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선 ‘고요한 새벽호’는 자욱한 먼지 구름을 뚫고 젠타 행성의 상층 대기를 가르고 있었다. 수백 년간 어떤 지도에도 기록되지 않았던, 그래서 존재 자체가 신화로 치부되던 망각의 행성. 하지만 고요한 새벽호의 심층 스캐너는 그 신화의 심장부에서 기이한 에너지 반응을 잡아냈다. 행성 전체를 뒤덮은 거대한 고대 지하 유적의 흔적.
“착륙 준비, 하진.”
캡틴 세라의 목소리가 통신망을 통해 울렸다. 그녀의 손은 조종간을 단단히 쥐고 있었지만, 눈은 함교 전면 스크린에 펼쳐진 거친 대지 위 유적의 윤곽을 놓치지 않았다. 스캔 자료는 거대한 균열 아래로 끝없이 이어지는 인공 구조물을 보여주고 있었다.
“착륙 지점 확인. 대기 중 미세 독성 물질 감지. 호흡 장치 최대로 올리세요.”
기술 담당 하진은 마른침을 삼키며 보고했다. 그의 얼굴에는 오랜 탐사 경험에서 오는 침착함과 미지의 존재에 대한 흥분감이 묘하게 뒤섞여 있었다. 그는 키보드를 능숙하게 두드리며 착륙 모듈을 조작했다.
‘콰앙!’
모듈이 거친 착륙 충격과 함께 땅바닥에 처박혔다. 내부를 가득 채웠던 먼지가 한바탕 춤을 추고 가라앉자, 세라가 안전벨트를 풀었다.
“젠장, 하진. 이번 착륙은 좀 거칠군.”
보안 담당 건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투덜거렸다. 그는 자신의 거대한 펄스 라이플을 어깨에 메고 있었다. 땀으로 얼룩진 얼굴엔 늘 그랬듯 경계심이 가득했다.
“죄송합니다, 건. 예상치 못한 지각 변동이 감지돼서 말이죠.”
하진이 변명하듯 대꾸하며 출입구 레버를 당겼다. 육중한 문이 ‘쉬이익’ 소리와 함께 열리자, 바깥의 황량한 풍경이 그들을 맞았다. 붉은 흙먼지로 뒤덮인 지평선, 그리고 그 너머로 어렴풋이 보이는 거대한 그림자.
“스캔 결과와 동일합니다. 지하 유적의 입구는 저기, 거대 협곡의 북쪽면입니다. 접근해야 합니다.”
하진이 패드를 내밀었다. 지도에는 마치 거인이 칼로 짓누른 듯한 거대한 협곡이 표시되어 있었다. 그 깊이는 가늠조차 어려웠다.
세라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발걸음은 망설임 없이 협곡을 향했다. 건이 바싹 붙어 경계를 섰고, 하진은 각종 장비를 챙겨 그 뒤를 따랐다.
협곡의 가장자리에 다다르자, 스캐너가 포착했던 거대한 구조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자연적으로 생겼다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거대한 암벽 틈새로, 마치 거인의 눈처럼 거대한 아치형 문이 묻혀 있었다. 문은 굳게 닫혀 있었지만, 그 표면에는 희미하게 빛나는 알 수 없는 문양들이 새겨져 있었다.
“젠장, 이건 또 무슨 조화냐? 고대 문명의 유적치고는 너무… 위압적이잖아.”
건이 문양에 손을 댈 뻔하다가 흠칫 물러났다. 문양에서 뿜어져 나오는 미세한 전류가 그의 피부에 닿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이 문양… 제가 아는 어떤 문명 양식과도 일치하지 않습니다.”
하진이 들고 있던 패드를 확대하며 말했다. 그의 손가락이 문양 위를 스치자, 패드에 복잡한 에너지 파형이 떴다.
“에너지 반응… 아주 미약하지만, 내부에서 외부로 흐르고 있습니다. 흡사… 잠든 심장 박동 같습니다.”
“잠든 심장이라… 그럼 깨울 수도 있다는 건가?”
세라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 그녀는 건에게 주변 경계를 지시한 후, 하진과 함께 문양 앞에 섰다. 하진은 조심스럽게 자신의 휴대용 장비와 문양을 연결했다. 장비에서 푸른빛이 뿜어져 나와 문양 위를 스캔했다.
‘삐이이익-!’
날카로운 경고음이 터져 나왔다.
“오류 발생! 데이터 암호화 방식이 너무 복잡해서 해독이 불가능합니다! 이건 단순히 문명이 아니라… 이건…”
하진이 당황하며 장비를 움켜쥐었다. 그때였다. 문양 하나가 다른 문양보다 훨씬 밝게 빛나기 시작했다. 그 빛은 점차 번져나가며 문의 전체를 감쌌다. 거대한 문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우우우웅-!’
오랜 시간 침묵했던 거대한 기계 장치가 깨어나는 듯한 웅장한 소리가 협곡을 가득 채웠다. 문 사이의 미세한 틈에서 붉은빛이 새어 나왔고, 먼지와 돌멩이가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문이 열리고 있습니다, 캡틴!”
하진이 흥분과 경외심이 뒤섞인 목소리로 외쳤다.
거대한 문이 느릿하게, 그러나 멈추지 않고 양옆으로 갈라졌다. 그 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어둠은 단순히 빛이 없는 공간이 아니라,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한 압도적인 공포 그 자체였다. 문이 완전히 열리자, 그들의 눈앞에 펼쳐진 것은 예상했던 고대의 폐허가 아니었다.
어둠 속에는 거대한 나선형 통로가 끝없이 아래로 이어지고 있었다. 통로의 벽면에는 이해할 수 없는 기하학적인 문양들이 음산하게 빛나고 있었고, 그 중심에는 정체불명의 푸른빛 기둥이 하늘로 솟구쳐 있었다. 빛 기둥에서는 미세한 전류가 튀어 오르며 ‘지지직’ 소리를 냈다.
“젠장… 이건… 대체 뭐지?”
건이 넋을 잃고 중얼거렸다. 그의 얼굴은 어느새 창백해져 있었다. 펄스 라이플을 든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세라도 침묵했다. 그녀의 노련한 눈빛 속에도 경계와 놀라움이 뒤섞여 있었다. 그녀의 귀에는 빛 기둥에서 뿜어져 나오는 듯한 낮은 주파수의 웅웅거림이 들려왔다. 마치 거대한 존재가 어둠 속에서 숨 쉬는 듯한 소리였다.
“하진, 스캔 결과는?”
세라가 겨우 입을 열었다.
하진은 패드를 내려다보며 안색이 굳어졌다.
“에너지 파형이… 미쳤습니다. 지하 200킬로미터 아래까지 유기적인 구조물이 이어지고 있어요. 그리고… 그리고 저 빛 기둥은… 상상을 초월하는 에너지를 방출하고 있습니다. 마치… 행성 자체의 핵과 연결된 것 같습니다.”
그때였다. 나선형 통로 아래쪽에서 섬뜩한 소리가 들려왔다. 단순한 바람 소리가 아니었다. 금속이 긁히는 듯한, 아니면 거대한 동물이 포효하는 듯한 불길한 소리가 어둠을 가르고 울려 퍼졌다. 소리는 점점 더 커졌다. 마치 그들을 이곳으로 이끈 무언가가, 이제 깨어나고 있다는 듯이.
‘크르르르르릉… 콰아앙!’
소리가 최고조에 달하자, 나선형 통로 전체가 격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벽면에 새겨진 문양들이 격렬하게 깜빡였다. 바닥에서부터 강렬한 진동이 올라와 그들의 몸을 흔들었다.
“캡틴! 통로가 불안정합니다! 붕괴 직전이에요!”
하진이 다급하게 외쳤다. 그의 눈은 패드에 경고 메시지로 가득 찬 화면을 보고 있었다.
세라는 망설일 시간이 없었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건과 하진의 팔을 붙잡고 거친 통로 안으로 몸을 던졌다.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가면서, 그녀의 귓가에는 더욱 선명해진 기계음과 알 수 없는 포효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들의 등 뒤에서 거대한 문이 다시 닫히기 시작했다. 묵직한 바위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들리고, 먼지가 폭풍처럼 그들을 덮쳤다. 그들이 들어선 곳은 단순히 유적의 입구가 아니었다. 그것은 봉인된 미지의 존재가 깨어나는 심장부였으며, 이제 그들은 그 미궁의 깊은 곳으로 던져진 것이다.
**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