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선 ‘별무리호’의 함교는 침묵에 잠겨 있었다. 오직 생명 유지 장치의 낮은 험과 수십 개의 모니터에서 뿜어져 나오는 희미한 빛만이 공간을 채웠다. 인류가 도달한 가장 먼 우주, 그 심연 속에서 별무리호는 마치 잃어버린 아이처럼 홀로 표류하고 있었다. 끝없는 암흑과, 멀리서 아득하게 빛나는 성운의 잔상만이 영원처럼 펼쳐져 있을 뿐이었다.
함장 이지혜는 무감한 표정으로 주 모니터를 응시했다. 수십 년 경력의 베테랑답게 그녀의 눈은 항상 미세한 변화에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그러나 오늘은, 그 어떤 흥미로운 변화도 없었다. 그저 영원히 계속될 것만 같은 고요함.
“함장님, 순조롭습니다. 현재까지 특이 사항 없습니다.”
조용히 모니터를 응시하던 항해사 박선우가 쾌활하게 보고했다. 그녀는 스물 초반의 앳된 얼굴에 호기심 가득한 눈빛을 지닌, 이 함선에서 가장 어린 승무원이었다. 이지혜 함장은 선우의 에너지에 가끔 미소 지었지만, 지금은 그럴 여유조차 느끼지 못했다.
“계속 주시해, 선우. 심우주는 언제나 예측 불허니까.”
“네! 함장님!”
그때였다.
선우의 헤드셋에서 짧고 날카로운 경고음이 울렸다. 그녀의 손가락이 쏜살같이 컨트롤 패널 위를 미끄러졌다. 스크린 위로 알 수 없는 데이터들이 번개처럼 춤추기 시작했다.
“함장님! 미확인 에너지 신호 감지! 좌표 3-1-2-알파, 거리 약 5만 킬로미터!”
지혜의 눈썹이 살짝 치켜 올라갔다. 오랜 침묵을 깨는 첫 균열이었다.
“에너지 신호? 어떤 종류지?”
“판독 불능입니다. 지금까지 알려진 어떤 에너지 패턴과도 일치하지 않습니다. 주파수 대역도 매우 불규칙하고… 마치… 살아있는 것 같아요.”
선우의 목소리에 미묘한 긴장감이 실렸다. 그녀의 두 뺨에 옅은 홍조가 돌았다. 두려움인지, 기대감인지 알 수 없었다.
“기관장 김민준, 이쪽으로.” 지혜는 내부 통신 채널을 열었다.
“네, 함장님. 방금 신호 감지했습니다. 무슨 일입니까?” 김민준의 차분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불안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늘 이성적이었지만, 미지의 것은 그에게도 언제나 경계의 대상이었다.
“미확인 에너지원. 자세한 분석 부탁한다. 그리고 의무관 최유리,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만반의 준비를 해두도록.”
“알겠습니다, 함장님.” 유리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한층 더 진지했다. 혹시 모를 외계 병원균이나 예상치 못한 신체 변이에 대한 그녀 특유의 직업병이 도지는 듯했다.
별무리호는 조심스럽게 미확인 신호의 근원지를 향해 나아갔다. 함선 전체가 거대한 생명체처럼 움직이며, 우주의 정적을 방해하는 작은 진동을 만들어냈다.
점점 가까워질수록, 신호의 강도는 더욱 뚜렷해졌다. 선우의 모니터에는 알 수 없는 기호들이 춤추듯 번쩍였고, 그 기호들이 만들어내는 패턴은 묘하게 아름답기까지 했다.
“함장님, 시야에 들어옵니다!” 선우가 외쳤다. 그녀의 목소리는 흥분으로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주 모니터에 광학 카메라 영상이 확대되었다.
암흑의 우주 공간, 그 한가운데에…
그것은 마치 수정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꽃 같았다.
다섯 개의 투명한 꽃잎이 느리게, 그러나 일정한 간격으로 회전하고 있었고, 그 중심에서는 은은한 무지개빛이 흘러나왔다. 어떤 우주선 잔해도, 행성의 파편도 아니었다. 순수한 미지의 결정체였다. 완벽한 비례와 조화를 이룬, 태초의 아름다움 같았다.
“맙소사…” 민준의 낮은 탄성이 함교에 울렸다. 그의 이성적인 두뇌로는 도저히 해석할 수 없는 존재였다.
“이런 건 처음 봐요…” 유리의 목소리에도 경외감이 섞여 있었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그 아름다움 속에서 위험을 감지했다.
지혜는 숨을 죽였다. 수십 년 우주를 헤매며 수많은 경이로운 현상들을 목격했지만, 이런 완벽한 아름다움은 처음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설명할 수 없는 불길한 예감이 스쳐 지나갔다.
“근접 탐사 드론 발진 준비.” 지혜가 명령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한층 더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 “안전거리 유지하고, 드론으로 우선 접근한다.”
드론이 천천히 미지의 유물에 다가갔다. 유물은 드론의 접근에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아름답게 빛나고 있을 뿐이었다. 데이터 스크린에는 아무런 위협 반응도 감지되지 않았다. 민준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드론이 유물 표면에 거의 닿으려던 순간…
‘쉬이이익-‘
유물에서 뿜어져 나온 작은 무지개빛 섬광이 드론의 센서를 강타했다. 드론은 한순간에 멈춰 서더니,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일그러진 채 암흑 속으로 떠밀려갔다.
“드론 신호 두절!” 선우가 다급하게 외쳤다. “시스템 마비되었습니다!”
지혜는 망설였다. 이런 반응은 예상치 못했다. 무방비 상태의 드론을 한순간에 무력화시키는 힘.
“직접 확인해야겠어.” 지혜는 결심했다. “승무원 중 한 명이 직접 유물에 접근한다. 선우, 네가 가.”
선우는 눈을 크게 떴다. “제가요?”
“네가 이 함선에서 가장 어리고, 이 유물과 가장 먼저 교신했어. 뭔가… 이 유물이 널 부르는 것 같아.”
선우는 침을 꿀꺽 삼켰다. 공포와 동시에 거부할 수 없는 강력한 호기심이 그녀를 지배했다. 묘하게 끌리는 느낌, 마치 운명처럼.
선우는 우주복을 착용하고 에어록을 통해 미지의 우주로 나섰다. 등 뒤에서 느껴지는 별무리호의 존재감이 유일한 위안이었다. 산소 공급 장치의 규칙적인 소리가 그녀의 심장 박동처럼 느껴졌다.
앞에는 거대한 수정 꽃이 둥실 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그 아름다움은 더욱 극명하게 다가왔다. 투명한 꽃잎 사이로 보이는 미세한 무늬들은 마치 살아있는 문양처럼 꿈틀거렸다. 셀 수 없이 작은 빛의 알갱이들이 꽃잎을 따라 흐르고 있었다.
선우는 천천히 손을 뻗었다. 망설이는 듯 했지만, 그녀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몸이 이끌리는 듯했다.
“선우! 조심해!” 지혜 함장의 목소리가 헤드셋으로 들려왔다. 걱정과 불안이 뒤섞인 목소리였다.
선우의 손끝이 유물의 가장 바깥쪽 꽃잎에 닿았다.
닿는 순간, 차갑고도 매끄러운 감촉이 그녀의 손바닥을 타고 온몸으로, 세포 하나하나로 퍼져나갔다. 동시에, 유물 전체가 눈부신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마치 거대한 태양이 우주 한복판에 떠오른 듯했다.
“선우! 무슨 일이야?! 데이터가 폭주하고 있어!” 민준의 다급한 목소리가 울렸다.
“선우 씨! 괜찮으세요?!” 유리의 외침이 섞였다.
선우는 말을 할 수 없었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 때문이었다.
유물의 중심부에서 뿜어져 나오던 무지개빛 에너지가 마치 거대한 폭포처럼 쏟아져 나와 그녀의 몸을 감쌌다. 우주복이 무색하게, 에너지는 그녀의 피부 속으로 스며드는 듯했다.
선우의 시야가 뒤틀리고,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끓어오르는 듯한 감각이 밀려들었다. 뜨거움과 차가움, 고통과 쾌락이 뒤섞인 알 수 없는 감각의 소용돌이.
고통스러웠지만, 동시에 묘한 황홀경이 찾아왔다. 그녀의 머릿속에 수많은 이미지가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먼 옛날의 기억들, 알 수 없는 존재들의 목소리, 그리고… 강력한 힘을 가진 소녀의 모습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우는 한 줄기 빛. 선우는 그 소녀가 바로 자신이라는 듯한 착각에 빠져들었다.
그 순간, 선우의 몸에서 눈부신 빛이 터져 나왔다.
우주복의 바이저 너머로, 그녀의 몸을 휘감은 무지개빛 섬광이 폭발적으로 솟아올랐다. 마치 그녀 자체가 별이 된 듯했다.
별무리호 함교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지혜, 민준, 유리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모니터의 경고음은 미친 듯이 울려 퍼졌다.
“선우!!!”
지혜의 외침이 허공에 흩어졌다.
선우의 손목에, 투명한 꽃잎 모양의 문양이 마치 문신처럼 선명하게 새겨졌다.
그녀의 눈빛이 흔들렸다. 두려움인지, 아니면… 새로운 힘에 대한 자각인지 알 수 없는 강렬한 빛이 그 속에 가득했다.
유물은 빛을 거두고, 다시 처음의 고요한 모습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선우는… 더 이상 이전의 선우가 아니었다. 그녀는 우주복 안에서, 마치 자신의 몸이 변한 듯한 기묘한 감각을 느끼며 조용히 떨고 있었다.
[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