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아스트라움의 심장, 그 균열**
“말도 안 돼… 이럴 수는 없어.”
아스트라움 호 최고 보안 책임자인 레나드 함장은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 같은 얼굴로 코어 아카이브의 방탄 유리벽을 노려봤다. 그의 눈동자에는 혼란과 좌절, 그리고 미약한 공포가 뒤섞여 있었다. 방탄 유리 너머, 에런 스콧 CEO의 시신이 차갑게 식어 있었다. 마치 조각상처럼, 그는 고급 오비탈 슈트 차림 그대로 최고급 제어판 앞에 쓰러져 있었다. 가슴팍에는 깨끗하고 뻥 뚫린 구멍 하나. 마치 수술용 레이저로 정확히 도려낸 듯한 상처였다.
“함장님, 내부 기록 확인 결과, 스콧 CEO는 어제 자정 직후 이 방에 혼자 들어섰습니다. 생체 인식과 음성 키 조합으로 문을 잠갔고요. 그 이후론 어떤 외부 침입 기록도 없습니다. 방 내부 환경 센서는 완벽한 안정 상태를 유지했고, 대기 조성, 압력, 온도, 모두 정상 범위였습니다. 침입은… 불가능합니다.”
보안 시스템 담당자 젠더가 침통한 목소리로 보고했다. 그의 얼굴도 함장과 다를 바 없었다. 이 코어 아카이브는 아스트라움 호의 심장부, 스콧 CEO 개인의 극비 데이터를 보관하는 곳이었다. 외부 공격은 물론, 내부에서도 함부로 접근할 수 없도록 설계된 요새 중의 요새. 아무리 우주 해적이라도 이곳을 뚫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카메라 기록은?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는단 말인가?” 레나드 함장이 거칠게 물었다.
젠더가 고개를 저었다. “저희가 확보한 영상은… 스콧 CEO가 사망하기 직전, 단 0.003초간의 미세한 영상 노이즈가 전부입니다. 그 외에는 평소와 다름없는 장면만 재생됩니다. 스콧 CEO는 그 짧은 순간 이후 곧바로 쓰러졌습니다.”
바로 그때, 고요한 복도에 불협화음처럼 딱딱거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소리의 근원지는 조금 전에 도착한 한 남자였다. 푸른색의 낡은 스페이스 코트를 입고, 한 손에는 고전적인 형태의 홀로그램 패드를, 다른 손으로는 은색 지팡이를 바닥에 규칙적으로 찍으며 걸어오는 사내. 그의 눈빛은 짙은 심해처럼 깊고, 무엇인가에 늘 집중하고 있는 듯했다.
“음, 이런. 예상보다 더 복잡하군요.” 카이론이 콧노래를 흥얼거리듯 말했다. 그의 시선은 이미 방탄 유리 너머의 시신을 꿰뚫고 있었다.
“카이론 박사님! 죄송합니다. 제가 상황 보고를 채…” 레나드 함장이 당황하며 다가섰다.
카이론은 손을 들어 그의 말을 끊었다. “보고는 나중에 들으시죠. 지금은 눈에 보이는 것들이 더 시끄러운 편이라.”
그는 코어 아카이브의 유리벽에 바싹 다가가 얼굴을 밀착했다. 그의 눈이 스캐닝 센서처럼 작동하는 듯, 방 내부의 모든 것을 훑어보고 있었다. 시신, 제어판, 매끄러운 합금 벽면, 그리고 천장에 박힌 희미한 조명까지.
“코어 아카이브, 최고 등급의 기밀 시설이죠? 모든 보안 시스템이 완벽하게 작동했을 테고, 외부 침입 흔적은 전혀 없을 겁니다. 게다가 밀실 상태. 심지어 피해자 단독 접속.” 카이론이 중얼거렸다. 그의 눈빛이 어떤 한 지점에 멈췄다. 방 한편에 자리한, 얼핏 보기에 평범해 보이는 입자 재구성 유닛. 주로 데이터를 물리적인 형태로 재구성하거나, 물리적인 형태의 데이터를 분자 단위로 해체할 때 사용하는 장치였다.
“함장님, 젠더 씨. 저 유닛에 대해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카이론이 턱짓으로 유닛을 가리켰다.
젠더가 곧장 대답했다. “네, 저것은 ‘매터 포지(Matter Forge)’라고 불리는 고급 재구성 유닛입니다. 주로 보안 등급이 높은 데이터 저장매체를 분자 단위로 완전히 해체하거나, 특정 물질의 미세한 샘플을 정확하게 재구성할 때 사용됩니다. 스콧 CEO가 기밀 자료를 완벽하게 폐기하기 위해 특별히 설치한 장치죠. 외부 연결은 완전히 차단되어 있으며, 작동은 오직 내부에서만, 스콧 CEO의 직접적인 승인 하에 이루어집니다.”
“내부에서만, 직접적인 승인 하에… 흐음.” 카이론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그렇다면 이 방은 그야말로 외부의 모든 간섭으로부터 완벽하게 격리된 공간이었겠군요. 살인자가 물리적으로 들어오는 것도, 무언가를 쏘아 보내는 것도 불가능했다는 이야기입니다.”
레나드 함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더 혼란스러운 겁니다. 대체 누가, 어떻게 스콧 CEO를 죽였단 말입니까?”
카이론은 침묵했다. 그의 눈은 여전히 매터 포지를 주시하고 있었다. 그의 오른손이 천천히 허공을 휘저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실타래를 푸는 듯한 동작이었다.
“젠더 씨, 스콧 CEO가 사망하기 직전, 카메라 기록에서 노이즈가 발생했다고 했죠? 단 0.003초. 그 짧은 순간에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요?”
“저희도 그 부분을 분석 중입니다만, 통신 교란이나 시스템 오류의 가능성 외에는…” 젠더가 말을 흐렸다.
“통신 교란? 시스템 오류? 아니요. 그건 너무 게으른 설명입니다. 완벽하게 격리된 이 공간에서, 그것도 가장 중요한 순간에, 우연히 시스템 오류가 발생한다? 우연의 일치는 종종 범인의 가장 교활한 무기죠.” 카이론의 목소리에 차가운 기색이 돌았다.
그는 다시 시신에게 시선을 돌렸다. 레이저에 의해 뻥 뚫린듯한 가슴의 상처. 주변에 그 어떤 그을음이나 파편도 없이, 너무나도 깨끗한 상처.
“피해자의 사인은 레이저에 의한 심장 관통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방 안에는 레이저 무기가 없었고, 외부에서 쏜 흔적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레이저는… 이 방 안에서 발생한 겁니다.” 카이론이 말을 이었다.
“하지만 어떻게? 어디서요?” 레나드 함장이 초조하게 물었다.
카이론은 빙긋 웃었다. 그 웃음은 차갑고도 예리했다. “함장님, 그리고 젠더 씨. 여러분은 ‘무기’를 너무 협소하게 정의하고 있습니다. 살인자가 반드시 손에 쥐는 칼이나 총, 레이저 블래스터일 필요는 없죠. 이 방에 이미 존재하는 ‘시스템’ 자체가 무기가 될 수 있다면요?”
그의 시선이 다시 매터 포지에 꽂혔다.
“매터 포지는 물질을 분자 단위로 재구성하거나 해체할 수 있다고 했죠. 특정 물질을 정확한 위치에 생성할 수도 있을 테고요.” 카이론의 목소리가 한층 낮아졌다. “사고 발생 직전, 그 0.003초간의 노이즈. 그것은 카메라 시스템의 오류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매터 포지 시스템이 최대치로 가동되며 발생한 일시적인 전력 불균형이었을 겁니다.”
젠더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설마… 그럴 리가요! 매터 포지는 스콧 CEO의 직접적인 승인 없이는 작동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살인 용도로는…”
“스콧 CEO의 직접적인 승인? 아니면, 스콧 CEO의 ‘승인 기록’만 남아있는 것일까요?” 카이론이 젠더의 말을 비꼬듯 되물었다. “해킹이든, 혹은 스콧 CEO를 잘 아는 누군가가 그의 생체 정보와 음성 키를 복제했든. 아니, 어쩌면 더 교활하게, 스콧 CEO가 미처 알아채지 못하게 시스템에 침투하여 매터 포지의 운영 체계를 재조정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레나드 함장의 얼굴이 점점 더 창백해졌다. “그러니까… 매터 포지가 레이저 무기가 되었다는 말씀이십니까?”
“레이저 무기가 된 것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정교한 살인 도구가 된 겁니다.” 카이론이 고개를 저었다. “레이저는 물질을 태우고 파괴합니다. 하지만 스콧 CEO의 상처는 너무나도 깨끗하죠. 마치 정밀한 외과 수술처럼요.”
그는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범인은 매터 포지를 이용해 스콧 CEO의 심장 내부, 정확한 좌표에… 극도로 미세한 ‘반물질 입자’를 생성했습니다.”
정적. 복도에 있던 모든 이들이 숨을 멈췄다.
“반물질 입자… 라구요?” 젠더가 겨우 입을 열었다.
“네. 상상을 초월하는 미세한 양의 반물질 입자. 그것은 생성되는 순간, 주변의 일반 물질과 즉시 충돌하여 섬광과 함께 소멸합니다. 이 과정에서 엄청난 양의 에너지가 방출되죠. 극도로 짧은 시간에, 아주 작은 범위 내에서. 마치 미니어처 초신성처럼요.” 카이론이 손가락으로 가슴을 가리켰다. “스콧 CEO의 심장이 바로 그 초신성의 중심이 된 겁니다. 내부에서부터 발생한 순간적인 에너지 폭발이 그의 심장을 정확히 꿰뚫은 것이죠.”
“그래서 아무런 흔적도 남지 않았던 거군요… 외부 침입도, 무기도… 오직 깔끔한 죽음만이…” 레나드 함장이 허탈하게 중얼거렸다.
“정확합니다. 범인은 이 완벽한 밀실에서, 피해자 자신의 최첨단 보안 장치를 역이용하여 살인을 저지른 겁니다. 물리적인 접근 없이, 오직 정보와 기술만으로. 완벽하게 격리된 이 공간의 ‘밀실’이라는 개념 자체가 범인의 완벽한 알리바이가 되어 준 셈이죠.”
카이론은 마지막으로 시신을 응시했다. “진정한 의미의 ‘밀실 살인’은 범인이 방에 들어가지 않고도 살인을 저지를 때 완성되는 법입니다. 이 코어 아카이브는… 그 완벽한 무대였던 겁니다.”
복도에는 오직 침묵만이 흘렀다. 우주선 아스트라움 호의 심장부, 그 완벽한 밀실에서 벌어진 죽음의 트릭은 이제, 천재 탐정 카이론의 입을 통해 만천하에 드러났다. 그러나 그의 말 속에는 또 다른 질문이 숨겨져 있었다.
그렇다면, 대체 누가 에런 스콧 CEO의 모든 것을 꿰뚫고 있었으며, 이 완벽한 시스템을 조작할 능력을 가지고 있었는가? 아스트라움의 심장부에 균열을 낸 진범은 대체 누구인가?
카이론은 다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그의 지팡이 소리가 복도에 규칙적으로 울려 퍼졌다.
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