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아포칼립스 생존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황무지.

끝없이 펼쳐진 회색빛 황무지 위에 굳건히 서 있는 것은 기어코 부서지지 못한 거대한 도시의 잔해였다. 한때는 하늘을 찌르던 마천루들이 이제는 뼈대만 앙상히 남아 마치 거대한 괴수의 갈비뼈처럼 비틀린 채 솟아 있었다. 먼지는 모든 것을 뒤덮었고, 공기는 침묵으로 가득했다. ‘균열’이 세상을 뒤흔든 지 십여 년. 살아남은 이들은 이 폐허 속에서 간신히 숨을 이어가고 있었다.

청월은 깨진 유리 파편과 무너진 콘크리트 조각 위를 조심스럽게 걸었다. 그의 발걸음은 가볍고 조용했다. 마치 그림자처럼, 혹은 이 폐허의 일부인 양 완벽하게 주변에 녹아들었다. 해진 검은 도포는 그의 앙상한 몸을 감쌌고, 길게 늘어뜨린 검은 머리카락은 바람에 실린 먼지를 가르며 흔들렸다. 등에는 낡았지만 잘 관리된 목검이 단단히 매여 있었다. 살아있는 모든 것이 위협이 되는 세상에서, 그의 무기는 생명줄과 같았다.

“콜록… 컥.”

오래된 건물 안에서 기침 소리가 들렸다. 청월은 본능적으로 몸을 숙여 건물 외벽에 바싹 붙었다. 낡은 방독면이 부서진 창문 너머로 희미하게 보였다. 저 안에는 분명 생존자가 있다. 그리고 생존자는 곧 자원이었다. 자원 앞에서는 동족도 맹수가 되는 세상. 그는 불필요한 마찰을 피하고자 했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식수와 먹을 것, 그리고 망가진 칼날을 고칠 수 있는 고철 조각이었다.

한참을 기다려 기침 소리가 잦아들자, 청월은 다시 움직였다. 그의 목적지는 한때 ‘도서관’이라 불리던 거대한 건물이었다. 종이로 된 책은 더 이상 가치가 없었지만, 그곳에는 간혹 오래된 보존식품이나 버려진 전자기기 부품들이 남아 있곤 했다.

“크르르…”

도서관 입구에 다다르자, 어둠 속에서 짐승 같은 소리가 들렸다. 청월의 발걸음이 멈췄다. 그의 눈이 번뜩였다. 이 세계가 탄생시킨 새로운 위협, ‘이형’의 그림자였다. 이형은 균열을 통해 넘어온 존재들이 세상을 오염시키며 변이시킨 괴물들을 통칭하는 말이었다. 보통은 이성을 잃고 오직 살육만을 추구하는 존재들이었지만, 가끔은 지능을 가진 개체도 출현했다.

어둠 속에서 튀어나온 것은 굶주린 늑대와 인간이 뒤섞인 듯한 형상이었다. 비정상적으로 길고 앙상한 팔다리, 피부를 뚫고 튀어나온 뼈 돌기, 그리고 핏발 선 눈. 이른바 ‘아귀’라고 불리는 하급 이형이었다. 세 마리의 아귀가 동굴 같은 도서관 입구를 지키고 있었다.

“거기까지다.”

청월은 나직이 읊조렸다. 그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그 안에 담긴 냉기는 아귀들의 살의를 더욱 자극했다. 아귀들은 으르렁거리며 동시에 달려들었다.

첫 번째 아귀는 번개처럼 빠르게 목을 노리고 돌진했다. 청월은 미동도 없이 그 돌진을 기다렸다. 아귀의 발톱이 닿기 직전, 그의 목검이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튀어나왔다. *팟!* 하는 소리와 함께 아귀의 날카로운 발톱이 정통으로 목검에 부딪혔다.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와 함께 아귀의 팔이 기형적으로 꺾였다. 비명과 함께 아귀가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두 번째, 세 번째 아귀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한 마리는 측면에서, 다른 한 마리는 뒤에서 동시에 공격해왔다. 청월은 마치 춤을 추듯 몸을 틀었다. 그의 움직임은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고, 동시에 폭풍처럼 강렬했다. 발로 옆구리를 후려친 뒤 몸을 회전하며 등 뒤의 아귀에게 목검을 휘둘렀다. 날카로운 바람 소리가 공간을 갈랐고, 목검은 아귀의 허리를 강타했다.

“커억!”

두 번째 아귀가 숨 막히는 소리를 내며 나뒹굴었다. 마지막 남은 아귀가 더욱 광포하게 달려들었다. 이형 특유의 재생력으로 이미 팔이 꺾였던 첫 번째 아귀도 다시 몸을 일으키려 하고 있었다. 청월은 싸움이 길어지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의 눈빛이 순간적으로 깊어졌다.

‘구대문파, 청풍검법(淸風劍法).’

그의 움직임이 이전보다 훨씬 더 빨라졌다. 목검이 공중에서 몇 번 섬광처럼 번뜩였다. 마치 바람이 춤추는 듯한 검로(劍路)였다. 마지막 아귀의 공격은 허공을 갈랐고, 청월의 목검은 이미 아귀의 심장을 꿰뚫었다. 철벅거리는 소리와 함께 검은 피가 튀었다. 아귀는 경련하며 쓰러졌다.

첫 번째 아귀가 겨우 몸을 일으켜 다시 공격 자세를 취하려 할 때였다. 청월의 목검이 이미 그 아귀의 목을 겨누고 있었다. 아귀는 비명을 삼킨 채 그대로 얼어붙었다. 청월은 말없이 목검을 거두었다. 그의 옷깃에는 한 방울의 피도 묻지 않았다.

“더 이상 오지 마라.”

그는 나지막이 경고했다. 아귀는 본능적으로 그에게서 죽음의 그림자를 보았는지, 으르렁거리며 다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청월은 쓰러진 아귀들에게서 먹을 만한 부위를 확인했다. 먹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는 가볍게 한숨을 쉬고 도서관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내부는 폐허가 된 지 오래였다. 곰팡이 냄새와 썩은 종이 냄새가 뒤섞여 역겨운 악취를 풍겼다. 청월은 익숙하게 통로를 더듬어 나갔다. 그때였다. 바닥에 흩어져 있는 낡은 종이 조각들 사이에서 그의 시선을 끄는 것이 있었다.

“이것은…”

낡고 색 바랜 종이였다. 하지만 다른 종이들과 달리 코팅이 되어 있는지, 습기와 먼지 속에서도 형체를 유지하고 있었다. 종이 위에는 알아볼 수 없는 문자와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가장 중앙에는, 거대한 탑의 형상이 불길하게 서 있었다.

종이를 주워 들자, 뒷면에 인쇄된 글자들이 보였다.

「멸망천하제일대회(滅亡天下第一大會)」

그는 글자를 따라 손가락을 쓸었다. 대회… 이 절망적인 세상에서? 청월의 기억 속에서 ‘대회’라는 단어는 아주 오래전, 세상이 멀쩡했을 때의 유물이었다.

「최후의 시대, 새로운 천년의 패자를 가린다!」
「균열의 종말을 고하고, 천하의 운명을 결정할 단 한 명의 무인을 찾는다!」
「참가 자격: 오직 살아남은 강자!」
「장소: 지리산 천왕봉, 신성한 전장.」
「기한: 다음 보름달이 뜨는 밤, 개막.」

청월의 심장이 순간적으로 크게 울렸다. 천하의 운명. 균열의 종말. 믿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지난 십여 년간 수많은 강자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쳤지만, 균열을 막거나 세상을 되돌릴 수 있다는 희망은 그저 환상에 불과했다. 하지만 ‘천왕봉’이라는 지명이 그의 뇌리에 깊게 박혔다. 그곳은 구대문파의 전설이 시작된 곳이자, 자신의 사부님께서 마지막으로 언급했던 성지였다.

사부님은 돌아가시기 전, 흐릿한 눈으로 그에게 말씀하셨다. “청월아… 만약 이 세상에 남은 희망이 있다면, 그것은… 천왕봉에 있을지도 모른다.”

청월은 그 말을 망각하고 살았다. 세상이 망가진 후, 무림의 전설도, 구대문파의 이름도 모두 먼지가 되어 사라진 줄 알았다. 그는 그저 고독하게 살아남아 무의미한 나날을 버티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 낡은 종이 한 장이 그의 잊고 있던 과거를 흔들어 깨웠다.

멸망천하제일대회. 과연 이것이 진정한 희망일까, 아니면 또 다른 함정일까. 이형의 위협이 날마다 커져가는 이 시점에서, 이렇게 많은 강자를 한데 모으는 것은 엄청난 위험을 동반하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 대회를 무시할 수 없었다. 사부님의 마지막 유언과도 같았던 그 말씀이 그의 발걸음을 이끌고 있었다.

그는 창문 너머로 희미한 석양을 바라보았다. 붉게 물든 하늘은 여전히 절망적이었지만, 그의 눈빛은 흔들리지 않았다.

‘천왕봉… 사부님.’

목검을 고쳐 메고, 그는 폐허가 된 도서관을 나섰다. 그의 발걸음은 더 이상 방황하지 않았다. 분명한 목적지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끝에 무엇이 있을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가야만 했다. 이 세상에 남은 유일한 희망이든, 혹은 최후의 절망이든. 그는 마주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바람이 차가웠다. 먼지가 그의 뺨을 스쳤다.

청월은 지리산 천왕봉을 향한 길고 고독한 여정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