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의 밤은 깊었지만, 지훈에게는 그저 끝없는 심연이었다. 한 시간 전, 거실 한가운데 놓아두었던 시계가 갑자기 ‘똑-’ 소리를 내며 방향을 바꾸는 것을 목격한 이후로, 그는 침대 위에 앉아 벽만 노려보고 있었다. 잠이 올 리 만무했다. 등 뒤에서 누군가 뚫어져라 쳐다보는 듯한 끈적한 시선이 느껴져 숨쉬기조차 버거웠다.
“젠장…”
그는 무릎을 끌어안고 이마를 묻었다. 이 모든 것이 환각이기를, 지독한 스트레스가 만들어낸 착각이기를 간절히 바랐다. 하지만 냉장고 문이 스스로 열렸다 닫히고, 식탁 위 포크가 허공을 날아 바닥에 처박혔던 지난 며칠의 기억은 너무나 선명했다. 정신과를 찾아갔지만 의사는 과로와 스트레스를 언급하며 수면제만 처방해줄 뿐이었다. 아무도 그의 말을 믿어주지 않았다. 믿을 수 없는 일이었으니, 당연한 반응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때였다.
정적을 찢고 거실에서 ‘탁!’ 하는 소리가 울렸다. 지훈의 심장이 발작하듯 뛰어올랐다. 숨을 들이쉬는 것도 잊은 채, 그는 잔뜩 굳은 몸으로 귀를 기울였다. 분명, 뭔가가 떨어지는 소리였다.
‘아니야, 아무것도 아닐 거야. 바람이거나… 오래된 건물이니까…’
애써 스스로를 다독였지만, 그의 아파트는 지어진 지 3년도 채 안 된 최신식 고층 아파트였다. 바람이 들어올 틈도, 낡아서 저절로 물건이 떨어질 이유도 없었다. 그는 천천히 침대에서 내려와 문으로 향했다. 발바닥에 닿는 차가운 마룻바닥의 감촉이 소름 끼치도록 생생했다.
문고리에 손을 뻗는 순간, 손끝이 찌릿하게 저려왔다. 마치 얼음물을 만진 것처럼. 지훈은 이를 악물고 문고리를 잡았다. 손에 땀이 흥건했지만, 굳게 잠긴 문은 움직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알고 있었다. 이 문은… 잠겨 있었다.
‘분명 잠가뒀어. 나올 때마다 철저히 확인했어.’
그는 불안한 눈으로 문고리를 응시했다. 문고리 주변의 페인트가 미세하게 긁혀 있었다. 마치 누군가 강제로 문을 열려고 씨름한 흔적처럼. 등골이 오싹해졌다. 자신이 자는 동안, 아니면 잠깐 화장실에 간 사이에, 이 문을 열려고 시도한 자가 있었다는 말인가?
덜컥, 덜컥.
갑자기 문고리가 아래위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마치 안쪽에서, 혹은 바깥쪽에서 누군가 손잡이를 잡고 거칠게 흔드는 것처럼. 쿵, 쿵, 쿵. 문 안쪽에서 들려오는 둔탁한 소리는 마치 문이 몸통이라도 되는 양 거대한 심장이 뛰는 소리 같았다.
“누구야?”
지훈은 저도 모르게 소리쳤다. 목소리가 잔뜩 쉬어 있었다. 공포가 목구멍을 틀어막아 제대로 된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덜컥, 덜컥, 쿵!
문고리가 마지막으로 크게 흔들리더니, 이내 문고리 잠금쇠 부분이 ‘툭’ 하는 소리와 함께 안쪽으로 움푹 들어갔다. 나무 문짝이 찢겨나간 자리에 금속 잠금쇠가 너덜거렸다. 완전히 파손된 상태였다.
문은 더 이상 잠겨 있지 않았다. 아니, 잠글 수 없게 되었다.
지훈은 온몸의 피가 식는 것을 느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날뛰었지만, 사지가 얼어붙어 움직일 수 없었다. 그는 공포에 질린 눈으로 부서진 문고리를 응시했다. 저것은 단순한 폴터가이스트 현상이 아니었다. 누군가, 혹은 무언가가, 그를 향해 직접적으로 공격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때, 방 안의 불이 ‘팟!’ 하고 꺼졌다.
순식간에 찾아온 암흑 속에서 지훈은 눈을 질끈 감았다.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절대적인 침묵이 그를 덮쳤다. 그의 심장 박동만이 귀청이 터질 듯 울렸다.
어둠 속에서, 차갑고 날카로운 무언가가 그의 뺨을 스쳤다.
소름 끼치는 감촉에 지훈은 비명을 지를 뻔했지만, 목구멍에서 아무런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아주 가까이에서, 희미한 속삭임이 들려왔다.
「찾았다…」
어린아이의 목소리 같기도, 늙은 여인의 목소리 같기도 한, 정체를 알 수 없는 섬뜩한 속삭임이었다.
지훈은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공포에 질려 눈을 떴다.
방 안은 여전히 칠흑 같은 어둠이었다.
하지만 그의 눈은 이제 그 어둠 속에서 아주 희미한, 하지만 분명한 움직임을 감지할 수 있었다.
침대 끝에, 누군가 앉아 있었다.
검은 형체. 그 형체가 고개를 천천히 돌려 지훈을 바라보았다.
어둠 속에서도, 그 형체의 두 눈이 붉게 빛나는 것을 지훈은 선명하게 보았다.
그리고 그 붉은 눈은, 마치 그를 집어삼킬 듯이 광기로 번들거리고 있었다.
지훈은 그 자리에서 고꾸라졌다. 의식을 잃는 순간까지, 그의 귓가에는 섬뜩한 속삭임이 메아리쳤다.
「이제, 우리는 하나가 될 거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