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팀펑크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 증기 도시의 유령들: 01. 새벽 3시 17분

이재현은 고층 창밖으로 펼쳐진 새벽 도시의 전경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거대한 증기탑들이 내뿜는 희뿌연 연기가 차가운 새벽 공기와 뒤섞여 몽환적인 스모그를 만들어냈다. 그 사이로 촘촘히 박힌 기계식 가로등들이 오렌지빛으로 빛나며, 고풍스러운 황동색 외벽을 자랑하는 고층 빌딩들의 실루엣을 어슴푸레 비추고 있었다. 그의 아파트, ‘아르카나 타워’는 이 모든 기계 문명의 심장부 한가운데서 숨 쉬고 있었다.

재현은 한숨을 쉬며 작업실로 돌아섰다. 그의 작은 아파트 서재는 온갖 증기기관 부품들과 기묘한 발명품들로 가득했다. 책상 위에는 정교한 황동 기어들이 분해된 채 놓여 있었고, 벽면을 가득 채운 책장에는 고색창연한 기계 공학 서적들과 함께 직접 그린 설계도들이 너덜너덜하게 붙어 있었다. 예술가이자 발명가인 재현에게 이곳은 안식처이자 동시에 끝나지 않는 탐구의 공간이었다.

오늘도 그는 밤늦도록 설계도에 매달렸다. 어제부터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증기압으로 움직이는 자동 피아노의 음색 조절 장치가 계속해서 오작동을 일으켰다. 그는 기어이 피아노를 뜯어내 내부의 복잡한 증기 파이프와 밸브들을 들여다보았다. 아무리 봐도 문제는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반을 누르지 않았는데도 가끔씩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엉뚱한 음이 흘러나왔다.

“젠장, 대체 뭐가 문제야?”

재현은 중얼거리며 렌치를 내려놓았다. 뻣뻣해진 목을 주무르며 몸을 일으켰을 때였다.

‘철컥.’

아파트 현관문에서 희미한 소리가 들렸다. 재현은 고개를 갸웃했다. 새벽 3시가 넘은 시간, 누구도 올 리가 없었다. 그는 항상 현관문을 잠갔고, 혹시 모를 침입에 대비해 안쪽에는 이중 잠금장치까지 해두었다.

“누구 없어요?”

재현은 문 쪽을 향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거실의 커다란 기계식 시계추가 묵직하게 움직이는 소리만이 정적을 갈랐다.

재현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현관으로 향했다. 복도는 어두웠지만, 저 멀리 거실에서 새어 나오는 증기등의 은은한 불빛이 길을 안내했다. 문고리를 잡으려던 찰나, 그의 손이 허공에서 멈췄다. 잠겨 있어야 할 문고리가 어정쩡하게 반쯤 돌아가 있었다. 심지어 안쪽 이중 잠금장치마저 풀려 있었다.

등골이 오싹해지는 기분이었다. 재현은 순간적으로 숨을 멈췄다. 분명히, 잠그고 들어왔는데.

“누가 장난치는 건가?”

그는 애써 침착하려 노력하며 문고리를 단단히 돌려 잠갔다. 다시 이중 잠금장치까지 확인하고 나서야 겨우 안심할 수 있었다. 그저 오래된 아파트의 노후된 부품들이 말썽을 부린 것이라고, 스스로를 납득시켰다.

그러나 그날 밤, 기이한 일은 또다시 일어났다.

책상에 앉아 다시 설계도를 보던 재현은 문득 서늘한 기운을 느꼈다. 작업실 안의 모든 증기등이 일제히 약해지며 깜빡거렸다. 마치 누군가 전력 공급을 불안정하게 만드는 것처럼. 책장 위, 정교하게 만들어진 황동제 기계 비둘기 조각상의 작은 태엽이 ‘드르륵’ 소리를 내며 스스로 감기는 듯한 움직임을 보였다. 재현은 숨을 죽이고 비둘기를 주시했다. 곧이어 비둘기의 작은 날개가 천천히,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펼쳐졌다.

“젠장!”

재현은 저도 모르게 비명을 지르며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의 눈앞에서 날개를 펼친 비둘기는 마치 도망치려는 듯 파르르 떨고 있었다. 그러나 이내 태엽이 다 풀린 것처럼 힘없이 축 늘어졌다.

재현은 비둘기 조각상에 다가가 태엽 부분을 확인했다. 역시나, 태엽은 완전히 감겨 있었다. 이 조각상은 태엽을 직접 감아야만 날개가 펼쳐지는 방식이었다. 그는 어젯밤 분명히 풀어둔 채 잠들었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합리적인 설명을 찾으려 했지만, 도저히 불가능했다. 전력 공급의 문제? 태엽이 스스로 감길 리는 없었다.

그때였다. 거실에서 ‘쨍그랑’ 하는 소리가 들렸다. 재현은 황급히 작업실을 뛰쳐나왔다.

거실 중앙, 그가 아끼던 유리 돔 안에 전시되어 있던 정교한 증기 동력 오르골이 바닥에 산산조각 난 채 흩어져 있었다. 오르골을 받치고 있던 작은 받침대는 멀쩡한데, 오르골 본체만 마치 누군가 집어 던진 것처럼 박살 나 있었다.

재현은 굳어선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 있었다. 그의 뇌는 빠르게 상황을 분석하려 했지만, 모든 논리가 깨져버렸다.

바닥에 흩어진 오르골 파편들 사이에서, 가장 중심부에 있던 작은 태엽 부품 하나가 홀로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힘없이, 그리고 기묘하게. 마치 오르골 자체가 죽어가는 마지막 숨결을 내쉬는 것처럼.

창밖의 증기 도시가 여전히 무심한 듯 숨 쉬고 있었다. 거대한 기계 문명의 심장 소리가 멀리서부터 웅웅거렸다. 하지만 재현의 아파트 안에는, 그 소리마저 집어삼킬 듯한 차가운 공포가 가득했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어두운 복도 끝, 현관문이 아주 조금, 정말 미세하게 열려 있었다. 그 틈새로 마치 누군가 그를 지켜보는 듯한 서늘한 기운이 스며들어왔다.

재현은 깨달았다. 혼자가 아니었다. 이 기계 문명의 심장부, 그의 아파트에… 무언가 알 수 없는 존재가 깃들어 있었다.

그리고 그 존재는, 지금 막 그에게 말을 걸어온 참이었다. 그의 모든 합리를 산산조각 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