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챕터 1. 심연의 노래
망망대해처럼 펼쳐진 우주, 그 심연의 어둠 속에서 ‘새벽별호’는 홀로 유영하고 있었다. 함교의 메인 스크린에는 수억 광년을 넘어온 별들의 흐릿한 잔상만이 떠다녔다. 한유나는 자신의 좌석에 기대어 눈을 감았다. 모니터에서 뿜어져 나오는 푸른빛이 그녀의 피로한 얼굴에 그림자를 드리웠다. 수개월째 이어지는 심우주 탐사 임무는 지루함과 경이로움 사이를 오가는 기묘한 반복이었다.
“유나 씨, 졸아요?”
옆자리에서 김현우 통신장이 피식 웃으며 말을 건넸다. 새파랗게 젊은 현우는 이곳에서 가장 활기 넘치는 존재였다.
“현우 씨라면 이 정적 속에서 춤이라도 출 것 같네요.” 유나는 눈을 뜨고 현우를 향해 희미하게 웃었다. “전 그저… 생각 중이었어요. 이토록 넓은 우주에 우리만 있을까, 하고.”
“음… 그건 좀 고차원적인 질문인데요? 제 임무는 미지의 신호를 찾는 거지, 존재론적 고민이 아니어서 말이죠.” 현우는 어깨를 으쓱하며 다시 자신의 콘솔에 집중했다. 하지만 그의 눈빛도 모니터 너머의 미지에 대한 기대를 담고 있었다.
그때였다. 함교 전체를 울리는 경고음과 함께 메인 스크린의 별들이 일렁였다.
“이게 무슨…!” 유나는 자세를 고쳐 앉으며 자신의 과학 분석 콘솔을 확인했다.
“미확인 에너지 시그널 감지! 정체불명입니다, 선장님!” 현우의 목소리에 다급함이 섞였다.
함교 중앙의 지휘석에 앉아 있던 강태영 선장이 묵직한 목소리로 명령했다. “좌표 확인. 분석관, 에너지 스펙트럼 분석.”
“알겠습니다!” 유나의 손놀림이 빨라졌다. “좌표는 G-117 구역… 젠장, 여긴 미탐사 지역입니다! 그리고 에너지 스펙트럼이… 비정상적입니다. 어떤 알려진 물질의 파장과도 일치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생체 반응에 가깝지만, 스케일이 너무 거대합니다.”
“생체 반응? 우주선 하나를 만들 정도의 생명체라는 건가?” 부선장 이지혜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녀는 언제나 침착했지만, 이번 신호는 그녀마저 동요하게 만드는 듯했다.
“생체라기보다는… 유기적인 에너지 패턴입니다. 마치 살아있는 존재가 내뿜는 파장처럼요. 하지만 규모는 은하 수준입니다.” 유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녀의 눈은 모니터 속 데이터에서 떨어질 줄 몰랐다. 이런 파장은 교과서에서도 본 적이 없었다.
강태영 선장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 “G-117 구역으로 진입한다. 전 승무원, 전투 태세 준비! 탐사팀은 비상 대기하라.”
“선장님, 저 지역은 소행성 밀집 지대입니다. 게다가 이 비정상적인 에너지 반응은…” 이지혜 부선장이 조심스럽게 의견을 제시했지만, 강 선장의 결심은 확고했다.
“우리는 탐사선이다. 미지의 것을 찾아왔다면, 미지의 것을 마주해야지.” 그의 목소리에는 흔들림 없는 확신이 있었다.
새벽별호는 거대한 소행성 지대로 향했다. 암흑 속에 잠겨 있던 소행성들은 마치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낸 거대한 짐승의 입속 같았다. 함선은 굉음을 내며 그 사이를 조심스럽게 파고들었다.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바위덩어리들은 무시무시한 속도감으로 압박해왔다.
“저기입니다, 선장님! 에너지 반응의 근원지!” 현우의 외침에 모두의 시선이 메인 스크린으로 향했다.
거대한 소행성들 사이, 검은 암석에 뒤덮인 채 거대한 산맥처럼 솟아 있는 이형의 구조물이 나타났다. 그것은 마치 누군가 인위적으로 깎아놓은 듯한 날카로운 각과 기묘한 곡선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다. 거대한 문명이라기에는 너무나 원시적이었고, 자연물이라기에는 너무나 정교했다.
“접근 속도 줄이고, 스캔 시작.” 강 선장의 명령에 새벽별호는 구조물 상공에 멈춰 섰다.
유나는 다시 분석 콘솔에 매달렸다. “놀랍습니다… 이 구조물은 전부 단일 물질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마치 하나의 거대한 수정 같습니다. 표면에 수많은 문양이 새겨져 있는데… 이 문양들이 에너지를 흡수하고 방출하는 패턴을 보입니다.”
“문양? 어떤 형태지?” 박민준 기관장이 스크린을 노려보며 물었다.
유나는 확대된 화면을 가리켰다. “마치… 별자리를 형상화한 것 같기도 하고, 어떤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문양들 사이에서… 희미한 노래가 들려오는 듯한 느낌이 줍니다.”
“노래라니?” 강 선장이 의아하게 물었다.
“네, 아주 희미하지만… 어떤 주파수 대역에서 멜로디 같은 것이 감지됩니다. 이 구조물 자체에서 나오는 것 같아요.” 유나는 흥분으로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지루했던 임무가 마침내 진정한 ‘탐사’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탐사팀 출동 준비. 유나 과학분석관, 박민준 기관장, 그리고 내가 간다. 이지혜 부선장은 함선 통제에 만전을 기해라.” 강 선장의 명령이 떨어졌다.
탐사선 내부, 투박하지만 튼튼해 보이는 우주복을 입은 유나는 긴장된 숨을 내쉬었다. 박 기관장은 공구 가방을 챙기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크으, 드디어 내 손으로 만져보는 건가! 이런 건 박물관에나 있을 줄 알았는데 말이야!”
강 선장은 묵묵히 자신의 헬멧을 착용했다. “섣부른 행동은 금지다. 무엇보다 안전이 우선이다.”
소형 셔틀이 새벽별호의 격납고를 떠나 미지의 구조물로 향했다. 거대한 수정 구조물은 가까이서 보니 더욱 압도적이었다. 표면의 문양들은 고대의 언어처럼 침묵 속에 의미를 새기고 있었다. 셔틀이 구조물에 난 거대한 균열, 마치 입구처럼 보이는 곳에 착륙했다.
“대기 분석… 산소 농도 낮음, 호흡 불가능. 하지만 유해 물질은 없습니다.” 유나가 보고했다.
“좋아, 진입한다. 조심해라.” 강 선장이 앞장서서 균열 안으로 들어섰다.
내부는 생각보다 넓고 웅장했다. 검은 수정질의 벽면은 은은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마치 살아있는 동굴처럼, 벽면의 문양들이 희미하게 맥동하는 듯했다. 미지의 냄새, 차가우면서도 묘한 생명력이 느껴지는 공기가 그들을 감쌌다.
“이봐, 저거 봐!” 박 기관장이 손전등을 비추며 외쳤다.
동굴 안쪽, 가장 넓은 공간의 중앙에 거대한 제단 같은 것이 있었다. 그리고 그 제단 위에, 모든 빛을 빨아들이는 듯한 검은색과 별빛 같은 푸른색이 뒤섞인 오묘한 빛을 내뿜는 물체가 놓여 있었다. 그것은 마치 살아있는 보석 같기도 하고, 거대한 눈동자 같기도 했다. 주변의 공기가 그 물체를 중심으로 미세하게 일렁였다.
“이게… 에너지 반응의 근원지인가?” 강 선장이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유나는 자신도 모르게 그 물체에 홀린 듯 다가섰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제단 위의 물체에서 느껴지는 파동이 더욱 선명해졌다. 그것은 마치… 오래전부터 자신을 기다려온 것처럼, 그녀에게 속삭이는 것 같았다.
*…와줘…*
환청인가? 아니, 분명히 들렸다. 머릿속 깊은 곳에서 울려 퍼지는 듯한 나직하고 부드러운 목소리.
“유나 과학분석관, 너무 가까이 가지 마라!” 강 선장의 경고가 들렸지만, 유나의 발걸음은 멈출 수 없었다. 그녀의 심장이 터질 듯이 뛰고 있었다. 온몸의 세포가 이끌리는 듯한 강력한 끌림.
마침내, 그녀의 손이 그 물체를 향해 뻗어졌다. 검은 수정과 푸른 별빛이 뒤섞인 그 물체는 차가울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따뜻했다. 아주 오래된 생명의 온기 같았다. 그녀의 손가락이 표면에 닿는 순간, 물체는 마치 잠에서 깨어난 듯 강렬한 빛을 뿜어냈다.
**번쩍!**
주변의 어둠이 일순간 사라지고, 공간은 눈부신 빛으로 가득 찼다. 유나의 시야는 온통 새하얗게 변했다. 귓가에는 수억 개의 별이 동시에 폭발하는 듯한 굉음이 울렸지만, 동시에 그 굉음 속에서 너무나도 아름다운 멜로디가 들려왔다. 마치 심연의 우주가 부르는 자장가 같았다.
그녀의 몸을 통해 전류가 흐르는 듯한 격렬한 감각이 지나갔다. 세포 하나하나가 활성화되는 기분. 그리고 눈을 감자, 눈꺼풀 안쪽에 기묘한 영상이 스쳐 지나갔다.
*멸망하는 행성… 피할 수 없는 운명… 그리고… 한 명의 소녀… 빛의 날개를 단 채 하늘을 가르는…*
그 이미지는 너무나 빠르고 파편적이었지만, 유나는 그것이 자신을 향한 메시지임을 직감했다. 빛 속에서 하나의 형상이 그녀에게 다가왔다. 그것은 어떤 존재의 의지 같았다.
*그대… 선택받은 자여… 이 힘을 받아들이고… 우주의 균형을 지켜라…*
목소리는 사라지고, 빛은 서서히 가라앉았다. 유나가 눈을 떴을 때, 제단 위의 물체는 여전히 그곳에 있었지만, 이전보다 더욱 강렬하고 깊은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손목에, 아까 그 물체의 빛깔과 똑같은 검푸른색의 팔찌가 채워져 있었다. 팔찌는 아주 부드럽게 그녀의 피부에 닿아 있었고, 희미한 온기를 뿜어냈다.
“유나 과학분석관! 괜찮나?!” 강 선장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박 기관장과 함께 잔뜩 경계한 채 유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의 눈에는 경악과 함께 알 수 없는 두려움이 서려 있었다.
유나는 자신의 손목을 내려다봤다. 팔찌는 아주 정교하게 만들어져 있었고, 중앙에는 별을 형상화한 듯한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그 문양에서, 아까 그녀가 느꼈던 ‘노래’가 조용히 흘러나오는 듯했다.
그 순간, 유나는 깨달았다.
자신의 심장이 이제 더 이상 지루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없을 만큼 격렬하게 뛰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이 팔찌가, 이 물체가, 그녀의 모든 것을 바꿔놓을 운명의 시작이라는 것을.
우주는 그녀에게 노래를 불렀고, 이제 그녀는 그 노래에 답할 차례였다.
미지의 힘이 그녀의 내면에서 꿈틀거렸다.
그것은 두려움인 동시에, 주체할 수 없는 설렘이었다.
그녀의 여정은, 이제 막 시작된 것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