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힐링 애니메이션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 1. 새벽달의 그림자

최지은의 하루는 언제나 새벽의 고요와 함께 시작되었다. 해가 뜨기 전, 세상이 아직 단잠에 빠져 있을 때, 그녀의 작은 베이커리 ‘새벽달’에서는 이미 따뜻한 온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밀가루 반죽을 치대는 규칙적인 소리, 오븐 속에서 빵이 부풀어 오르는 달콤한 향기, 그리고 갓 내린 커피의 그윽한 쌉쌀함이 어우러져 가게 안을 가득 채웠다. 지은은 이 모든 순간을 사랑했다.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를 다루듯 조심스럽게 재료들을 섞고, 모양을 빚고, 뜨거운 오븐에 넣어 황금빛으로 구워내는 과정은 그녀에게 단순한 노동이 아니었다. 그것은 치유였고, 행복이었다.

창밖은 아직 어두웠지만, 가게 안은 지은의 손길이 닿은 작은 조명들 덕분에 아늑하게 빛났다. 손수 뜨개질한 컵받침, 직접 그린 수채화 액자, 그리고 동네 아이들이 보내온 서툰 그림들이 벽면을 장식하고 있었다. 이곳은 단순히 빵을 파는 곳이 아니었다. 지은의 온 마음이 담긴 작은 우주였다.

“후우… 오늘도 잘 구워졌네.”

갓 나온 식빵의 노릇한 표면을 보며 지은은 작게 미소 지었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식빵을 한 김 식혀 조심스럽게 썰자, 부드러운 속살이 드러났다. 이 식빵 하나로도 많은 이들이 아침을 행복하게 시작하리라. 그런 생각만으로도 지은은 마음이 벅차올랐다.

오전 7시, 문을 열자마자 첫 손님들이 찾아왔다. 매일 아침 출근길에 들러 모닝 빵과 커피를 사 가는 회사원, 아이들 간식으로 마들렌을 찾는 젊은 엄마, 그리고 가끔은 새벽달의 풍경을 스케치하러 오는 나이 지긋한 화가 아저씨까지. 그들은 지은의 일상에 잔잔한 기쁨을 더하는 소중한 존재들이었다.

“지은 씨, 오늘도 빵 냄새가 예술이네요! 아침부터 기분 좋아져요.”

화가 아저씨가 따뜻한 라떼를 받아 들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지은도 환하게 웃었다.

“감사합니다, 아저씨. 오늘은 그림 잘 그려지시겠네요.”

그렇게 소박하지만 충만한 시간들이 흐르고, 정오가 가까워질 무렵이면 늘 그가 찾아왔다. 강서준. 지은의 가장 오래된 친구이자, ‘새벽달’의 든든한 조력자. 고등학교 시절부터 함께 꿈을 키워왔고, 지은이 ‘새벽달’을 열었을 때 가장 열렬히 응원해주었던 사람이었다. 그는 지은의 곁에서 항상 빛이 되어주었다.

“지은아! 오늘도 대박이네, 대박!”

서준은 늘 그렇듯 활기찬 목소리로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섰다. 그의 등장에 가게 안은 한층 더 생기가 돌았다. 잘생긴 얼굴에 시원시원한 성격까지, 서준은 단골손님들에게도 인기가 많았다. 그는 마치 ‘새벽달’의 마스코트 같았다.

“너 없었으면 이 정도도 못했지.”

지은은 그의 말에 싱긋 웃으며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대꾸했다. 실제로 서준은 ‘새벽달’의 마케팅과 운영 전반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녀가 빵 굽는 일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복잡한 서류 작업이나 홍보 아이디어는 모두 서준의 몫이었다.

“야, 무슨 소리야. 다 네 손맛 덕분이지. 난 옆에서 거드는 것뿐이야. 그나저나 저번에 말했던 신메뉴 ‘밤 식빵’ 반응 어때? 벌써 다 나갔어?”

서준은 진열대에 놓인 빵들을 훑어보며 말했다. 그가 제안했던 ‘밤 식빵’은 출시되자마자 불티나게 팔렸다. 그의 사업적인 감각은 언제나 지은을 놀라게 했다.

“응, 벌써 두 번째 구웠는데 그것도 거의 다 나갔어. 네 덕분에 손님이 더 늘었어.”

“그럼 됐어! 어때, 기분 좋지? 우리가 꿈꿨던 ‘새벽달’이 이렇게 잘 되는 거 보면 진짜 뿌듯하다.”

서준은 어깨를 으쓱하며 활짝 웃었다. 그의 웃음은 언제나처럼 티 없이 맑았다. 지은은 그런 서준을 보며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서준이 없었으면 지금의 새벽달도 없었을 거야. 넌 정말 내게 주어진 가장 큰 행운이야.’*

그날 오후, 서준은 중요한 이야기를 꺼냈다.

“지은아, 우리 이제 ‘새벽달’을 더 키워야 할 때인 것 같아.”

“더 키운다니? 지금도 충분히 바쁜데?”

“아니, 지금 이 인기에 안주하면 안 돼. 내가 알아본 투자자가 있어. 이 정도 성장세면 투자 유치하는 거 어렵지 않아. 우리 베이커리를 프랜차이즈로 만들 수 있는 기회가 온 거야!”

서준의 눈은 뜨거운 열정으로 빛나고 있었다. 지은은 조금 망설였다. 지금의 ‘새벽달’은 작지만 아늑하고, 그녀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었다. 규모가 커진다는 것은 그만큼 그녀의 손을 떠나는 부분도 많아진다는 의미였다.

“프랜차이즈라니… 너무 급작스러운 거 아니야? 나는 그냥 지금처럼 작지만 정성껏 빵 만드는 게 좋은데.”

“지은아, 언제까지 그렇게 소박하게만 살 거야? 네 빵은 이 작은 가게에만 머무르기엔 아까워. 더 많은 사람들이 네 빵을 맛봐야 해! 그리고 내가 다 알아서 할게. 넌 지금처럼 빵 굽는 데만 집중하면 돼. 나머지 복잡한 건 내가 다 처리할게.”

서준은 언제나 그랬듯이 지은의 불안감을 해소시켜주었다. 그의 확신에 찬 목소리와 뜨거운 눈빛은 지은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는 늘 그녀에게 최고의 길을 제시해왔고, 한 번도 그녀를 실망시킨 적이 없었다. ‘새벽달’의 성공 뒤에는 항상 서준의 헌신적인 노력이 있었다.

“음… 그렇게까지 말하면… 알았어, 서준아. 네 말을 믿을게. 대신, 내가 만든 빵의 진심은 잃지 않았으면 좋겠어.”

“당연하지! 그게 바로 ‘새벽달’의 핵심인데! 걱정 마, 지은아. 내가 다 알아서 잘 해낼 거야. 우리가 함께 꿈꾸던 세상이 현실이 되는 걸 보게 될 거야.”

서준은 지은의 손을 덥석 잡고 활짝 웃었다. 그의 손은 따뜻했고, 그의 미소는 더없이 믿음직스러웠다. 그날 밤, 지은은 늦도록 잠 못 들었다. 새로운 도전에 대한 설렘과 막연한 불안감이 뒤섞였지만, 서준이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녀는 든든했다.

며칠 뒤, 서준은 ‘새벽달’의 확장을 위한 투자 유치 계약서라며 두툼한 서류뭉치를 가져왔다.

“이게… 다 뭐야?”

“이제 우리 ‘새벽달’이 새로운 도약을 하는 데 필요한 서류들이야. 법률팀에서 다 검토한 거니까 걱정 말고, 지은아. 여기랑 여기에만 사인하면 돼. 자, 이제 우리 꿈이 현실이 되는 거야!”

서준은 익숙한 듯 펜을 건넸다. 지은은 서류를 훑어보았지만, 법률 용어들로 가득한 내용은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너무나도 많은 글자들이 현란하게 얽혀 있었다. 하지만 서준이 옆에서 괜찮다고, 다 좋은 내용이라고 재차 설명해주었다. 그녀는 그를 전적으로 믿었다. 함께라면 어떤 어려움도 헤쳐나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녀는 서준이 가리키는 곳에 망설임 없이 자신의 이름을 적었다. 그 순간, 그녀의 삶은 180도 달라질 운명이었다는 것을 꿈에도 알지 못한 채.

그로부터 몇 주가 지났다. 서준은 투자 유치 건으로 바쁘다며 가게에 오는 횟수가 눈에 띄게 줄었다. 지은은 홀로 가게를 지키며 빵을 굽고, 서준의 소식을 기다렸다.

“요즘 서준 씨는 왜 안 와? 매일 왔었는데.” 단골손님들이 묻곤 했다.
“응, 중요한 프로젝트 때문에 좀 바쁜가 봐. 곧 좋은 소식으로 찾아올 거야.” 지은은 그렇게 대답했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묘한 불안감이 스며들었다.

어느 날, 지은은 서준의 사무실에 찾아갔다. 약속 없이 간 것이었지만, 그를 오랜만에 보고 싶었고, 진척 상황도 직접 듣고 싶었다. 그의 사무실은 굳게 잠겨 있었다. 몇 번 전화를 걸었지만, 서준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며칠째 연락이 닿지 않자 지은의 불안감은 점차 커져갔다.

결국 지은은 서준이 말했던 ‘투자자’라는 회사의 주소를 찾아갔다. 으리으리한 건물 로비에서 서준의 이름을 댔지만, 담당자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강서준 씨요? 음… 저희 회사에 그런 분은 없는데요.”

심장이 쿵 하고 떨어지는 것 같았다. 지은은 떨리는 손으로 휴대폰을 꺼내 서준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전히 받지 않았다. 그 순간, 로비에 설치된 대형 모니터에서 뉴스 영상이 흘러나왔다. 화려한 개업식 풍경과 함께 기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 “오늘, 강서준 대표는 ‘새벽별 베이커리’ 1호점 개업식에서 새로운 프랜차이즈 사업의 비전을 제시했습니다. 그만의 독창적인 레시피와 사업 수완으로 단숨에 베이커리 업계의 혜성처럼 떠오른 ‘새벽별 베이커리’는…”

카메라가 비춘 화면 속에는 활짝 웃으며 박수갈채를 받는 서준의 모습이 선명하게 보였다. 그의 옆에는 ‘새벽별 베이커리’라는 간판이 크게 걸려 있었다. 그리고 그 간판 아래에는 그녀가 정성껏 디자인했던 ‘새벽달’의 로고와 너무나도 흡사한 문양이 박혀 있었다. 심지어 배경에는 낯익은 빵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지은의 밤 식빵, 마들렌, 그리고 그녀만의 시그니처 메뉴인 ‘달빛 스콘’까지. 모든 것이 너무나도 똑같았다.

지은의 심장이 차갑게 얼어붙었다. 뇌가 사고를 멈춘 듯 멍해졌다. 눈앞의 현실을 믿을 수 없었다. 서준의 말, 그의 미소, 그의 따뜻한 손길이 모두 거짓이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그녀의 세상은 산산조각 났다. 그녀의 모든 열정, 꿈, 그리고 믿음이 한순간에 산산이 부서지는 소리가 그녀의 귓가를 강타했다.

로비의 시끄러운 소음 속에서, 지은은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오직 서준의 웃는 얼굴과 ‘새벽별 베이커리’라는 이름만이 그녀의 망막에 박혀 고통스럽게 아른거렸다. 그녀는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서, 차오르는 눈물을 겨우 삼켰다.

믿었던 친구에게 배신당한 후의 처절한 복수극. 그 비극의 서막이, 바로 그 순간 고요하고 아름다웠던 ‘새벽달’ 베이커리의 그림자 속에서, 잔혹하게 열리고 있었다. 지은의 가슴속에서는 이제 따뜻한 빵 냄새 대신, 차가운 복수의 칼날이 서서히 벼려지고 있었다. 그녀의 ‘새벽달’은, 이제 더 이상 이전의 ‘새벽달’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