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2장: 천뢰의 포효와 흑랑의 그림자
하늘을 찌를 듯 솟아오른 웅장한 대회의장은 천하제일무도회의 마지막 관문, 대결의 장이었다. 거대한 원형 경기장은 고대 유적의 돌을 깎아 만든 듯 육중한 위용을 자랑했고, 그 한가운데에는 닳고 닳아 검붉은 흔적이 곳곳에 박힌 결투대가 놓여 있었다. 수십만 명의 관중들이 구름처럼 운집한 관람석에서는 우레와 같은 함성이 파도처럼 밀려왔고, 그 열기는 하늘에 닿아 아지랑이처럼 일렁였다.
“드디어… 여기까지 왔군.”
결투대 한쪽에 선 백아는 가슴 속에서 끓어오르는 뜨거운 전율을 애써 억눌렀다. 낡았지만 길고 날렵한 백아의 검은 등 뒤에 굳건히 매달려 있었고, 그의 눈은 멀리 반대편에 선 그림자를 향하고 있었다. 저 자와의 결투가 끝나면, 이 지루하고도 숨 막히는 싸움의 연쇄도 마침내 끝을 보게 될 터였다. 그리고 그 결과는… 천하의 운명을 가를 것이리라.
백아의 시선이 닿은 곳에는 검은 도포를 두른 사내가 미동도 없이 서 있었다. 흑랑, 그 이름만으로도 무림 전체에 공포와 경외를 동시에 불러일으키는 사내였다. 그의 전신에서는 맹수와도 같은 흉폭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고, 짐승처럼 번뜩이는 두 눈은 백아를 꿰뚫어볼 듯 날카로웠다. 그에게서는 어떠한 감정의 동요도 읽을 수 없었다. 오직 차갑고도 깊은 어둠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각 선수는 자리에서 준비! 30초 후, 결투를 시작한다!”
심판의 우렁찬 목소리가 허공을 갈랐다. 그와 동시에 경기장 전체가 일순간 정적에 휩싸였다. 수십만의 시선이 오직 두 사내에게로 집중되었다. 침묵 속에서 긴장감은 더욱 고조되었고, 백아는 자신의 심장이 북처럼 격렬하게 울리는 것을 느꼈다. 쿵, 쿵, 쿵… 이 격렬한 고동은 두려움인가, 아니면 전율인가. 아니, 그는 알았다. 이것은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생명의 외침이었다.
“흑랑. 내 너의 검을 피하지 않으리라.”
백아의 입술이 조용히 움직였다. 흑랑은 아무 대답 없이 자신의 허리에 찬 검은 보검의 손잡이를 스윽 만질 뿐이었다. 그의 동작 하나하나에서 이미 고수의 기상이 느껴졌다.
시간이 째깍이며 흘러갔다. 20초, 10초… 5초…
결투대의 바닥에서 희미한 빛이 피어오르더니, 이내 거대한 결계가 경기장을 에워쌌다. 외부의 어떠한 간섭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무언의 선언이었다.
“…결투, 시작!”
심판의 마지막 외침과 함께, 정적은 폭발하듯 깨졌다.
흑랑은 기다리지 않았다. 그의 오른손이 번개처럼 움직여 검은 보검을 뽑아냈다. 쉬이이잉! 섬뜩한 검풍이 허공을 갈랐고, 검신에서는 마치 살아있는 그림자처럼 검붉은 기운이 피어올랐다. 단 한 번의 움직임으로 그의 검은 백아의 목을 겨눴다. 너무나도 빠르고 정확한 움직임. 보는 이들로 하여금 감탄사를 토해내게 할 정도였다.
백아는 몸을 뒤로 젖히며 겨우 검격을 피했다. 흑랑의 검 끝이 그의 뺨을 스치고 지나가는 순간, 차가운 살기가 온몸을 휘감는 듯했다. 등골에 식은땀이 흘렀다.
_젠장, 역시 빠르군!_
백아는 피하는 동시에 자신의 등 뒤에 있던 백은색 장검을 뽑아 들었다. 챙! 맑은 쇳소리가 대결장 전체에 울려 퍼졌다. 그의 검 또한 날카로운 기운을 뿜어내며 흑랑의 다음 움직임을 예측했다.
“그저 피하기만 할 셈이냐, 백아?”
흑랑의 목소리는 낮고 묵직했다. 그의 검은 다시 한번 궤적을 그리며 쇄도했다. 이번에는 정면으로, 마치 거대한 뱀이 먹잇감을 덮치듯이.
백아는 두 눈을 가늘게 떴다. 피할 수 없는 검격이라 판단하자, 그는 정면으로 맞서기로 결정했다. 그의 검이 흑랑의 검을 향해 뻗어나갔다. 그의 검술은 마치 바람처럼 자유롭고 구름처럼 변화무쌍했다.
[스킬 발동: ‘천풍검(天風劍)’]
백아의 검 끝에서 푸른 기운이 소용돌이치더니, 칼날을 따라 번개처럼 뻗어나갔다. 바람의 칼날이 흑랑의 검과 부딪히는 순간, 쨍강! 귀청을 찢는 금속음이 울려 퍼졌다.
“크아악!”
놀랍게도 흑랑의 검은 백아의 검에 튕겨져 나갔고, 흑랑은 잠시 휘청거렸다. 그의 눈에 처음으로 미세한 당혹감이 스쳐 지나갔다.
“흥미롭군.”
흑랑은 이내 자세를 가다듬고 피식 웃었다. 그의 입꼬리가 섬뜩하게 올라갔다.
“네놈의 검은 예전보다 강해졌군. 하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하다!”
흑랑의 온몸에서 검은 기운이 더욱 짙게 피어올랐다. 그의 눈동자는 핏빛으로 물들었고, 그가 딛고 선 대결대의 바닥이 미세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스킬 발동: ‘흑랑멸혼참(黑狼滅魂斬)’]
흑랑의 검이 위에서 아래로 묵직하게 내려찍혔다. 단순한 검격이었지만, 그 속에는 산을 쪼개고 강을 가를 듯한 엄청난 파괴력이 담겨 있었다. 검날 주변의 공간이 일그러지는 것처럼 보였다. 검격에 실린 살기는 마치 거대한 늑대가 포효하는 듯, 백아의 정신을 짓눌러왔다.
_이건… 피할 수 없어!_
백아는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이 검격을 피한다면, 뒤이은 공격을 감당할 수 없을 것이고, 정면으로 맞선다면 자칫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에게 망설일 시간은 없었다.
[스킬 발동: ‘운무보법(雲霧步法)’]
백아의 몸이 순간적으로 흐릿해지며 잔상을 남겼다. 그는 흑랑의 검이 꽂히기 직전, 찰나의 순간에 옆으로 한 발짝 물러섰다. 검은 검기가 그가 서 있던 자리를 깊게 파고들었고, 대결대의 단단한 바닥에는 마치 거대한 짐승의 발톱 자국처럼 깊은 상처가 남았다. 흑랑의 검격은 어마어마한 충격파를 발생시켰고, 백아는 그 충격에 휘말려 순간적으로 균형을 잃었다.
_젠장, 간발의 차였어!_
흑랑은 백아의 뒤를 놓치지 않았다. 그의 검이 다시 한번 번개처럼 휘둘러졌다. 이번에는 백아의 등줄기를 노린 횡베기였다. 이대로 맞으면 치명상이었다.
[회피 성공!]
[HP -150]
백아의 등에 얕은 상처가 스쳐 지나갔지만, 그는 이를 악물고 버텼다. 고통은 전신의 신경을 자극했지만, 오히려 그의 투지를 불태웠다.
“이 정도 가지고는 나를 쓰러뜨릴 수 없다!”
백아는 낮게 으르렁거렸다. 그는 몸을 돌려 흑랑의 검을 막아냄과 동시에 자신의 검을 위로 쳐 올렸다. 그의 검에 푸른색 기운이 깃들었다.
[스킬 발동: ‘비상(飛翔)’]
백아의 몸이 가볍게 허공으로 솟아올랐다. 그는 중력을 거스르는 듯한 움직임으로 흑랑의 머리 위에서 역습을 가했다. 그의 검은 마치 한 마리의 백학이 날개를 펴듯, 우아하고도 치명적인 궤적을 그리며 흑랑의 정수리를 향해 내려꽂혔다.
흑랑은 순간적으로 당황한 듯했지만, 이내 냉정을 되찾았다. 그의 검은 허공으로 솟아오른 백아를 향해 방어 자세를 취했다. 챙! 다시 한번 날카로운 금속음이 울려 퍼졌다.
두 사내의 검이 부딪히는 순간, 강력한 기의 폭발이 일어났다. 경기장 전체가 흔들리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관중들은 숨을 죽인 채 이 엄청난 대결을 지켜보고 있었다.
백아는 착지하는 순간, 온몸의 힘을 실어 검을 휘둘렀다. 그의 검은 물결처럼 춤추며 흑랑의 방어를 꿰뚫으려 했다.
“받아라, ‘천운류(天雲流) 비검(飛劍)!’ ”
[스킬 발동: ‘천운류: 무영비검(無影飛劍)’]
백아의 검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흑랑의 급소를 노렸다. 무형의 검기가 흑랑의 전신을 감쌌고, 흑랑은 한순간 당황한 듯 뒤로 물러섰다. 그의 검은 재빠르게 방어 자세를 취했지만, 백아의 검은 이미 그 틈새를 노리고 있었다.
콰앙!
검과 검이 다시 한번 격렬하게 부딪혔다. 흑랑의 몸이 뒤로 크게 밀려났다. 그의 발이 대결대의 바닥에 깊은 자국을 남기며 미끄러졌다. 그의 어깨에서는 피가 조금씩 흘러나오고 있었다.
[치명타!]
[흑랑 HP -8500]
관중석에서는 엄청난 함성이 터져 나왔다. 흑랑에게 유효타를 입힌 것은 이번 대결에서 백아가 처음이었다.
“훌륭해… 제법이군, 백아.”
흑랑은 어깨에서 흐르는 피를 신경 쓰지도 않고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어딘가 만족감 같은 것이 섞여 있는 듯했다.
“하지만… 이것이 네놈의 한계다.”
흑랑의 눈빛이 돌변했다. 그의 검은 검붉은 빛을 내뿜더니,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꿈틀거렸다. 검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이 경기장 전체를 무겁게 짓눌렀다. 대기 중의 기운마저 얼어붙는 듯한 차가운 살기가 백아의 전신을 꿰뚫었다.
_젠장, 저건…!_
백아의 눈이 크게 뜨였다. 그는 흑랑이 자신의 필살기를 꺼내려 한다는 것을 직감했다. 온몸의 세포가 비명을 지르는 듯했다. 위험하다, 아주 위험하다!
흑랑의 검이 하늘을 향해 치솟았다. 그리고 이내, 거대한 그림자 늑대의 형상이 그의 뒤에 나타났다. 늑대는 핏빛 눈을 번뜩이며 포효했고, 그 포효는 백아의 심장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스킬 발동: ‘멸마환영진(滅魔幻影陣)’]
_아니, 저건… 전에 본 적 없는 기술이야!_
백아는 경악했다. 흑랑의 필살기는 이미 무림에 널리 알려져 있었지만, 지금 그가 시전하는 것은 듣도 보도 못한 것이었다. 흑랑은 숨겨둔 비기를 사용하고 있었다. 이 대결이 천하의 운명을 가른다는 것을, 그 또한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죽어라, 백아!”
흑랑의 외침과 함께, 거대한 그림자 늑대가 백아를 향해 쇄도했다. 그 속도는 마치 검은 번개와 같았고, 늑대가 지나간 자리에는 대결대의 바닥이 갈라지는 듯한 흔적이 남았다.
백아는 눈앞에 펼쳐진 절망적인 광경에 이를 악물었다. 피할 수 없다면, 부딪쳐야 한다.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
그의 온몸에서 백은색 기운이 솟아올랐다. 그의 검은 마치 달빛을 머금은 듯 영롱한 빛을 발했다. 그의 가슴 속에서 잠자고 있던 모든 힘이 깨어나는 듯했다.
[스킬 발동: ‘백천검강(白天劍罡)’]
백아의 검에서 뿜어져 나온 백색 검기가 거대한 빛의 기둥을 이루며 그림자 늑대를 향해 뻗어나갔다. 최강의 공격과 최강의 방어가 동시에 펼쳐지는 일촉즉발의 순간이었다.
두 개의 거대한 힘이 충돌하는 순간, 대결장은 눈이 부실 정도로 강렬한 섬광에 휩싸였다. 콰아아앙! 천지가 뒤흔들리는 듯한 폭음이 울려 퍼졌고, 관중들은 모두 눈을 감고 귀를 막았다. 그 충격파는 결계를 넘어 관람석까지 전해져왔다.
섬광이 걷히자, 결투대의 한가운데에는 거대한 구덩이가 생겨 있었다. 그곳에는 백아와 흑랑, 두 사내가 서 있었다. 그들의 몸은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고,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백아는 비틀거리는 몸을 겨우 지탱하며 흑랑을 바라보았다. 흑랑 또한 백아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들의 눈빛에는 아직 꺼지지 않은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다.
승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후… 후우… 제법이군, 백아. 내 이 정도까지 몰린 것은… 실로 오랜만이로군.”
흑랑의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지만, 그 속에는 광기가 서려 있었다. 그의 입가에는 피가 한 줄기 흘러내리고 있었다.
백아는 아무 말 없이 자신의 검을 고쳐 잡았다. 그의 전신에서 피가 터져 나왔지만, 그는 전혀 개의치 않는 듯했다. 그의 눈은 오직 흑랑만을 향하고 있었다.
_그래… 이 한 방으로 끝을 내야 해._
그의 손에 든 백은색 검이 다시 한번 희미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그의 내면에 잠재된 마지막 힘을 끌어내는 듯했다.
천하의 운명을 건 대결은, 이제 막 절정으로 치닫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