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줄기가 한양의 고풍스러운 기와지붕을 쉴 새 없이 두드렸다. 잿빛 하늘은 천 년을 이어온 대조선 제국의 수도를 검은 장막으로 가린 듯했다. 빗물에 젖은 거리는 기계식 가로등의 희미한 불빛 아래 번들거렸고, 낡은 마차가 물웅덩이를 가르며 스산한 소리를 냈다.
“이런 날씨에 어쩌자고 또 밀실 살인이라니….”
윤 서기관은 한숨을 쉬며 두꺼운 외투 깃을 바싹 여몄다. 마주 앉은 이는 말없이 차창 밖 풍경을 응시하고 있었다. 단정하게 빗어 넘긴 머리, 날카로운 눈매, 그리고 얇게 다문 입술. 그는 바로 대조선 최고의 수사 자문관이자 기묘한 사건 해결의 대가, 설지호였다.
“윤 서기관, 자네는 이 비가 모든 것을 씻어낼 것이라 생각하는가?”
나직한 목소리였지만, 그 안에는 묘한 무게감이 실려 있었다.
“죄인의 피와 죄업은 씻어낼 수 없겠지요. 하지만 빗물은 늘 새로운 사건의 불길한 전조가 되곤 합니다.”
“아니. 빗물은 그저 빗물일 뿐. 모든 것은 결국 인간의 손에서 시작되고 끝나는 법이지.”
설지호는 더 이상의 말을 덧붙이지 않았다. 윤 서기관은 익숙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의 마차는 한양 외곽의 한적한 저택 앞에 멈춰 섰다. ‘기계궁(機戒宮)’이라 불리는 박 대감의 저택이었다. 박 대감은 당대 최고의 기계 공학자이자 발명가로, 온갖 기묘한 장치들로 가득한 은둔자였다.
저택 안으로 들어서자 금속과 기름 냄새가 희미하게 풍겨왔다. 수십 개의 톱니바퀴와 증기 파이프가 얽혀 있는 듯한 기이한 구조의 저택이었다. 사건 현장은 저택 가장 안쪽에 자리한 박 대감의 연구실이었다.
“설 자문관님, 오셨습니까!”
조사를 지휘하던 한성부 참봉이 허둥지둥 달려와 설지호에게 고개 숙였다. 그의 얼굴에는 당혹감과 절망감이 역력했다.
“상황은?” 윤 서기관이 물었다.
“시신은 발견 당시부터 지금까지 그 상태 그대로입니다. 박 대감은 연구실 안에서 칼에 찔려 숨진 채 발견되었습니다. 흉기는 대감 자신의 작업용 칼인 듯합니다. 그런데… 문이 잠겨 있었습니다. 안에서 걸어 잠근 채로요.”
“창문은 어떻소?” 설지호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창문은 모두 안팎으로 쇠창살이 단단히 박혀 있습니다. 사람의 드나듦은 불가능합니다. 게다가 이 연구실은 대감마님께서 직접 설계하신 특수 보안 장치로 무장되어 있습니다. 밀실 중의 밀실이죠.”
설지호는 말없이 참봉의 설명을 들으며 연구실 문 앞에 섰다. 문은 육중한 흑철로 만들어져 있었고, 복잡한 톱니바퀴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안쪽에서 잠근 흔적이 확실했다.
“문을 엽니다.”
수사관들이 조심스럽게 특수 장비로 문을 해체하기 시작했다. ‘끼이이잉-‘ 하는 쇠 갈리는 소리가 연구실 복도에 울려 퍼졌다. 잠시 후, 문이 천천히 열렸다.
연구실 내부는 흡사 거대한 자명시계 공장을 연상케 했다. 벽면 가득 정교한 기계 부품들이 빼곡했고, 천장에는 수십 개의 증기 파이프가 거미줄처럼 얽혀 있었다. 방 한가운데, 작업대 앞에 쓰러져 있는 박 대감의 시신이 보였다. 그의 옆에는 피 묻은 칼이 떨어져 있었다.
설지호는 방으로 들어서자마자 천천히, 그러나 집요하게 시선을 움직였다. 시신을 지나, 작업대 위를 훑고, 벽면의 기계 장치들을 하나하나 응시했다. 윤 서기관과 참봉은 숨을 죽인 채 그의 뒤를 따랐다.
“시신은 언제 발견되었는가?” 설지호가 물었다.
“오늘 새벽, 최 아낙이 대감마님의 조반을 드리러 왔다가 문이 잠겨 있어 이상히 여기고 신고했습니다.” 참봉이 답했다.
“마지막으로 대감을 본 사람은?”
“어젯밤, 조카 송 도령과 최 아낙입니다. 송 도령은 어젯밤 대감마님과 격렬하게 언쟁을 벌인 후 자신의 처소로 돌아갔다고 하고, 최 아낙은 야참을 가져다 드린 후 물러났다고 합니다. 둘 다 문이 잠긴 것은 보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설지호는 시신 앞으로 다가섰다. 박 대감의 눈은 희번덕하게 뜨여 있었고, 얼굴에는 고통과 놀라움이 뒤섞인 표정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설지호는 시신을 살피는 대신, 그의 손에 들려 있던 낡은 회중시계에 시선을 고정했다. 시계는 멈춰 있었다. 정확히 자정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는 고개를 들어 연구실의 높은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수많은 기계 장치와 파이프 사이로, 다른 창문들보다 훨씬 높고 작게 달린 환기창이 눈에 들어왔다. 그 창문에도 두꺼운 쇠창살이 박혀 있었다.
“윤 서기관, 송 도령과 최 아낙을 불러오시오. 따로따로.”
먼저 송 도령이 들어왔다. 그는 수려한 외모였으나, 얼굴에는 불안감과 짜증이 뒤섞여 있었다.
“저, 설 자문관님. 저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어젯밤 대감마님과 저는 유산 문제로 좀 다투긴 했습니다만… 저는 방으로 돌아간 후 한 발짝도 밖으로 나가지 않았습니다.”
“유산 문제라…. 박 대감의 재산이 상당했던 모양이로군.” 설지호가 무미건조하게 물었다.
“그렇습니다. 대감마님은 괴팍하셨지만, 막대한 재산을 가지고 계셨죠. 그분은 저에게 아무것도 물려주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계속해서 이 지긋지긋한 기계 부품이나 정리하며 살라고 하셨죠!” 송 도령은 격분하여 외쳤다.
“자네는 이 연구실에 대해 잘 아는가?”
“대감마님께서 온갖 비밀 장치를 해두셔서, 함부로 들어갈 수도 없었습니다. 그분은 늘 연구실을 당신만의 성채처럼 여기셨죠.”
“이 연구실의 문이 어떻게 잠기는지 알고 있는가?”
송 도령은 잠시 망설이더니 답했다. “대감마님께서 직접 만드신 자명(自鳴) 잠금 장치가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특정 소리를 내면 문이 저절로 잠긴다고요. 하지만 어떤 소리인지, 어떻게 작동하는지는 저도 모릅니다. 대감마님께서 극비에 부치셨으니까요.”
설지호는 더 이상 묻지 않고 송 도령을 물러가게 했다. 다음은 최 아낙이었다. 늙은 여인의 얼굴에는 깊은 주름과 함께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나으리, 이 늙은 것이 무슨 죄를 지었다고 이런 무시무시한 일을 겪어야 한답니까?”
“최 아낙, 어젯밤 야참을 가져다 드렸다고 했지? 몇 시쯤이었나?”
“밤 아홉 시였습니다요. 대감마님은 늘 밤늦게까지 연구에 몰두하셨으니까요. 늘 고뿔을 달고 사셨는데, 어젯밤엔 유독 목소리가 잠겨 있으셨습니다.”
“그때 연구실 문은 잠겨 있었나?”
“아니요, 잠겨 있지 않았습니다. 제가 다가가니 대감마님께서 직접 열어주셨지요. 그때 저더러 ‘곧 중요한 실험을 시작할 것이니, 절대 방해하지 말라’고 이르셨습니다. 밤 열 시가 되면 문을 걸어 잠글 것이라고요.”
설지호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밤 열 시에 문을 걸어 잠근다고? 자명 잠금 장치를 이용한다는 말인가?”
“그랬습니다요. 대감마님은 늘 그렇게 하셨지요. 워낙 중요한 발명품이 많으시니 보안에 철저하셨거든요.”
최 아낙의 진술은 거기까지였다. 그녀도 송 도령과 마찬가지로 특별한 단서를 제공하지 못했다.
수사관들은 방 전체를 샅샅이 뒤졌다. 숨겨진 문이나 좁은 통로, 벽난로 속 굴뚝 등 모든 가능성을 점검했지만, 아무런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연구실은 완벽한 밀실 그 자체였다.
“이럴 수가 없습니다, 설 자문관님. 대체 범인은 어떻게 이 방에 들어왔다가 나갔다는 말입니까? 귀신이라도 부렸단 말입니까?” 참봉이 이마의 땀을 닦으며 호소했다.
설지호는 아무 말 없이 방 안을 배회했다. 그의 발걸음은 일정한 간격으로 멈추고, 시선은 한 지점에 고정되었다. 천장의 환기창, 작업대의 얼룩, 심지어는 벽에 걸린 복잡한 증기압력계까지.
“윤 서기관.”
“예, 자문관님.”
“이 연구실, 박 대감의 집념이 그대로 녹아 있군.”
“그렇습니다. 대감마님께서는 이 연구실을 당신의 유일한 안식처이자 동시에 감옥처럼 여기셨지요.”
설지호는 다시 한번 천장의 환기창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 연구실 한쪽 벽면에 세워져 있던 거대한 태엽 장치 앞에 섰다. 그 태엽 장치는 방 안의 다른 기계들과 연결되어 있었고, 복잡한 파이프들이 천장을 향해 뻗어 있었다.
“참봉, 저 환기창의 높이가 대략 얼마 정도 되는가?”
참봉은 자를 가져와 대충 가늠했다. “대략 3장(丈)은 족히 넘어 보입니다. 성인 남자도 절대 닿을 수 없는 높이죠.”
“그렇다면….”
설지호는 갑자기 발길을 멈추고 작업대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피 묻은 칼 옆에 떨어져 있던 회중시계를 다시 집어 들었다. 시계는 여전히 자정을 가리키고 있었다.
“윤 서기관, 최 아낙이 야참을 가져다 드린 시각이 몇 시였지?”
“밤 아홉 시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박 대감은 밤 열 시에 문을 잠근다고 했다. 자명 잠금 장치로.”
“그렇습니다만….”
“그렇다면 이 시계는 왜 자정에서 멈춰 있는 것일까?” 설지호는 회중시계를 윤 서기관에게 내밀었다. “그것도… 태엽이 완전히 풀린 상태로 말이야.”
윤 서기관은 시계를 받아들고 눈을 크게 떴다. “이것은…!”
“자명 잠금 장치 말이지. 특정 소리를 내면 작동한다고 했다. 박 대감 같은 천재 발명가가 그저 평범한 소리로 그런 중요한 장치를 작동시켰을 리는 없다. 분명, 고유하고 특별한 소리였을 것이다.”
설지호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방 한가운데 서 있는 거대한 기계 장치를 바라보았다. 그 장치에는 수많은 음통(音筒)과 금속 실린더가 얽혀 있었다. 마치 거대한 오르골처럼 보였다.
“박 대감은 이 장치를 통해 밤마다 연구실을 잠갔을 것이다. 특정 시간, 예를 들어 밤 열 시가 되면 이 장치가 특정한 멜로디를 연주하고, 그 소리가 문을 잠그는 자명 잠금 장치를 작동시키는 것이지.”
“하지만 박 대감은 칼에 찔려 죽었습니다! 그 멜로디를 들을 시간조차 없었을 수도 있습니다!” 참봉이 외쳤다.
“아니. 그는 그 멜로디를 들었을 것이다. 아니, 듣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설지호의 시선은 다시 천장의 환기창으로 향했다. “이 연구실은 철저하게 밀폐되어 외부 소음이 거의 들어오지 않는다. 따라서 이 자명 장치의 소리는 오직 방 안에서만 유효할 것이다.”
그는 다시 작업대 위로 시선을 돌렸다. 희미한 기름때 자국이 눈에 띄었다. 여타 작업장의 기름때와는 미묘하게 다른, 특유의 향이 나는 기름이었다.
“윤 서기관, 최 아낙이 한 말이 있지. 박 대감의 목소리가 잠겨 있었다고. 그리고 ‘중요한 실험을 시작할 것이니 방해하지 말라’고 했다. 박 대감은 항상 새로운 발명에 몰두하던 사람이었다. 그에게 ‘중요한 실험’이란 어떤 의미였을까?”
설지호는 걸음을 옮겨 작업대 구석에 놓여 있던 작은 나무 상자를 열었다. 그 안에는 박 대감이 설계한 듯한 복잡한 도면 몇 장과, 작은 금속 구슬 몇 개, 그리고 정교하게 만들어진 작은 갈고리 모양의 도구가 들어 있었다. 도면 중 하나에는 ‘긴급 탈출용 보조 장치’라고 쓰여 있었다.
“박 대감은 스스로를 가두는 보안 시스템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혹시 모를 비상시에 대비해 탈출용 장치 또한 고안해 두었을 것이다.” 설지호는 도면을 펼쳤다. 도면에는 천장의 환기창과 연결된 듯한 복잡한 구조가 그려져 있었다.
“범인은 박 대감의 조카 송 도령이다.” 설지호는 단호하게 말했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꽂혔다.
“송 도령은 박 대감이 유산을 물려주지 않는 것에 앙심을 품고 있었다. 그는 어젯밤 대감과 격렬한 언쟁을 벌였지. 그리고 그는 이 연구실의 자명 잠금 장치에 대해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설지호는 말을 이었다. “송 도령은 박 대감이 밤 열 시에 자명 잠금 장치를 작동시켜 연구실 문을 잠근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대감과의 언쟁 후 몰래 연구실에 숨어들어 있었다.”
“숨어 있었다고요? 어디에 말입니까!” 참봉이 놀라 물었다.
“이 방 안에는 거대한 기계 장치들이 너무 많다. 분명 몸을 숨길 만한 공간이 있었을 것이다. 박 대감은 자신의 조카가 그런 위험한 생각을 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을 테지.”
설지호는 천천히 오르골 형태의 기계 앞으로 다가갔다. “송 도령은 박 대감이 밤 열 시에 자명 잠금 장치를 작동시키기 위해 오르골을 연주하는 순간을 노렸다. 멜로디가 연주되고 문이 잠기는 바로 그 찰나, 송 도령은 박 대감을 찔렀다.”
“하지만 문은 안에서 잠겨 있었습니다! 어떻게 나갔단 말입니까?” 윤 서기관이 의문을 제기했다.
“여기 이 도면을 보시오. ‘긴급 탈출용 보조 장치’.” 설지호는 갈고리 모양의 도구를 들어 보였다. “박 대감은 고뿔로 목소리가 잠겨 있었음에도 중요한 실험을 시작한다고 했다. 그는 아마 자신의 ‘긴급 탈출용 보조 장치’를 시험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 도구는 저 천장의 환기창과 연결된 특수 장치를 작동시키기 위한 것이다.”
설지호는 설명을 이어갔다. “범인 송 도령은 박 대감을 살해한 직후, 박 대감이 평소에 사용하던 이 갈고리 모양의 도구로 천장의 환기창에 숨겨진 기계 장치를 작동시켰다. 이 환기창은 쇠창살이 안쪽에 박혀 있어 외부에서는 열 수 없지만, 내부에서 특정 장치를 작동시키면 쇠창살이 잠시 옆으로 슬라이드되며 환기창이 열리도록 설계되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너무 높지 않습니까? 어떻게 환기창까지 올라갔단 말입니까?” 참봉이 반문했다.
“바로 여기에 답이 있다.” 설지호는 방 한쪽 벽에 세워져 있던 거대한 태엽 장치를 손으로 가리켰다. “박 대감은 이 연구실의 공간 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해 이 태엽 장치를 이용한 특수 발판을 만들었다. 평소에는 벽면에 밀착되어 감춰져 있지만, 특정 신호를 주면 태엽의 힘으로 펼쳐져 사다리처럼 변하는 장치였을 것이다. 아마 박 대감이 새로운 기계 부품을 높은 곳에 설치하거나, 청소를 할 때 사용했을 것이다.”
설지호는 걸음을 옮겨 태엽 장치 옆의 희미한 긁힌 자국을 손으로 쓸었다. “어젯밤, 송 도령은 이 발판을 이용해 천장까지 올라갔다. 환기창의 쇠창살을 잠시 옆으로 치우고, 그 좁은 틈으로 몸을 구겨 넣은 후 밖으로 탈출했다. 그 순간, 환기창과 쇠창살은 다시 자동으로 닫혔을 것이다. 그는 그렇게 완전한 밀실을 만든 것이다.”
“하지만 박 대감은 왜 저항하지 못했습니까? 범인이 조카라는 것을 알았을 텐데요!” 윤 서기관이 의아해했다.
“그는 예상치 못한 기습을 당한 것이다. 송 도령은 박 대감이 오르골을 연주하고 문이 잠기는 순간, 박 대감의 시선이 오르골에 집중된 틈을 타 공격했을 것이다. 이 시계는 자정에서 멈춰 있지만, 이것은 범인이 의도적으로 조작한 것이다. 실제 살해 시각은 밤 열 시 직후였을 테지. 태엽이 다 풀린 시계는 범인이 현장을 교란하기 위해 남긴 가짜 단서다.”
“소름 끼치는군요….” 참봉이 중얼거렸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범인은 천장 환기창을 통해 탈출하면서, 손이나 옷자락이 환기창 틀에 닿았을 것이다. 아까 내가 발견한 희미한 기름때 자국은 바로 범인의 손자국이다. 환기창 내부의 기계 장치에서 묻어난 특유의 기름 냄새도 감지되었다. 송 도령은 이곳에서 오랫동안 잡일을 도맡아 했으니, 이러한 기름때의 냄새에는 무감각했을 것이다.”
설지호는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덧붙였다.
“박 대감은 자신의 천재성이 만들어낸 장치들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그 천재성이 남긴 흔적들에 의해 범인이 밝혀지는 비극을 맞이했군.”
윤 서기관은 설지호의 설명을 들으며 송 도령의 섬뜩한 계획에 몸서리쳤다. 완벽하다고 믿었던 밀실은 결국 살인자의 교활함과 피해자의 치밀함이 뒤섞여 만들어진 끔찍한 함정이었던 것이다.
“송 도령을 다시 불러들이시오.” 설지호는 싸늘하게 지시했다.
송 도령은 다시 연구실로 끌려왔다. 그는 여전히 억울한 표정이었다.
“설 자문관님, 제가 뭘 잘못했습니까? 저는 정말….”
“송 도령, 어젯밤 열 시, 이 오르골은 어떤 멜로디를 연주했는가?” 설지호는 송 도령을 똑바로 응시했다.
송 도령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그는 오르골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오르골은 침묵하고 있었다.
“그 멜로디는 이 문을 잠그는 소리였지. 박 대감은 그 멜로디가 끝나기 전에 자네에게 칼에 찔렸을 것이다. 그리고 자네는 그 멜로디가 끝난 후, 이 연구실이 완벽한 밀실이 되자마자, 박 대감의 ‘긴급 탈출용 보조 장치’를 이용해 천장의 환기창으로 탈출했다. 맞나?”
송 도령의 동공이 흔들렸다. 그의 얼굴은 이제 공포로 일그러져 있었다. 그는 설지호의 날카로운 추리 앞에서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 그의 입술이 파르르 떨리더니, 결국 고개를 떨구었다.
“아, 아닙니다… 저는… 저는 그저….”
“말해 보시오. 자네가 어떻게 그 모든 것을 알았는지. 자네는 왜 그날 밤, 대감마님의 중요한 실험을 지켜보고 있었던 것인지.”
송 도령은 바닥에 주저앉아 흐느끼기 시작했다. 빗소리가 더욱 거세지는 가운데, 대조선 최고의 발명가가 고독하게 죽음을 맞이한 밀실의 진실이 마침내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인간의 탐욕은 아무리 정교한 기계 장치로도 막을 수 없는, 이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밀실을 만들어내는 법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