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테르가드 마법 학원, 지하의 비명 # 12화
어둠은 끈적했다. 아테르가드 마법 학원의 지하는 단순히 빛이 없는 공간이 아니었다. 수백 년간 켜켜이 쌓인 먼지와 눅눅한 습기, 그리고 퀴퀴한 곰팡이 냄새가 뒤섞인, 살아있는 것들의 숨통을 조이는 듯한 어둠이었다. 엘라라의 에테르 램프 불빛이 겨우 그 앞을 밝힐 뿐, 낡은 석벽과 거미줄은 그림자 속으로 다시 잠겼다.
“젠장, 교수님들이 괜히 ‘출입 금지’ 딱지를 붙여놓은 게 아니었어.” 카엘이 팔뚝을 벅벅 긁으며 투덜거렸다. 그의 두툼한 팔뚝에는 시시때때로 마법으로 강화된 보호막이 감돌았지만, 이곳의 음습함은 그런 단순한 마법으로도 쉽사리 가려지지 않았다.
엘라라는 지도를 손에 든 채 한 발자국씩 조심스레 나아갔다. 그녀의 눈은 램프 불빛 아래서 반짝이는 오래된 양피지를 쫓고 있었다. “이 지도는 단순한 금지 구역 지도가 아니야. 아테르가드 설립 초기에 제작된 거로 추정되는데, 이 미로 같은 지하 통로 깊숙이 숨겨진, *잊힌 공간*을 가리키고 있어.”
그녀의 옆에 바싹 붙어 걷던 리라가 움찔했다. “잊힌 공간이라… 엘라라, 왠지 모르게 이곳 공기가… 너무 무거워. 단순한 오래된 유적지가 아니야.” 리라는 섬세한 정신 마법 사용자였다. 그녀의 감각은 보통 사람보다 훨씬 예민했고, 미약한 마법의 잔향이나 감정의 흔적마저도 포착해냈다.
“무슨 느낌인데?” 카엘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물었다. 그의 시선은 자꾸만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했다.
리라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정확히는 모르겠어. 하지만… 비어있는 것 같으면서도, 뭔가가 계속 날 지켜보는 듯한 기분이야. 그리고… 아주 오래된, 슬픈 비명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카엘은 몸서리쳤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리라. 괜히 우리 둘 다 겁먹게 할 셈이야?”
엘라라는 그들의 대화를 들으면서도 지도를 놓지 않았다. 그녀는 몇 달 전, 학원 도서관의 폐기 예정 서적 더미에서 우연히 이 지도를 발견했다. 고대의 암호와 기묘한 기계 도면이 뒤섞여 있는 이 양피지는 그녀의 기계 공학 전공자로서의 호기심을 극한으로 자극했다. 수개월의 해독 끝에, 그녀는 이 지도가 아테르가드 학원 지하에 숨겨진, *알려지지 않은* 무언가로 향하는 길을 가리키고 있음을 알아냈다.
“여기야.” 엘라라가 멈춰 섰다. 램프 불빛이 가리키는 곳은 다른 곳과 다를 바 없는 낡은 석벽이었다.
카엘이 코웃음 쳤다. “겨우 석벽 하나를 보려고 여기까지 온 건 아니겠지, 엘라라?”
“물론 아니지.” 엘라라는 빙긋 웃으며 손에 낀 가죽 장갑을 조절했다. “이 석벽은 다른 벽들과 미묘하게 달라. 잘 봐, 이음새가 어딘가 부자연스러워. 그리고… 여기.”
그녀의 손가락이 석벽의 한 지점을 짚었다. 희미하게 파인 문양 아래, 거의 알아볼 수 없는 작은 구멍이 있었다. 엘라라는 허리춤에 매달린 도구 벨트에서 가느다란 금속 막대를 꺼내 구멍에 집어넣었다. ‘딸깍’ 하는 소리가 고요한 지하에 날카롭게 울려 퍼졌다.
곧이어 둔중한 기계음이 뒤따랐다. ‘크르르릉… 쾅!’
거대한 톱니바퀴들이 잠에서 깨어나는 소리였다. 석벽이 천천히 옆으로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숨겨진 경첩이 삐걱거리고, 먼지 구름이 왈칵 쏟아져 내렸다. 카엘과 리라는 반사적으로 얼굴을 가렸다.
먼지가 가라앉자, 드러난 것은 단순한 통로가 아니었다. 좁고 검은 통로의 끝에, 한없이 아래로 이어지는 듯한 금속 계단이 보였다. 그 계단은 낡은 황동색으로 빛났고, 계단 곳곳에는 증기 파이프와 알 수 없는 용도의 밸브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마치 학원의 지하가 거대한 기계의 내부로 이어진 듯했다.
“이건… 대체 뭐야?” 카엘이 경악하며 중얼거렸다. 그가 알던 아테르가드 지하와는 완전히 다른 풍경이었다.
리라는 계단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어둠이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그곳에서, 희미한 ‘윙—’ 하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마치 거대한 심장이 뛰는 소리처럼, 아니면 증기 기관이 힘겹게 동력을 얻는 소리처럼. “엘라라, 이건… 너무 깊어. 그리고… 저 소리, 느껴져? 무언가가 저 아래에서… 우리를 부르는 것 같아.”
엘라라의 눈빛은 활활 타올랐다. 그녀의 탐험가적인 기질이 최고조에 달했다. “흥분되지 않아? 이 모든 게 지도에 있었어. ‘심연의 기계 심장’… 이곳이 바로 그곳이야.”
그녀는 주저 없이 계단에 발을 디뎠다. 낡은 황동 계단이 그녀의 무게에 맞춰 ‘끼이익’ 하고 비명을 질렀다. 카엘은 망설였지만, 엘라라의 뒤를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리라 또한 두려움과 함께 밀려드는 강렬한 호기심에 이끌려 조심스럽게 발을 내디뎠다.
계단을 내려갈수록 공기는 더욱 차가워지고, 습기는 사라졌다. 대신 쇠 냄새와 뜨거운 증기가 섞인 듯한 미묘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발소리가 울리는 것은 물론, 멀리서 들려오던 ‘윙—’ 하는 소리가 점점 더 선명해졌다.
수십 미터를 내려갔을까. 그들은 마침내 거대한 동굴 같은 공간에 도달했다. 램프 불빛이 닿는 곳은 한정적이었지만, 이곳의 규모는 상상 이상이었다. 사방을 둘러싼 것은 거대한 황동 파이프들이었다. 굵은 것은 사람의 몸통만 했고, 얇은 것은 손가락만 했다. 이 파이프들은 복잡하게 얽혀 동굴 전체를 거대한 혈관처럼 뒤덮고 있었다. 파이프 곳곳에서는 희미한 증기가 새어 나왔고, 그 증기는 램프 불빛에 반사되어 기괴한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동굴의 중심부에는… 거대한 장치가 우뚝 솟아 있었다.
그것은 기계였다. 하지만 평범한 기계가 아니었다.
길고 얇은 금속 촉수들이 엉켜 거대한 심장처럼 꿈틀거렸다. 고대 마법 문양이 새겨진 황동 판들이 겹겹이 덮여 있었고, 그 사이사이로 푸른색 에테르 광선이 번쩍였다. 기계의 곳곳에는 깨진 유리관들이 보였고, 그 안에는 말라붙은 듯한, 검붉은 잔해가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에서, 방금 전까지 들려왔던 ‘윙—’ 하는 소리가 기묘한 규칙성으로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살아있는 유기체가 호흡하는 소리 같기도 했고, 동시에 거대한 톱니바퀴들이 억지로 맞물려 돌아가는 소리 같기도 했다.
엘라라의 입이 절로 벌어졌다. “이… 이건… ‘영혼-기관 장치’의 전설이 사실이었어? 이 모든 게… 살아있는 거야?”
리라의 얼굴은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그녀의 눈은 공포에 질려 동굴의 중심부를 응시하고 있었다. “아니… 이건 살아있는 게 아니야. 정확히 말하면… *살아있는 것을 갈아서 만드는* 거야.” 그녀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저 장치에서 느껴지는 건… 무수한 생명체의 비명이야. 고통과 절규, 그리고… 증오.”
카엘은 몸을 굳혔다. 그의 보호 마법이 저절로 발현되어 피부 위에서 희미한 빛을 냈다. “무슨 소리야, 리라? 비명이라니?”
“느껴지지 않아?” 리라의 눈에서 눈물이 그렁거렸다. “저 장치, 저 거대한 심장이 뛰는 소리 같지? 그 안에서… 수많은 존재들이… 강제로 추출당하고 있어. 영혼, 생명력… 모든 것이.”
그때, ‘쿵!’ 하는 소리와 함께 거대한 장치가 한 번 더 요동쳤다. 파이프들 사이에서 증기가 더 강하게 뿜어져 나왔고, 에테르 광선이 더욱 날카롭게 번뜩였다. 장치 중심부에 박힌 듯한 거대한 크리스털에서 검붉은 빛이 일렁였다.
“크아아악…!”
리라가 두 손으로 귀를 막고 비명을 질렀다. 그녀의 머릿속에 수많은 목소리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들어오는 듯했다. 고통, 절망, 분노… 그 모든 감정이 한데 뒤섞여 맹렬한 파도처럼 그녀를 덮쳤다.
“리라!” 카엘이 그녀를 부축했다.
엘라라 역시 숨을 들이켰다. 그녀는 리라만큼 강렬하게 느끼지는 못했지만, 왠지 모를 압박감과 불쾌한 기운이 전신을 옥죄는 것을 느꼈다. 그 순간, 그녀의 눈은 장치 아래쪽에 설치된, 마치 모니터처럼 생긴 낡은 황동 패널로 향했다. 그 패널에는 고대 문자가 새겨져 있었는데, 그 중 일부가 마치 피처럼 붉은 글씨로 번뜩이고 있었다.
그 글씨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금지된 힘은… 대가를 치르리라.”**
그리고 패널 중앙의 압력 게이지가 ‘삐이익-’ 하는 소리를 내며 최고치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 압력 게이지의 바늘이 붉은색 한계를 넘어섰을 때, 장치의 모든 파이프와 밸브에서 섬광이 터져 나왔다.
동시에, 동굴 전체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바닥이 울리고, 천장에서 작은 돌조각들이 떨어져 내렸다.
‘윙—’ 하던 소리가 갑자기 멈췄다.
그리고 뒤이어… ‘콰앙!’ 하는 굉음과 함께 장치 중심부의 크리스털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젠장! 뭔가 잘못됐어!” 카엘이 리라를 끌어안고 외쳤다.
엘라라는 패널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깨진 크리스털 사이로, 검붉은 액체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꿈틀거리며 흘러내렸다. 그 액체는 마치 피와 어둠을 섞어놓은 듯한 색깔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수백 개의 얇은 금속 촉수들이 일제히 움직이며 동굴의 벽면을 향해 뻗어나갔다. ‘철컥, 철컥!’ 하는 소리와 함께, 그 촉수들은 낡은 석벽을 부수고 그 안으로 파고들기 시작했다. 마치 지하 깊숙한 곳에 잠자고 있던 무언가를 깨우려는 것처럼.
“안 돼…! 저 장치, 봉인이 깨지고 있어!” 엘라라의 목소리에 공포가 깃들었다. “이곳의 금기는… 단지 봉인된 게 아니었어. 학원 전체가… 저것의 힘으로 유지되고 있었던 거야!”
그때, 그들 뒤에서 ‘철컥’ 하는 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그들이 내려왔던 황동 계단의 입구가… 거대한 철판으로 막혀 있었다.
그들은 갇혔다.
그리고 눈앞의 영혼-기관 장치는, 마치 모든 봉인에서 풀려난 듯, 거친 숨을 내쉬며 웅장하게 진동하고 있었다.
검붉은 액체가 바닥을 타고 흐르며, 그들 발치까지 다가왔다.
동굴의 어둠 속에서, 무언가 거대한 것이 꿈틀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새로운 비명이 시작될 참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