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협 (신선)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제12화: 핏빛 황야의 그림자**

잿빛 하늘 아래, 류진은 갈라진 대지 위를 걷고 있었다. 발걸음마다 푸석한 흙먼지가 피어올랐고, 한때 푸르렀을 법한 초목은 말라비틀어진 뼈대만을 드러낸 채 황량한 풍경의 일부가 되어 있었다. 해는 이미 지평선 너머로 기울어 검붉은 노을이 하늘을 채웠고, 그 색깔은 마치 피를 토해낸 듯 섬뜩했다.

“젠장…”

류진은 마른 입술을 씹으며 중얼거렸다. 벌써 사흘째다. 사흘 내내 이 ‘혈월 황야’를 헤매고 있었지만, 원하는 것을 찾기는커녕 흔적조차 발견하지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어제 낮, 갑작스러운 마수의 습격으로 남은 영약을 거의 다 써버렸다. 이제 그의 몸을 지탱하는 건 오직 강철 같은 의지와 단전 깊은 곳에 겨우 명맥만 유지하는 미약한 영기뿐이었다.

그의 시선은 끊임없이 주변을 훑었다. 이곳은 한때 풍요로운 영산이었으나, 대재앙 이후 모든 영기가 뒤틀리고 오염되어 사악한 기운으로 가득 찬 마수의 소굴이 되어버린 곳이었다. 잠시라도 긴장을 늦추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했다.

“흐읍… 읍…”

거친 숨을 몰아쉬며 류진은 낡은 가죽 주머니에서 딱딱한 건포를 꺼내 입에 넣었다. 씹을수록 목이 타는 듯했지만, 최소한의 열량이라도 섭취해야 했다. 그의 목표는 단 하나, 이곳 어딘가에 자생한다는 ‘어둠의 심장초’를 찾는 것이었다. 극도로 오염된 영기가 흘러넘치는 곳에서만 자라나는 기이한 약초. 그것만이 그의 몸에 침투한 사악한 기운을 정화하고, 다시금 온전한 영기를 되찾게 해줄 유일한 희망이었다.

“어디에 있는 거냐…!”

류진의 눈에 희미한 초록빛이 감도는 바위틈이 포착되었다. 작은 희망에 부풀어 그는 급히 그곳으로 향했다. 가까이 다가가자, 바위틈새에서 새어 나오는 냉기가 피부에 와닿았다. 분명 영기가 흐르는 곳이었다. 하지만 그 영기는 어딘가 낯설고 이질적인 느낌이었다. 마치 죽은 자의 숨결 같기도 했다.

조심스럽게 바위틈 안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예상보다 깊은 동굴이었다. 동굴 안은 암흑 그 자체였지만, 류진의 눈은 밤눈이 익숙해져 있었다. 희미한 시야 속에서, 류진은 동굴 안쪽 깊은 곳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무언가를 발견했다. 푸른색과 보라색이 뒤섞인 오묘한 빛이었다.

“어둠의 심장초…!”

류진은 흥분으로 심장이 격렬하게 뛰는 것을 느꼈다. 드디어, 드디어 찾았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그의 발밑에서 섬뜩한 기운이 솟아올랐다. 단순한 냉기가 아니었다. 생명을 앗아갈 듯한 사악한 살기였다.

“크으으…”

동시에 동굴 천장에서 기분 나쁜 마찰음이 들려왔다. 마치 거대한 뱀이 기어오는 듯한 소리였다. 류진은 본능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어둠 속에서 번뜩이는 두 개의 핏빛 눈동자가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거대한 마수였다. 몸길이만 족히 이십 장은 되어 보이는 거대한 지네 형상의 마수. 몸을 뒤덮은 단단한 비늘은 검붉은색을 띠고 있었고, 수십 개의 다리 끝에는 날카로운 발톱이 돋아나 있었다. 특히 섬뜩한 것은 마수의 머리였다. 끔찍하게 뒤틀린 사람의 형상과 흡사한 얼굴에, 찢어진 입에서는 썩은 비린내가 진동했다. ‘혼돈 지네’라고 불리는, 이 황야의 최상위 포식자 중 하나였다.

마수는 류진을 발견하자마자 찢어지는 듯한 기괴한 울음소리를 내며 달려들었다. 수십 개의 발톱이 바닥을 긁으며 찢어발겼고, 그 움직임은 거대한 몸집과 어울리지 않게 빨랐다.

류진은 순간적으로 단전에 남은 미약한 영기를 끌어올렸다. 비록 얼마 남지 않았지만, 이대로 당할 수는 없었다. 그는 손에 쥐고 있던 낡은 장검을 비스듬히 세우며 방어 자세를 취했다. 칼날에 희미한 영기 보호막이 형성되었다.

“물러서라!”

류진은 포효했지만, 마수는 아랑곳하지 않고 맹렬히 돌진했다. 거대한 머리가 류진의 눈앞에 들이닥쳤다. 입에서 뿜어져 나오는 역겨운 독기가 그의 폐부를 찢는 듯했다. 류진은 재빨리 옆으로 몸을 날려 공격을 피했다. 거대한 마수의 머리가 그가 서 있던 바위 벽을 그대로 강타했고, 육중한 충격음과 함께 돌조각들이 사방으로 튀었다.

‘이대로는 안 돼. 정면 승부는 무리다.’

류진은 빠르게 전황을 판단했다. 영기가 고갈된 상태에서 혼돈 지네와 싸우는 것은 자살 행위나 다름없었다. 어둠의 심장초는 코앞에 있었지만, 동시에 절망적인 벽이기도 했다.

마수가 몸을 틀어 다시 류진에게 달려들었다. 이번에는 수십 개의 다리가 거미줄처럼 펼쳐지며 그를 포위하려 했다. 류진은 재빨리 좁은 동굴의 지형을 이용해 마수의 공격을 회피하며 시간을 벌었다. 그의 눈은 주변을 끊임없이 탐색했다. 탈출할 길, 혹은 역전의 기회.

그때, 그의 시선이 마수의 몸통 한가운데에 박혀있는 거대한 혹에 닿았다. 검붉은 비늘 사이로 돋아난 기형적인 혹. 그곳에서 특히 강렬한 악취와 사악한 영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저것이 약점인가… 아니면…’

류진은 순간적으로 하나의 가설을 떠올렸다. 이 마수는 단순히 영기를 빨아먹고 자란 존재가 아닐 수도 있다. 어쩌면 그 자체가 오염된 영기의 거대한 덩어리일 수도. 그렇다면 저 혹은 단순한 육체가 아니라, 마수의 ‘핵’과 같은 것이리라.

“좋아… 한 번 걸어볼 만하다!”

류진은 이를 악물었다.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싸움이라 해도,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의 눈빛은 다시 한번 불타올랐다.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피어나는 강렬한 생존 의지였다.

그는 동굴 벽을 박차고 뛰쳐나갔다. 마수는 그의 움직임을 예측한 듯 거대한 꼬리를 휘둘러 퇴로를 막았다. 거대한 꼬리가 벽에 부딪히며 동굴 전체가 흔들렸다. 천장에서 돌가루가 쏟아져 내렸다.

류진은 몸을 웅크린 채 꼬리의 공격을 가까스로 피했다. 그리고 그 순간, 마수의 움직임이 잠시 주춤한 틈을 타 전력을 다해 마수의 몸통, 그 거대한 혹을 향해 돌진했다.

“흡!”

그의 몸에서 마지막 남은 영기가 폭발하듯 뿜어져 나왔다. 검날에 희미한 푸른빛이 감돌았다. 일격에 모든 것을 걸었다.

마수는 예상치 못한 류진의 반격에 당황한 듯 거대한 머리를 돌려 그를 물어뜯으려 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류진의 검은 정확히 혹의 정중앙을 향해 꽂혔다.

콰직!

끔찍한 파열음과 함께 마수의 혹이 찢어졌다. 검은 피와 함께 탁한 영기가 폭발하듯 뿜어져 나왔다. 마수는 고통에 찬 비명을 지르며 몸을 뒤틀었다. 동굴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거대한 돌들이 천장에서 굉음과 함께 떨어져 내렸다.

“젠장, 도망쳐야 해!”

류진은 검을 뽑아낼 틈도 없이 혹에 박힌 채 마구 날뛰는 마수의 몸에서 가까스로 몸을 빼냈다. 그의 손은 피로 물들었다. 부서지는 동굴 속에서, 그는 간신히 몸을 일으켜 동굴 입구를 향해 필사적으로 달렸다.

뒤에서는 마수의 고통스러운 울음소리와 함께 동굴이 완전히 붕괴되는 소리가 들려왔다. 땅이 거세게 진동했고, 류진은 휘청거리며 겨우 동굴 밖으로 뛰쳐나올 수 있었다.

밖은 이미 칠흑 같은 어둠에 잠겨 있었다. 하늘에는 핏빛 노을마저 사라지고 차가운 달만이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류진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무너진 동굴 입구를 돌아보았다. 흙먼지가 사방으로 피어오르고, 마수의 마지막 비명소리가 황야에 길게 울려 퍼지다 이내 끊어졌다.

그는 주저앉아 겨우 정신을 차렸다. 온몸은 상처투성이였고, 영기는 완전히 고갈되어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조차 없었다. 하지만 그의 눈은 살아남았다는 안도감과 동시에, 또 다른 절망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동굴은 무너졌다. 어둠의 심장초는 분명 그 안에 있었다. 힘들게 마수를 물리쳤지만, 가장 중요한 약초를 얻지 못했다.

“하아… 하아…”

류진은 차가운 바닥에 손을 짚고 고개를 들었다. 그때, 그의 시야에 무너진 동굴 잔해 틈새로 희미하게 빛나는 무언가가 들어왔다.

푸른색과 보라색이 뒤섞인 오묘한 빛.

“설마…?”

류진은 마지막 남은 힘을 쥐어짜 내어 잔해 더미를 향해 기어갔다. 그의 심장이 다시금 격렬하게 뛰기 시작했다. 희망과 절망의 끝에서 발견한, 기적과도 같은 한 조각의 빛.

흙더미를 헤치자, 마침내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은… 작은 풀뿌리 하나였다. 그의 손바닥 위에 올려놓자마자 따스하고 오묘한 영기가 그의 몸속으로 스며들어왔다.

‘어둠의 심장초…’

기적적으로, 마수와의 격전 속에서도 온전히 살아남은 하나의 심장초가 잔해 속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류진의 눈가에 뜨거운 것이 맺혔다. 이제 그는 살아남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안도감도 잠시.

서늘한 밤공기를 가르고, 멀리 떨어진 황야 저편에서 또다시 기분 나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하나가 아니었다. 수많은 마수들의 울부짖음이 밤의 장막을 찢고 다가오고 있었다.

류진은 손에 든 어둠의 심장초를 꽉 움켜쥐었다. 살아남기 위한 그의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오히려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었다. 그의 눈빛이 다시금 날카롭게 빛났다.

“빌어먹을… 쉬기는 글렀군.”

그는 이를 악물고 몸을 일으켰다. 그의 앞에는 칠흑 같은 밤과, 그 속에서 달려오는 수많은 죽음의 그림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