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크 판타지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 제124화: 절규의 제단

핏빛 달이 창백한 비늘처럼 하늘에 박혀 있었다. 부서진 대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 창문을 통해 쏟아져 들어온 달빛은 먼지로 뒤덮인 바닥에 기이한 문양을 그려냈다. 한때 신성했을 이 공간은 이제 악취와 정체 모를 액체의 끈적거림으로 가득 차 있었다. 희미하게 타오르는 횃불 몇 개가 어둠의 그림자를 춤추게 할 뿐, 살아 있는 기척이라곤 희박했다.

그러나 어둠은 모든 것을 집어삼키지 못했다.
그림자 속에서 한 남자가 걸어 나왔다.
하룬.
그의 발걸음은 소리 하나 내지 않았고, 그의 존재는 주위의 모든 빛을 빨아들이는 듯했다. 찢어진 검은 로브 아래로 드러난 몸은 비쩍 말라 있었지만, 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은 압도적이었다. 얼굴은 깊은 그늘에 잠겨 있었으나, 이따금 스쳐 지나가는 횃불 빛에 드러나는 눈은 지옥의 불꽃처럼 이글거렸다. 복수심으로 끓어오르는, 오직 한 방향만을 응시하는 시선이었다.

대성당의 중앙, 부서진 제단 앞에 서 있던 남자가 하룬의 등장에 몸을 굳혔다. 세라핌의 가장 충직한 수족 중 하나인 알베르트였다. 한때는 하룬과 함께 전장을 누비던 자였으나, 이제는 변절자의 개가 되어 그의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알베르트는 하룬의 그림자가 드리워지자마자 본능적으로 검집에 손을 얹었다. 그의 눈에는 공포와 경계심이 뒤섞여 있었다.

“왔군, 하룬.”
알베르트의 목소리는 떨렸지만, 애써 담담한 척하려 했다. 그의 눈은 하룬의 온몸을 훑었다. 과거의 하룬과는 너무나도 달랐다. 생기 넘치던 눈빛은 사라지고, 오직 차가운 분노만이 그를 지배하는 듯했다.

하룬은 아무 말 없이 한 걸음, 또 한 걸음 다가섰다. 그의 그림자가 알베르트를 완전히 집어삼킬 듯 드리워졌다.
“세라핌은 어디에 있지?”
하룬의 목소리는 깊은 심연에서 울려 퍼지는 메아리 같았다. 마치 오랜 세월 동안 차갑게 굳어진 바위가 마침내 갈라지는 소리 같았다.

알베르트는 쓴웃음을 지었다.
“내가 그걸 너에게 알려줄 것 같으냐? 널 죽이려 했던 자에게 충성하는 나 같은 놈이?”
그의 손이 빠르게 검을 뽑아 들었다. 강철이 공기를 가르는 날카로운 소리가 대성당에 울려 퍼졌다. 알베르트의 검은 한때 하룬의 검과 함께 수많은 적을 베어 넘겼던 검이었다.

하룬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그의 발치에 굴러다니던 돌멩이 하나가 마치 스스로 의지를 가진 듯, 스르륵 떠올랐다. 그리고는 섬광처럼 알베르트의 검을 향해 날아갔다.
*쨍그랑!*
돌멩이는 알베르트의 검날에 부딪쳐 산산조각 났지만, 그 충격은 알베르트의 손목을 강타했다. 검은 그의 손에서 벗어나 쨍그랑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졌다. 알베르트는 고통에 신음하며 손목을 움켜쥐었다.

“네 주인의 그림자 아래서 겨우 이 정도의 기술만을 익혔느냐?”
하룬의 조롱 섞인 목소리는 그의 고통을 더욱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내가 놈에게 배신당해 죽음의 문턱을 헤매는 동안, 놈은 너희에게 무엇을 주었지? 영광? 아니면 기만적인 약속?”

알베르트는 떨리는 목소리로 외쳤다.
“닥쳐! 세라핌 님은 우리에게 새로운 질서를 가져다주셨다! 혼돈 속에서 길을 잃었던 세상을 구원하셨단 말이다! 너 같은 자가 감히 그분을 모욕할 수 없어!”

하룬은 멈춰 섰다. 그의 눈빛이 더욱 깊어졌다.
“구원? 그 놈이 가져온 것이 ‘구원’이라 부를 만한 것이었더냐? 네 심장을 파먹고, 네 영혼을 갉아먹는 것이 ‘질서’더냐? 잊었느냐? 세라핌이 어떤 자였는지? 우리가 함께 맹세했던 정의를!”

알베르트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하룬의 말은 그의 가장 깊은 곳에 숨겨진 죄책감을 건드렸다.
“넌… 넌 이미 죽은 자다, 하룬! 넌 그날 그 심연에서 벗어날 수 없었어야 했다! 네가 돌아온 것은 저주의 징조일 뿐이야!”

하룬의 입술 끝이 비틀어졌다. 그것은 조소였다. 아니, 차라리 고통에 찬 비명에 가까웠다.
“그래, 나는 죽었다. 너희가 나를 죽였다. 하지만 죽음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들었다. 너희가 나를 내던진 심연은 나의 스승이 되었고, 나의 분노는 나의 심장이 되었다.”

그의 오른손이 천천히 위로 들렸다. 손가락이 움직이자, 바닥에 뒹굴던 검이 마치 살아 있는 뱀처럼 꿈틀거리며 허공으로 떠올랐다. 검은 알베르트의 목을 향해 날카롭게 겨눠졌다.
“다시 묻겠다. 세라핌은 어디에 있지?”
하룬의 목소리는 더 이상 질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명령이자, 피할 수 없는 운명의 선고였다.

알베르트는 온몸이 굳어졌다. 공포가 그의 이성을 마비시켰다.
“그분은… 그분은 지금 북부의 ‘어둠의 요새’에서… 그분만의 의식을 준비하고 계신다… 감히 상상도 못 할 힘을… 손에 넣으시려고…”
그의 목소리는 갈라지고 끊겼다.

“의식? 또 다른 기만인가?”
하룬의 눈에서 차가운 빛이 번뜩였다. 그의 눈빛은 알베르트의 심장을 꿰뚫는 듯했다.
“그 놈은 항상 그랬지. 달콤한 말로 속이고, 약한 자들을 이용하며 자신의 탐욕을 채웠다. 이번엔 무엇을 제물로 바치려는 거지?”

알베르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는 하룬의 눈빛에서 섬뜩한 확신을 보았다. 마치 하룬이 세라핌의 모든 계획을 꿰뚫고 있는 듯한.
“그, 그건… 나도 자세히는… 하지만 그분이 ‘태초의 비명’이라고 불리는… 고대의 힘을… 깨우려 하신다고… 들었을 뿐입니다…”

태초의 비명.
하룬의 심장이 차갑게 얼어붙는 것을 느꼈다. 그 힘은 단순히 ‘강력한’ 수준을 넘어선, 세상을 파멸로 이끌 수 있는 고대의 재앙이었다. 세라핌은 기어코 그 금지된 힘에 손을 대려 하는 것인가? 자신이 세라핌과 함께 찾아 헤맸던, 하지만 결국 봉인해야 한다고 결론 내렸던 그 힘을.

“어둠의 요새… 태초의 비명…”
하룬의 중얼거림은 대성당 전체에 음산한 기운을 드리웠다.
“세라핌. 너는 기어코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는구나.”

떠 있던 검이 알베르트의 목으로 더욱 가까이 다가갔다. 차가운 강철이 살갗에 닿는 느낌에 알베르트는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하룬… 제발… 살려다오… 내가 아는 모든 것을 말했다… 세라핌은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강해졌다… 그분은 이제 신에 가까운 존재야… 넌 그분을 이길 수 없어…!”

하룬의 눈은 흔들림이 없었다.
“신? 그 놈이 신이 되려 한다면, 나는 그 신을 죽이는 악마가 되어주마.”
그의 손에 든 검이 망설임 없이 움직였다.

차가운 강철이 살을 가르는 소리.
뜨거운 피가 뿜어져 나오며 부서진 제단을 붉게 물들였다.
알베르트의 눈은 공포와 경악으로 물든 채 허공을 응시했다. 그의 몸은 힘없이 바닥으로 쓰러졌다. 그의 마지막 숨은 절규가 되지 못하고 희미한 한숨처럼 사라졌다.

하룬은 피로 물든 검을 외면했다. 그의 눈길은 오직 북쪽을 향했다. 어둠의 요새가 있는 방향.
“세라핌… 네가 나를 죽인 그날부터, 너의 심장은 이미 내 칼날 위에서 춤추고 있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단 한 점의 주저함도 없었다.
복수의 길은 끝이 보이지 않았지만, 하룬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그는 죽음의 그림자를 뒤에 남기고, 새로운 어둠 속으로 녹아들었다.
태초의 비명이 울려 퍼지기 전에, 모든 것을 끝내야만 했다.

하룬의 그림자가 대성당의 가장 깊은 곳, 가장 어두운 틈새로 사라졌다.
그가 떠난 자리에는, 오직 차가운 달빛과 피의 비린내만이 가득했다.
그리고, 모든 것을 삼킬 듯 고요한 침묵이….

(제124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