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우의 심장이 불규칙하게 고동쳤다. 사방을 에워싼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그는 오직 자신이 지닌 마법 램프의 희미한 불빛에 의지할 뿐이었다. 램프가 비추는 원형의 시야 밖은 모든 것이 심연이었다. 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렸다. 지하 수백 미터, ‘시원의 미궁’의 가장 깊은 곳, 그 누구도 발을 들이지 못했다던 ‘잊혀진 자들의 전당’에 도달한 지 벌써 세 시간째였다.
“젠장… 이건 그냥 유적이 아니잖아.”
그는 낮게 중얼거렸다. 그의 눈앞에는 거대한 강철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문이라기보다는, 차라리 하나의 거대한 산맥이 통째로 깎여 만들어진 요새의 입구 같았다. 표면에는 미지의 언어로 새겨진 복잡한 문양들이 빼곡했고, 그 문양들 사이로는 희미하게 마력이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과거, 지구의 평범한 직장인이었던 강진우는 이 세계로 전이된 후, 자신에게 잠재된 ‘마력 감지’ 능력을 자각했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마력의 흐름을 마치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느끼게 해주는 재능이었다. 그리고 지금, 이 문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력은 그가 이제껏 경험했던 어떤 마법진보다도 강력하고 이질적이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강철 문에 손을 댔다. 차가운 금속의 감촉과 함께, 손끝으로 전해져 오는 진동이 느껴졌다. 단순히 닫힌 것이 아니었다. 거대한 봉인이 걸려 있는 것이 분명했다.
“이 정도 마법진이라면… 단순한 도굴꾼은커녕, 숙련된 마법사도 접근하기 힘들었을 텐데.”
그는 잠시 숨을 골랐다. 이곳에 이르는 길 또한 만만치 않았다. 찢어진 고서에서 우연히 발견한 고대 지도를 해독하고, 수많은 함정과 마수를 뚫고 여기까지 왔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정보, 즉 이 문 안쪽에 무엇이 있는지에 대한 기록은 그 어느 곳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오직 ‘시원의 지혜가 잠들어 있다’는 모호한 문구만이 전부였다.
램프 불빛이 흔들리며 주변의 기괴한 조각상들의 그림자를 길게 늘어뜨렸다. 거대한 독수리의 머리를 한 인간 형상의 석상들이 사방에 도열해 있었는데, 그들의 눈동자는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어둠 속에서 번뜩이는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진우는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을 느꼈다. 단순히 오래된 석상이 아니었다. 이들은 분명 이 전당을 지키는 수호자들일 터였다. 그리고 이 강철 문을 건드리는 순간, 그들이 깨어날 것이라는 직감이 온몸을 지배했다.
“선택의 여지가 없군.”
그는 이를 악물었다. 여기까지 와서 돌아갈 수는 없었다. 그는 마법 램프를 바닥에 내려놓고, 주머니에서 고대 유물 해독에 사용하던 작은 수정구를 꺼냈다. 수정구는 그의 마력을 흡수하며 희미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그는 이 수정구를 통해 문의 봉인 마법진을 분석할 생각이었다.
“좋아, 어디 한번… 네놈의 비밀을 보여줘 봐.”
수정구를 강철 문에 갖다 대자, 푸른빛이 퍼져나가며 복잡한 마법진의 구조가 그의 눈앞에 마치 홀로그램처럼 펼쳐졌다. 강진우의 마력 감지 능력이 증폭되어, 봉인의 핵심을 이루는 거대한 에너지 흐름을 읽어냈다. 수십, 수백 겹으로 얽힌 마법의 실타래… 그 난해함에 절로 혀를 내두르게 되었다.
*삐이익- 삐이익-*
갑자기 수정구에서 날카로운 경고음이 울렸다. 분석된 마법진의 일부가 불안정하게 흔들리더니, 이내 강철 문 표면의 문양들이 붉은 빛을 내뿜기 시작했다.
“뭐야?!”
진우가 황급히 수정구를 뒤로 빼내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붉은 빛은 점차 강렬해지며 문의 주변을 집어삼킬 듯이 일렁였다. 동시에, 전당의 사방에 도열해 있던 독수리 머리 석상들의 눈에서 섬뜩한 붉은 광채가 뿜어져 나왔다.
*크르르르르르릉…*
오랜 잠에서 깨어나는 듯한 거대한 마찰음이 지하 전체를 뒤흔들었다. 석상들의 팔다리가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먼지가 풀풀 날리고, 석상들의 표면에 금이 가더니 그 사이로 푸른빛이 새어 나왔다. 그것은 마력의 빛이었다.
“젠장, 예상보다 빨라!”
진우는 재빨리 몸을 웅크렸다. 네 개의 석상, 즉 네 개의 거대한 수호자가 동시에 깨어났다. 그들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압도적인 마력은 공기를 짓누르는 듯했다. 독수리의 머리를 한 수호자들은 거대한 돌망치를 휘두르며 진우에게 달려들었다. 바닥이 울리고, 굉음이 전당을 가득 채웠다.
*쾅!*
첫 번째 망치가 진우가 방금 전 서 있던 자리를 강타했다. 거대한 돌조각들이 사방으로 튀어 올랐다. 그는 아슬아슬하게 피했지만, 파편 하나가 그의 볼을 스치고 지나갔다. 따끔한 통증과 함께 피가 흘러내렸다.
“이런… 내가 너무 안일했군!”
수호자들은 느리지만 멈출 수 없는 기세로 그를 압박해 왔다. 각각의 공격은 엄청난 위력을 담고 있었고, 한 방이라도 제대로 맞으면 그대로 즉사할 것이 분명했다. 진우는 이리저리 뛰며 공격을 피하는 동시에, 그들의 약점을 찾아내려 애썼다.
그의 눈은 빠르게 움직였다. ‘마력 감지’ 능력을 최대한으로 활성화하여 수호자들의 움직임과 마력 흐름을 읽었다. 독수리 머리 수호자들의 팔다리는 단단한 돌과 마력으로 이루어져 있었지만, 몸통과 연결된 관절 부위에서 미세하게 마력 흐름이 약해지는 것을 감지했다.
“저기다!”
그는 숨을 크게 들이쉬고 전방으로 돌진했다. 가장 가까이 다가온 수호자의 다리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통과했다. 수호자의 거대한 망치가 그의 머리 위를 스쳐 지나갔다. 간발의 차이였다.
*쉬이이잉!*
진우는 허리춤에 차고 있던 단검을 뽑아 들었다. 평범한 단검이었지만, 그가 전이된 후 꾸준히 마력을 주입하여 강도를 높여둔 상태였다. 그는 단검에 자신의 모든 마력을 실어 수호자의 무릎 관절 부위를 내리쳤다.
*콰자작!*
단단한 돌과 마력이 뒤섞인 수호자의 다리에서 끔찍한 파열음이 울렸다. 푸른 마력 파편들이 사방으로 튀었고, 수호자의 움직임이 순간적으로 멈칫했다. 그러나 완전히 파괴된 것은 아니었다. 균열이 생긴 관절에서 더욱 강렬한 마력이 분출되더니, 수호자는 이전보다 더욱 빠르게 진우를 향해 망치를 휘둘렀다.
“망할!”
진우는 간신히 뒤로 물러섰다. 하나의 약점을 알아냈지만, 동시에 그들을 자극해 버린 꼴이었다. 다른 세 마리의 수호자들도 그의 행동에 더욱 격분한 듯 움직임이 빨라졌다. 전당 전체가 그들의 공격으로 인해 흔들렸다. 벽에서는 흙먼지가 떨어져 내렸고, 천장에서는 작은 돌조각들이 후드득 소리를 내며 낙하했다.
이대로는 승산이 없었다. 그는 단검 하나로 네 마리의 거대한 수호자를 상대할 수 없었다. 게다가 그의 마력도 무한하지 않았다. 그는 빠르게 주변을 스캔했다. 강철 문, 그리고 그 옆에 희미하게 빛나는 작은 제단. 제단 위에는 아무것도 없었지만, 그 주변을 둘러싼 고대 문양들이 문의 봉인 마법진과 미묘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을 마력 감지 능력으로 알아챘다.
“저 제단… 뭔가 있어!”
진우는 확신했다. 저 제단이 강철 문을 여는 열쇠이거나, 혹은 수호자들을 제어하는 장치일지도 모른다. 그는 망치를 휘두르는 수호자들의 틈새를 노려 제단으로 향해 달렸다.
*크아아앙!*
수호자 하나가 진우의 앞길을 막아섰다. 그의 거대한 망치가 공기를 가르며 진우의 머리를 노리고 떨어졌다. 피할 시간조차 없었다.
그때였다. 진우의 몸속에서 갑자기 뜨거운 에너지가 솟구쳐 올랐다. 그것은 마치 잠들어 있던 거대한 힘이 깨어나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의 눈동자가 푸른빛으로 번쩍이더니, 그의 손끝에서 형체를 알 수 없는 에너지 구체가 뿜어져 나갔다.
*쉬이이이이잉- 콰아앙!*
에너지 구체는 수호자의 망치와 정면으로 충돌했다. 거대한 폭발음과 함께 수호자의 망치 한 귀퉁이가 산산조각 났다. 수호자 또한 잠시 휘청이며 뒤로 물러섰다.
“이… 이건 또 뭐야?”
강진우 자신도 놀란 얼굴로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의도하지 않았던, 하지만 너무나도 강력한 힘이었다. 이것이 바로 그가 이 세계로 전이되면서 얻게 된 진정한 잠재력이었던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다른 수호자들이 그의 빈틈을 노리고 다가왔다.
“시간이 없어!”
그는 다시 한번 제단을 향해 몸을 날렸다. 이번에는 방금 발현된 미지의 힘을 제어하려는 듯, 의식적으로 손끝에 마력을 집중했다. 푸른빛 에너지가 그의 손바닥에서 불안정하게 일렁였다.
제단에 손을 얹자마자, 차가운 돌의 감촉과 함께 그의 마력이 제단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동시에 제단 주변의 고대 문양들이 밝게 빛나기 시작했다. 그 빛은 강철 문을 향해 뻗어나갔고, 문의 봉인 마법진이 격렬하게 반응하기 시작했다.
*지이이잉…!*
강철 문이 엄청난 진동과 함께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다. 거대한 굉음이 전당을 찢어발길 듯 울려 퍼졌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네 마리의 수호자들이 더욱 맹렬하게 그에게 달려들었다. 그들의 목표는 이제 강철 문이 아닌, 문을 열고 있는 진우 그 자신이었다.
*쾅! 콰과광!*
수호자들의 공격이 사방에서 쏟아졌다. 진우는 한 팔로 제단을 누른 채, 다른 팔로 겨우겨우 공격을 막아냈다. 그의 등 뒤에서는 강철 문이 절반쯤 열린 상태에서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봉인을 완전히 풀기 위해서는 더 많은 마력이 필요했다.
“크윽…!”
한 수호자의 망치가 그의 어깨를 스쳐 지나갔다. 통증이 온몸을 마비시키는 듯했다. 하지만 그는 이를 악물었다. 포기할 수 없었다. 이 문 너머에, ‘시원의 지혜’의 비밀이 잠들어 있었다.
그는 제단에 손을 얹은 채, 남아있는 모든 마력을 쥐어짜냈다. 그의 몸에서 푸른빛이 터져 나왔고, 제단과 강철 문을 잇는 마력의 흐름이 더욱 격렬해졌다.
*위이이이이잉- 지지지지직!*
강철 문이 마침내 완전히 열리기 시작했다. 문틈 사이로,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압도적인 마력의 파동이 쏟아져 나왔다. 그 마력은 너무나도 거대해서, 심지어 수호자들조차 잠시 움직임을 멈칫하게 만들 정도였다.
완전히 열린 문 너머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그것은 어둠 속에 잠긴 거대한 홀이었다. 홀의 중앙에는 마치 별들이 박힌 듯한 거대한 크리스탈 기둥이 하늘로 솟아 있었고, 그 주위를 셀 수 없는 부유하는 고대 문자들이 감싸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감싸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거대한 ‘눈’의 형상이 홀의 가장 깊은 곳에서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이것이… 시원의 지혜…”
강진우는 경악에 찬 숨을 내쉬었다. 그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그가 이 세계로 전이된 이후 보았던 어떤 마법보다도 경이롭고 신비로웠다.
그러나 그 순간, 방심한 진우를 향해 수호자 하나의 망치가 전속력으로 날아들었다.
*콰아앙!*
강렬한 충격과 함께 그의 시야가 암전되었다. 몸이 공중으로 붕 떠올랐다가 바닥에 곤두박질쳤다.
“크흐읍…!”
피가 입 밖으로 터져 나왔다. 의식이 아득해져 갔다. 그는 겨우 고개를 들어 강철 문 너머의 환상적인 광경을 다시 한번 바라보았다. 그 거대한 ‘눈’은 여전히 그를 응시하는 듯 빛나고 있었다.
진우는 마지막 힘을 쥐어짜 문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의 손가락 끝이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반드시… 반드시… 저곳에 도달한다…!”
그의 눈은 뜨거웠다. 이대로 쓰러질 수는 없었다. 그는 그곳에서, 잊혀진 고대의 가장 깊은 비밀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음을 직감했다.
하지만 그의 몸은 이미 한계에 다다랐다.
*털썩.*
의식이 완전히 끊어지기 직전, 그는 자신의 손끝에서 터져 나온 푸른빛 마력이, 방금 열린 강철 문 너머의 거대한 ‘눈’을 향해 희미하게 뻗어나가는 것을 보았다. 마치 초대장을 보내는 것처럼…
그리고 모든 것이 암흑 속으로 사라졌다.
**【망각의 미궁】 제 17화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