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선 ‘해성호’는 망각의 은하를 표류하는 고독한 돛단배와 같았다. 인간의 발길이 닿은 적 없는 심우주, 지도조차 희미한 미개척 지대를 헤치며 나아가는 탐사선. 함장 강준호는 함교의 투명한 창 너머로 펼쳐진 어둠을 응시했다. 수억 개의 별들이 차가운 다이아몬드처럼 박혀 있었지만, 그 빛은 너무 멀어 온기 한 점 느껴지지 않았다. 고립감은 마치 우주의 한숨처럼 해성호의 모든 승무원을 짓눌렀다.
“함장님, 뭔가 감지됐습니다.”
조용한 함교를 찢고 들어온 항해사 박선우의 목소리는 미세하게 들떠 있었다. 젊은 항해사는 언제나 활기 넘쳤지만, 지금은 미지의 것에 대한 흥분과 약간의 불안이 뒤섞인 듯했다.
“자세히 보고해.” 준호가 침착하게 명령했다.
“정확히는… 뭐라고 보고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미확인 에너지 반응입니다. 기존 데이터베이스와 일치하는 패턴이 전혀 없어요. 광도, 주파수, 질량… 모든 것이 비정상입니다. 블랙홀도 아니고, 중성자별 잔해도 아닙니다.”
수석 과학자 윤지아가 제 몸처럼 소중히 여기는 홀로그램 콘솔 앞에 바싹 붙어섰다. 그녀는 날카로운 눈으로 데이터를 분석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허용 오차 범위를 아득히 넘어섰어. 이건 자연적인 현상일 수가 없어. 인위적인… 아니, 그보다 더 알 수 없는 존재로부터의 신호 같아.”
“위치는?” 준호가 의자를 돌려 선우를 바라봤다.
“저기입니다.” 선우의 손가락이 메인 스크린의 한 지점을 가리켰다. 거대한 우주의 장막 속에 손톱만 한 검은 점이 희미하게 깜빡였다. 주변의 별빛을 집어삼킨 듯,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 같은 기묘한 이질감.
“접근 속도를 줄이고, 최저 출력으로 선회해. 교신 시도는 무의미하겠지만, 표준 프로토콜에 따라 광자 통신 시도.”
해성호는 느릿하게 방향을 틀었다. 무려 삼 주간의 항해 끝에, 그들은 검은 점의 실체 앞에 다다를 수 있었다.
그것은 거대한 오벨리스크였다.
우주선 크기만 한 검고 매끄러운 기둥이 끝없이 이어져 있었다. 빛을 반사하지 않고, 오히려 흡수하는 듯한 기묘한 물질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 표면에는 아무런 문양도, 연결 부위도 없었다. 완벽하게 순수하고, 완벽하게 이질적인 존재.
“저게… 대체 뭘까요?” 민준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기관장인 그는 공돌이 특유의 실용주의적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다. “뭔가 동력원이라도 있을 텐데, 아무것도 탐지되지 않습니다. 스캔이 전부 튕겨나가요.”
지아는 홀린 듯 모니터를 들여다봤다. “완벽해. 재료 구조도, 형태도. 마치 우주 자체의 정수처럼 완벽해. 이 정도로 순수한 것은 본 적이 없어. 마치… 어떤 의도를 담아 정교하게 깎아낸 조각 같아. 자연 발생물은 아니야.”
“인공물이라는 뜻입니까?” 선우가 되물었다.
“그 인공물이 누가 만들었느냐는 거지. 그리고 왜 이런 망각의 구석에 처박혀 있느냐는 거고.” 준호는 턱을 매만졌다. “근접 탐사 드론을 보내. 표면에 닿지 않도록 주의하고.”
드론이 오벨리스크 주위를 맴돌았다. 드론에 장착된 고화질 카메라가 송출하는 영상은 놀라웠다. 오벨리스크는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아주 미세하게, 느릿하게 맥동하고 있었다. 규칙적인 파동이 아니었다. 어떤 거대한 심장이 뛰는 듯한, 혹은 깊은 잠에 빠진 생명체가 숨 쉬는 듯한 움직임이었다.
그때였다. 민준이 소리쳤다. “에너지 수치가! 갑자기 급증합니다! 함장님, 전 시스템 전력 불안정합니다!”
함선 전체가 위아래로 흔들렸다. 경고음이 요란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준호는 재빨리 명령했다. “즉시 이탈! 엔진 출력 최대로 올려!”
그러나 해성호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마치 보이지 않는 끈에 묶인 것처럼 오벨리스크의 주위를 맴돌았다.
“젠장, 함장님! 조작이 안 먹힙니다! 시스템이 먹통이에요!” 선우가 다급하게 외쳤다.
“우리가 아니라… 오벨리스크가 우리를 끌어당기고 있어.” 지아가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에너지가… 우리 함선의 모든 전력을 빨아들이고 있어요. 마치… 우리를 맛보는 것처럼.”
메인 스크린에 오벨리스크의 확대된 표면이 나타났다.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던 미세한 균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틈새에서 희미한 보라색 빛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빛과 함께, 마치 수만 개의 목소리가 동시에 속삭이는 듯한, 혹은 수백만 년 된 꿈의 잔해가 부서지는 듯한 끔찍한 소리가 승무원들의 뇌리를 때렸다. 그것은 어떤 언어도 아니었고, 단어의 조합도 아니었다. 순수한 의미, 순수한 감정, 순수한 공포가 오디오 파일처럼 직접적으로 주입되는 것 같았다.
준호의 머릿속에 알 수 없는 영상들이 번개처럼 스쳐 지나갔다. 검은 심연, 끝없이 반복되는 파멸, 그리고 이해할 수 없는 존재들의 그림자. 그는 이를 악물고 버텼다.
“모두… 정신 똑바로 차려!” 그의 목소리는 경고음과 혼란 속에서도 단호했다. “이건… 이건 우리 정신에 직접 작용하고 있어! 외부 연결 모두 차단해! 함선 보호막 최대로 올려!”
민준이 재빨리 시스템을 조작했지만, 이미 늦은 듯했다. 모든 외부 통신이 끊겼고, 함선 내부 조명마저 깜빡거리기 시작했다. 선우가 소리를 질렀다. “함장님! 저기… 저기 봐요!”
그가 가리킨 곳은 지아였다. 수석 과학자는 홀로그램 콘솔에 이마를 박고 있었다. 그녀의 눈은 공포로 가득했고, 입은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는 듯 벌어져 있었다. 그녀의 귀에서, 그리고 콧구멍에서 핏물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지아!” 준호가 그녀에게 달려갔다. 지아는 마치 귀신에 홀린 사람처럼 몸을 떨었다. “들려… 들려요, 함장님… 저게… 저게 말을 해요… 우리에게… 모든 것을… 보여준대요… 영원의 고통을…” 그녀의 눈동자가 초점을 잃고 허공을 응시했다. 그리고 그녀의 눈에서, 이젠 핏물뿐 아니라 검은 액체가 흘러내렸다. 마치 우주의 심연처럼 칠흑 같은 액체였다.
“지아, 괜찮아! 괜찮을 거야!” 준호는 그녀를 흔들었지만, 그녀는 이미 그의 시선 속에 없는 듯했다. 오직 오벨리스크만이 그녀의 정신을 지배하는 듯했다.
그때, 민준이 굉음과 함께 쓰러졌다. 그의 등 뒤에 있던 계기판이 스파크를 일으키며 터져 나갔다. “함장님… 기관실… 기관실이… 텅 비어버렸어요… 모든 부품이… 사라졌습니다…” 민준의 눈은 경악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는 마치 투명 인간이라도 본 것처럼 허공을 가리켰다. 하지만 그의 손끝은 이미 검게 변색되어 있었다. 마치 차가운 강철에 너무 오래 노출된 것처럼.
준호는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것을 느꼈다. 그들은 단순히 에너지를 빨아들이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물리적인 존재를 ‘소거’하고 있었다.
“함장님… 제가 뭘 본 줄 아세요…?” 선우의 목소리는 파르르 떨렸다. 그의 눈은 스크린에 고정되어 있었다. 스크린에는 오벨리스크의 표면이 여전히 느리게 맥동하고 있었다. “저… 저 균열 안에서… 뭔가 꿈틀거리고 있어요… 수많은 눈알이 저를 쳐다보고 있어요… 제 이름을 불러요…”
선우는 마치 경련이라도 일으킨 듯 몸을 흔들었다. 그리고는 갑자기 자신의 눈을 손가락으로 찔러 넣으려고 했다.
“안 돼, 선우!” 준호가 급히 그를 제지했다. 간신히 선우의 손을 잡았지만, 그는 이미 거의 미쳐버린 상태였다. 그의 눈은 충혈되어 있었고, 공포와 광기가 뒤섞인 외침이 함교에 울려 퍼졌다. “다 거짓말이야! 다 꾸며낸 이야기야!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이 다 가짜였어! 진짜는 저 안에 있어! 저 어둠 속에…”
선우의 피부가 보랏빛으로 변색되기 시작했다. 그의 몸에서 가느다란 검은 촉수 같은 것이 돋아나는 듯했다.
준호는 본능적으로 주머니에서 비상용 섬광탄을 꺼냈다. 이것은 정신 공격에 대응하기 위한 최종 수단이었다. 오벨리스크가 내뿜는 알 수 없는 정신적 파장에 대한 유일한 저항 수단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정말 효과가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모두 눈 감아! 귀 막아! 지금 당장!” 준호는 목이 터져라 소리쳤다.
민준은 이미 반쯤 의식을 잃은 채 바닥에 쓰러져 있었고, 지아는 홀로그램 콘솔 위에서 미동도 없었다. 오직 선우만이 공포에 질린 눈으로 준호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이미 인간의 것이라고 할 수 없을 만큼 일그러져 있었다.
섬광탄이 터졌다. 끔찍한 빛과 굉음이 함교를 뒤흔들었다.
일순간, 모든 것이 정지했다. 오벨리스크에서 뿜어져 나오던 알 수 없는 속삭임도, 해성호의 흔들림도 멈췄다. 함선 내부의 어두침침한 조명이 다시 불안정하게 깜빡였다.
준호는 눈을 가늘게 뜨고 주변을 살폈다.
민준은 여전히 쓰러져 있었다. 지아도 마찬가지였다. 선우는… 선우는 그 자리에 없었다. 그가 서 있던 자리에는 검은 액체의 흔적만이 섬광탄의 후광처럼 남아 있었다. 마치 그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준호의 심장이 얼어붙는 듯했다.
“함장님…” 민준이 흐느끼는 목소리로 준호를 불렀다. “기관실…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엔진도… 모든 것이요…”
준호는 고개를 돌려 메인 스크린을 바라봤다. 오벨리스크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그러나 그 표면의 균열은 더욱 깊어지고 넓어져 있었다. 마치 거대한 눈꺼풀이 서서히 열리는 것처럼. 그리고 그 안에서, 수만 개의 검은 촉수가 스멀스멀 기어 나오는 환영이 준호의 눈앞에 선명하게 펼쳐졌다.
그것은 단순한 환영이 아니었다. 그의 심연 속에서, 오벨리스크가 속삭였다. *너희는 보았다. 너희는 알았다. 이제… 너희는 우리의 일부가 될 것이다.*
준호는 떨리는 손으로 함선 내부 통신 마이크를 쥐었다. “본부… 여기 해성호… 우리는… 알 수 없는… 존재와 마주쳤다. 이것은… 살아있는… 우주 자체의… 악의다. 이 신호를 받거든… 절대… 오지 마라… 절대… 뒤돌아보지 마…”
그의 목소리가 끊기기 전에, 해성호의 모든 시스템이 완전히 정지했다. 조명이 꺼지고, 경고음마저 침묵했다. 절대적인 어둠과 침묵만이 해성호를 집어삼켰다.
함교의 투명한 창 너머, 오벨리스크의 균열은 완전히 벌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무한한 어둠이 마치 거대한 입처럼 벌어져 해성호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준호는 어둠 속에서 흐릿하게 지아와 민준을 바라봤다. 그들의 몸에서도 희미하게 보랏빛이 감돌고 있었다. 그들의 시선은 이미 이성 너머의 것을 보고 있는 듯했다.
어쩌면… 이것은 탐사가 아니었다.
어쩌면… 이것은 인류의 끝이었다.
그리고 어쩌면… 그들은, 그 거대한 존재의 오랜 잠을 깨운 대가로, 그들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야 할 운명이었는지도 몰랐다.
심우주의 심연에서, 해성호는 오벨리스크의 입 속으로, 영원한 어둠 속으로 서서히 빨려 들어갔다. 남은 것은 오직 우주의 차가운 침묵, 그리고 영원히 메아리치는 비명뿐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