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 끓는 분노와 함께 심장이 미친 듯이 쿵쾅거렸다. 바닥에 처박힌 몸뚱이는 차가운 돌바닥의 냉기를 고스란히 흡수하며 서서히 식어갔다. 축축한 동굴의 공기는 곰팡이와 썩은 고기 냄새로 가득했고, 어둠은 마치 살아있는 존재처럼 나를 집어삼키려 들었다. 왼쪽 어깨는 뼈가 으스러진 듯한 고통에 끊임없이 비명을 질렀고, 옆구리의 깊은 상처에서는 끈적한 피가 쉼 없이 흘러내려 이미 바닥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하아… 하아…”
거친 숨소리가 동굴 벽에 부딪혀 메아리쳤다. 눈을 감았다. 감은 눈꺼풀 안에는 지옥보다 더 선명한 장면이 떠올랐다.
* * *
“강민아! 어서 와! 여기 몬스터 코어가 드랍됐어!”
두 손을 흔들며 나를 부르는 지훈의 얼굴은 언제나처럼 해맑았다. 아니, 정확히는 ‘그때까지’는 해맑았다. 우리는 열여덟 살부터 함께 던전을 탐험하며 생사고락을 함께한 동료였다. 아니, 동료 이상이었다. 가족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수많은 던전을 함께 헤치며 우리는 서로의 등을 맡겼고, 위기의 순간마다 서로를 구해냈다. 지훈이 내 생명의 은인이었던 적도 여러 번,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런 우리가, 핏줄보다 진하다 믿었던 우리가…
“강민아, 미안하다.”
갑작스럽게 등 뒤에서 느껴진 강한 충격. 균형을 잃고 비틀거리는 몸은 그대로 낭떠러지로 굴러떨어졌다. 마지막으로 본 지훈의 얼굴은 경악으로 물든 내 얼굴과는 너무나도 다른, 일말의 미안함과 섬뜩한 결의로 가득 찬 표정이었다. 절벽 아래로 추락하는 동안, 나는 겨우 시야에 잡힌 지훈의 동료들을 보았다. 나를 제외한 우리 파티의 모든 팀원들. 그들은 모두 싸늘한 눈빛으로, 마치 내가 떨어지기를 기다린 듯한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순간 깨달았다. 이건 단순한 사고가 아니었다. 완벽하게 계획된, 철저한 배신이었다.
“지훈… 너…!”
절규는 아래로 추락하는 바람 소리에 묻혀 사라졌다.
* * *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폐부를 찢는 듯한 고통과 함께 끓어오르는 분노. 지훈, 그리고 그 비열한 동료들의 얼굴이 잔상처럼 아른거렸다.
내가 대체 뭘 잘못했지?
왜… 왜 나를 버린 거지?
수없이 질문을 던져보았지만 답은 없었다. 그저 차가운 배신감만이 내 몸의 온기를 앗아갈 뿐이었다. 고통에 신음하며 억지로 고개를 돌리자, 저 멀리 어둠 속에서 빛나는 두 개의 붉은 눈이 보였다. 동굴 깊숙한 곳에 서식하는 괴물, ‘심연의 포식자’였다. 녀석의 으르렁거리는 소리는 동굴 전체를 진동시켰고, 축축한 바닥을 기어오는 녀석의 육중한 발소리는 나의 마지막 남은 희망마저 짓밟는 듯했다.
여기서 죽는 건가.
이렇게… 허망하게…
온몸의 힘이 스르르 풀리는 것 같았다. 복수? 개뿔. 지훈의 얼굴을 다시 보는 일도, 그 비열한 동료들에게 내가 살아있음을 알리는 일도 불가능할 터였다. 나는 그저 배신당하고 버려진, 던전 속의 하찮은 먹잇감일 뿐이었다.
죽음이 목전이었다. 시야가 흐려지고, 귓가에는 심연의 포식자의 거친 숨소리가 점점 더 크게 들려왔다. 차가운 혀가 내 발을 핥는 듯한 섬뜩한 감각이 들었다. 끝이었다.
그때였다.
내 안에서, 심장의 가장 깊은 곳에서, 뭔가 뜨겁고 거대한 것이 솟구쳐 올랐다.
<경고! 생명 유지 시스템 치명적 손상!>
<사용자 ‘강민’의 각성 조건 충족. ‘멸망의 권능’이 발현됩니다.>
<새로운 스킬 ‘고통 흡수’를 획득했습니다.>
<새로운 스킬 ‘절대 회복(초급)’을 획득했습니다.>
<…>
<‘멸망의 권능’ 시스템이 활성화됩니다.>
눈앞에 홀로그램 창이 번개처럼 스쳐 지나갔다. 내가 알던 그 어떤 던전 시스템과도 다른, 기이하고 섬뜩한 메시지였다. 고통에 일그러졌던 얼굴에 서서히 의문이 떠올랐다. 멸망의 권능? 이게 대체…
내 몸을 덮치려던 심연의 포식자가 순간 움찔하더니, 기이한 비명을 내지르며 뒷걸음질 쳤다. 녀석의 붉은 눈동자에 공포가 가득했다. 나를 노려보던 거대한 괴물이 왜 갑자기 겁을 먹은 거지?
“크윽…!”
옆구리의 상처가 다시 한번 욱신거렸지만, 이전만큼 고통스럽지 않았다. 아니, 고통이 오히려 희미하게 느껴지는 기이한 감각이었다. 마치 누군가 내 고통을 대신 흡수하고 있는 것처럼.
손을 들어 올렸다. 피로 얼룩진 손바닥 안에서, 검고 붉은 기운이 스멀스멀 피어나는 것을 보았다. 단순한 마나나 오라가 아니었다. 그것은 마치 살아있는 증오와 분노가 응집된 듯한, 불길하고도 강력한 힘이었다.
심연의 포식자가 이제는 완전히 공포에 질린 채, 동굴 안쪽으로 도망치려 발버둥 쳤다.
그 순간, 내 입에서 나직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어딜 도망가.”
방금까지 죽어가던 자의 목소리라고는 믿기지 않는, 싸늘하고도 단호한 음성이었다.
왼쪽 어깨의 으스러진 뼈는 여전히 고통스러웠지만, 그 고통은 마치 먼 옛날의 일처럼 아득하게 느껴졌다. 오히려 그 고통은 내 안에 끓어오르는 분노를 더욱 선명하게 만들었다.
고통을 흡수한다… 회복… 멸망의 권능…
이것이 나에게 주어진 새로운 힘이라면.
이것이 내가 죽음의 문턱에서 부여받은 기회라면.
나는 느릿하게 몸을 일으켰다. 갈가리 찢긴 옷과 피로 범벅된 몸은 여전히 끔찍했지만, 내 눈빛은 더 이상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삶에 대한, 그리고 복수에 대한 맹렬한 집념으로 활활 타올랐다.
“지훈…”
낮게 읊조린 그 이름은 더 이상 한때 믿었던 친구의 이름이 아니었다. 그것은 내 복수의 대상이자, 내가 기필코 박살 낼 증오의 이름이었다.
“내가… 살아 돌아갈 거다.”
차가운 동굴 속에서, 핏빛 섬광이 번뜩였다. 심연의 포식자를 향해 천천히 발을 내디뎠다.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온 자의 첫걸음이었다. 그 걸음은 지옥으로 향하는 첫걸음이자, 배신자들에게 멸망을 선사할 복수의 서막이었다.
“그리고 너희 모두를… 산 채로 지옥에 처넣어 주지.”
내 입꼬리가 섬뜩하게 올라갔다. 피에 젖은 미소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