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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하무림대전: 회귀자의 시험

**제127화: 운명을 가르는 일섬**

천하무림맹의 거대한 비무대 위는 피와 땀, 그리고 끊임없이 충돌하는 내공의 기운으로 가득했다. 사방을 둘러싼 관중석에서는 수만 명의 인파가 목이 터져라 환호하거나 탄식하며 각자의 문파와 고수를 응원하고 있었다. 그 한가운데, 이진우는 냉철한 눈빛으로 백룡의 검을 받아내고 있었다.

백룡. ‘냉혈검’이라는 이명에 걸맞게 그의 검은 한 치의 망설임도, 감정도 없이 오직 상대의 숨통을 노리는 지독한 살의만을 품고 있었다. 그의 검 끝이 휘돌아 나갈 때마다 차가운 한기가 비무대 전체를 휘감았고, 주변의 공기는 마치 얼음 조각처럼 날카로워지는 듯했다.

“쳇… 여전히 저 지랄 맞은 검술이군.”

진우는 속으로 낮게 중얼거렸다. 그의 눈에는 지금 백룡이 휘두르는 검의 궤적뿐만 아니라, 그 검에 실린 내공의 흐름, 다음 동작으로 이어질 모든 예측 가능한 움직임이 마치 오래된 그림처럼 선명하게 그려지고 있었다. 이는 단순한 예측이 아니었다. 피로 얼룩진 과거의 기억이었다.

그는 회귀자였다. 모든 것이 무너지고, 천하가 피바다로 변했던 그 비극적인 미래를 생생히 겪고 돌아온 자. 그리고 그 비극의 서막은 바로 이 천하무림대전에서부터 시작되었다. 특히, 백룡의 승리는 그 파멸의 시작을 알리는 끔찍한 신호탄이었다.

*그때도 저놈은 똑같았지. 얼음처럼 차갑고, 계산적이며, 상대를 철저히 파고드는 독사 같은 검술.*

진우의 뇌리에는 과거의 기억이 번개처럼 스쳐 지나갔다. 당시 백룡은 압도적인 실력으로 모든 상대를 꺾고 우승을 차지했고, 그 결과 그의 ‘빙한문’은 천하무림맹의 주도권을 장악했다. 그 후 벌어진 잔혹한 숙청과 끝없는 전쟁은 무림 전체를 지옥으로 만들었다. 진우는 그 지옥 속에서 가장 사랑했던 이들을 모두 잃었다.

‘이번엔… 절대 그렇게 두지 않는다.’

그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가 뜨며 결심을 다졌다. 그의 시선은 더욱 날카로워졌다. 백룡의 검이 맹렬하게 진우의 심장을 향해 쇄도했다. ‘빙혼검법(氷魂劍法)’의 핵심 초식인 ‘한빙천도(寒氷穿禱)’. 과거, 진우의 스승이 이 초식에 당해 쓰러졌었다. 강력한 한기로 상대의 내공 순환을 얼려버리는 동시에, 검 끝은 심장을 꿰뚫는 잔인한 기술.

“크윽…!”

진우는 일부러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뱉으며 몸을 뒤로 크게 젖혔다. 백룡의 검이 턱 끝을 스치고 지나가는 순간, 차가운 냉기가 피부를 찢는 듯했다. 그는 순간적으로 몸의 중심을 잃은 척 비틀거렸다. 이는 백룡을 안심시키기 위한 위장이었다.

백룡의 눈이 순간적으로 빛났다. 먹잇감을 포착한 맹수의 눈빛. 그는 망설임 없이 다음 초식을 이어나갔다. ‘빙혼검법’ 중에서도 가장 치명적인 연계 초식, ‘빙화난무(氷花亂舞)’. 몸을 회전시키며 검을 수없이 뿌려, 상대에게 빈틈을 주지 않고 공격하는 난무형 기술이었다. 이 난무의 끝에는 반드시 상대의 급소를 노리는 결정타가 숨겨져 있었다. 과거의 진우는 이 난무에 휘말려 속수무책으로 당했고, 그의 스승 또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지금의 진우는 달랐다. 그는 미래를 알고 있었다. 이 초식의 겉모습은 화려하지만, 치명적인 약점이 단 하나 존재했다. 바로 ‘빙화난무’가 절정에 달했을 때, 검객의 내공 흐름이 순간적으로 뒤틀리는 짧은 찰나. 그 찰나에 발생하는 미세한 빈틈.

*지금이다!*

백룡의 검이 비무대 위를 수십 개의 빛으로 수놓으며 춤을 추듯 휘돌았다. 관중석에서는 탄성과 함께 ‘백룡! 백룡!’을 외치는 함성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진우의 눈에는 그 모든 움직임이 슬로우모션처럼 보였다. 백룡의 팔목 인대가 비틀리고, 내공이 역류하듯 솟구치는 그 찰나의 순간.

진우는 허리춤에 차고 있던 검을 뽑지 않았다. 대신, 그는 왼손을 재빠르게 들어 백룡의 검이 휘두르는 궤적을 쳐냈다. ‘청류비격(淸流飛擊)’. 마치 맑은 물이 바위를 감싸듯, 강한 충격파를 흘려보내며 상대의 공격을 쳐내는 무영문의 기본 권법이었다.

*콰앙!*

쇠가 부딪히는 굉음이 비무대를 뒤흔들었다. 예상치 못한 방향에서 터져 나온 진우의 반격에 백룡은 중심을 잃고 휘청거렸다. 그의 손에 든 검이 허공으로 솟구쳤다. 백룡의 눈빛에 처음으로 당혹감이 스쳐 지나갔다.

이 기회를 놓칠세라, 진우는 번개처럼 파고들었다. 그는 주먹을 쥐고 백룡의 명치를 향해 짧고 굵은 일격을 날렸다. ‘무영난타(無影亂打)’. 무영문의 핵심을 담은 권법으로, 상대의 움직임을 무력화하는 데 특화된 기술이었다.

*퍽!*

둔탁한 소리와 함께 백룡의 몸이 공중으로 솟아올랐다. 그는 채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그대로 비무대 바닥에 고꾸라졌다. 의식을 잃은 듯, 그의 몸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장내는 순간 정적에 휩싸였다. 수만 명이 모인 공간에서 단 한순간의 침묵. 그리고 이내 거대한 폭풍처럼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백룡의 패배는 모두에게 충격이었다. 그의 검은 무적이라는 인식이 강했기 때문이다.

심판관 중 한 명이 깃발을 높이 들어 올리며 우렁찬 목소리로 외쳤다.

“승자, 무영문 이진우!”

진우는 비무대 중앙에 우뚝 선 채, 쓰러진 백룡을 내려다보았다. 승리했지만, 그의 얼굴에는 어떤 희열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저 깊은 고뇌와 체념,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거대한 운명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을 뿐이었다.

이 승리로 백룡은 더 이상 천하무림대전의 우승자가 될 수 없을 것이다. 그의 빙한문은 무림의 주도권을 잡지 못할 것이다. 진우는 미래를 바꾼 것이다. 하지만… 그것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비무대 저편, 관중석 가장 높은 곳에 앉아 자신을 무표정한 얼굴로 응시하는 한 남자를 발견했다.

검은 도포를 두른 그의 모습은 어둠 속에 잠겨 있어 얼굴을 제대로 알아볼 수 없었으나, 진우는 그를 한눈에 알아보았다.

*천마…!*

그는 백룡보다 훨씬 더 강력한 존재였다. 모든 비극의 진정한 시작점. 진우가 미래에서 싸워야 했던 최종 보스.

승리의 함성이 귓가에 맴돌았지만, 진우의 심장은 더욱 차갑게 얼어붙었다. 비록 한 줄기 운명의 샛길을 바꾸었지만, 진짜 거대한 운명의 산은 이제 막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다음 경기는… 천마신교의 천마, 그리고 벽력문의 벽력수…!”

심판관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진우는 이를 악물었다. 피할 수 없는 싸움이 시작되려는 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