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잔해 속의 사냥
잿빛 하늘 아래, 무너진 고층 건물들의 실루엣이 거대한 묘비처럼 늘어서 있었다. 한때 서울의 심장이었던 이곳은 이제 차가운 바람과 먼지만이 주인인 죽은 도시였다. 강진은 낡은 방진 마스크 위로 희뿌연 숨을 내쉬며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겼다. 찢어진 옷가지와 먼지에 절어 탁해진 군복 바지, 그리고 어깨에 메인 낡은 배낭이 그의 유일한 재산이었다. 한 손에는 부서진 간판 기둥을 개조해 만든 둔탁한 쇠파이프를 쥐고 있었다. 닳아빠진 가죽 장갑 위로 굳은살 박힌 손가락이 쇠파이프를 단단히 감싸 쥐었다.
“젠장, 오늘도 꽝인가.”
나직이 중얼거리는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다. 이틀째 얻은 거라고는 먼지 쌓인 통조림 캔 하나가 전부였다. 그것마저도 이미 유통기한이 한참 지난 물건이라 먹을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그의 시선은 부서진 상점 간판들을 스쳐 지나갔다. 찢겨진 현수막이 바람에 나부끼며 비명을 지르는 듯했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금속이 마찰하는 소리,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짐승의 울음소리가 그의 신경을 곤두세웠다.
강진은 멈춰 서서 귀를 기울였다. 미세한 소리에도 온몸의 감각이 반응했다. 그는 이 폐허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 그의 귀에는 바람 소리와 자신의 심장 소리 외에는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안심할 수는 없었다. 이 도시의 그림자 속에는 항상 무언가가 도사리고 있었다.
그의 목표는 단 하나였다. 무너진 백화점 잔해 깊숙이 자리 잡은, 예전에는 약국이었을 공간. 그의 배낭 안에는 며칠 전 겨우 구한, 하지만 이미 바닥을 드러내고 있는 항생제 병이 덜그럭거렸다. 그 약은 그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이게 마지막 희망이야.”
한때 화려했을 유리문은 산산조각 나 바닥에 흩어져 있었다. 강진은 조심스럽게 파편들을 밟지 않도록 발을 옮겼다. 약국 내부는 혼돈 그 자체였다. 선반들은 쓰러져 있었고, 약품들은 찢겨진 포장지와 함께 바닥에 뒹굴고 있었다. 코를 찌르는 약품 냄새와 곰팡이 냄새가 뒤섞여 역겨운 악취를 풍겼다.
강진은 스마트폰의 손전등을 켰다. 희미한 불빛이 먼지 낀 공기를 가르며 내부를 비췄다. 그의 시선은 빠르게 진열대 구역으로 향했다. 특히 ‘처방전 필요’라고 적힌 구역이 그의 주요 목표였다. 귀한 약들은 대개 그곳에 보관되어 있었으니까.
“제발, 하나라도.”
주먹을 꽉 쥐었다. 어머니는 폐렴 증세가 점점 심해지고 있었다. 며칠 전부터 기침이 잦아들지 않고 열이 오르기 시작했다. 희귀한 만성병을 앓고 있는 어머니에게는 일반적인 감기조차 치명적일 수 있었다. 폐허가 된 병원에서 겨우 항생제 몇 알을 구했지만, 그마저도 이제는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이 약국이 마지막 희망이었다.
그때였다.
안쪽에서 ‘스스슥’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무언가가 흙바닥을 기어가는 듯한 소리. 강진은 손전등을 끄고 벽 뒤로 바싹 몸을 숨겼다. 쇠파이프를 고쳐 쥐는 손에 땀이 배어났다. 심장이 격렬하게 뛰어댔다.
‘야생종인가?’
이 도시를 떠도는 변이된 생명체들. 지능은 낮지만, 극도로 발달한 후각과 청각, 그리고 인간을 훨씬 뛰어넘는 신체 능력으로 무장한 괴물들. 과거의 인류가 만든 오염과 환경 파괴가 낳은 비극적인 결과물이었다.
어둠 속에서 강진은 숨을 죽였다. 소리는 점점 가까워졌다. 킁킁거리는 짐승의 냄새가 마스크를 뚫고 들어오는 듯했다. 강진은 자신에게 들키지 않고 침투했다는 사실에 식은땀을 흘렸다. 자신의 탐색이 너무 성급했나? 아니면 그저 운이 없었던 걸까?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윤곽이 드러났다. 검고 쭈글쭈글한 피부, 길게 뻗은 팔다리, 그리고 짐승처럼 구부러진 등. 눈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섬뜩한 위압감을 풍겼다. ‘그림자 사냥꾼’. 이곳 생존자들이 붙인 이름이었다. 그들은 빛을 싫어했고, 어둠 속에서 움직였다.
한 마리, 두 마리… 최소 세 마리는 되는 것 같았다. 그들은 천천히 약품이 널브러진 바닥을 더듬으며 움직였다. 사냥감을 찾는 듯, 주변을 탐색하는 움직임이었다. 그들의 목표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혹시 여기에 다른 생존자가 있었던 걸까? 아니면 그저 무의미하게 떠도는 것뿐일까?
강진은 이들의 동선을 파악하기 위해 숨소리마저 참았다. 놈들은 후각으로 사냥한다. 조금이라도 흐트러진 호흡은 치명적일 수 있었다.
“흐읍…”
폐가 터질 것 같았지만, 그는 억지로 숨을 참았다. 그림자 사냥꾼들은 무언가에 관심을 가졌는지, 쓰러진 진열대 안쪽으로 기어들어갔다. 강진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이곳을 벗어나야 했다. 하지만 어머니의 약이…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강진의 시선은 약품 진열대를 향했다. 그는 빠르게 계산했다. 놈들이 진열대 안에 있는 동안, 가장 가까운 약품 구역으로 달려가 필요한 것을 챙겨 나올 수 있을까? 위험했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지금이야!’
강진은 순식간에 몸을 일으켜 어둠 속을 가로질렀다. 발소리가 나지 않도록 조심했지만, 긴박함 속에서 완전히 숨길 수는 없었다. ‘사르륵’ 하는 미세한 마찰음이 정적을 깨뜨렸다.
그림자 사냥꾼 중 한 마리가 고개를 획 돌렸다. 눈 대신 자리한 텅 빈 구멍에서 섬뜩한 기운이 뿜어져 나오는 것 같았다. 놈의 몸이 순식간에 경직됐다.
“크르르르르…”
낮게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약국 안에 울려 퍼졌다. 다른 놈들도 곧바로 반응했다. 강진은 심장이 멎을 것 같았다. 들켰다!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약품 진열대를 향해 전력 질주했다. 손전등을 다시 켜고 빠르게 스캔했다. 항생제, 항생제…!
수많은 약병들 속에서 그의 눈이 번뜩였다. 저것이다! 푸른색 라벨의 작은 병. 전에 어머니에게 처방되었던 것과 같은 종류였다.
강진이 손을 뻗어 병을 움켜쥐는 순간, 등 뒤에서 거친 숨소리가 들려왔다. 차가운 공기가 그의 목덜미를 스쳤다.
“망할!”
그는 획 몸을 돌리며 쇠파이프를 휘둘렀다. ‘퍽!’ 둔탁한 소리와 함께 그림자 사냥꾼 중 한 마리가 비틀거렸다. 하지만 놈은 비명조차 지르지 않고 바로 균형을 잡았다. 강철 같은 피부를 가진 놈들에게 쇠파이프의 일격은 치명적이지 않았다.
그림자 사냥꾼의 길고 날카로운 손톱이 강진의 팔을 향해 날아들었다. 강진은 필사적으로 몸을 비틀었다. ‘찍!’ 소리와 함께 팔뚝의 옷이 찢겨나갔다. 살갗이 찢어지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지만, 다행히 깊은 상처는 아니었다.
두 번째 사냥꾼이 그의 다리를 향해 달려들었다. 강진은 간신히 몸을 뒤로 젖히며 발로 걷어찼다. 놈은 잠시 뒤로 물러났지만, 곧바로 다시 달려들 채비를 했다. 세 번째 놈은 이미 입구 쪽으로 달려가 그의 퇴로를 막고 있었다.
갇혔다!
강진은 주위를 둘러봤다. 폐허가 된 약국은 놈들에게 유리한 공간이었다. 어둠, 그리고 복잡한 장애물들. 하지만 그에게도 한 가지 기회가 있었다. 약국 한쪽 구석에 쓰러져 있는 거대한 선반 더미.
“죽어도 여기선 안 죽어!”
강진은 이를 악물었다. 어머니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쇠파이프를 휘둘러 첫 번째 사냥꾼의 머리를 강타했다. 놈이 잠시 주춤하는 사이, 그는 온 힘을 다해 선반 더미 쪽으로 달렸다.
두 번째 놈이 그의 뒤를 쫓아왔다. 강진은 마지막 남은 힘을 쥐어짜 선반 더미를 발로 찼다. 이미 균형을 잃고 기울어져 있던 선반이 ‘와르르’ 소리를 내며 무너져 내렸다. 뒤따라오던 그림자 사냥꾼이 미처 피하지 못하고 잔해에 깔렸다. 끔찍한 비명 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놈은 잔해 속에 파묻혔다.
“크아아악!”
남은 두 마리가 분노한 듯 울부짖으며 강진에게 달려들었다. 그는 약병을 한 손에 쥐고, 다른 손으로 쇠파이프를 휘두르며 필사적으로 저항했다. 한 마리가 그의 옆구리를 스치고 지나갔고, 날카로운 발톱이 그의 옷을 찢으며 깊은 상처를 남겼다. 뜨거운 피가 옆구리에서 흘러내리는 것을 느꼈지만, 멈출 수 없었다.
강진은 이성을 잃지 않으려 애썼다. 그의 목표는 생존이었다. 그는 무너진 선반의 틈새로 몸을 던졌다. 놈들이 자신을 쫓아올 수 없을 정도로 좁은 공간이었다. 그러나 놈들은 포기하지 않고 틈새로 발톱을 들이밀며 그를 잡아채려 했다.
‘탈출구는… 저기다!’
강진의 눈에 약국 뒤편의 작은 창문이 들어왔다. 원래는 환기용으로 쓰였을 작은 창문이었지만, 지금은 깨져서 틈이 벌어져 있었다. 놈들이 이 좁은 틈으로 들어오지 못하는 동안, 강진은 필사적으로 몸을 구겨 넣었다.
찢겨진 옆구리의 통증이 전신을 마비시키는 것 같았지만, 그는 이를 악물었다. 마침내 몸이 완전히 창문 밖으로 빠져나왔다. 그는 약국 뒷골목의 흙바닥에 나뒹굴었다.
“흐읍, 흐읍…”
거친 숨을 몰아쉬며 몸을 일으켰다. 뒤편에서 놈들의 거친 울부짖음이 들려왔다. 그들은 그를 쫓아올 수 없었다. 적어도 지금은.
강진은 손에 들린 푸른색 약병을 확인했다. 다행히 깨지지 않았다. 그의 얼굴에 희미한 안도감이 스쳤지만, 곧바로 옆구리의 통증이 그를 현실로 끌어내렸다. 옷이 피로 흥건했다. 지혈을 해야 했다.
그는 낡은 건물 잔해 사이의 어두운 구석으로 몸을 숨겼다. 등 뒤에서 들려오는 그림자 사냥꾼들의 분노에 찬 울음소리가 점점 멀어져 갔다. 밤이 깊어지고 있었다. 어둠은 그들을 숨겨주었지만, 동시에 그들을 더욱 위험하게 만들었다.
배낭을 열어 응급처치 키트에서 소독약과 거즈를 꺼냈다. 쓰라린 통증을 참으며 상처를 소독하고 거즈를 덧댔다. 몸은 천근만근 무거웠지만, 그의 눈빛은 흔들리지 않았다.
약병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이제 괜찮을 거야, 엄마…”
작게 중얼거리는 목소리에는 희망과 절망이 뒤섞여 있었다. 그는 이 폐허 속에서 살아남아야 했다.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그리고 다음 날 아침을 맞이하기 위해. 하지만 그가 본 것은 약국 깊숙한 곳, 무너진 선반 뒤편에서 희미하게 깜빡이는 붉은 빛이었다. 그것은 약탈당한 약품들 사이에서 움직이는 또 다른 그림자… 훨씬 크고, 훨씬 위협적인 존재의 흔적이었다. 강진의 심장이 다시 한번 얼어붙는 듯했다.
다음 목적지는 정해졌지만, 그 길은 더욱 험난할 것이었다. 이 도시는 여전히 그에게 새로운 시험을 던지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