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힐링 애니메이션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 밤하늘 아래, 한 조각 희망

고요한 밤이었다. 숲 그림자 아래 깊숙이 숨어든 바람골에는 제국군의 그림자조차 닿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풀벌레 소리가 자장가처럼 나직이 울리고, 멀리 개울물 흐르는 소리가 졸음 섞인 정적을 흔들었다. 미나는 작은 오두막의 창문 틈으로 새어 들어오는 달빛 아래 앉아 허브 꾸러미를 정리하고 있었다. 말린 약초들에서는 흙냄새와 풀 내음, 그리고 희미한 박하 향이 섞여 났다.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리는 밤이었다.

그녀의 손길은 조심스러웠다. 어둠 속에서도 빛을 잃지 않는 은빛 약초, ‘밤이슬풀’을 만질 때마다 미나의 얼굴에는 희미한 걱정이 스쳤다. 오늘 아침, 카엘이 간신히 구해온 몇 안 되는 귀한 약초였다. 며칠 전 제국 병사들이 마을을 휩쓸고 간 뒤, 감기몸살을 앓는 아이들이 늘었다. 약탈당한 곡식 창고와 망가진 우물도 문제였지만, 가장 큰 걱정은 바로 아이들이었다.

“미나, 아직 안 자고 있었니?”

나직한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다. 엘라라 촌장이었다. 그의 얼굴에는 깊은 주름이 패어 있었지만, 눈빛만은 총명하고 따뜻했다. 미나는 고개를 돌려 웃었다.

“촌장님도요. 걱정돼서 잠이 오지 않아요.”

엘라라 촌장은 미나의 옆에 천천히 앉았다. 오래된 나무 냄새가 났다.

“아이들이 많이 아파서 말이다. 밤이슬풀이 없었으면 큰일 날 뻔했어.”

미나는 말없이 약초를 바라봤다. 밤이슬풀은 독특한 약효를 가지고 있었다. 열을 내리고 통증을 완화하는 데 탁월했지만, 숲속 깊은 곳, 그것도 제국군 순찰로와 가까운 곳에서만 자랐다. 카엘이 얼마나 위험을 무릅썼을지 미나는 짐작할 수 있었다.

“이걸로 모두 치료할 수는 없어요. 양이 너무 적어요. 며칠 안에 더 구해오지 않으면….”

미나의 목소리 끝이 흐려졌다. 엘라라 촌장이 그녀의 어깨를 조용히 두드렸다.

“알고 있다. 내일 아침, 카엘과 함께 ‘잊힌 계곡’으로 가보자. 예전에 그곳에서 밤이슬풀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 걸 본 적이 있지.”

잊힌 계곡. 그곳은 제국의 감시가 더욱 삼엄한 곳이었다. 버려진 광산과 제국군 초소가 가까워 평소에는 발길조차 하지 않는 위험한 장소였다. 미나의 눈이 커졌다.

“하지만… 촌장님께서 직접 가시다니요. 너무 위험해요. 카엘과 제가….”

“나도 바람골의 촌장이다. 아이들이 아파 죽어가는 걸 보고만 있을 수는 없어.” 엘라라 촌장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게다가 ‘잊힌 계곡’은 지형이 복잡하고 은밀한 길목이 많아. 젊은 너희만으로는 위험하다. 내 오랜 경험이 도움이 될 거다.”

미나는 촌장님의 결심을 꺾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창문 밖 어둠은 더욱 짙어지고 있었다.

***

다음 날 새벽, 동이 트기 한참 전이었다. 숲은 아직 깊은 잠에 빠져 있었고, 이따금씩 들려오는 짐승의 울음소리가 으스스한 분위기를 더했다. 미나, 카엘, 그리고 엘라라 촌장은 바람골을 나섰다. 미나와 카엘은 가벼운 차림이었지만, 촌장님은 평소 입던 투박한 옷 위에 낡은 모자를 눌러 쓰고 있었다. 그의 손에는 묵직한 지팡이가 들려 있었다.

“촌장님, 이 길이 맞으시겠어요? 예전 기억이라니….” 카엘이 투덜거렸다. 그의 허리에는 작은 단검이 매달려 있었고, 등에는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활통이 있었다.

“걱정 마라, 카엘. 늙은이의 기억력이 그렇게 시시하지는 않단다.” 엘라라 촌장은 나지막이 웃었다. “밤이슬풀은 습하고 그늘진 곳을 좋아해. 게다가 땅속에서 스며 나오는 기운을 먹고 자라지. ‘잊힌 계곡’의 특정 지점은 그런 환경에 완벽하게 들어맞았어.”

그들의 발걸음은 조심스러웠다. 나뭇가지 밟는 소리조차 크게 느껴졌다. 숲은 차가운 새벽 공기를 머금고 있었지만, 그들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다. 한 시간가량 숲속을 헤치고 나아가자, 숲은 점차 희미해지고 거친 바위 지형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여기부터 ‘잊힌 계곡’의 초입이다.” 엘라라 촌장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제국군의 순찰대가 오가는 길이니 조심해야 해. 최대한 몸을 낮춰 움직이자.”

그들은 바위 뒤에 몸을 숨기고 주변을 살폈다. 멀리 안개가 자욱한 계곡 아래로, 희미하게 빛나는 제국군 초소의 등불이 보였다. 초소 주변으로는 망루가 솟아 있었고, 그 위에 선 병사들의 실루엣이 위협적으로 느껴졌다. 미나의 심장이 쿵쿵거렸다.

“젠장, 저번보다 경비가 더 삼엄해졌잖아!” 카엘이 낮은 목소리로 이를 갈았다.

“제국이 식량을 약탈하면서 인력을 더 배치한 모양이구나. 욕심이 끝이 없으니….” 촌장님의 얼굴에도 걱정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우리가 찾으려는 곳은 저 초소에서 조금 떨어진 곳이다. 계곡 아래로 내려가지 말고, 이 능선을 따라가면 작은 동굴이 나올 게야.”

그들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몸을 최대한 낮추고, 바위와 수풀을 이용해 은밀하게 전진했다. 미나는 혹시 모를 소리에 대비해 숨소리마저 죽였다. 발밑의 자갈이 굴러갈까 조마조마했다.

한참을 기어가듯 움직였을까. 이윽고 촌장님이 손을 들어 멈춰 서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들의 눈앞에는 바위틈새에 숨겨진 듯한 작은 동굴 입구가 나타났다. 입구는 덩굴로 덮여 있어 언뜻 보면 단순한 바위처럼 보였다.

“여기다.” 엘라라 촌장이 속삭였다. “동굴 안으로 들어가자. 이곳은 제국 병사들이 알지 못하는 길이다. 동굴을 통과하면 바로 밤이슬풀 군락이 있는 곳으로 이어질 게야.”

그들은 조심스럽게 덩굴을 걷고 동굴 안으로 들어섰다. 동굴 안은 차갑고 축축했으며, 희미한 흙냄새와 물 냄새가 났다. 미나는 손전등 대신 허리에 차고 있던 작은 등불을 꺼내 불을 밝혔다. 작은 불빛이 동굴의 좁은 통로를 비췄다.

동굴은 생각보다 깊고 미로 같았다. 촌장님의 기억을 더듬어 가며 그들은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안으로 향했다. 카엘은 앞장서서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했고, 미나는 뒤따르며 주변을 살폈다.

“이봐, 저기 저 빛은 뭐지?”

카엘의 나직한 목소리에 미나가 고개를 들었다. 동굴 통로 저편에서 희미한 푸른빛이 깜빡이고 있었다. 신비로운 빛이었다.

“밤이슬풀이 자라는 곳이 가까워졌다는 증거다.” 촌장님이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그들은 빛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이윽고 좁은 통로가 넓은 동굴 공간으로 이어졌고, 그들의 눈앞에 믿기 힘든 광경이 펼쳐졌다.

동굴 안쪽의 거대한 바위벽을 따라, 푸른빛을 발하는 수많은 밤이슬풀이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마치 별들이 땅으로 내려와 앉은 듯, 동굴 전체가 신비로운 푸른빛으로 가득했다. 습기를 머금은 공기 중에는 풀 내음과 함께 은은한 향기가 퍼졌다.

미나의 눈에서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정말… 아름다워요.”

카엘조차 넋을 잃고 그 푸른빛을 바라보고 있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군. 이걸로 아이들을 충분히 치료할 수 있겠어!” 카엘의 목소리에는 기쁨이 가득했다.

그들은 조심스럽게 밤이슬풀을 채취하기 시작했다. 미나는 뿌리째 뽑지 않고, 다음 세대를 위해 줄기만 잘라내 바구니에 담았다. 촌장님은 뿌리가 깊이 박힌 것들만 골라 조심스럽게 캐냈다. 카엘은 주변을 경계하며 그들을 도왔다.

채취가 절반쯤 진행되었을 때였다.

**쾅! 쾅! 쾅!**

갑작스러운 굉음이 동굴 입구 쪽에서 울려 퍼졌다. 바위 조각들이 천장에서 후두둑 떨어져 내렸다.

“제국군이다!” 카엘이 다급하게 외쳤다. 그의 얼굴은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동굴 입구 쪽에선 흙먼지가 피어오르고, 멀리서 희미하게 병사들의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제국군이 동굴 입구를 찾아낸 것이었다.

“이쪽이다! 쥐새끼 같은 반란군 놈들이 여기 숨어있을 줄이야!”

병사들의 거친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밤이슬풀의 푸른빛은 여전히 신비롭게 빛났지만, 이제 그 빛은 마치 그들의 마지막 순간을 비추는 듯 애처로워 보였다.

“서둘러! 반대편 통로가 있을 게다!” 엘라라 촌장이 소리쳤다. 그의 눈빛은 여전히 침착했지만, 미나의 손은 채취하던 밤이슬풀을 든 채 덜덜 떨리고 있었다.

그들은 채취하던 바구니를 움켜쥐고 동굴 깊은 곳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뒤에서는 제국군 병사들의 고함과 발소리가 맹렬하게 추격해오고 있었다. 과연 그들은 이 어두운 동굴 속에서, 희망의 푸른빛을 지켜낼 수 있을까? 다음 순간을 알 수 없는 어둠 속으로 그들은 뛰어들었다.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