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운 마법 학원, 고작 다섯 글자에 담긴 위엄은 어지간한 국립 박물관의 그것보다 웅장했다. 거대한 대리석 기둥은 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었고, 투명한 마력 보호막 아래로 교정의 플라타너스 잎사귀들이 햇빛을 받아 투명하게 빛났다. 건물 외벽에 수놓인 정교한 마법 문양들은 한낮에도 은은한 광휘를 뿜어내며, 이곳이 단순한 교육 기관이 아님을 말없이 증명하고 있었다.
나는 늘 그 광경을 무표정하게 올려다보았다. 강태민, 평범하다면 평범한 이름을 가진 나는 이 ‘엘리트’ 학원의 그 어떤 빛나는 마법사 지망생과도 어울리지 않는 존재였다. 최소한 내 눈에는 그랬다. 수천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유서 깊은 마법 가문 출신도 아니었고, 타고난 재능이 모든 것을 압도하는 천재도 아니었다. 그저 평범한 재능으로 꾸역꾸역 버텨내고 있는, 지극히 현실적인 인간. 그게 나였다.
오늘도 어김없이 고풍스러운 복도를 걸었다. 발소리가 울리는 대리석 바닥, 천장에 매달린 마력 램프가 일렁이며 복도를 황금빛으로 물들였다. 나는 수업 종이 울리기 십 분 전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걸음을 조금 서둘렀다. 오늘 수업은 고대 마법학 개론. 교수님의 목소리는 은쟁반에 옥구슬 굴러가는 듯 고상했지만, 내용은 어제의 마법진 역사 수업만큼이나 졸음이 쏟아지는 것이었다.
“태민아! 야, 강태민!”
뒤에서 들려오는 발랄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복도를 달려오는 건 이지아였다. 단정한 학원 제복을 입었지만, 꽉 묶은 포니테일은 그녀의 활기찬 성격을 대변하듯 좌우로 흔들렸다. 지아는 학원에서도 몇 손가락 안에 꼽히는 명문가 출신에, 성적도 우수하고 붙임성까지 좋은 그야말로 ‘엘리트’의 표본 같은 아이였다. 나와는 모든 면에서 정반대인데, 어찌어찌 친해진 몇 안 되는 친구 중 하나였다.
“수업 늦겠어, 또.”
“네가 너무 느릿느릿 걸으니까 그렇지! 이리 와봐, 할 말이 있어.”
지아는 내 팔을 잡아끌며 복도 구석으로 나를 데려갔다. 틈새에 숨겨진 낡은 비상 계단 옆이었다. 이 학원 모든 공간은 철저하게 관리되지만, 이곳만큼은 왠지 모르게 잊힌 듯한 느낌을 주었다. 빛바랜 벽지와 희미한 먼지 냄새.
“무슨 일인데 이렇게 비밀스럽게 불러?”
“비밀스러운 얘기 맞거든.”
지아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목소리를 낮췄다.
“너 혹시 들었어? 지하 최심부 말이야.”
지하 최심부. 학원 내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금지된 구역이었다. 학생들에게는 물론이고, 심지어 일부 교수진에게도 출입이 제한된 곳. 공식적으로는 ‘고대 마법 유물 보존 및 연구 구역’이라고 불렸지만, 사실 그곳에 대해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만 학원 전체를 아우르는 강력한 마법 보안 장벽이 그곳을 중심으로 발현되고 있다는 것, 그리고 몇십 년에 한 번씩 학원 이사회가 소집되어 그곳의 ‘청소’를 논의한다는 소문 정도가 전부였다.
“또 그 얘기야? 지아, 내가 몇 번이나 말했지. 그런 구닥다리 괴담에 관심 두지 말라고.”
“괴담이라니! 이번엔 좀 달라. 어제 밤에 내가 야간 자율 학습 때문에 늦게까지 남아 있었거든? 그때 복도 끝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어.”
지아의 눈이 살짝 커졌다. 그녀는 겁이 많은 편은 아니었지만, 지금은 미세하게 어깨를 움츠리고 있었다.
“이상한 소리라니?”
“뭐랄까… 낮게 웅얼거리는 소리? 마치 여러 사람이 동시에 기도하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뭔가에 억눌린 듯한 신음 같기도 했어. 너무 소름 끼쳐서 도저히 가까이 갈 수가 없더라.”
나는 무심하게 어깨를 으쓱였다. “밤의 학원은 원래 을씨년스러운 법이지. 어디 바람이라도 불었겠지.”
“아니야! 그게 아니었다니까! 그리고 그날 아침에 지하로 통하는 복도 쪽에서 경비 마법사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뭔가 심각하게 얘기하고 있는 걸 봤어. 평소에는 얼씬도 안 하던 사람들이!”
지아는 흥분해서 거의 속삭이듯 말했다.
“분명 뭔가 있어, 태민아. 우리 학원에선 절대로 언급해서는 안 되는, 끔찍한 금기가 그 지하에 숨겨져 있는 게 분명해.”
나는 지아의 말에 코웃음 쳤지만, 내 마음 한구석에서는 묘한 불쾌감이 스멀거렸다. 학원에 입학한 첫날부터 들었던 지하 최심부의 이야기는 언제나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너무나 완벽하고, 너무나 고상한 이 학원에 어울리지 않는, 어둡고 축축한 그림자가 그곳에 드리워져 있다는 느낌.
“네 호기심이 너를 위험에 빠뜨릴 거야. 교수님들이 괜히 접근 금지 구역으로 설정해 놓은 게 아니라고.”
“나는 그냥 조심하라고 말해주는 거야. 너 자꾸 호기심 부리다가 또 이상한 데 기웃거리지 마.”
지아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더니 수업 종이 울리자마자 튀어나갔다. 혼자 남은 나는 낡은 비상 계단 옆에 서서 희미한 먼지 냄새를 맡았다. 그녀의 말대로 나는 이상한 데 기웃거리기를 좋아하는 편이었다. 어쩌면 그래서 지아가 걱정하는지도 모른다.
나는 오늘 고대 마법학 개론 수업에 빠져야 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을 느꼈다. 지아가 방금 이야기한 그 ‘지하 최심부’로 향하는 복도는 이 비상 계단 아래에 있었다. 물론, 철통 같은 마법 보안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수많은 봉인 문양과 경고 마법진이 복도 전체를 뒤덮고 있었고, 그 앞에서 지키고 서 있는 강력한 마법사 경비병들의 모습은 언제나 이 복도가 단순한 창고가 아님을 말해주었다.
하지만 오늘따라… 왠지 모르게 달랐다.
방금 전 지아가 봤다는 경비 마법사들은 더 이상 그곳에 없었다. 복도는 텅 비어 있었다. 오직 정적만이 깊게 가라앉아 있었다. 마치 누군가 모든 소리를 빨아들인 듯한 고요함.
나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낡은 비상 계단 아래, 어두컴컴한 복도 끝. 그곳에는 거대한 이중 철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문 전체에 새겨진 마법진들은 그 위용을 뽐내듯 어둠 속에서도 희미하게 빛났다. 그러나 그 빛은 평소보다 훨씬 약했다. 마치… 에너지를 잃어가는 생명체처럼.
그리고 문틈 사이로, 아주 희미하지만 확실히 느껴지는 것이 있었다.
지아가 말했던, 그 웅얼거리는 소리. 낮고 불길한, 수많은 목소리가 뒤섞인 듯한 기이한 소음. 마치 거대한 존재가 어둠 속에서 숨 쉬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무언가가 끝없이 고통받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그 소리는 나의 심장을 조용히 죄어오는 듯한 압박감을 주었다.
그때였다.
문틈에서 아주 약하게 빛나던 봉인 마법진 하나가, 순간적으로 푸른 섬광을 뿜더니 깜빡이며 사라졌다.
그리고 그 순간, 웅얼거리는 소리가 한층 더 또렷하게 들려왔다. 단순한 소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마치… 누군가 나를 부르는 듯한,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속삭이는 유혹 같았다.
내 온몸의 털이 쭈뼛 섰다. 머릿속에서는 ‘도망쳐’라는 경고음이 울렸지만, 이상하게도 발은 문에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마치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리는 것처럼.
나는 굳게 닫힌 철문 앞에 섰다. 차가운 금속에서 풍겨오는 비릿한 철 냄새와 함께, 알 수 없는 끈적한 기운이 나를 휘감았다. 문에 귀를 기울이자, 소리는 더욱 명확해졌다. 이제는 웅얼거림 사이로 날카로운 비명 같은 것이 섞여 들려왔다.
누군가 고통받고 있었다.
아니, 고통받는 무언가가 그곳에 갇혀 있었다.
내 안의 호기심이 다시금 고개를 들었다. 학원의 어둡고 비밀스러운 그림자. 수십 년간 금지되어 온, 모든 이들이 애써 외면했던 그 끔찍한 금기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그리고 왜, 오늘따라 이 문이 이렇게나 약해져 있는 것일까?
나는 조심스럽게 차가운 철문에 손을 댔다. 문은 금방이라도 녹아내릴 것 같은 냉기를 뿜어냈다. 그리고 그 순간, 문 안쪽에서 섬뜩하리만치 차가운 무언가가 내 손을 타고 심장으로 파고드는 것을 느꼈다. 심장이 얼어붙는 듯한 감각, 동시에 머릿속에 울리는 수많은 목소리.
*어둠… 해방… 자유…*
짧은 환영이 스쳐 지나갔다. 핏빛으로 물든 지하 공간, 쇠사슬에 묶인 거대한 형체, 그리고 그 형체 주위를 둘러싼 수많은 빛나는 눈동자들.
나는 비명을 지를 뻔했지만, 겨우 참아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곳을 뛰쳐나왔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복도를 벗어나 학원 건물 밖으로, 햇빛이 쏟아지는 교정으로 뛰어나왔을 때에야 겨우 숨을 쉴 수 있었다.
강한 햇살에도 불구하고 내 몸은 얼어붙은 듯 차가웠다. 방금 전 문틈에서 봤던 환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리고 내 심장 속으로 파고들었던 그 차가운 기운.
이건 괴담이 아니었다.
이건… 현실이었다.
성운 마법 학원의 지하 최심부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끔찍한 무언가가 봉인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봉인은 지금, 서서히 풀리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내 오른손을 쳐다봤다. 차가운 철문에 닿았던 손등에, 핏빛으로 빛나는 아주 작은 마법 문양이 희미하게 새겨져 있었다. 마치 내가 그 문양을 원래부터 가지고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나는 그 문양을 처음 보았다. 그리고 동시에 알 수 없는 불안감과 함께, 걷잡을 수 없는 호기심이 다시 한번 나를 사로잡았다.
나는 성운 마법 학원의 금기를 건드려 버린 걸까? 아니면, 금기가 나를 선택한 걸까?
내 평범했던 학원 생활은, 이제 더 이상 평범하지 않을 것 같았다.
모든 것은, 지하 최심부의 문을 감싸고 있던 봉인 문양이 사라지는 그 순간부터 시작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