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역사물 라이트 노벨의 흥미진진한 챕터

흑룡 제국력 512년, 하늘마루 골짜기.

메마른 바람이 흙먼지를 일으키며 움푹 팬 바닥을 쓸고 지나갔다. 한때 푸르른 생명력으로 넘실대던 골짜기는 이제 잿빛 황무지가 되어 있었다. 흑룡 제국의 끝없는 수탈은 이곳을 지탱하던 모든 것을 빨아들였고, 사람들의 얼굴에는 메마른 땅만큼이나 깊은 고통의 주름이 새겨져 있었다.

강휘는 바싹 마른 나뭇가지처럼 앙상한 노파의 손을 붙잡고 서 있었다. 노파는 방금 제국 병사들이 걷어간 마지막 곡식 자루가 사라진 허름한 창고를 멍하니 응시하고 있었다. 노파의 눈동자는 이미 모든 체념을 담고 있었다.

“할머니, 괜찮으세요?” 강휘의 목소리는 갈라진 땅에서 억지로 솟아나는 샘물처럼 작게 떨렸다.
노파는 대답 대신 마른 기침을 몇 번 터뜨렸다. “괜찮긴 뭐가 괜찮겠니. 이젠… 더 이상 굶을 힘도 없구나.”

그때, 저편에서 거친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이 망할 것들아! 세금이 부족해? 감히 제국에 바칠 공물을 빼돌려?”
피 묻은 몽둥이가 투박한 나무 탁자를 후려갈기는 소리가 뒤를 이었다. 탁자는 이미 부서져 조각나 있었다. 그 앞에서 젊은 사내가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다.

아린이 이를 악물며 활시위를 당길 듯한 자세를 취했다. 그녀의 등 뒤에는 이제 겨우 팔뚝만 한 활이 매여 있었지만, 그 눈빛은 당장이라도 제국 병사들의 심장을 꿰뚫을 듯 맹렬했다.

“저 개 같은 놈들…!” 아린이 낮게 으르렁거렸다. “저러다간 전부 굶어 죽어! 가만히 보고만 있을 거야?”
강휘는 아린의 어깨를 붙잡았다. 그녀의 작은 몸은 분노로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아직은 때가 아니야. 무모한 행동은 더 큰 희생만 부를 뿐.”
“그럼 언제인데? 언제까지 당하고만 있어야 해? 우리가 이렇게 죽어가는 동안 저들은 우리의 피를 빨아먹고 잔치를 벌이고 있어!”

아린의 말은 비수처럼 강휘의 심장을 찔렀다. 그는 고개를 들었다. 하늘마루 골짜기를 가로지르는 좁은 길 위로, 흑룡 제국 병사들이 붉은 깃발을 휘날리며 약탈품을 가득 실은 수레를 끌고 있었다. 그들의 갑옷은 햇빛에 번쩍였고, 창 끝은 하늘을 찔렀다. 병사들의 얼굴에는 승자의 오만함이 가득했다.
오늘도 그들은 하늘마루의 마지막 남은 씨앗까지 털어가고 있었다.

강휘는 잠시 눈을 감았다. 어린 시절의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풍요로웠던 골짜기,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던 사람들. 그러나 흑룡 제국이 이 땅을 삼킨 후 모든 것이 변했다. 그의 아버지와 형제들도 제국의 광산에서 죽어갔다. 남은 것은 복수심과 이 절망적인 현실을 뒤엎으려는 강렬한 열망뿐이었다.

그는 다시 눈을 떴다. 이제 그의 눈에는 더 이상 체념이 없었다. 활활 타오르는 불꽃이 그 안에 깃들어 있었다.

“때는… 오늘 밤이다.”
아린이 강휘를 돌아봤다. 그녀의 눈빛에 의아함과 동시에 작은 희망의 불꽃이 일렁였다.
“무슨 말을 하려는 거야?”

강휘는 노파에게 조용히 속삭였다. “할머니, 오늘 밤엔 배불리 드실 수 있을 거예요.”
노파는 멍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강휘는 노파의 손을 놓고, 골짜기 깊은 곳에 숨겨진 동굴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곳에는 이미 삼십여 명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대부분은 어린아이들과 여자, 노인들이었지만, 그중에는 몇몇 젊은 사내들도 섞여 있었다. 모두가 굶주림과 절망에 지쳐 있었지만, 동시에 이 비참한 삶을 끝내고 싶다는 간절한 염원이 그들의 눈빛에 서려 있었다.

강휘가 동굴 중앙에 섰다. 어둠 속에서 그의 얼굴은 희미하게 보였지만, 그의 목소리는 분명하고 힘찼다.
“오늘, 제국 병사들이 우리의 마지막 식량을 빼앗아갔다.”
낮게 깔린 탄식과 분노가 동굴 안에 퍼졌다.
“그들은 우리가 그저 앉아서 죽어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우리가 두려움에 굴복해 스스로 목숨을 끊을 것이라 믿는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다.”

강휘는 잠시 말을 멈췄다. 동굴 안은 침묵으로 가득 찼다.
“우리는 이곳에 모였다. 굶어 죽지 않기 위해. 노예처럼 살지 않기 위해. 우리 스스로의 삶을 되찾기 위해.”
한 사내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하지만 강휘님, 우리는… 우리는 무기가 없습니다. 그들은 갑옷과 칼을 가진 제국 병사들입니다.”
“우리는 무기가 없지만, 이 땅을 안다. 우리는 칼이 없지만, 이 골짜기의 모든 길을 알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잃을 것이 아무것도 없다.”

강휘는 품에서 낡은 가죽 지도를 꺼냈다. 등잔불 아래서 지도가 펼쳐지자, 험준한 산맥과 굽이치는 강줄기, 그리고 하늘마루 골짜기를 가로지르는 제국군 수송로가 선명하게 드러났다.
“제국 병사들은 동쪽 길을 통해 골짜기를 나갈 것이다. 그 길은 험하고 좁아서, 많은 병사들이 한꺼번에 움직이기 어렵다.”
그의 손가락이 지도의 한 지점을 짚었다. “이곳은 ‘뱀의 목’이라 불리는 곳이다. 양쪽으로 가파른 절벽이 있고, 길은 겨우 수레 한 대가 지나갈 정도로 좁다.”

아린이 눈을 빛냈다. “매복인가요?”
강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우리는 그들이 가져간 식량을 되찾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오만함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다.”
사람들의 얼굴에는 두려움과 함께 희미한 기대감이 떠올랐다.
“우리는 군인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땅을 지키는 자들이다. 낫과 괭이, 그리고 돌멩이라도 좋다. 우리는 오늘 밤, 우리의 삶을 위해 싸울 것이다. 더 이상 무릎 꿇지 않는다!”

그의 말이 끝나자 동굴 안에는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이내, 웅성거림과 함께 몇몇 사내들이 주먹을 쥐어 올렸다.
“좋다! 강휘님 말씀이 옳다! 이대로 죽을 바엔 싸우다 죽는 게 낫지!”
“그래, 더는 못 참아!”

희미하게 빛나던 희망의 불꽃이, 강휘의 말과 함께 작은 불씨로 피어오르는 순간이었다.

***

깊은 밤, 뱀의 목.
달빛조차 숨어버린 어둠 속에서, 강휘와 아린을 비롯한 삼십여 명의 골짜기 사람들이 숨을 죽이고 매복해 있었다. 손에는 녹슨 괭이, 뭉툭한 낫, 그리고 거친 바위에서 떼어낸 날카로운 돌멩이가 들려 있었다. 몇몇은 사냥용 활을 들고 있었지만, 화살은 넉넉지 않았다. 그들의 유일한 무기는 이 땅에 대한 지식과,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자들의 절박함이었다.

저 멀리서, 횃불의 불빛이 어둠을 가르고 다가왔다. 둔탁한 말발굽 소리와 병사들의 거친 재촉 소리가 뱀의 목 골짜기에 울려 퍼졌다. 흑룡 제국 병사들이 약탈품을 가득 실은 수레와 함께 다가오고 있었다. 선두에 선 병사들은 삼십여 명, 뒤따르는 수레마다 대여섯 명의 병사들이 붙어 있었다. 총 70여 명에 달하는 병사들이었다.

강휘는 바싹 마른 침을 삼켰다. 병사들의 수는 자신들보다 두 배가 넘었다. 무장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견고했다. 하지만, 물러설 수는 없었다.

선두 병사들이 뱀의 목 가장 좁은 지점에 다다랐을 때, 강휘가 오른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지금이다!”

그의 외침과 동시에, 절벽 위에서 수십 개의 돌멩이가 비 오듯 쏟아져 내렸다.
“크악!”
“이, 이게 뭐야? 매복이다!”
선두에 서 있던 병사들이 돌에 맞아 쓰러지고, 그 뒤를 따르던 병사들은 혼란에 빠졌다. 수레를 끌던 말들이 놀라 울부짖으며 날뛰기 시작했다. 좁은 길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돌격!”
강휘가 절벽 아래로 뛰어내리며 외쳤다. 그의 손에는 묵직한 나무 몽둥이가 들려 있었다. 어둠 속에서 뛰쳐나온 골짜기 사람들은 병사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비록 무장은 초라했으나, 그들의 기세는 결코 약하지 않았다.

아린은 절벽 위에서 조준한 화살을 날렸다. 정확하게 병사의 목덜미에 박히며 병사는 비명을 지르기도 전에 고꾸라졌다. 그녀는 넉넉지 않은 화살을 아껴가며 핵심적인 적들을 노렸다.

강휘는 몽둥이를 휘둘러 병사의 투구를 후려쳤다. 금속음이 울리고 병사는 휘청거렸다. 병사의 칼이 강휘의 옆구리를 스쳤지만, 강휘는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몽둥이를 휘둘렀다. 그의 눈은 오직 앞으로 나아갈 뿐이었다.

혼란 속에서 병사들은 전열을 가다듬지 못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압도적인 수와 무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둠과 골짜기 사람들의 기습, 그리고 잃을 것 없는 자들의 광기 어린 투지에 당황했다.
“이 비겁한 촌놈들! 감히 제국군을 공격해?!” 병사 한 명이 소리쳤다.
강휘는 그 말에 대꾸할 틈도 없이, 쓰러진 병사의 칼을 빼앗아 들었다. 그리고는 그대로 돌아서서, 가장 뒤에서 지휘를 하려던 제국 장교를 향해 돌진했다.

장교는 비웃으며 칼을 뽑아 들었다. “겨우 촌뜨기가 칼을 들고 덤벼? 어리석은…!”
그러나 강휘의 칼은 장교의 예상보다 훨씬 빠르고 정확했다. 그는 제국군 광산에서 노동자로 일하며 몰래 무술을 익혔던 과거가 있었다. 첫 번째 공격이 장교의 팔을 스쳤고, 두 번째 공격은 장교의 목을 향했다. 장교는 겨우 칼을 막아냈지만, 강휘의 눈빛에서 느껴지는 살기에 압도당했다.

“나는 어리석지 않다. 어리석은 것은 너희다. 우리의 피와 땀으로 쌓아 올린 탑은 반드시 무너질 것이다!”
강휘는 격렬하게 칼을 휘두르며 외쳤다. 그의 목소리는 절규였고, 동시에 분노였다.

전투는 길지 않았다. 제국 병사들은 뱀의 목의 지형적 불리함과 기습이라는 변수, 그리고 무엇보다도 민초들의 필사적인 저항에 밀려 급격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몇몇은 도망치려 했지만, 좁은 길목은 그마저도 허락하지 않았다.

결국, 모든 병사가 쓰러지거나 도주했다.
골짜기 사람들은 피투성이가 된 채 숨을 헐떡였다. 몇몇은 상처를 입었고, 안타깝게도 두 명의 사내가 목숨을 잃었다. 그러나 그들의 눈에는 슬픔과 함께, 이전에 없었던 승리의 감격이 서려 있었다. 그들은 해냈다. 거대한 제국에 맞서, 그들의 손으로 승리를 쟁취한 것이다.

강휘는 쓰러진 병사들 사이를 걸었다. 그의 손에 들린 칼은 피로 번들거렸다. 그는 수레에 실린 곡식 자루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의 잃어버린 생명과 바꾸어 되찾은, 피 묻은 식량이었다.

아린이 그의 옆으로 다가왔다. 그녀의 얼굴에도 흙먼지와 핏자국이 묻어 있었지만, 눈빛만은 찬란하게 빛났다.
“해냈어, 강휘님… 우리가… 해냈어!”
강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얼굴에는 감격 대신 씁쓸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래, 해냈다. 하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하다.”

멀리 동쪽 하늘에서 희미한 여명이 밝아오고 있었다. 어둠이 걷히고, 핏빛으로 물든 새벽이 골짜기를 비추기 시작했다.
강휘는 칼을 땅에 박고, 멀리 흑룡 제국의 심장이 있는 방향을 응시했다. 거대한 제국은 아직 잠들어 있었지만, 하늘마루 골짜기에서 피어난 작은 불꽃이 언젠가 그들의 심장을 태울 것이었다.

새벽의 불꽃은 이제 막 피어오른 참이었다. 이 작은 불씨가 얼마나 거대한 불길이 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했다. 이 골짜기의 사람들은 더 이상 어둠 속에서 절망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