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연의 왈츠, 낯선 조우
시커먼 우주가 사방을 집어삼킬 듯 펼쳐진 아르고호의 함교. 희미한 푸른빛 계기판과 홀로그램 지도만이 고독한 항해를 증명하듯 깜빡였다. ‘인류의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서’라는 거창한 구호 아래, 아르고호는 이미 2년째 인류의 발길이 닿지 않은 심우주를 유영 중이었다. 길고 지루한 여정의 연속. 승무원들은 이제 우주 먼지 하나도 새로운 볼거리라며 농담을 주고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함장님, 오늘 저녁 메뉴는 뭔가요? 이 끔찍한 우주에서 제 삶의 유일한 낙은 식사뿐이라구요!”
항해사 이진호가 지루함에 못 이겨 조종석에서 몸을 비틀며 푸념했다. 그의 눈은 여전히 전방의 미확인 성운을 주시하고 있었지만, 목소리에는 권태가 가득했다.
“이 항해사, 임무 중에 음식 타령이라니. 정신 똑바로 차려.”
함장 강하준은 팔짱을 낀 채 함교 중앙 홀로그램 화면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의 말은 단호했지만, 실은 그 역시 매일 반복되는 식단에 질려있음을 아무도 몰랐다. 그는 곁눈질로 부함장 서윤아를 흘끗 봤다. 서윤아는 과학 장교답게 온갖 수치가 번쩍이는 복잡한 분석 장비 앞에 앉아 미동도 없었다. 얇은 안경 너머로 드러난 날카로운 눈매는 늘 그랬듯 어떤 감정도 드러내지 않았다.
‘하긴, 저 사람은 외계 행성의 토양 성분표를 보고도 희열을 느끼는 타입이니까.’
하준은 속으로 피식 웃었다. 윤아는 팀 내에서 가장 유능했지만, 동시에 가장 재미없는 사람이기도 했다.
그때였다.
지잉—!
함교 전체를 뒤흔드는 날카로운 경고음이 울려 퍼졌다. 동시에 홀로그램 화면이 붉은색으로 번뜩였다.
“무슨 일이야?!”
하준이 즉각 자세를 고쳐 잡으며 소리쳤다. 진호의 얼굴에서도 장난기가 사라졌다.
“함, 함장님! 미확인 물체 접근! 일반적인 소행성이나 우주 파편이 아닙니다! 에너지 패턴이… 전례 없어요!”
윤아가 늘 차분하던 목소리에 처음으로 동요를 드러냈다. 그녀의 손가락이 미친 듯이 자판을 두드렸다. 홀로그램 화면에 불규칙한 형상의 그래프가 미친 듯이 요동쳤다.
“에너지 패턴을 분석해! 이 항해사, 충돌 코스인가? 회피 기동 준비해!”
“충돌 코스는 아닌데… 저희 쪽으로 끌려오는 것 같습니다!”
진호의 목소리가 당황으로 물들었다. 아르고호의 선체가 미세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끌려온다고? 강력한 중력장인가?”
하준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때 윤아의 입에서 믿기 힘든 보고가 터져 나왔다.
“아닙니다, 함장님. 중력장이 아니에요. 이 에너지는… 마치… 살아있는 것 같습니다!”
“살아있다고?”
하준은 어이가 없다는 듯 되물었다. 우주에서 ‘살아있는’ 미확인 물체라니, SF 소설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였다.
“정확히는, 의도를 가지고 접근하는 것 같아요. 이 물체에서 방출되는 파동이… 저희 함선의 주파수와 공명하고 있습니다. 마치… 대화를 시도하는 것처럼.”
윤아의 눈은 분석 모니터에 고정되어 있었지만, 그 시선 뒤에는 미지의 것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과 긴장이 스쳐 지나갔다. 하준은 그녀의 말을 들으며 묘한 기시감을 느꼈다. 어딘가 익숙한, 하지만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감각이었다.
“일단 스크린에 띄워.”
하준의 명령에 진호가 빠르게 조작했다. 함교 중앙의 메인 스크린에, 아르고호의 전방에 떠 있는 물체의 모습이 확대되어 나타났다.
그것은… 상상했던 그 어떤 모습과도 달랐다.
소행성처럼 투박하지도, 인공위성처럼 기계적이지도 않았다.
마치 어둠 속에서 피어난 거대한 꽃잎 같기도, 물결처럼 유려하게 휘감긴 거대한 조각품 같기도 했다. 검은 우주를 배경으로, 섬세한 수정 조각들이 겹겹이 쌓여 만들어진 듯한 형상. 표면에서는 푸른색과 보라색이 오묘하게 섞인 빛이 잔잔하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 빛은 살아있는 생물처럼 느리게 박동했다.
“이게… 뭐야?”
진호가 넋 나간 듯 중얼거렸다. 박지훈 보안 장교는 이미 모든 무기 시스템을 활성화하고 경계 태세를 취하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굳어 있었지만, 그의 눈빛에도 경외감이 서려 있었다.
“어떤 데이터베이스에도 일치하는 기록이 없어… 완벽히 미지의 존재입니다.”
윤아는 분석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중얼거렸다. 그녀의 손가락이 떨리고 있었다. 과학자로서 이런 발견은 평생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기회였지만, 동시에 알 수 없는 두려움이 그녀를 짓눌렀다.
“접근 속도는?”
“아르고호의 속도와 완벽하게 일치합니다. 오히려… 저희를 기다린 것처럼요.”
진호가 침을 꿀꺽 삼켰다.
“무슨 수를 써도 제어 불능인가?”
“네. 함장님. 이 물체… 아르고호 바로 옆에 멈췄습니다.”
화면에 잡힌 미지의 유물은 이제 아르고호의 선체에 닿을 듯이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그 거대한 크기는 아르고호의 절반에 육박했다.
“외벽 카메라를 통해 상세 화면 띄워.”
하준의 명령에 스크린이 바뀌었다. 이제 유물의 섬세한 표면이 더욱 선명하게 보였다. 수정처럼 반짝이는 표면에는 미세한 문양들이 새겨져 있었다. 마치 누군가가 정교하게 조각해 놓은 듯한 무늬였다.
그때, 유물에서 빛의 파동이 한 줄기 뿜어져 나왔다. 푸른빛과 보랏빛이 뒤섞인 그 빛은 아르고호의 함교를 향해 곧장 날아왔다.
쉬이이잉—!
빛은 함교의 강화유리를 뚫고 들어와, 하준과 윤아를 포함한 모든 승무원의 심장을 정확히 관통하는 듯한 감각을 안겨주었다.
어떤 물리적 충격도, 통증도 없었다. 하지만 그들의 정신 깊은 곳을 건드리는 듯한 아릿한 전율이 흘렀다.
“윽… 이건 대체…”
진호가 비틀거렸다. 박지훈 역시 한 손으로 관자놀이를 짚었다.
윤아는 숨을 들이켰다. 그녀의 시선은 캡틴 하준에게 향했다.
그의 얼굴은 창백했지만, 그의 눈빛은 묘한 감정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마치… 방금 전 자신이 느꼈던 그 복잡한 감정들을, 고스란히 그에게서 보고 있는 것 같았다.
놀라움, 두려움, 그리고… 숨길 수 없는 어떤 끌림.
그녀의 심장이 평소보다 빠르고 불규칙하게 뛰었다. 이성으로 설명할 수 없는 감각이었다.
그녀가 미처 깨닫기도 전에, 하준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향했다.
두 사람의 눈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한순간, 시간마저 정지한 것 같았다.
하준의 굳어있던 입술이 느리게 움직였다.
“서… 부함장?”
그의 목소리는 평소의 냉철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어딘가 몽롱하고, 또렷하지 않은… 마치 꿈속을 헤매는 사람 같았다.
“함, 함장님?”
윤아도 덩달아 목소리가 떨렸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그 순간, 유물에서 또 한 번 강력한 빛의 파동이 뿜어져 나왔다.
이번에는 전 함선에 걸쳐 미세한 진동을 일으켰다.
**삐비비빅—! 시스템 이상 감지!**
함선 내부의 모든 계기판이 미친 듯이 오류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홀로그램 지도는 일그러졌고, 통신 장비에서는 의미를 알 수 없는 노이즈가 폭발했다.
“젠장! 대체 뭘 하는 거야?!”
하준이 정신을 차리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하지만 이미 너무 늦었다.
아르고호의 모든 시스템이 혼란에 빠지는 그 순간, 하준의 눈은 다시 윤아를 향했다.
그리고 윤아의 눈도 다시 하준을 향했다.
그들 사이에 흐르는 기묘한 정적 속에서, 유물에서 뿜어져 나오는 푸른빛과 보랏빛이 점점 더 강렬하게 함교를 물들였다.
마치 그들의 혼란스러운 마음을 그대로 비추는 것처럼.
그때, 하준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번졌다. 평소라면 절대 볼 수 없는, 어딘가 능글맞으면서도… 설레는 듯한 미소였다.
“서윤아 부함장.”
그가 한 발짝, 윤아에게로 다가섰다.
“당신… 지금 나랑…”
그의 다음 말을 기다리는 윤아의 심장이 미친 듯이 요동쳤다.
유물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이 그들의 주변을 춤추듯 감쌌다.
“…사귀고 싶어 죽겠다는 표정인데?”
하준의 마지막 말과 함께, 함교 전체를 감싸던 불규칙한 빛의 파동이 폭발하듯 흩어졌다.
정신을 차린 진호와 박지훈은 경악스러운 표정으로 함장과 부함장을 번갈아 보았다.
침묵.
그리고 이어지는 윤아의 새빨개진 얼굴.
이건, 대체 어떤 유물의 효과인가.
아르고호의 모든 시스템이 혼란에 빠진 가운데, 미지의 유물은 더욱 강렬한 빛을 뿜어내며 마치 이 상황을 즐기는 듯, 혹은 새로운 게임을 시작하듯 우주 공간에서 조용히 춤을 추고 있었다.
두 남녀의 로맨틱 코미디는, 그렇게 심우주의 한복판에서, 예측 불가능한 서막을 올리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