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흠, 크흠! 야, 이도진! 좀 천천히 가. 먼지 다 마시면 내가 폐병으로 죽겠어!”
한유리는 질식할 것 같은 기침을 토해내며 눈앞의 뒷모습을 향해 버럭 소리쳤다. 등 뒤에 멘 묵직한 배낭 때문에 휘청거리는 어깨가 한층 더 무거워 보였다. 그녀의 불평에도 불구하고, 코앞의 거무튀따한 등을 가진 남자는 아랑곳없이 앞으로 나아갔다.
“유리야, 잠깐만! 이것 봐! 내가 말했지? 이 벽돌의 미세한 균열, 그리고 이 조각의 질감! 이건 분명 인위적인 흔적이야!”
이도진은 평소라면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을, 퀴퀴한 흙먼지로 뒤덮인 벽돌 한 장을 손으로 더듬으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의 안경 너머 눈빛은 레이저라도 뿜어낼 듯 번뜩였다. 땀으로 젖은 앞머리가 이마에 착 달라붙어 있었지만, 그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우리가 서 있는 곳은 이름 없는 산맥 어딘가에 숨겨진, 폐쇄된 광산의 깊숙한 지하 통로였다. 수십 년 전, 광맥이 끊기면서 버려진 곳이라 알려져 있었지만, 도진은 끈질긴 문헌 연구 끝에 이곳이 고대 왕국의 비밀 신전으로 이어지는 통로일지도 모른다는 가설을 세웠다. 그리고 그 가설은 지금, 점점 현실이 되고 있었다.
“그래, 인위적인 흔적은 맞는데… 그래서? 겨우 벽돌 하나 보고 그렇게 난리를 피워야 해? 여기서 도대체 뭘 찾겠다는 거야?”
유리는 팔짱을 끼며 투덜거렸다. 발밑에서 톡톡 떨어지는 흙 조각들이 그녀의 운동화에 들러붙었다. 도진의 무모한 탐험에 끌려다닌 지도 벌써 몇 년째인지. 그녀는 차라리 실내에서 푹신한 소파에 앉아 최신 드라마를 정주행하는 게 더 행복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바보 같은 소꿉친구를 혼자 내버려 두었다가는, 어디 폐허에 깔려 죽거나 굶어 죽을 게 뻔했으므로 어쩔 수 없이 따라다니고 있었다. 이건 뭐… 의리라기보다는 그냥 보호 본능이었다.
도진은 유리의 불평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벽돌을 손가락으로 조심스럽게 눌러보았다.
“봐! 미묘하게 다른 소리가 나지 않아? 그리고 이 조각된 문양… 분명히 내가 연구하던 고대 왕국의 양식과 일치해. 이건 단순한 벽돌이 아니라… 숨겨진 입구의 열쇠일지도 몰라!”
그의 목소리는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유리는 한숨을 쉬며 도진이 가리키는 곳으로 다가갔다. 정말 자세히 살펴보니, 평범해 보이는 벽돌 위에 알아보기 힘든 희미한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벽돌을 두드리자, 주변의 흙벽과 달리 묘하게 속이 빈 듯한 둔탁한 소리가 울렸다.
“어… 진짜네? 이 도마뱀 같은 건 뭔데? 징그럽게.”
유리가 손전등을 비추며 말했다. 문양은 뱀 같기도 하고, 도마뱀 같기도 한 신비로운 형태였다.
“그건 아마 ‘수호의 비늘’을 상징하는 문양일 거야. 이 왕국에서는 신성한 동물을 새겨 넣어 중요한 것을 지켰다고 전해지거든.”
도진은 안경을 고쳐 쓰며 설명을 시작하려 했지만, 유리는 그의 설명을 자르고 허리를 숙였다.
“됐고, 그래서 이걸 어떻게 열어야 하는데? 그냥 밀면 되는 거야? 아니면 주문이라도 외워야 하나?”
그녀는 과감하게 벽돌에 손을 얹고 밀어보았다. 그러나 벽돌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아니, 유리야! 그렇게 무식하게 하면 안 돼! 고대 유적은 섬세한 기술로 만들어졌다고! 무리한 힘을 가하면 전체가 무너질 수도 있어!”
도진은 기겁하며 유리를 말렸지만, 유리는 이미 다른 시도를 하고 있었다. 그녀는 벽돌 옆의 틈새를 유심히 살펴보더니, 들고 있던 작은 곡괭이의 뾰족한 끝으로 틈을 찔러보았다.
“음… 이거, 생각보다 깊은데?”
그 순간, ‘끼이이이익!’ 하는 섬뜩한 마찰음과 함께 벽돌이 안쪽으로 스르륵 밀려들어 갔다. 그리고 벽돌이 있던 자리에 사람 한 명이 겨우 들어갈 만한 어두운 구멍이 나타났다. 구멍 안쪽에서는 습하고 퀴퀴한 바람이 불어 나왔다.
“대박! 열었어! 역시 내 손은 황금 손이라니까?”
유리는 의기양양하게 주먹을 불끈 쥐었다. 도진은 입을 쩍 벌린 채 구멍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은 놀라움과 감격으로 번뜩였다.
“유리야… 네가… 네가 이걸…!”
“뭐야, 왜 그렇게 감동한 표정이야? 난 그냥 힘 좀 썼을 뿐인데.”
유리는 어색하게 머리를 긁적였다. 도진은 고개를 젓더니, 마치 세상의 모든 보물을 발견한 사람처럼 감격스러운 표정으로 유리를 쳐다봤다.
“이건… 이 고대 왕국의 비밀이 봉인된 첫 번째 문일지도 몰라! 대단해, 유리야! 정말 대단해!”
그는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고 유리의 손을 덥석 잡았다. 유리는 갑작스러운 접촉에 깜짝 놀라 손을 떼려 했지만, 도진은 꽉 잡은 손을 놓지 않았다. 그의 손은 땀으로 축축했지만, 왠지 모르게 뜨거웠다.
“야, 야! 손 좀 놔 봐! 축축하잖아!”
유리가 얼굴을 붉히며 손을 빼냈다. 도진은 그제야 자신의 행동을 깨닫고 “아, 미안!” 하며 어색하게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의 얼굴도 살짝 붉어져 있었다.
“저… 그럼 이제 들어가 볼까?”
도진은 어색함을 감추려는 듯, 애써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그의 눈은 이미 구멍 안쪽을 향해 빛나고 있었다. 유리는 한숨을 쉬었다. 이 바보는 정말이지, 로맨스는커녕 탐험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너 먼저 들어가. 난 너 뒤를 지킬게. 이상한 거 튀어나오면 내가 다 처리할 테니까.”
유리는 배낭에서 튼튼한 헤드램프를 꺼내 머리에 썼다. 언제나 그렇듯, 행동대장은 그녀였다. 도진은 살짝 머뭇거렸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조심해서 따라와. 분명 중요한 단서가 있을 거야.”
그는 작은 몸을 구부려 겨우 구멍 속으로 들어갔다. 유리는 그의 등 뒤를 보며 중얼거렸다.
“단서가 아니라 또 이상한 벌레나 튀어나오겠지… 에휴.”
불평은 했지만, 그녀의 표정에는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역시 도진은 이런 곳에 있어야 가장 빛나는 사람이었다.
구멍 안쪽은 예상대로 어두컴컴하고 좁은 통로로 이어져 있었다. 헤드램프 불빛이 겨우 앞을 비출 뿐이었다. 흙냄새와 함께 알 수 없는 오래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얼마쯤 기어가자, 통로는 점점 넓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은 작은 방 같은 공간에 도착했다. 방 한가운데에는 닳고 닳은 석상이 서 있었고, 벽면에는 알아볼 수 없는 고대 문자들이 가득 새겨져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따로 있었다.
석상 바로 뒤, 벽 한쪽이 다른 곳과 달리 매끄러운 흑색 암석으로 되어 있었는데, 그 위로 희미하게 빛나는 선들이 불규칙하게 얽혀 있었다. 마치 거대한 거미줄 같기도 했고, 복잡한 회로 같기도 했다. 그 빛은 희미했지만, 분명히 어떤 에너지를 품고 있는 듯 미묘하게 흔들렸다.
“이건…!”
도진은 넋을 잃은 듯 그 빛나는 벽을 응시했다. 그의 손이 저절로 뻗어 나갔다. 유리는 뭔가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혀 그를 제지하려 했다.
“도진아, 잠깐만! 함부로 만지지 마!”
하지만 때는 늦었다. 도진의 손가락이 빛나는 선들 중 하나에 닿는 순간, ‘쉬이이이잉…’ 하는 소리와 함께 벽 전체가 강렬한 푸른빛을 뿜어냈다. 방 안은 순간 대낮처럼 밝아졌고, 빛이 사라지자 그들이 마주한 광경은 그야말로 충격적이었다.
빛이 스쳐 간 벽면에는 이전에는 없던, 거대한 문양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그 문양의 중앙에는, 손바닥만 한 크기의 수정 구슬이 박혀 있었다. 구슬은 마치 심장처럼 미약하게 고동치고 있었다.
“이게… 도대체…?”
유리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비볐다. 그들은 단순한 유적이 아니라, 살아 숨 쉬는 무언가를 발견한 것 같았다. 도진의 눈은 경이로움과 탐구욕으로 활활 타올랐다.
“이건… 고대 문명의 핵심 장치야! 이 빛… 이 문양… 이건 단순히 장식이 아니야! 이 유적 전체를 움직이는 동력원일지도 몰라!”
그의 목소리는 흥분으로 갈라졌다. 하지만 바로 그때였다. ‘쿠구구궁!’ 하는 엄청난 진동과 함께 방 전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천장에서 흙덩이들이 떨어져 내렸고, 석상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젠장! 뭘 건드린 거야, 너!”
유리는 비명을 지르며 도진의 팔을 잡아챘다. 도진은 여전히 빛나는 구슬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이게… 이게 시작이야! 유리야! 우리가 진짜 비밀을 건드린 거라고!”
그의 광기 어린 눈빛은 유리의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었다. 천장의 균열은 점점 더 커지고 있었다. 이대로 있다가는 둘 다 이곳에 생매장될지도 모른다.
“비밀이고 나발이고, 일단 도망쳐야 할 것 아니야! 야, 이도진! 제발 정신 차려!”
유리는 있는 힘껏 도진을 끌어당기며 자신들이 들어왔던 좁은 통로를 향해 달렸다. 그러나 진동은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강해지고 있었다. 그들 뒤편에서 ‘콰아아앙!’ 하는 거대한 소리가 울렸다. 방금 그들이 발견했던 빛나는 벽이 완전히 무너져 내리는 소리였다. 그 너머에는 알 수 없는 심연이 펼쳐져 있는 듯했다.
“젠장! 우리 이제 어떡해!”
유리는 절규했다. 그녀의 눈앞에는 무너져 내리는 통로와, 여전히 무언가에 홀린 듯 뒤를 돌아보려는 도진의 어리숙한 얼굴이 있었다. 그 순간, 유리의 머릿속에는 오직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일단 이 바보를 살려야 해!’
그녀는 이를 악물고 도진을 끌고 앞으로 달렸다. 그들이 알 수 없는 고대 유적의 심장을 건드린 대가는, 이제 막 시작된 미궁 속의 거대한 모험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