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 스릴러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오후 11시 37분.”

김현우는 낡은 작업실의 삐걱이는 의자에 몸을 기댔다. 늦은 밤의 정적은 그의 고단한 숨소리와 탁상 위의 낡은 시계 태엽 소리만이 간신히 깨고 있었다. 먼지 섞인 공기는 희미한 전등 아래에서 마치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춤을 추었고, 사방에 흩어진 수리 대기 중인 골동품들은 저마다의 비밀을 숨긴 채 묵묵히 서 있었다. 오늘은 도통 집중이 되지 않았다. 밀려오는 공과금 고지서와 텅 빈 통장 잔고가 그의 미간을 깊게 패어 놓았다.

“젠장.”

현우는 낮게 읊조렸다. 조용히 숨 쉬듯 흐르던 시간 속에 균열이 가는 소리 같았다. 며칠 전, 낡은 가구들과 함께 창고에서 겨우 들여온 오래된 목함 하나가 그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겉보기엔 그저 평범한, 오랜 세월의 때가 덕지덕지 붙은 투박한 나무 상자였다. 하지만 다른 물건들과는 미묘하게 달랐다. 묘한 끌림, 혹은 알 수 없는 이질감.

그는 작업용 장갑을 벗고 상자를 다시 손에 들었다. 손끝에 닿는 나무의 질감은 거칠었지만, 어딘지 모르게 매끄러운 윤기가 감돌았다. 한쪽 모서리에 희미하게 새겨진 문양이 눈에 들어왔다. 오래된 상형문자 같기도 하고, 정교한 미로 같기도 한 무늬. 그는 돋보기를 들어 문양을 확대했다. 미로의 가장자리에 아주 작게, 식별하기 어려운 글자들이 새겨져 있었다.

“이건… 대체 무슨 언어지?”

수십 년간 온갖 고문서를 다뤄온 그의 경험으로도 알 수 없는 형태였다. 단순한 장식이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섬세하고, 어딘가 강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현우는 끌리듯 상자의 잠금장치를 풀어냈다. 오래된 나무 냄새와 함께, 퀴퀴하고 습한 공기가 훅 끼쳐 나왔다. 상자 안에는 역시나 별것 없었다. 바싹 마른 나뭇잎 몇 장, 이름 모를 작은 돌멩이들, 그리고…

손바닥만 한 크기의, 검고 매끄러운 돌멩이.

그는 조심스럽게 그것을 집어 들었다. 예상보다 훨씬 무거웠다. 차갑고 단단한 감촉. 마치 수십억 년 동안 모든 것을 응축시킨 듯한 무게감이었다. 자세히 보니 돌멩이 표면에는 역시나 그 미로 같은 문양이 음각으로 새겨져 있었다. 상자 모서리의 것과 똑같은 문양이었다. 그는 엄지손가락으로 문양의 가장자리를 천천히 쓸어보았다.

그 순간, 섬뜩한 한기가 그의 손가락 끝을 타고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심장이 쿵, 하고 한 박자 빠르게 뛰었다. 동시에 뇌리를 강타하는 기묘한 감각. 마치 아주 먼 옛날, 잊혀진 꿈의 조각들이 파편처럼 그의 의식 속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듯했다.

_쨍그랑!_

아니, 이건 착각이다. 작업실 창밖 어딘가에서 유리 깨지는 소리가 들린 것 같기도 했다. 아니면 그저 그의 귀가 지어낸 환청일지도. 현우는 정신을 가다듬으려 애썼지만, 손에 든 돌멩이가 그의 의지를 비웃기라도 하듯 강렬한 진동을 내뿜는 것 같았다. 그의 머릿속에 알 수 없는 영상들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황량한 들판.
타오르는 불꽃.
비명.
그리고… 무언가 절규하는 듯한, 알아들을 수 없는 속삭임.

“으윽!”

현우는 자신도 모르게 돌멩이를 떨어뜨렸다. 돌멩이는 작업대 위를 몇 번 구르다 낡은 천 조각 아래로 사라졌다. 쿵, 쿵, 쿵. 심장이 여전히 발광하듯 뛰어댔다. 그는 숨을 헐떡이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었고, 방금 전의 소리와 영상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그저 고요함만이 그를 감쌌다.

“내가 미쳤나…?”

현우는 마른세수를 했다. 피곤이 극에 달하면 가끔 이런 환각을 본다고들 했다. 잠이 부족해서 그런 것이리라. 그는 애써 그렇게 합리화했다. 하지만 손끝에 남아있는 차가운 감촉과, 귓가에 맴도는 알 수 없는 속삭임은 쉬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는 천천히 몸을 숙여 작업대 아래로 사라진 돌멩이를 찾았다. 손가락으로 천 조각을 헤치자, 검은 돌멩이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왠지 모르게 아까보다 더 어둡고, 더 깊어진 듯한 색깔이었다. 현우는 망설였다. 다시 집어 들었다가 또 그런 경험을 하게 될까 봐 두려웠다. 그러나 동시에, 알 수 없는 호기심이 그의 심장을 갉아먹는 듯했다. 대체 저 돌멩이는 무엇이며, 방금 그 현상은 무엇이었을까?

결국, 그는 다시 돌멩이를 집어 들었다. 이번에는 좀 더 단단히, 마치 돌멩이가 도망이라도 갈 것처럼 꽉 쥐었다.

_쉬이이이이…_

이번에는 소리였다. 아주 희미하게, 마치 바람이 귓가를 스치는 듯한 소리. 이내 그 소리는 명확한 형체를 갖추기 시작했다. 알 수 없는 언어로 속삭이는 소리. 그것은 웅얼거리는 주문 같기도 하고, 섬뜩한 경고 같기도 했다.

현우의 눈앞이 다시 흐려졌다. 이번에는 더 선명했다. 들판이 불탔고, 검은 연기가 하늘을 뒤덮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고, 그들 사이에서 거대한 그림자가 일렁였다. 그림자는 사람들의 두려움을 먹어치우는 듯했다. 그리고 그 그림자의 한가운데, 바로 자신이 서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마치 그 모든 공포를 온몸으로 느끼는 듯했다. 피부가 타는 듯한 고통, 폐부를 찢는 듯한 연기, 귀를 찢을 듯한 비명 소리…

그것은 단순한 환각이 아니었다. 분명 과거의 기억이었다. 하지만 누구의 기억인지 알 수 없었다. 돌멩이, 이 검은 돌멩이가 품고 있는 기억이었다.

“아악!”

현우는 비명을 지르며 돌멩이를 바닥에 내던졌다. 돌멩이는 묵직한 소리를 내며 바닥에 부딪혔고, 동시에 그의 머릿속을 강타하던 모든 감각이 사라졌다. 그는 식은땀으로 축축한 얼굴을 쓸어내렸다. 심장이 갈비뼈를 뚫고 나올 듯 격렬하게 뛰었다.

공포. 순수한 공포가 그의 뇌를 지배했다. 그 돌멩이는 평범한 물건이 아니었다. 어떤 고대의, 잊혀진 힘이 깃들어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 힘은 사람의 정신을 휘저어 놓을 수 있는 것이었다.

현우는 떨리는 손으로 휴대폰을 꺼냈다. 지금 당장이라도 누군가에게 이 사실을 알려야 했다. 하지만 누구에게? 누가 그의 말을 믿어줄까? 미쳤다고 할 게 뻔했다.

그는 바닥에 떨어진 돌멩이를 노려보았다. 검고 매끄러운 표면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고요했다. 하지만 현우는 알 수 있었다. 저 안에 무언가가 잠들어 있었다. 그리고 그는 우연히, 혹은 운명처럼 그 잠을 깨워버린 것이었다.

그때였다.

작업실 창밖에서 희미한 인기척이 느껴졌다. 어두운 골목길, 가로등 불빛 아래에서 길게 드리워진 그림자. 사람의 형상이었다. 그 그림자는 마치 자신이 현우의 시선을 의식한 것처럼, 아주 천천히 고개를 돌려 작업실 창문을 응시했다.

현우의 등골에 소름이 돋았다. 누군가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가 돌멩이의 힘을 발견한 순간부터, 아니, 어쩌면 그 이전부터.

그 그림자는 현우가 숨쉬는 소리조차 들릴 만큼 명확하게 그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림자의 입술이 아주 희미하게 움직였다.
마치, 속삭이듯이.

_찾았다.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