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 짙게 깔린 지하 동굴, 습한 공기 속에서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촛불조차 제대로 켜지지 않은 으스스한 공간에서, 거대한 석상처럼 웅크리고 앉아 있던 마혈교의 교주, 마군(魔君)이 마침내 무릎을 꿇었다. 그의 주변을 둘러싼 여덟 개의 거대한 석주는 이미 검기로 인해 산산조각 나 있었다.
운현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비틀거렸다. 전신은 물론이요, 정신까지 한 톨의 기력도 남지 않은 듯 피로에 절어 있었다. 손에 든 검은 끓어오르는 용광로에서 방금 꺼낸 쇠처럼 뜨겁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의 옆에는 절친한 벗이자, 청운문에서 함께 수련한 유일한 지기(知己)인 태진이 서 있었다. 태진 역시 옷이 찢기고 몸 곳곳에 상처가 가득했지만, 그의 눈빛은 여전히 형형하게 빛났다.
“해냈다, 태진아. 우리가 마침내 이 자를 꺾었어!”
운현은 들뜬 목소리로 외쳤다. 수년간 무림을 공포에 떨게 했던 마혈교를 와해시키고, 그 수괴인 마군을 제압하는 것은 청운문 개파 이래 가장 큰 공적이었다. 이제 그들은 문파의 영웅이 되어 돌아갈 것이었다. 운현은 피 묻은 손으로 태진의 어깨를 붙잡았다. 태진은 엷은 미소를 지으며 운현의 손을 마주 잡았다.
“그래, 운현아. 우리가 해냈지.”
태진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차분했지만, 운현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극심한 전투 후에 오는 나른함과 흥분이 뒤섞인 감정 때문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의 눈에는 이미 청운문의 장로들이 자신들을 맞이하며 환호하는 모습이 그려지는 듯했다.
그 순간, 운현의 등 뒤에서 섬뜩한 한기가 뿜어져 나왔다. 동시에, 섬광처럼 터져 나온 날카로운 기운이 그의 심장을 향해 맹렬히 파고들었다.
“크윽!”
운현은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뱉었다. 순간적으로 온몸의 근육이 뒤틀리고, 시야가 뿌옇게 흐려졌다. 대체 무슨… 일인가? 그는 겨우 고개를 돌려 등 뒤를 바라보았다. 검은 그림자 속에서 자신을 찌른 존재가 누구인지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너무나도 익숙하고 믿음직스러운 얼굴이었다.
태진.
날카롭게 빛나는 검날은 정확히 운현의 심장을 관통하고 있었다. 검 끝에서 흘러나온 선홍색 피가 뚝뚝 떨어져 차가운 바닥에 스며들었다. 운현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넋이 나간 표정으로 태진을 바라보았다.
“태… 진아…?”
핏기가 가신 그의 입술에서 겨우 흘러나온 소리였다. 심장을 꿰뚫는 고통보다 더 큰 배신의 충격이 온몸을 마비시키는 듯했다. 태진은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운현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그의 눈빛은 차갑게 얼어붙어 있었고, 그 안에는 일말의 동정심조차 없었다.
“미안하다, 운현아.”
태진의 목소리는 나직했지만, 그의 말은 운현의 고막을 찢고 영혼에 비수처럼 박혔다.
“너의 재능은 너무 눈부셨지. 내 그림자를 가릴 만큼.”
운현의 눈에 절망이 물들었다. 어째서? 우리가 함께 싸워왔던 세월은 무엇이었단 말인가? 어릴 적부터 동고동락하며, 서로의 등을 지켜주었던 그 수많은 맹세와 약속들은 모두 거짓이었단 말인가?
심장을 꿰뚫은 검날이 회전하며 그의 내부를 더욱 깊이 파고들었다. 극심한 고통에 운현의 무릎이 꺾였다. 그가 휘청거리며 쓰러지려는 순간, 태진은 잔인하리만큼 빠르게 검을 빼냈다. 피가 울컥 솟구치며 그의 입에서 붉은 피가 터져 나왔다.
“너는… 나의… 친구였다…!”
운현은 마지막 남은 힘을 쥐어짜내며 소리쳤다. 하지만 태진은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내려다볼 뿐이었다.
“친구? 그래, 한때는.” 태진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걸렸다. “하지만 무림은 강자만이 살아남는 곳. 그리고 너는… 너무 순수했어. 나약했고.”
태진은 운현이 비틀거리는 몸을 가누지 못하고 쓰러지자, 그의 발치에 굴러떨어진 마군의 칠흑 같은 검을 집어 들었다. 마군의 검은 그의 손에 들리자마자 뿜어내던 사악한 기운을 감추는 듯했다.
“이것으로 나는 청운문의 영웅이 될 것이다. 모두가 나를 우러러보고, 이 무림의 정점에 서게 되겠지.”
태진은 쓰러져 신음하는 운현을 내려다보며 읊조렸다. 그의 눈에는 이미 승자와 정복자의 오만함이 가득했다. 운현은 차가운 바닥에 쓰러진 채, 태진의 등 뒤로 보이는 마군의 희미한 미소를 보았다. 이미 제압당했다고 생각했던 마군이 그의 시선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운현은 깨달았다. 이 모든 것이… 태진과 마군의 계략이었음을.
마지막 기력이 스러지는 순간, 운현은 온몸을 꿰뚫는듯한 배신감과 함께 극심한 분노를 느꼈다. 심장이 타들어 가는 듯한 고통 속에서, 그의 의식은 점점 희미해져 갔다.
태진이 천천히 발을 들어 운현의 옆구리를 강하게 걷어찼다. 뼈가 부서지는 듯한 고통과 함께 운현의 몸이 옆으로 굴러떨어졌다. 그는 더 이상 저항할 힘이 없었다. 시야는 암전되고, 세상의 모든 소리가 아득하게 멀어지는 듯했다.
“이 어두운 동굴 속에서, 마군의 시체와 함께 썩어갈 네놈의 시체를 누가 찾아낼까. 아무도 너를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영원히.”
태진의 차갑고 잔혹한 목소리가 운현의 귓가에 마지막으로 울렸다.
어둠… 끝없는 어둠 속으로 가라앉는 운현의 뇌리에는 단 하나의 생각만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살아남아… 복수하리라.*
비록 몸은 피로 물들고 영혼은 찢어졌을지라도, 그의 마지막 의지는 절대로 꺾이지 않았다.
차가운 대지 위, 숨이 멎어가는 운현의 핏기 없는 얼굴 위로, 동굴 천장에서 떨어진 한 방울의 물이 마치 눈물처럼 흘러내렸다. 모든 것이 끝난 듯 보였다. 그러나 이 비극적인 결말은, 또 다른 시작을 예고하는 잔혹한 서막에 불과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