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연의 부름: 복수의 서곡
밤은 언제나 그랬듯 검푸른 벨벳처럼 세상을 감쌌다. 그러나 오늘은 그 벨벳 사이로 날카로운 비수가 꽂혀 있는 듯한 한기가 돌았다. 오래된 파르바스 산맥의 동굴 입구, 잊힌 신들의 숨결이 깃든다고 전해지는 그곳에서, 그림자보다 더 깊은 존재가 움직였다.
“후우…”
카일은 거친 숨을 내쉬며 차가운 암벽에 몸을 기댔다. 수십 년 전, 이곳은 푸른 이끼와 청량한 물줄기가 흐르는, 전설 속 요정들의 쉼터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었다. 거대한 굴착기가 내뿜는 굉음과 쇠망치 소리가 골짜기를 가득 채웠고, 어둠 속에서도 뿜어져 나오는 붉은 마나의 기운이 지독한 피 냄새처럼 공기를 오염시키고 있었다.
그는 턱을 타고 흐르는 땀방울을 무심하게 닦아냈다. 핏발 선 두 눈에는 과거의 영광도, 미래에 대한 희망도 없었다. 오직, 복수라는 단 하나의 불꽃만이 차갑게 타오르고 있을 뿐이었다.
“에이든… 너는 내가 죽었다고 믿겠지.”
카일의 목소리는 갈라지고 낮게 으르렁거렸다. 지난 5년간, 그는 지옥의 끄트머리에서 기어 올라왔다. 온몸을 지배했던 끔찍한 독과 부러진 뼈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심장에 박힌 친구의 배신이라는 칼날을 견뎌내며, 오직 그 이름 하나만을 되뇌며 살았다.
*친구?*
쓴웃음이 터져 나왔다. 에이든. 그 빛나는 이름 뒤에 숨겨진 탐욕스러운 그림자. 한때는 함께 검을 맞대고, 꿈을 공유하며, 피로 맹세했던 유일한 벗. 그가 바로 카일의 모든 것을 앗아간 장본인이었다. 명예, 가족, 재능, 그리고 살아갈 이유마저도.
카일은 허리춤에 찬 낡은 검의 손잡이를 움켜쥐었다. 한때 제국의 영웅만이 다룰 수 있었다는 명검 ‘천룡파도’는 이미 수십 년 전 에이든의 손에 넘어갔다. 지금 그의 손에 쥐어진 것은 이름 없는 대장장이가 만들어낸 평범한 철검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 검은 그의 손에서 예리한 죽음의 도구로 다시 태어났다.
동굴 입구에서 흘러나오는 붉은 마나의 기운은 점점 더 강해졌다. 이곳은 에이든이 ‘심연의 핵’이라 불리는 고대 유물을 발굴하고 있는 현장이었다. 그 유물은 과거 아르켄시아 대륙을 파멸로 이끌 뻔했던 금단의 힘을 품고 있다고 알려져 있었다. 에이든은 그 힘을 이용해 제국 전체를 장악하려 할 터였다.
“네가 감히… 금기를 건드리려 하다니.”
카일은 어둠 속으로 몸을 던졌다. 그의 움직임은 그림자처럼 유연하고 소리 없었다. 경계를 서고 있던 병사들은 그가 지나가는 줄도 모른 채, 그저 차가운 밤바람이 스쳐 지나간다고 착각할 뿐이었다. 그의 발걸음은 훈련받은 병사들의 감각을 속이는 데 완벽했다. 그는 더 이상 과거의 화려한 검사나 마법사가 아니었다. 그는 살아있는 유령이자, 보이지 않는 칼날이었다.
어둠 속을 헤치고 나아가자 거대한 지하 공동이 모습을 드러냈다. 수백 명의 인부들이 땀을 흘리며 곡괭이질을 하고 있었고, 그들을 감시하는 병사들은 붉은 깃발을 휘두르며 고함을 질렀다. 공동의 중앙에는 거대한 검은 수정이 박혀 있었는데, 그것에서 뿜어져 나오는 붉은 기운이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꿈틀거렸다. 심연의 핵. 분명했다.
그 수정을 둘러싸고 마법사들이 복잡한 의식을 진행 중이었다. 그들의 주문 하나하나에 어둠의 에너지가 더욱 격렬하게 폭발했다. 카일은 그들의 얼굴을 일일이 뜯어보았다. 아는 얼굴은 없었다. 하지만 그 모든 자들이 에이든의 그림자 아래에서 움직이는 꼭두각시임은 분명했다.
그의 시선은 한 남자의 등에 꽂혔다. 우뚝 솟은 체구, 제복 위로 드러난 흉터투성이 팔, 그리고 무엇보다도 허리에 찬 거대한 전투 도끼. 벨가. 에이든의 그림자 기사단장 중 한 명이자, 5년 전 그를 절벽 아래로 밀어 떨어뜨린 명령을 수행했던 자 중 하나였다. 벨가는 큰소리로 인부들을 독려하고 있었고, 가끔씩 불만스러운 표정을 짓는 인부의 옆구리를 발로 차며 폭력을 행사했다.
“벨가…”
카일의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걸렸다. 첫 번째 조각. 복수라는 거대한 그림을 완성하기 위한 첫 번째 퍼즐 조각이 눈앞에 있었다. 그는 더 이상 과거의 순진한 영웅이 아니었다. 그의 심장은 얼어붙었고, 그의 영혼은 어둠에 물들었다. 오직 복수만이 그를 숨 쉬게 하는 유일한 이유였다.
그는 가장 깊은 그림자 속으로 몸을 숨겼다. 공동을 가로지르는 철제 구조물들을 이용해 소리 없이 벨가의 등 뒤로 접근했다. 병사들은 발굴 작업에 정신이 팔려 있었고, 마법사들은 의식에 몰두해 있었다. 아무도 그림자 속에서 다가오는 죽음을 알아채지 못했다.
벨가는 여전히 고함을 지르며 인부들을 채찍질하고 있었다. “더 빨리! 에이든 경의 인내심은 한계가 있다! 이 게으른 것들아!”
그때였다. 벨가의 뒤에서 차가운 그림자가 솟아올랐다. 벨가는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하고 몸을 돌리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오랜만이군, 벨가.”
낮고 섬뜩한 목소리가 그의 귀에 꽂혔다. 벨가의 눈동자가 경악으로 커졌다. 눈앞에 선 남자는 분명 카일이었다. 하지만 5년 전의 카일과는 너무나도 달랐다. 그의 눈은 피로 물든 새벽 같았고, 그의 얼굴에는 깊은 상흔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의 전신에서는 끔찍할 정도로 냉혹하고 섬뜩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카… 카일…? 살아 있었나?!” 벨가는 비명을 지를 뻔한 목소리를 간신히 삼켰다. 그의 손이 허리춤의 도끼로 향했다.
하지만 카일의 검이 더 빨랐다. 쉭- 하는 소리와 함께 그의 손에 든 검이 벨가의 어깨를 스치듯 지나갔다. 벨가는 고통에 찬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섰다. 어깨에서는 붉은 피가 솟구쳤다.
“그만 지껄이고, 네 주인의 거처는 어디인가.” 카일의 목소리는 한 점 감정도 없이 차갑게 울렸다. 그의 눈동자는 벨가의 어깨에서 흐르는 피에도 흔들림이 없었다. 마치 당연한 일이라는 듯이.
“크윽… 이… 이 배신자 놈! 네가 감히 에이든 경의 계획을 방해하려 하다니!” 벨가는 어깨를 부여잡고 이빨을 갈았다. 그는 용감한 전사였지만, 눈앞의 카일에게서 느껴지는 압도적인 어둠의 기운에 본능적인 공포를 느꼈다.
“배신자?” 카일의 입꼬리가 비틀렸다. “그 단어는 네 주인에게나 어울리는 말이다. 네놈은 그저 꼭두각시에 불과했으니… 자비를 기대할 생각은 마라.”
카일은 더 이상 대화를 이어갈 생각이 없다는 듯, 남은 손으로 검은 그림자를 휘감았다. 그의 손끝에서 솟아난 어둠의 낫이 벨가의 목을 향해 맹렬하게 날아들었다. 벨가는 필사적으로 도끼를 휘둘러 막으려 했지만, 그림자의 낫은 물질이 아니었다. 그것은 벨가의 방어를 뚫고 그의 목덜미에 깊은 상처를 새겼다.
“커헉!”
벨가는 피거품을 토하며 무릎을 꿇었다. 그의 시선은 멀리서 울리는 병사들의 외침과 마법사들의 당황한 얼굴을 스쳐 지나갔다. 동굴 전체가 혼란에 빠지기 시작했다.
카일은 벨가의 목덜미를 움켜쥐고 그의 얼굴을 강제로 자신에게 향하게 했다. 그의 눈은 벨가의 마지막 숨결을 빨아들이는 듯했다.
“다시 묻겠다. 에이든은 어디에 있는가. 그리고 심연의 핵을 이용해 무엇을 하려는가.”
벨가는 고통과 공포 속에서 경련했다. 그의 입술은 간신히 움직이며 한 마디를 뱉어냈다. “루… 루페론… 제국… 수도… 그곳에… 고대… 신전이… 에이든… 그 힘을… 완전히… 흡수하려….”
벨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의 눈동자에서 생명의 불꽃이 꺼졌다. 카일은 벨가의 시체를 차갑게 내던졌다.
거대한 지하 공동은 이미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 병사들이 우왕좌왕하며 카일을 향해 달려들고 있었고, 마법사들은 뒤늦게 방어막을 형성하려 애썼다.
하지만 카일은 이미 그곳에 없었다. 그는 단 한 사람의 목숨과 정보를 얻기 위해 이 모든 소란을 벌인 것이었다. 그의 목적은 달성되었다.
“루페론… 수도… 고대 신전…”
카일은 어둠 속으로 다시 녹아들며 중얼거렸다. 그의 눈빛은 핏빛으로 더욱 깊게 타올랐다. 복수의 서곡은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었다. 에이든. 기다려라. 네가 심장에 박아 넣었던 칼날을, 이제 내가 돌려줄 차례다. 지옥에서 돌아온 망령의 손으로. 그리고 그것은 네가 준 고통보다 천 배는 더 혹독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