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프론트의 하늘은 언제나 그렇듯 인공 오로라로 수놓여 있었다. 황홀한 빛깔들이 거대한 빌딩 숲 위를 유영했지만, 그 아름다움 아래에서는 언제나 차가운 그림자가 꿈틀거렸다. 특히 오늘 밤은 더욱 그러했다.
“강태산 씨, 서둘러 주십시오. 상황이… 난감합니다.”
경감 정수아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그 안에는 억누르지 못하는 초조함이 배어 있었다. 태산은 가늘게 뜬 눈으로 고층 빌딩 꼭대기를 응시했다. 수천 개의 창문 중, 유독 한 곳만 번개에 맞은 듯 섬뜩한 빛을 내뿜는 것 같았다. 그의 옆에 선 아담한 체구의 메카, ‘실버 레이븐’이 작게 윙 소리를 내며 대기했다. 태산의 전용 분석 메카였다.
“난감하다는 건, 범인의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는 뜻이겠죠, 정 경감?”
태산은 미소를 지었지만, 그의 눈빛은 맹수처럼 예리했다. 정수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렇습니다. 피해자는 한유진 박사. 세계적인 메카 설계자로, 그의 펜트하우스는 최첨단 보안 시스템으로 무장되어 있었습니다. 문과 창문은 모두 잠겨 있었고, 외부 침입 흔적은 전혀 없습니다. 내부에서도 어떤 교전의 흔적도 없고요.”
“밀실 살인이라… 흥미롭군요.”
태산은 여유롭게 터벅터벅 걸어 전용 에어카에 올랐다. 실버 레이븐은 그의 어깨 위에 가볍게 내려앉았다. 에어카가 부드럽게 이륙하며 밤하늘을 갈랐다.
“시신은 어떻게 발견되었습니까?”
“새벽 3시, 박사의 비서가 정기 보고를 위해 연락을 시도했으나 받지 않아 비상 키로 문을 열고 들어갔습니다. 박사는 거실 한가운데 쓰러져 있었고, 사인은 심장마비로 추정됩니다. 하지만 부검 결과, 심장 주변에 미세한 전기 충격 흔적이 발견되었습니다. 외부에서 가해진 흔적입니다.”
“내부에서 잠긴 밀실에서, 외부에서 가해진 전기 충격. 완벽하군요.”
태산의 입가에 흥미로운 미소가 걸렸다.
펜트하우스에 도착하자, 첨단 장비로 무장한 수사관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얼굴에는 막막함이 역력했다. 태산은 그들을 스쳐 지나갔다. 깔끔하게 정돈된 거실, 고급스러운 인테리어,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 놓인 시신의 실루엣. 과학수사팀이 이미 시신을 수습해 간 뒤였다.
“강태산 씨, 이쪽입니다.”
정수아가 안내한 곳은 박사의 개인 연구실이었다. 벽면에는 수많은 설계도와 홀로그램 자료가 떠 있었고, 중앙에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듯한 거대한 메카의 골격이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연구실 역시 완벽하게 잠겨 있었다고 했다.
태산은 아무 말 없이 실버 레이븐을 지시했다. 실버 레이븐은 곧장 공중으로 떠올라, 레이저 스캐너를 가동하며 연구실 내부를 정밀하게 분석하기 시작했다. 태산은 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천천히 방을 둘러보았다. 그의 시선은 모든 것을 훑었지만, 아무것도 놓치지 않았다.
“보안 시스템은요? 혹시 해킹 흔적은 없었습니까?” 태산이 물었다.
“완벽합니다. 외부에서의 침입은 물론, 내부 시스템 교란도 없었습니다. 박사가 직접 설계한 인공지능 보안 시스템은 뚫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다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불가능이라… 세상에 불가능한 일은 없죠. 단지 우리가 방법을 모를 뿐.”
태산은 천장에 설치된 환기구를 올려다보았다. “저 환기구는 어떻습니까?”
“아, 저건… 아주 작은 구멍입니다. 성인 남성은 물론, 어린아이도 통과할 수 없습니다. 게다가 필터 시스템도 완벽하게 작동하고 있었고요.”
태산은 피식 웃었다. 실버 레이븐이 분석을 마치고 그의 어깨로 돌아왔다. 작은 메카의 눈이 푸른빛을 뿜어냈다. 태산은 실버 레이븐이 수집한 데이터를 홀로그램 스크린으로 띄웠다.
“자, 그럼 이제 진실을 파헤쳐볼까요?”
그는 스크린을 손가락으로 넘기며 말했다.
“한유진 박사는 ‘팬텀 기술’의 선구자였습니다. 극미세 입자를 제어하여 실체 없는 형상을 만들고, 심지어는 물리적인 간섭까지 가능하게 하는 혁신적인 기술이었죠. 초기 단계에서는 홀로그램에 국한되었지만, 최근에는… ‘초소형 유기 메카’ 개발에 주력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정수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건 저희도 알고 있습니다. 박사의 주력 연구 분야였습니다.”
“바로 그겁니다. 박사는 자신의 기술에 의해 살해당한 겁니다.”
“말도 안 돼요! 박사의 연구는 아직 상용화 단계가 아니었습니다!”
“상용화 단계가 아니었을 뿐, 완성 단계는 충분히 가능했습니다. 이 데이터를 보세요.” 태산은 스크린의 한 부분을 확대했다. “환기구 필터에서 미세하게 검출된 ‘유기 나노섬유’ 잔해입니다. 아주 미미해서 육안으로는 물론, 일반적인 분석 장비로도 놓치기 쉽죠. 박사의 팬텀 기술에 기반한 초소형 메카의 잔해입니다.”
“초소형 메카요? 설마… 그게 환기구를 통해 들어왔다는 말씀이신가요?”
“정확합니다. 이 메카는 육안으로 식별이 불가능할 정도로 작았을 겁니다. 아마도 먼지나 공기 중의 부유물처럼 보였겠죠. 환기구를 통해 침입하여, 박사에게 접근한 뒤, 심장에 정확히 전기 충격을 가한 겁니다. 그리고는 다시 환기구를 통해 빠져나갔겠죠. 마치 유령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누가 그런 메카를 조종했단 말입니까? 그리고 왜?”
“누가 조종했는지는 이 흔적이 알려줍니다.” 태산은 스크린의 다른 부분을 가리켰다. “박사의 개인 단말기에서 발견된 미세한 주파수 교란 기록입니다. 일회성이지만, 강력한 출력으로 특정 대역을 스캔한 흔적이죠. 특정 메카를 원격으로 제어하기 위한 주파수 송신 기록과 일치합니다. 그리고 그 주파수 송신원은… 바로 이 건물 아래층에 위치한 ‘넥서스 메카닉스’의 연구실입니다.”
정수아의 눈이 커졌다. 넥서스 메카닉스는 한유진 박사와 한때 협력 관계였지만, 최근에는 특허 분쟁으로 법정 다툼을 벌이고 있던 경쟁사였다. 특히, 넥서스 메카닉스의 수석 연구원인 최원영은 박사의 수제자였지만, 갈등으로 인해 결별한 사이였다.
“최원영… 박사의 옛 수제자 말입니까?”
“네. 아마도 최원영은 박사의 팬텀 기술을 훔치려 했거나, 혹은 박사가 자신을 배신했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그리고 박사가 개발 중이던 초소형 메카의 설계도를 입수하여, 그것을 살인 무기로 개조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는 박사의 기술을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이었을 테니까요.”
태산은 차갑게 덧붙였다. “밀실 살인은 완벽한 알리바이를 만듭니다. 외부 침입이 불가능하다면, 범인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보이니까요. 하지만 그의 메카는 외부에서 침입한 것이 아니라, *내부*에서 발생한 살인으로 위장한 외부 침입입니다.”
그때였다. 연구실 문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열리더니, 최원영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나타났다. 그의 얼굴에는 당혹감과 분노가 뒤섞여 있었다. 그는 태산의 홀로그램 스크린을 보고 있었다.
“이… 이건 말도 안 돼! 감히 날 의심하는 거야?!”
최원영의 손이 허리춤으로 향했다. 순간, 그의 손에서 작은 무언가가 튀어나와 빛을 발하려 했다. 경감 정수아가 재빨리 반응하여 최원영에게 몸을 날렸다.
“움직이지 마십시오! 최원영 씨!”
최원영은 격렬하게 저항했지만, 정수아의 노련한 제압술에 이내 바닥에 쓰러졌다. 그의 손에서 떨어져 나온 것은 손바닥만 한 크기의 소형 드론이었다. 태산은 실버 레이븐에게 드론을 스캔하도록 지시했다.
“흥미롭군요. 이 소형 드론은 강력한 전자기파 방출이 가능합니다. 아마도 증거 인멸을 시도하려 했거나, 아니면… 또 다른 메카를 원격으로 파괴하려 했던 것 같군요.”
태산은 최원영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당신이 설계한 초소형 메카는 박사의 심장을 파괴했지만, 동시에 박사의 연구실에 미세한 흔적을 남겼습니다. 당신의 완벽한 밀실 살인은, 당신의 오만함과 어설픈 뒷정리 때문에 들통난 겁니다.”
최원영은 바닥에 엎드린 채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크윽… 한유진 그 자식… 내 기술을 훔치고도 뻔뻔하게… 죽어 마땅해…!”
태산은 냉정하게 말했다. “그의 죽음은 당신의 절망을 이해할지언정, 당신의 죄를 용서하지 않습니다. 법은 그렇게 작동하지 않으니까요.”
정수아가 최원영을 체포하기 위해 수갑을 채웠다. 그녀는 태산을 바라보며 존경이 담긴 눈빛을 보냈다.
“강태산 씨, 정말… 대단하십니다. 어떻게 그런 상상도 못 할 방법을…”
“인간의 상상력은 무궁무진하지만, 범죄자의 상상력은 언제나 특정한 패턴을 따르죠. 완벽한 범죄를 꿈꾸지만, 결국 자신의 흔적을 남기게 됩니다. 특히 메카는 더 그렇죠.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흔적조차 남기지 않는 건 아니니까요.”
태산은 창밖의 인공 오로라를 다시 바라보았다. 밤하늘을 수놓은 빛깔은 여전히 아름다웠지만, 그 아래의 도시는 결코 평화롭지 않았다. 그는 다음 미스터리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음을 직감했다. 그리고 실버 레이븐은 그의 어깨 위에서 조용히 다음 지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도시의 그림자는 언제나 그의 예리한 눈빛과 마주해야만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