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픽 하이 판타지 라이트 노벨의 흥미진진한 챕터

영원의 첨탑, 수정 첨탑의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대현자의 서재는 평소 같으면 고요와 신비로움이 가득했을 공간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압도적인 침묵과 함께 섬뜩한 죽음의 기운이 맴돌고 있었다. 수정 첨탑의 수장, 카엘렌 대현자가 자신의 밀실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된 것이다.

류 시안은 첨탑의 가장 꼭대기 층에 다다랐을 때, 이미 긴장으로 굳어진 기사단장 발레리우스 경과 몇몇 근위병들을 마주했다. 류 시안의 검은색 실크 망토는 그의 가느다란 몸을 감싸고 있었고, 그의 눈은 이 고요한 아수라장 속에서도 흔들림 없는 푸른 빛을 발했다. 그의 걸음은 조용했지만, 그 존재감은 공기를 가를 듯 날카로웠다.

“탐정 류 시안입니다. 보고를 부탁드립니다, 발레리우스 경.”

류 시안의 목소리는 낮고 차분했지만, 그 속에는 얼음장 같은 냉철함이 배어 있었다. 발레리우스 경은 거친 숨을 고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표정은 경악과 혼란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류 탐정님.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상황은… 참담합니다. 카엘렌 대현자께서 서재 안에서 운명하셨습니다. 문제는… 밀실 살인이라는 점입니다.”

“밀실 살인이라.” 류 시안은 흥미롭다는 듯 눈을 가늘게 떴다. “이 수정 첨탑의 가장 높은 곳에서 말입니까?”

“예. 대현자의 서재는 ‘영원의 감옥’이라 불릴 정도로 강력한 마법으로 봉인되어 있었습니다. 문은 안쪽에서 잠겨 있었고, 창문은 고대 마법으로 단단히 봉쇄되어 외부에서는 결코 침입할 수 없습니다. 서재를 둘러싼 모든 마법적 방어막은 완벽하게 작동 중이었고, 단 하나의 균열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외부로부터의 침입은 물론, 내부에서의 탈출 또한 불가능한 구조였습니다. 경비병들은 밤새 서재 복도를 지켰으나 아무도 드나드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도… 대현자께서는 돌아가셨습니다.”

발레리우스 경은 말을 할수록 자신의 불가능한 상황에 대한 답답함을 토로하는 듯했다. 그는 팔짱을 끼고 서재의 굳게 닫힌 거대한 문을 노려보았다. 문에는 고대 룬 문자들이 섬뜩한 빛을 발하며 박혀 있었다.

“문은 어떻게 열었습니까?” 류 시안이 물었다.

“새벽녘, 시동생이 대현자님을 깨우러 갔다가 반응이 없어 비상 경보를 울렸습니다. 저희는 강제로 문을 열어야 했습니다. 대현자님께서 직접 설정하신 마법 봉인을 해제하는 데만 수 시간이 걸렸습니다.”

“강제로 열었군요. 시신은 손대지 않았겠죠?”

“천만에요. 류 탐정님의 지시대로 모든 것은 발견 당시 그대로 보존했습니다.”

류 시안은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들어가 보죠. 영원의 감옥이 어떻게 뚫렸는지, 제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겠습니다.”

그가 문 안으로 발을 들여놓자, 서늘한 공기가 뺨을 스쳤다. 서재는 카엘렌 대현자의 명성에 걸맞게 화려하고도 고풍스러웠다. 벽면 가득한 고서와 희귀한 마법 장치들, 천장에 매달린 별자리 투영구, 그리고 방 한가운데 놓인 거대한 연금술 탁자. 모든 것이 질서 정연했다. 단 한 가지, 그 모든 질서를 깨뜨리는 존재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카엘렌 대현자는 거대한 나무 책상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그의 머리카락은 백설처럼 희었고, 깊게 패인 주름은 오랜 지혜를 말해주듯 했다. 하지만 이제 그의 얼굴은 평화롭다기보다는 차갑고 창백한 죽음의 그림자에 덮여 있었다. 눈은 감겨 있었고, 손은 책상 위 필기도구를 움켜쥔 채 굳어 있었다.

“외상은 없나 보군요.” 류 시안은 시신에 다가가기 전, 먼저 방 전체를 훑어보았다. 그의 시선은 멈추는 곳 없이 빠르게 움직였다. 바닥의 먼지, 책상의 작은 흠집, 벽에 걸린 태피스트리의 미세한 올 하나까지 놓치지 않는 듯했다.

“예. 그 어떤 외상도 보이지 않습니다. 저명한 치유 마법사들이 검시했으나, 명확한 사인은 찾지 못했습니다. 독살의 징후도, 강력한 물리적 공격의 흔적도 없다고 합니다. 단지… 마치 생명력이 서서히 빨려나간 것처럼, 조용히 운명하신 것 같다고만 했습니다.” 발레리우스 경이 덧붙였다.

류 시안은 대답 없이 시신에 더 가까이 다가갔다. 그의 날카로운 시선은 대현자의 얼굴에서 손, 그리고 책상 위로 옮겨갔다. 대현자의 손가락은 굳게 쥐여 있었고, 그 사이에 끼워져 있던 깃펜은 이미 잉크가 말라붙어 있었다. 그 옆으로는 읽다 만 듯한 고서 한 권과 양피지 몇 장이 놓여 있었다.

류 시안은 허리를 숙여 대현자의 손을 조심스럽게 살펴보았다. 그리고는 그의 손가락이 쥐고 있던 깃펜을 천천히 빼내었다. 깃펜이 있던 자리, 책상 표면에는 아주 희미한 자국이 남아 있었다. 너무나 작고 미세하여 일반적인 눈으로는 결코 알아차릴 수 없는 흔적이었다. 그것은 어떤 문양 같기도 하고, 어떤 상형문자 같기도 했다. 흡사 작은 곤충이 기어가다 남긴 발자국처럼 불규칙했지만, 류 시안의 눈에는 명확한 의미가 보였다.

“이 자국… 혹시 발견하셨습니까, 발레리우스 경?” 류 시안이 나지막이 물었다.

발레리우스 경은 다가와 고개를 기울였지만,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한 듯 눈을 찌푸렸다. “죄송합니다, 류 탐정님.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대현자의 손가락이 쥐고 있던 깃펜 바로 밑에 새겨진 자국입니다. 아주 희미하죠. 마치 손톱으로 긁은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무언가를 살짝 눌렀다가 뗀 것 같기도 합니다.”

류 시안은 작은 확대경을 꺼내어 자국을 살펴보았다. 그의 눈빛이 더욱 깊어졌다.
“이것은… 이 세계의 문자가 아닙니다. 아니, 어쩌면 아주 오래전, 잊힌 시대의 언어 조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류 시안은 자리에서 일어나 방의 벽면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그는 책꽂이의 책들을 손끝으로 쓸어보고, 낡은 태피스트리를 들춰보며 벽면의 룬 문자들을 주의 깊게 살폈다. 그의 움직임은 마치 춤을 추듯 유연하고 조용했다. 발레리우스 경은 류 시안의 행동 하나하나를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의 범상치 않은 아우라에 압도되어 감히 묻지 못했다.

류 시안은 특히 방어 마법이 가장 강하게 걸려 있다는 문과 창문을 꼼꼼히 살폈다. 그는 손가락으로 문의 룬 문자를 훑었고, 창문의 굳게 닫힌 빗장을 만져보았다. 그의 얼굴에는 어떤 감정도 읽히지 않았지만, 그의 푸른 눈은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듯했다.

“발레리우스 경, 대현자께서는 평소 밤늦게까지 연구하셨습니까?”

“예. 대현자께서는 밤샘 연구를 즐기셨습니다. 보통 새벽이 되어서야 잠자리에 드시곤 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늘 새벽녘에 비상 경보가 울린 것을 의아하게 생각했습니다. 대현자님께서는 그 시간까지 깨어 계실 분이셨으니까요.”

“그렇군요.” 류 시안은 턱을 문질렀다. “이 방의 방어 마법은 누가 설정합니까? 대현자 본인입니까, 아니면 자동 시스템입니까?”

“대현자님께서 직접 설정하시고, 매일 밤 다시 활성화하셨습니다. 그분은 자신의 마법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셨으니까요. 하지만 이 방에는 대현자님께서 직접 만드신 자동 마법 방어 시스템도 작동 중입니다. 침입자가 감지되면 자동으로 방어를 강화하고 경보를 울리며, 특정 상황에서는 방을 완전히 봉쇄하는 기능까지 갖추고 있습니다.”

“흥미롭군요.” 류 시안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스쳤다. 마치 퍼즐의 한 조각을 찾은 사람처럼.
그는 다시 시신으로 돌아와 대현자의 시선을 따라 책상 위를 응시했다. 그리고는 책상 한쪽 구석에 놓인 작은 은색 상자를 발견했다. 먼지가 얇게 내려앉은 다른 물건들과 달리, 이 상자 위에는 먼지 한 톨 없었다. 마치 방금 전까지 사용된 것처럼.

류 시안은 조심스럽게 상자를 들어 올렸다. 상자는 텅 비어 있었다. 하지만 상자의 안쪽 면에는 희미하게 남아 있는 마력의 잔향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 잔향은… 방금 전 그가 대현자의 손이 쥐고 있던 깃펜 아래서 발견한 그 미세한 문양과 기이하게도 공명하고 있었다.

“이 상자, 무엇입니까?” 류 시안이 물었다.

발레리우스 경은 상자를 보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글쎄요. 처음 보는군요. 대현자님의 개인적인 물품인 것 같습니다만… 혹시 그 안에 무엇이 있었는지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류 시안은 상자를 닫고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래, 그 안에 있던 것이 ‘트릭’이었군.”

그는 다시 서재 전체를 천천히 둘러보았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제자리에 있었다. 완벽하게 봉인된 방, 완벽하게 죽어있는 대현자. 하지만 류 시안의 눈에는 그 모든 완벽함 뒤에 숨겨진 ‘불협화음’이 보였다.

“발레리우스 경.” 류 시안이 고개를 돌려 그를 응시했다. “이 방은 밀실이 맞습니다. 아니, 적어도 지금은 밀실처럼 보입니다.”

발레리우스 경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범인은 대체 어떻게…”

류 시안은 손가락으로 허공을 휘저었다. “이 방의 마법 봉인은 완벽합니다. 침입의 흔적은 없습니다. 탈출의 흔적도 없죠. 마치 아무도 들어오지도, 나가지도 않은 것처럼 보입니다.”

“그럼 범인은… 이 방 안에 남아 있다는 말입니까?” 발레리우스 경의 눈이 커졌다.

류 시안은 옅게 미소를 지었다. “아니요. 범인은 이곳에 없습니다. 범인은 이미 방을 나갔습니다. 다만, 당신들이 알 수 없는 방법으로, 그리고… 아주 영리하게 밀실을 만들어 놓고 말이죠.”

그의 푸른 눈이 서재의 한쪽 벽에 걸린 고대의 별자리 투영구를 향했다. 그 투영구에서는 희미한 마법의 빛이 아직도 깜빡이고 있었다.

“저는 이 방에 들어왔을 때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카엘렌 대현자는 자신의 마법에 대한 자부심이 너무 강했고, 바로 그것이 범인에게 역이용당했다는 것을 말입니다. 밀실 살인? 아닙니다. 이것은 ‘밀실이 된 살인’입니다. 살인 후에 밀실이 된 것이죠.”

류 시안은 발레리우스 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의 목소리는 확신에 차 있었다.

“범인은 이 방을 나갈 때, 대현자의 바로 그 ‘자동 방어 시스템’을 이용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