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전 탐험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 마혈궁의 비무 (魔血宮의 比武)

**1화. 검은 심장이 깨어나다**

고요했던 천하 무림에 균열이 가기 시작한 것은 한 겨울 밤, 하늘을 찢고 내려온 거대한 검은 그림자 때문이었다. 아무런 징조도, 예고도 없이 북부의 황량한 설원 한가운데 솟아난 그것은 마치 살아있는 악몽처럼 맥동했다. 높이만 해도 수백 장에 달하는 거대한 구조물. 붉고 검은 기운이 뒤엉켜 오르며 하늘을 온통 먹물처럼 물들였고, 그 안에서는 알 수 없는 저음의 울림이 끊임없이 토해져 나왔다. 사람들은 그것을 ‘마혈궁(魔血宮)’이라 불렀다.

마혈궁이 출현한 이후, 천하는 지옥으로 변했다. 마혈궁의 문이 열릴 때마다 쏟아져 나오는 기이한 형상의 마물(魔物)들은 강철 같은 육체와 피에 굶주린 본능으로 무림맹의 정예 무사들을 집어삼켰다. 그들의 습격은 점차 내륙으로 번졌고, 이름 높은 문파의 요새는 물론이고 평범한 마을들까지 피와 비명으로 물들었다. 수많은 희생 끝에 겨우 마혈궁 주변에 방어선을 구축했지만, 무림맹은 더 이상 마물들을 막아낼 방도가 없음을 깨달았다. 마혈궁 자체가 끊임없이 새로운 마물을 뱉어내는, 살아있는 악의 근원이자 던전과도 같은 존재였기 때문이다.

절망에 빠진 무림맹은 고심 끝에 한 가지 결정을 내렸다. 옛 문헌에서 발견된, 마혈궁과 관련된 신비로운 예언에 따르기로 한 것이다. 예언은 마혈궁을 봉인할 유일한 방법은 오직 ‘궁(宮) 안에서 펼쳐지는 천하 비무(天下 比武)’ 뿐이라 했다. 무림 최고의 고수들이 마혈궁의 심장부까지 나아가, 그곳에서 펼쳐지는 죽음의 비무를 통해 진정한 ‘선택받은 자’를 가려내야만 마혈궁의 저주를 풀고 천하를 구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리하여 무림맹은 천하의 모든 무림인들에게 서신을 보냈다. 문파의 장문이든, 은둔한 고수든, 떠도는 방랑객이든, 오직 무력(武力)과 담력(膽力)만 있다면 누구든 참여할 수 있다는 파격적인 조건이었다. 상금이나 명예 같은 세속적인 가치는 언급할 필요조차 없었다. 이 비무는 단순히 개인의 영달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천하의 운명, 인류의 생존이 걸린 마지막 몸부림이었다.

류가온은 낡은 도포 자락을 여미며 마혈궁을 응시했다. 시커먼 덩어리가 뿜어내는 기운은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살갗을 찢을 듯 차갑고 날카로웠다. 산발적으로 튀어나온 첨탑들은 마치 거대한 짐승의 송곳니처럼 날카롭게 솟아 있었고, 중심부에서는 핏빛 광채가 희미하게 명멸했다. 그 광경은 차라리 악몽에 가까웠다.

“흥, 저런 곳에 들어간다고? 미친 짓이지.”

그의 옆을 지나던 한 무사가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 그의 얼굴에는 두려움과 함께 어딘가 모를 경멸감이 서려 있었다. 하지만 류가온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가 이곳에 온 것은 무림의 명예나 천하를 구하겠다는 거창한 포부 때문이 아니었다. 단지… 살기 위해서였다.

그의 손에는 낡은 종이 한 장이 들려 있었다. 그것은 그의 사부, 아니, 그가 단 한 명의 혈육처럼 따랐던 노인이 남긴 유일한 유품이었다. 노인은 마혈궁이 출현하기 한 달 전, 병마에 시달리다 쓸쓸히 눈을 감았다. 그가 마지막으로 가온에게 건넨 것은 이 낡은 종이와 함께 알 수 없는 말 한마디였다.

“마혈궁… 그곳에 진실이 있다. 너는 반드시, 그곳으로 가야만 한다.”

노인의 유언은 가온에게는 절대적인 명령이었다. 그는 일평생을 노인과 단둘이 산속 깊은 곳에서 지냈다. 세상 물정은 어두웠고, 무공은 노인에게서 배운 몇 가지 검술과 보법이 전부였다. 노인은 그에게 고루하고 평범한 무공만 가르쳤지만, 단 한 가지를 강조했다. 어떤 상황에서도 ‘살아남으라’는 것. 그리고 그 가르침은 지금, 이 비무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이 될 터였다.

그는 비무 참가자들이 모여든 임시 막사를 향해 걸었다. 막사 주변에는 이미 수천 명의 무사들이 모여들었다. 오대세가, 구파일방, 사파 맹주를 비롯한 명문 정파의 고수들부터, 이름을 알 수 없는 중소 문파의 장문인들, 그리고 자신처럼 홀로 떠도는 방랑 무사들까지. 각자의 복색과 분위기가 천차만별이었지만, 그들의 눈빛에는 공통적으로 기대와 함께 짙은 긴장감이 서려 있었다.

“어이, 저게 류가온 아니야?”
“아, 그 무명 검객 말인가? 소문으로는 일전에 백무파의 장로를 베었다던데… 겉모습은 영락없는 파락호군.”
“쉿, 들리겠다. 그래도 저 꼴로 여기까지 온 걸 보면 보통내기는 아닐 테지.”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수군거림에 류가온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지만, 이내 평정을 되찾았다. 자신을 향한 시선은 이미 익숙한 것이었다. 그는 화려한 비단 옷 대신 닳아빠진 도포를 입고 있었고, 허리에는 비루한 낡은 검을 차고 있었다. 그의 외모는 특별히 출중하지도, 그렇다고 초라하지도 않은, 지극히 평범한 인상이었다. 다만 그의 눈빛만이 흔들림 없는 깊은 샘처럼 조용히 빛나고 있었다.

그는 군중 속을 헤치고 앞으로 나섰다. 곧이어 무림맹의 깃발이 펄럭이는 연단이 나타났다. 연단 위에는 무림맹의 맹주 ‘철혈대도’ 강명천을 필두로, 각 문파의 수장들이 굳건한 자세로 서 있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고뇌와 비장함이 교차했다.

마침내 강명천이 앞으로 나서자, 시끄럽던 장내가 일순간 정적에 휩싸였다. 그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천하의 무사들이여! 오늘 우리는 이곳에 모였다. 천하의 존망(存亡)이 걸린 이 위기 앞에서, 우리는 이제 마지막 희망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

강명천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힘이 실려 있었다. 그는 마혈궁의 위협과 무림맹의 고심, 그리고 예언의 내용을 다시금 설명했다.

“마혈궁 내부에는 알 수 없는 함정과 마물들이 도사리고 있을 것이다. 비무의 과정은 단순히 검과 검을 맞대는 것만이 아닐 터! 오직 살아남아 마혈궁의 진실에 다가서는 자만이, 최종적으로 천하를 구원할 기회를 얻을 것이다!”

군중 속에서 술렁거림이 터져 나왔다. 예상했던 대로였다. 단순한 비무가 아니라는 말에 일부는 환호했지만, 또 다른 일부는 겁에 질린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마혈궁이 던전과 같은 미지의 영역이라는 사실은 꽤 오래전부터 암암리에 퍼져 있었다. 하지만 막상 그 실체를 마주하고, 그 안으로 직접 들어가야 한다는 말을 들으니 그 무게감은 상상 이상이었다.

“각오는 되었을 것이다! 오늘부터 사흘간, 우리는 마혈궁의 첫 관문인 ‘고난의 통로’를 통과하는 비무를 시작한다! 통로를 지나는 동안 어떤 수단과 방법을 써도 좋다! 오직 마지막까지 살아남아 통로를 벗어나는 자만이 다음 비무에 진출할 자격을 얻을 것이다!”

강명천의 말에 다시 한번 파장이 일었다. ‘어떤 수단과 방법도 좋다’는 말은 곧, 마물과의 싸움뿐 아니라 참가자들 간의 암투와 살육까지도 허용한다는 의미였다. 사실상 통과 자체가 비무였고, 살아남는 것이 승리인 잔혹한 생존 경쟁이었다.

류가온은 묵묵히 연단을 바라보았다. 그의 심장은 평소와 다름없이 고요했다.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이곳에 발을 들인 이상, 평화로운 결투 같은 건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을. 그저 살아남아야 했다. 그의 사부의 유언을 위해서라도.

그의 낡은 검집 위로 엄지손가락이 스쳤다. 거칠고 투박한 손바닥에서 느껴지는 검의 차가운 감각이 오히려 그를 안심시키는 듯했다.
그때, 연단 위에서 한 명의 젊은 무사가 앞으로 나섰다. 그는 용비문의 차기 소문주 ‘용명’이었다. 화려한 비단 도포를 걸치고 손에는 황금빛 용무늬가 새겨진 검을 들고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오만함과 자신감이 가득했다.

“흥, 이런 시시한 비무에 나설 필요도 없건만. 고작 마혈궁 따위가 감히 천하를 위협한다니. 어차피 우리 용비문에서 깔끔하게 정리해줄 것을.”

용명의 목소리는 오만했지만, 그의 무력은 무시할 수 없었다. 용비문은 무림맹의 핵심 세력 중 하나로, 강맹한 검술로 이름이 높았다. 그의 말에 일부 무사들은 불쾌한 표정을 지었지만, 또 다른 이들은 수긍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만큼 용명이라는 이름의 무게가 컸다.

류가온은 용명을 스쳐 보며 다시 마혈궁으로 시선을 돌렸다. 저 오만한 소년이든, 이름 없는 늙은 무사이든, 혹은 자신을 포함한 모든 참가자든, 이곳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자는 극히 소수일 터였다. 그리고 그 소수만이 마혈궁의 심장부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과연 그곳에는 사부가 말한 ‘진실’이 있을까?

“이제, 첫 번째 비무를 시작한다! 마혈궁의 문을 열어라!”

강명천의 마지막 외침과 함께, 거대한 마혈궁의 정문이 천천히, 그리고 끔찍한 굉음을 내며 열리기 시작했다. 문틈 사이로 뿜어져 나오는 짙은 암흑과 피비린내 나는 냉기가 일순간 모든 무사들의 얼굴을 창백하게 만들었다. 그것은 단순히 건물의 문이 아니라, 죽음으로 가는 통로의 입구였다.

류가온은 더 이상 주저하지 않았다. 그는 낡은 검을 움켜쥐고, 망설임 없이 가장 먼저 문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의 뒤를 이어 용명을 비롯한 수많은 고수들이 각자의 무기를 든 채 결의에 찬 표정으로 어둠 속으로 뛰어들었다.

검은 심장이 깨어났다.
그리고 그 안으로, 천하의 운명을 짊어진 무사들이 하나둘 흡수되기 시작했다.
이것은 단순한 비무가 아니었다. 살아있는 던전, 마혈궁 속에서 펼쳐지는 생존과 파멸의 서곡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