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틱 코미디 라이트 노벨의 흥미진진한 챕터

## 아르카디아의 금지된 즐거움

“이은호!”

내 이름이 불리는 순간, 나는 본능적으로 자세를 고쳐 앉았다. 털이 곤두서는 듯한 이 서늘한 목소리의 주인은 다름 아닌 엘라라 교수님이었다. 고작 마법 기초론 과제에 ‘마법으로 끓인 라면은 국물이 끝내줘요!’라는 감상문을 썼을 뿐인데, 이게 이렇게까지 대역죄인이 될 일인가.

“네, 교수님.”

나는 최대한 공손하고 불쌍한 표정을 지었다. 물론, 내 얼굴 근육이 그 표정을 얼마나 잘 구현해냈는지는 미지수였다. 어쩌면 그저 침울한 바보처럼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엘라라 교수님은 콧잔등에 걸친 은테 안경을 스윽 끌어올리며 나를 꿰뚫어 볼 듯 응시했다. 은빛 머리카락이 단정하게 묶인 교수님의 얼굴은 언제나처럼 완벽한 무표정이었다. 마법 학원의 표상인 아르카디아에서도 가장 엄격하기로 유명한 교수님답게, 숨소리조차 용납하지 않을 것 같은 아우라를 풍겼다.

“이은호 학생, 자네의 창의성은 높이 평가한다.”

오, 의외의 칭찬인가? 설마 내가 교수님의 마음을 움직인 건가? 라면의 힘인가?!

“하지만 그 창의성이 학술적 가치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 문제군.”

…그럴 리가 없지.

“자네는 본교의 ‘학풍 저해 및 규율 위반’으로 인해 특별 봉사 활동에 배정되었다.”

젠장, 또야? 지난번엔 마법약 제조실에서 ‘맛있는 붕어빵 만들기 실험’을 하다가 폭발을 일으켜 한 달 내내 화장실 청소를 했었다. 이번엔 또 뭘 시키려고?

“특별 봉사 활동이라니요? 혹시 이번에도… 호그와트식 연회장 바닥 닦기 같은 건가요?”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사실 호그와트식 연회장 바닥은 우리 학교 중앙홀을 비유한 것이었다. 대리석으로 된 그 넓고 광활한 바닥을 마법 없이 닦는다는 건, 고대 마법사의 지팡이 없이 최상급 마법을 시전하는 것만큼이나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엘라라 교수님의 입꼬리가 아주 미세하게, 정말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살짝 올라갔다 내려왔다. 착각이었을지도 모른다.

“이번엔 좀 더… 교육적인 활동이다. 자네는 오늘부터 일주일간, 본교 지하 ‘제7 비공개 기록 보관소’의 먼지를 털고 장서들을 정리하게 될 것이다.”

제7 비공개 기록 보관소? 그게 뭐야? 나는 아르카디아에 입학한 이래 단 한 번도 그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우리 학교는 겉으로 보이는 것 외에도 지하에 수많은 비밀 공간이 있다고는 들었지만, 그중에서도 ‘비공개’라는 단어가 붙은 곳이라니. 듣기만 해도 으스스했다.

“저… 교수님. 거긴 좀 위험한 곳 아닙니까? 혹시 고대 마법 유물 같은 게 잠들어 있다든가, 아니면 저주받은 책이 혼자 저주를 퍼붓는다든가…?”

나는 괜한 걱정 섞인 질문을 던졌다. 사실 그냥 귀찮았다.

“쓸데없는 소리. 모든 위험 요소는 봉인되어 있다. 그곳에 있는 것은 그저… 폐기되었어야 할 것들이 남아있는 것뿐이다. 단, 한 가지 주의사항이 있다.”

교수님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내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역시 뭔가 있는 거야!

“절대, *절대* ‘세르베로스 존’이라고 표시된 구역에는 접근하지 마라. 그곳은… 그곳은 아르카디아의 가장 끔찍한 금기사항이 봉인된 곳이다.”

끔찍한 금기사항? 나는 무심코 침을 꿀꺽 삼켰다. 온몸의 솜털이 일제히 일어섰다. 엘리트 마법 학원 아르카디아의 가장 끔찍한 금기? 분명히 뭔가 어둡고 음침하며 세계의 균형을 뒤흔들 만한 엄청난 마법적 재앙이 봉인되어 있을 것이다! 나는 벌써부터 머릿속으로 수많은 시나리오를 그려나가고 있었다. 고대 악마의 심장이라든가, 차원을 찢는 흑마법 서적이라든가, 아니면…

“이해했나, 이은호 학생?”

“네, 교수님! 절대, 절대 금기 구역에는 발도 들이지 않겠습니다!”

나는 씩씩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 교수님의 그 한마디는 내 안에 잠들어 있던 고삐 풀린 호기심을 활활 불태우는 장작이 되어주었다.

칙칙하고 눅눅한 지하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거미줄과 먼지가 가득한 복도를 지나, 나는 마침내 ‘제7 비공개 기록 보관소’라는 팻말이 걸린 거대한 철문을 마주했다. 쾅, 하고 문이 닫히자 세상과의 연결이 끊긴 듯한 고요함이 나를 덮쳤다.

“와… 이건 진짜 고고학 탐사 수준인데.”

나는 중얼거렸다. 어둠 속에서 마법 불꽃을 켜자, 거대한 서가들이 끝없이 펼쳐졌다. 서가마다 이름 모를 두꺼운 책들이 먼지를 뒤집어쓴 채 꽂혀 있었다. 책등에 적힌 글씨들은 알아보기 힘든 고대 문자 투성이였다. 이걸 일주일 안에 다 정리하라고? 교수님, 농담이 너무 지나치신 거 아닙니까?

나는 대충 아무 서가에나 기대어 앉아 마법으로 먼지를 털어냈다. 그때였다. 한쪽 벽면에서 뭔가 묘하게 다른 질감이 느껴졌다. 손으로 훑어보니, 벽면의 돌들 사이에 미세한 틈새가 있었다. 설마…

“세르베로스 존.”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마법 글씨가 보였다. 교수님이 절대 접근하지 말라고 했던 바로 그 금기 구역이었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은 게 인지상정 아니던가? 그것도 무려 ‘아르카디아의 끔찍한 금기’라는데!

나는 홀린 듯이 벽면을 만져보았다. 틈새가 이어진 곳에 손바닥만 한 원형 문양이 있었다. 마법적인 잠금장치 같았다. 아마 강력한 봉인 마법이 걸려 있겠지?

“그래도 한 번쯤은 해봐야지. 인간의 호기심은 위대하잖아?”

나는 주섬주섬 주머니를 뒤져 자물쇠 따는 데 효과적이라는 마법 유물을 꺼냈다. 물론 이걸 들고 다니는 건 학칙 위반이다. 하지만 이런 비상상황에선 어쩔 수 없잖아?

작은 은빛 머리핀처럼 생긴 유물을 틈새에 꽂고, 나는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아주 간단한 해제 마법이었지만, 봉인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기엔 충분했다.

*스르륵… 틱.*

기분 나쁜 마찰음과 함께 벽면의 잠금장치가 해제되었다. 묵직한 돌문이 천천히 안쪽으로 밀려들어갔다. 검은 어둠 속에서 알 수 없는 기운이 뿜어져 나오는 듯했다. 과연, 이곳엔 어떤 끔찍한 금기가 봉인되어 있을까? 혹시 봉인을 풀었다고 세계 멸망이라도 하는 건 아니겠지? 아니면 내가 마법 학교 역사상 최초로 금기를 깨버린 바보가 되는 건가?

잔뜩 긴장한 채로 나는 문틈으로 살짝 고개를 내밀었다. 그리고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나는 입을 떡 벌렸다.

그곳은 예상했던 어둡고 음침한 금기 구역과는 거리가 멀었다.

푹신해 보이는 무지개색 빈백 소파들이 널려 있었고, 한쪽 벽면에는 최신형 마법 영사기가 투사하는 거대한 화면이 걸려 있었다. 화면에서는… 헐렁한 트레이닝복을 입은 남녀 주인공이 서로 얼굴을 마주 보고 손을 잡은 채 애절한 눈빛을 교환하고 있었다. 배경음악으로는 구슬픈 발라드가 흘러나왔다.

‘…이거, 설마?’

내 눈을 의심하며 고개를 더 집어넣었다. 공간 한가운데에는 팝콘 냄새가 진동하는 대형 팝콘 기계와 콜라 디스펜서가 쉴 새 없이 돌아가고 있었고, 그 옆에는 온갖 종류의 과자들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 이건 마치… 초대형 불법 영화 상영관이자 간식 천국?

그 순간, 화면 속에서 남주인공이 여주인공에게 고백하는 절정의 장면이 펼쳐졌다.

“사랑한다… 너를 만나고 내 마법은 더 이상 차갑지 않게 되었어…”

오글거리는 대사였지만, 왠지 모르게 몰입하게 되는 마법이 있었다. 나는 자신도 모르게 숨을 죽이고 그들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그때였다.

*덜컥!*

뒤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화들짝 놀라며 몸을 돌렸다.

“이은호! 너 대체 여기서 뭐 하는 거야? 교수님께서 분명히 이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말라고 하셨잖아?!”

차가운 목소리가 내 귀를 때렸다. 뒤에는 완벽하게 교복을 차려입은 윤세아, 전교 수석이자 내 담당 감시자가 팔짱을 낀 채 서 있었다. 그녀의 눈은 언제나처럼 날카롭게 빛나고 있었다.

“윤… 윤세아?! 너는 또 왜 여기를…!”

내가 당황해서 말을 더듬는 사이, 세아의 시선이 내 등 뒤, 즉 ‘세르베로스 존’ 내부로 향했다. 그녀의 눈이 서서히 커지기 시작했다. 아름답게 정돈된 그녀의 미간이 서서히 찌푸려졌다.

“저, 저게 뭐야? 이은호, 너 설마… 금기를 깨트린 거야? 대체 뭘 꺼내든 거야?! 어, 어째서 저런… 저런 끔찍한 것이…!”

세아의 얼굴은 경악으로 물들었고, 손가락은 떨리는 걸 멈추지 못하고 화면 속의 드라마를 가리켰다. 화면 속에서는 남녀 주인공이 마침내 뜨거운 키스를 나누고 있었다. 배경음악은 점점 더 격정적으로 치달았다.

나는 얼어붙은 채 세아와 화면을 번갈아 보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세아가 말하는 ‘끔찍한 금기’는 내가 봉인을 풀어서 나온 존재가 아니었다.

바로… **저 불법 드라마 시청실과 그 안에서 재생되는 막장 드라마**였다!

“아니, 윤세아! 오해야! 나는 단지… 교수님이 시킨 대로 청소를 하다가…!”

“변명하지 마! 아르카디아의 엘리트들이 이런… 이런 저급한 문화에 빠져 있었다니! 게다가 저 팝콘 냄새는 또 뭐고! 이건 학원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가장 끔찍한…”

그녀의 비난이 채 끝나기도 전에, 영사기 옆에 숨겨져 있던 작은 문이 스르륵 열렸다.

“어이쿠, 세아 학생이 여기까지?”

그 안에서 나오는 사람은 다름 아닌… 바로 **엘라라 교수님**이었다! 교수님은 손에 갓 튀긴 듯한 팝콘 봉투를 들고, 한 손으로는 리모컨을 조작하며 불법 드라마의 볼륨을 스르륵 줄였다. 그녀의 얼굴에는 방금 전까지의 엄격함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마치 금지된 간식을 몰래 먹다가 들킨 아이 같은 묘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내 뒤에는 불법 드라마 시청실과 팝콘 기계가, 내 앞에는 경악한 윤세아와 팝콘 냄새를 풍기는 엘라라 교수님이 서 있었다.

나는 망했다. 아주 완벽하게, 로맨틱 코미디의 클리셰처럼 망했다! 그것도 아르카디아의 가장 끔찍한 금기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