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장막처럼 끝없이 펼쳐진 심우주, 그 검푸른 허공을 가르며 ‘아르카디아 호’는 유유히 나아갔다. 수많은 별들이 창밖으로 쏟아지는 보석처럼 반짝였고, 거대한 은하의 나선팔은 잉크가 번진 듯 몽환적인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함선 내부는 그 고요한 외경과 대조적으로, 쉴 새 없이 움직이는 기계음과 증기압 조절기가 내쉬는 희미한 한숨으로 가득했다. 놋쇠와 구리로 정교하게 세공된 파이프들이 천장과 벽면을 복잡하게 휘감고 있었고, 톱니바퀴들은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의 심장 박동처럼 묵묵히 제 할 일을 다하며 맞물려 돌아갔다.
항해사 유진은 검게 칠해진 참나무 탁자에 놓인 거대한 천체도에 시선을 고정한 채, 돋보기 안경을 코끝에 걸고 복잡한 항로를 검토하고 있었다. 고풍스러운 레버를 돌려 망원경의 시야를 미세하게 조정한 그녀의 눈은 수천 년 전의 별자리 표식을 따라 움직였다. 디지털 화면 하나 없이, 오직 태엽 장치와 수동식 레버로만 이루어진 항해 콘솔은 얼핏 구닥다리처럼 보였지만, 그 어떤 최신 장비보다도 정확하고 신뢰할 수 있었다. 아르카디아 호의 존재 이유이기도 했다.
“함장님, 여섯 번째 성운을 통과하는 데 2시간 37분 남았습니다.” 유진이 망원경에서 눈을 떼며 보고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평온했지만, 오랜 항해로 인한 미세한 피로감이 묻어났다.
함장 강철은 자신의 자리에서 느긋하게 차를 마시고 있었다. 찻잔에서 피어오르는 증기는 그의 굳건한 얼굴에 서린 그림자를 더욱 깊게 만들었다. 칠흑 같은 제복 위로 닳아 해진 놋쇠 단추들이 빛났고, 허리춤에는 늘 투박한 증기식 권총이 매달려 있었다. 그는 오랜 세월 우주를 떠돌며 수많은 기적과 절망을 목격한 산증인이었다.
“수고했어, 유진. 특별한 징후는 없나?” 강철 함장이 묵직한 목소리로 물었다.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심우주입니다. 이따금 떠다니는 소행성 잔해가 전부죠.” 유진이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그때였다. 조타실 한편에서 윙윙거리는 기계음이 갑자기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격렬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낡은 증기 압력계의 바늘이 미친 듯이 좌우로 흔들리더니, 이내 경고등 역할을 하는 붉은색 렌즈가 깜빡이기 시작했다.
“젠장, 또 고장인가!” 기관장 현수가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외치며 뛰쳐나왔다. 그의 얼굴은 엔진실의 열기 때문인지 늘 땀으로 번들거렸고, 낡은 가죽 조끼와 기름때 묻은 작업복은 그의 치열한 삶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그는 늘 그렇듯 손에 렌치와 기름 걸레를 든 채였다. “빌어먹을, 이 놈의 기계들은 꼭 중요한 순간에 말썽이야!”
현수는 투덜거리면서도 능숙하게 경고음을 내는 센서 패널로 다가갔다. 그는 복잡한 다이얼들을 빠르게 조작하고, 작은 스팀 밸브를 열어 압력을 조절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기계음은 잦아들기는커녕 더욱 격렬해졌다.
“기계 고장이 아닌데요, 기관장님.” 과학 장교 지아가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는 함선 중앙에 자리한 거대한 천문 관측 장치, 즉 여러 개의 렌즈와 거울, 톱니바퀴로 이루어진 ‘하늘의 눈’ 앞에 서 있었다. 장치의 놋쇠 프레임 사이로 뿜어져 나오던 희미한 증기가 평소보다 훨씬 거칠게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지아의 손가락은 기계식 분석기의 다이얼 위에서 빠르게 움직였다. 그녀의 차분한 표정 속에는 미세한 긴장감이 서려 있었다.
“무슨 소리야? 수치들이 죄다 뒤죽박죽인데?” 현수가 곁눈질로 지아를 흘겨봤다.
“이건 외부에서 오는 신호입니다. 아주 약하지만, 전례 없는 패턴이에요.” 지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녀는 천체 관측 장치에 달린 작은 증기식 프린터에서 잉크로 출력된 종이 한 장을 뽑아 들었다. 종이 위에는 혼란스럽기 짝이 없는 파형 그래프가 인쇄되어 있었다. “지금까지 우리가 기록한 그 어떤 자연 현상과도 일치하지 않습니다.”
강철 함장이 의자에서 일어섰다. 그의 발걸음은 묵직하고 절도 있었다. “위치는?”
“좌현 28도 방향, 약 3천 킬로미터 지점입니다.” 지아가 대답하며 조심스럽게 관측 장치의 망원경을 조절했다. 유리 렌즈들이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며 움직였고, 놋쇠 기어들이 정교하게 맞물려 돌아갔다.
“그 거리에 뭔가 있었다면 진작 탐지되었을 텐데.” 유진이 미간을 찌푸렸다. “소행성이라도 저런 신호를 낼 리가 없어요. 게다가, 저희가 통과해야 할 항로에도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이 신호는 갑자기 나타났습니다. 마치… 무에서 유를 창조하듯.” 지아의 목소리가 점차 진지해졌다.
강철 함장은 잠시 침묵했다. 심우주 탐사란 늘 미지의 위험을 동반하는 일이었다. 수많은 우주 해적들과 예측 불가능한 운석군, 그리고 때로는 정체불명의 현상들이 그들을 위협했다. 하지만 이렇게 완벽한 무(無)의 공간에서 갑작스러운 신호가 발생한 적은 없었다.
“아르카디아 호, 전속력으로 해당 지점으로 이동한다. 모든 탐사 장비를 최대 출력으로 가동하고, 전투 태세를 갖춰라.” 강철 함장의 명령이 떨어지자, 함선 내부는 일순간 긴장감으로 얼어붙었다.
현수는 툴툴거리던 것을 멈추고 거대한 증기 엔진 제어판으로 달려갔다. 굵은 팔뚝으로 놋쇠 레버를 당기자, 함선 깊은 곳에서 웅장한 증기음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펌프들이 격렬하게 물을 뿜어내고, 거대한 톱니바퀴들이 더욱 빠르게 회전하며 함선 전체를 진동시켰다.
유진은 능숙하게 조타 키를 잡고 함선의 방향을 틀었다.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별들의 궤적이 점차 빠르게 늘어났다. 함선은 낡고 투박했지만, 증기와 기계의 힘으로 극한의 성능을 발휘하며 미지의 존재를 향해 나아갔다.
몇 분이 마치 영원처럼 느껴졌다. 함선 내부의 모든 시계 태엽 소리가 마치 심장 박동처럼 크게 들리는 듯했다.
“함장님! 보입니다!” 지아의 다급한 외침이 정적을 깼다. 그녀는 천문 관측 장치에 얼굴을 파묻고 있었다. “크기는… 측정 불가입니다. 형체도 불분명해요. 하지만… 뭔가 분명히 있습니다!”
강철 함장이 유진에게 명령했다. “최대 근접 거리까지 접근한 후 정지.”
함선이 목적지에 다다르자, 모든 엔진음이 서서히 잦아들었다. 증기압이 줄어들고 톱니바퀴들의 회전 속도도 느려졌다. 이윽고 아르카디아 호는 완전한 정지 상태에 들어섰다. 창밖은 여전히 검은 우주였지만, 저 멀리 희미하게 빛나는 무언가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거대한 검은색 구체였다.
아니, 구체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불규칙한 형상이었다. 여러 개의 거대한 육각형 패널들이 서로 연결되어 마치 거대한 벌집처럼 보이기도 했고, 어떤 각도에서는 기계적인 꽃봉오리처럼 보이기도 했다. 재질은 알 수 없었다. 빛을 흡수하는 듯 검푸른 색이었지만, 간혹 패널 사이의 틈새에서 희미한 황금빛이 새어 나왔다. 그 빛은 마치 내부에 거대한 증기기관이 숨겨져 있는 듯, 톱니바퀴가 돌아가는 듯한 일정한 주기를 가지고 깜빡였다.
“이게… 대체 뭐지?” 현수가 넋 나간 듯 중얼거렸다. 그의 기름때 묻은 얼굴에는 경외감과 함께 공포가 서려 있었다.
“탐지 장비로는 어떤 정보도 얻을 수 없습니다. 금속 반응도, 에너지 반응도 없어요. 마치… 이 공간에 존재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지아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그녀는 프린터에서 출력된 또 다른 종이를 멍하니 응시했다. 종이 위에는 아무것도 인쇄되어 있지 않았다. 그저 텅 빈 여백만이 있었다.
강철 함장의 눈은 오직 그 미지의 존재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의 얼굴은 평소의 무뚝뚝한 표정 대신, 깊은 경계심과 함께 이해할 수 없는 흥분으로 빛나고 있었다.
“함장님, 저것은… 저희가 지금까지 알던 그 어떤 것도 아닙니다.” 유진이 조타 키를 꽉 쥔 채 말했다. 그녀의 시선은 공포와 매혹 사이를 오갔다.
그때, 거대한 검은 물체에서 황금빛 섬광이 더욱 강렬하게 번쩍이더니, 육각형 패널 중 하나가 마치 거대한 기계 장치처럼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내부에서는 더욱 강렬한 황금빛이 뿜어져 나왔고, 삐걱거리는 듯한 기계음이 아르카디아 호의 선체 전체를 울렸다. 그리고 그 안에서, 복잡하게 얽힌 톱니바퀴와 빛나는 증기 파이프들로 이루어진 거대한 문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강철 함장은 침묵 속에서 천천히 손을 뻗어, 낡은 인터폰 장치의 수화기를 들었다.
“전 선원에게 고한다. 우리는 미지의 유물을 발견했다. 이제… 인류의 역사에 한 줄이 더해질 것이다.”
그의 목소리는 단호했지만, 그 속에는 심연의 우주가 던진 새로운 수수께끼에 대한 해답을 찾고자 하는 탐욕스러운 갈망이 분명하게 느껴졌다. 아르카디아 호의 승무원들은 그 거대한 기계 장치의 문 안에서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알지 못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했다. 그들의 오랜 항해는 이제 막 진정한 시작을 알리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