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축한 공기가 폐부를 짓눌렀다. 아르카나 마법학원의 지하 미궁은 늘 이랬지만, 오늘은 유난히 그 습기와 한기가 뼈 속까지 스며드는 듯했다. 낡은 횃불에서 뿜어져 나오는 희미한 불꽃이 주변의 어둠을 간신히 밀어낼 뿐, 그림자는 꿈틀대며 살아있는 듯했다.
강휘는 손에 든 구식 나침반을 내려다보았다. 마법적 변칙에 의해 바늘은 끊임없이 진동하며 불안정하게 서쪽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런 징조는 보통 최악의 상황을 의미했다.
“여기라고 확신해, 윤슬?”
뒤따르던 윤슬이 손전등을 들어 앞을 비췄다. 그녀의 안경 너머 눈동자가 불안하게 흔들렸다. 그녀는 늘 침착했지만, 이곳의 분위기는 그런 그녀마저 긴장하게 만드는 모양이었다.
“도서관 금서 구역에서 찾은 고문서에 따르면… ‘원천의 심장’으로 가는 길은 이 통로밖에 없어.”
“원천의 심장이라… 듣기만 해도 불길하군.” 강휘는 중얼거렸다.
그들은 지금 아르카나 마법학원의 가장 깊은 지하에 위치한 ‘잊힌 회랑’에 있었다. 학원 설립 초기부터 존재했지만, 그 목적이나 정확한 위치는 철저히 감춰진 금단의 구역이었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학원의 에너지를 공급하는 거대한 마나의 원천이 있다는 소문, 혹은 고대 마법사들의 유해가 잠들어 있다는 괴담이 떠돌았지만, 그 누구도 직접 확인한 자는 없었다.
강휘와 윤슬은 최근 몇 달간 학원 내부에서 벌어진 기이한 현상들을 추적해왔다. 밤마다 들려오는 알 수 없는 속삭임, 마력이 불안정하게 폭주하는 교실, 그리고 그림자처럼 사라진 몇몇 학생들. 이 모든 현상의 근원에 ‘잊힌 회랑’이 있다는 직감을 지울 수 없었다.
“이봐, 강휘. 벽에 뭔가 있어.”
윤슬의 목소리에 강휘는 시선을 돌렸다. 손전등 빛이 닿는 곳, 곰팡이와 이끼로 뒤덮인 벽돌 사이로 붉은색 룬 문자들이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강휘가 손을 뻗어 문자를 만지려 하자, 윤슬이 재빨리 그의 팔을 붙잡았다.
“만지지 마. 이건… 봉인 문자 같아. 그것도 아주 강력한.”
“봉인? 뭘 봉인한 거지?”
“글쎄… 이 문양들은 ‘경계’와 ‘속박’을 의미하는 고대 언어야. 그리고 이 붉은색은… 피를 상징해.” 윤슬의 목소리가 점점 낮아졌다. “마치… 무언가를 가두기 위해 피의 계약으로 만들어진 봉인 같아.”
그들의 주위를 맴도는 공기가 한층 더 차갑게 느껴졌다. 으스스한 정적 속에서 귓가에 얇은 비명이 들리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벽에 새겨진 기괴한 문양들은 고대의 어떤 저주를 형상화한 것 같았다. 얽히고설킨 촉수들, 피를 연상시키는 붉은색이 바래어 검게 변한 흔적들. 그리고… 아주 희미하게, 축축한 바닥에서 풍겨오는 비릿한 냄새. 마치 썩은 살과 철이 섞인 듯한 냄새였다.
“이 냄새… 기억나? 실종된 선배들 물품에서 나던 냄새랑 비슷해.” 강휘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윤슬은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래서 더 불안해. 그 냄새는… 분명 이 세상 것이 아니었잖아.”
통로는 점점 좁아지고 어두워졌다. 횃불의 불꽃마저 휘청이며 꺼질 듯 위태로웠다. 그들의 발소리만이 고요한 어둠 속에서 불길하게 울려 퍼졌다. 쿵, 쿵. 심장이 발소리에 맞춰 두근거렸다.
얼마나 걸었을까. 좁은 통로의 끝에 거대한 철문이 나타났다. 녹슬고 뒤틀린 문에는 아까 봤던 붉은 봉인 문자들이 더욱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문 주변의 벽은 마치 살아있는 살덩이처럼 꿈틀거리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기괴한 형상으로 부풀어 올라 있었다.
“이게… ‘원천의 심장’ 입구인가?” 강휘가 침을 꿀꺽 삼켰다.
윤슬은 천천히 문에 다가가 손을 뻗었다. 그녀의 손이 문에 닿자, 붉은 룬 문자들이 섬뜩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문서에 따르면, 이 봉인은 특정 마력을 가진 자가 접촉하면… 반응한다고 되어 있었어.”
그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철문 전체에서 끔찍한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 쇠가 찢어지는 듯한 날카로운 소음과 함께 봉인 문자들이 폭주하듯 빛났다. 그리고 이내, 문이 천천히, 마치 숨을 쉬듯 안쪽으로 열리기 시작했다.
문틈으로 새어 나온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광경이었다.
강휘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들이 발견한 것은 단순한 유적이 아니었다. 거대한 동굴의 중앙에는, 끝없이 꿈틀거리는 검붉은 살덩이가 놓여 있었다. 그것은 마치 살아있는 심장처럼 불규칙하게 박동하고 있었고, 그 주변으로는 셀 수 없는 핏빛 룬 문자(rune)들이 섬뜩하게 빛나고 있었다. 살덩이 위로는 기괴한 형상의 촉수들이 얽히고설켜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그 촉수들 끝에는 사람의 얼굴처럼 보이는 잔해가 매달려 있었다. 뒤틀리고 고통에 일그러진 얼굴들. 강휘는 구역질이 치밀어 오르는 것을 겨우 참았다.
“이… 이건 대체… 뭐지?” 윤슬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녀의 얼굴은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그 순간, 살덩이에서 뻗어 나온 가느다란 촉수 하나가 강휘의 발목을 휙 휘감았다. 차가운 촉감이 살갗을 파고들었고, 강휘는 비명을 지르며 균형을 잃었다. 어둠 속에서 수없이 많은 붉은 눈동자들이 일제히 그들을 향해 번뜩였다. 그것들은 모두 살덩이에 기생하고 있는 듯한, 거대한 촉수 괴물의 일부였다.
“강휘!” 윤슬이 소리쳤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곧 동굴 전체를 뒤흔드는 끔찍한 울부짖음 속에 묻혀버렸다. 그 울부짖음은 마치 수천 명의 영혼이 한꺼번에 고통받는 듯한 비명 소리였다. 거대한 살덩이가 더욱 격렬하게 꿈틀거렸고, 붉은 룬 문자들의 빛은 더욱 강렬해졌다.
강휘는 몸부림쳤지만, 촉수는 그의 발목을 더욱 단단히 옥죄어 왔다. 주변의 붉은 눈동자들이 굶주린 듯 빛나며 그들에게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바로 그때, 그의 머릿속에 섬뜩한 깨달음이 스쳐 지나갔다.
이것은 학원의 마나 원천이 아니었다.
이것은… 학원의 *심장*이었다.
그리고 그 심장은, 끔찍한 존재의 것이었다.
“안 돼! 도망쳐, 윤슬!”
강휘는 마지막 힘을 다해 소리쳤지만, 그의 몸은 이미 거대한 살덩이 쪽으로 끌려가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기어 나오는 셀 수 없는 촉수들이 윤슬을 향해 뻗어오는 것이 보였다. 동굴의 공기는 비명과 함께 찢겨 나갔고, 아르카나 마법학원의 지하에 숨겨진 끔찍한 금기가 그들의 눈앞에서 완전히 깨어나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