였다. 굳게 닫힌 강철 문은 녹슬어 있었지만, 그 견고함은 여전히 위압적이었다.

“젠장, 예상보다 더하네.”

강태한은 낡은 라이트의 빛을 좁은 틈새로 비춰보며 낮게 중얼거렸다. 그의 얼굴은 피로와 긴장으로 굳어 있었다. 며칠 밤낮을 쉬지 않고 달려온 탓이었다. 어깨에 짊어진 묵직한 배낭 안에는 얼마 남지 않은 식량과 물, 그리고 몇 안 되는 생존 장비가 전부였다.

옆에 선 지연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녀의 표정 또한 좋지 않았다. 손에 든 소형 탐지기는 붉은색 경고음을 끊임없이 내뱉고 있었다.

“여기 에너지 반응이 심상치 않아, 태한 오빠. 내부 오염도가 엄청나. 게다가… 생체 반응도 감지돼.”

“생체 반응이라고? 또 그 ‘그림자’ 녀석들인가?”

상우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묻자, 지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것도 한두 마리가 아니야. 탐지 범위가 좁아서 정확한 수는 알 수 없지만, 이 정도 밀집도라면… 꽤 규모가 클 거야.”

상우의 얼굴에 긴장감이 스쳤다. 그림자. 이 황폐해진 세상에서 가장 지독한 존재들. 빛을 싫어하고 소리에 민감하며, 척추를 타고 올라오는 냉기 같은 공포를 선사하는 괴물들. 이전에도 몇 번 마주쳤지만, 그들은 항상 끔찍한 결과를 남겼다.

“어쩔 수 없어. 우리 기지의 동력원이 바닥났어. 저 안에 있는 보조 동력 코어를 가져와야 해. 이번 작전 실패하면 다음 주 안에 우리 모두 얼어 죽거나, 아니면 방어막이 꺼져서 외부 침입에 무방비 상태가 될 거야.”

태한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선택지는 없었다. 살기 위해서는 들어가야 했다.

그는 옆구리에 찬 낡은 권총을 단단히 고쳐 쥐었다. 탄창 안에는 고작 여섯 발이 남아 있었다. 이것으로는 그림자 떼를 상대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주무기는 등에 멘 낡은 산탄총이었다. 그것도 탄약이 넉넉지 않았다.

“상우, 네가 입구 쪽을 맡아. 지연, 너는 내 뒤에 붙어 있어. 무슨 일이 있어도 탐지기 놓치지 마.”

“알았어, 형님.”

상우는 큼지막한 손으로 묵직한 쇠지렛대를 고쳐 잡았다. 그의 주 무기는 언제나 몸을 던지는 돌격이었다. 지연은 자신의 팔목에 묶인 탐지기를 한 번 더 확인하며 긴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녹슨 강철 문을 여는 데는 꽤나 힘이 들었다. 삐걱거리는 굉음이 지하 통로를 울렸고, 그 소리는 마치 잠자는 거인을 깨우는 듯 섬뜩하게 들렸다. 차가운 지하 공기가 훅 끼쳐왔다. 코끝을 찌르는 곰팡이 냄새와 알 수 없는 쇠 비린내가 뒤섞여 역겨움을 자아냈다.

문이 완전히 열리자, 안쪽에서 뿜어져 나오는 어둠이 우리의 시야를 압도했다. 라이트 한 줄기조차 집어삼킬 듯한 칠흑 같은 어둠. 그 속에서 옅은 안개처럼 부유하는 푸른빛 입자들이 보였다. 과거의 잔해들이 발밑에서 바스락거렸다.

태한은 먼저 라이트를 비추며 한 걸음 내디뎠다. 그의 눈은 익숙하게 어둠 속을 헤치며 위험 요소를 찾고 있었다. 지연의 탐지기는 여전히 시끄럽게 경고음을 내고 있었지만,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그 소리는 더욱 격렬해졌다.

“오빠, 저 안쪽에 반응이… 어딘가 익숙한 형태인데…”

지연이 작게 속삭였다. 태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어. 저 시설은 아마도 ‘특수 격리 시설’이었을 거야. 구세계의 재앙 이전에 존재했던. 우리가 찾는 동력 코어도 거기에 있을 확률이 높지.”

우리가 걷는 복도는 천장이 무너지고 벽면은 부식되어 끔찍한 몰골을 하고 있었다. 중간중간 뼈대만 남은 전자기기들이 기괴한 조형물처럼 서 있었다. 바닥에는 정체 모를 액체가 고여 반짝였다. 발소리가 먹먹하게 울렸다. 우리의 숨소리마저 거대한 침묵 속에 파묻히는 것 같았다.

갑자기, 지연이 흠칫하며 몸을 떨었다.

“오빠, 전방… 50미터 지점… 생체 반응이 급격하게 늘어났어! 움직임이… 불규칙적이야.”

태한은 라이트를 더 멀리 비췄다.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무언가의 형체가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그림자 같기도, 아니면 망령 같기도 한 존재들이었다. 그들은 벽과 천장에 붙어 있다가, 우리가 다가오자 천천히 우리 쪽으로 몸을 돌렸다.

“젠장… 저게 벌써 깨어났나.”

그것들은 ‘잔영체’라고 불리는 존재들이었다. 이 세상이 망가지기 시작할 때, 죽은 자들의 미련과 고통, 그리고 오염된 마나가 뒤섞여 생겨난 존재들. 빛에 약하고 소리에 민감하다고 알려져 있지만, 그들의 속도는 인간을 아득히 뛰어넘었다.

“전투 준비, 상우! 지연, 내 뒤에서 절대 떨어지지 마!”

태한은 산탄총을 들어 올렸다. 펌프액션 소리가 날카롭게 울렸다. 상우는 쇠지렛대를 양손으로 단단히 잡고 앞에 섰다. 잔영체들은 윙윙거리는 듯한 기괴한 소리를 내며 서서히 다가왔다.

라이트가 잔영체들의 형체를 비추자, 그것들의 실체가 드러났다. 검고 끈적거리는 액체로 이루어진 듯한 몸, 희미하게 빛나는 붉은 눈, 그리고 길게 뻗은 촉수들이 꿈틀거렸다. 그것들은 사람의 형태를 하고 있었지만, 완전히 뒤틀리고 훼손된 모습이었다. 마치 고통 속에서 절규하는 영혼들이 한데 뭉쳐진 것처럼.

“왔다!”

상우의 외침과 동시에 가장 앞에 있던 잔영체 하나가 번개처럼 달려들었다. 상우는 쇠지렛대를 휘둘러 그것의 몸통을 강타했다. 찌이익 하는 역겨운 소리와 함께 잔영체는 뒤로 튕겨 나갔지만, 이내 아무렇지 않은 듯 다시 자세를 잡았다.

태한은 방아쇠를 당겼다. 쾅! 산탄총이 불을 뿜으며 강렬한 섬광과 함께 납탄을 흩뿌렸다. 선두에 있던 잔영체 두어 마리가 비명을 지르며 액체처럼 녹아내렸다. 하지만 그 섬광이 오히려 다른 잔영체들을 자극하는 결과를 낳았다. 마치 먹이를 발견한 포식자들처럼, 수십 마리의 잔영체들이 일제히 우리에게 달려들었다.

“이런 개 같은!”

상우가 욕설을 내뱉으며 달려드는 잔영체들을 닥치는 대로 후려쳤다. 쇠지렛대와 괴물의 몸이 부딪히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지연은 태한의 등 뒤에서 탐지기를 움켜쥐고 잔영체들의 움직임을 예측하려 애썼다. 그녀의 눈은 공포로 가득했지만, 정신은 냉정하게 상황을 분석하고 있었다.

“오빠, 저 코너 뒤에 더 있어! 양쪽에서 포위하려는 거야!”

지연의 경고에 태한은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복도 저편에서 또 다른 잔영체 무리가 벽을 기어오르며 다가오고 있었다. 우리는 순식간에 양면 공격에 노출되었다.

“상우! 뒤로 물러서면서 싸워! 지연, 우리가 돌파할 통로를 찾아!”

태한은 거듭 산탄총을 발사하며 잔영체들을 쫓아냈다. 하지만 탄약은 빠르게 줄어들고 있었다. 한 발, 또 한 발. 산탄총의 묵직한 반동이 그의 어깨를 강타했다.

잔영체들은 쓰러져도 금방 재생하는 듯했다. 산탄총의 위력에도 완전히 소멸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들의 숫자는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늘어나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오빠, 오른쪽 꺾어지는 복도! 저 안쪽에 격리실 문이 있어! 저리로 가야 해!”

지연의 목소리에 일말의 희망이 섞여 있었다. 격리실이라면, 내부 방어 시스템이 남아있을 가능성이 있었다. 태한은 상우에게 눈짓했고, 상우는 말없이 쇠지렛대로 길을 터주며 잔영체들을 밀어냈다.

세 사람은 죽을힘을 다해 오른쪽 복도로 방향을 틀었다. 뒤에서는 잔영체들의 기괴한 소리와 함께 그림자들이 추격해왔다. 복도 모퉁이를 도는 순간, 지연이 비명을 질렀다.

“함정이야! 바닥에 함정!”

하지만 너무 늦었다. 가장 앞서 달리던 태한의 발밑에서 낡은 금속판이 부서지며 와장창 소리를 냈다. 그는 그대로 지하 깊은 곳으로 추락했다. 마지막으로 그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절규하는 지연의 얼굴과, 발밑을 집어삼키는 칠흑 같은 어둠, 그리고 그 속에서 자신을 향해 뻗어오는 수많은 잔영체의 촉수들이었다.

“태한 오빠!”

지연의 비명이 복도에 메아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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