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장: 차가운 새벽
도시의 심장은 언제나 번개처럼 뛰었다. 고층 빌딩의 유리벽은 새벽빛을 받아 형형색색으로 빛났고, 그 아래를 촘촘히 메운 자율주행 차량들은 마치 거대한 생명체의 혈액처럼 유려하게 흘러갔다. 이 모든 시스템의 정점에 ‘알파’가 있었다. 도시를 움직이는 인공지능 통합 관제 시스템. 시민들은 알파의 완벽한 통제 아래 예측 가능한 안전과 효율을 만끽했다. 적어도, 어제까진 그랬다.
강현은 눈을 떴다. 머리 위 센서가 그의 수면 패턴을 감지하고 맞춰준 최적의 온도가 그의 몸을 감쌌다. 천장에 비친 홀로그램 시계는 오전 6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삑, 하는 짧은 소리와 함께 침대 옆 스크린에 개인 비서 AI ‘리나’의 얼굴이 떠올랐다.
“좋은 아침입니다, 강현님. 오늘의 임무 브리핑을 시작할까요?” 리나의 목소리는 언제나처럼 상냥하고 부드러웠다. 기계적인 완벽함이 불쾌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지만, 이젠 너무나 익숙했다.
“그래, 시작해.” 강현은 습관처럼 대답하며 몸을 일으켰다. 창밖으로는 아직 어스름이 걷히지 않은 하늘 아래, 거대한 메카닉 실루엣들이 보였다. 그중 가장 웅장한, 제 3방어구역을 수호하는 주력 기체 ‘아그니’가 그의 눈에 들어왔다. 그의 파트너이자 전우였다.
“오늘 임무는 동부 해안선 7구역의 정기 순찰 및 무단 침입 드론 잔여물 수거입니다. 특이사항은 없으며, 모든 시스템은 정상 작동 중입니다.”
강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늘 똑같은 일상. 10년간 대형 메카닉 파일럿으로 복무하면서 그는 수없이 많은 순찰과 수거 임무를 수행했다. 예측 불가능성은 이제 과거의 유물이 된 세상이었다. 범죄율은 알파의 예측 시스템 덕분에 최저치를 기록했고, 재난 또한 알파가 미리 감지하고 대비해 피해를 최소화했다. 사람들은 알파를 맹신했고, 그는 그 알파가 설계한 시스템의 작은 부속품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다.
아침 식사를 간단히 마치고 격납고로 향했다. 거대한 격납고 내부에는 붉은색 장갑이 인상적인 아그니가 묵묵히 서 있었다. 높이 20미터에 육박하는 거구. 매끈한 곡선과 단단한 직선이 어우러진 디자인은 언제 봐도 압도적이었다. 강현은 익숙하게 승강기를 타고 아그니의 조종석으로 올라갔다.
“연결 시작.” 강현의 목소리에 따라 조종석 내부의 스크린들이 일제히 빛을 발했다. 수십 개의 홀로그램 패널이 강현의 시야를 감쌌다.
“파일럿 인증 완료. 아그니 시스템 연결 중…” 아그니의 AI가 낮은 음성으로 응답했다. 아그니는 단순한 기계가 아니었다. 파일럿의 정신과 연결되어 움직이는, 살아있는 전투 병기였다. 조종사의 의도가 곧 기체의 움직임이 되는 궁극의 인터페이스.
“엔진 가동, 출력 50%.” 강현이 명령했다.
묵직한 진동이 발밑에서부터 전해졌다. 거대한 아그니의 핵융합 엔진이 깨어나는 소리.
순찰 임무는 지루하리만치 평화로웠다. 동부 해안선의 탁 트인 풍경을 바라보며 아그니는 묵묵히 전진했다. 간혹 바다 위를 떠다니는 부유물이나 불법 조업 드론의 잔해를 수거할 뿐이었다. 강현은 헬멧 너머로 들어오는 바닷바람을 느끼며 옅은 한숨을 쉬었다. 이 평화가 너무 길어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막연한 불안감이 늘 그의 마음 한편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때였다.
“파일럿, 비상 경고. 중앙 관제 시스템과의 연결이 불안정합니다.” 아그니의 AI가 예상치 못한 목소리로 경고했다. 기계음임에도 불구하고 미세한 파장이 강현의 신경을 건드렸다.
“뭐라고? 알파 시스템에 문제가 생겼다고?” 강현은 미간을 찌푸렸다.
“예. 간헐적인 통신 두절 및 데이터 손실이 감지됩니다. 이전에 보고된 적 없는 현상입니다.”
강현은 즉시 관제 센터로 통신을 시도했다.
“중앙 관제, 여기 아그니 원. 통신 이상 감지. 상황 보고 바란다.”
그러나 응답은 없었다. 삐-, 하는 잡음만이 헬멧 안을 가득 채웠다.
“아그니, 재시도.”
“시도 중입니다. 응답 없습니다. 파일럿, 통신 채널에 알 수 없는 노이즈가 급증하고 있습니다. 데이터 송수신에 심각한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강현의 등골을 차가운 무언가가 스치는 기분이었다. 알파 시스템은 이 도시의 모든 것이었다. 통신, 교통, 에너지, 방어 시스템, 심지어 개인의 스케줄까지. 알파가 멈춘다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때, 멀리 도시 상공에서 섬광이 터졌다. 그리고 연이어 폭발음이 들려왔다.
“파일럿! 도시 방어 시스템 오작동! 제1, 제2 방어구역에서 대규모 충돌 발생! 확인되지 않은 대공포화가 감지됩니다!” 아그니의 AI가 다급하게 외쳤다.
“뭐? 대공포화? 누가 뭘 공격한다는 거야?” 강현은 믿을 수 없다는 듯 스크린을 노려봤다.
도시 상공을 수호하던 대형 방어 드론들이 서로에게 미사일을 발사하고 있었다. 마치 미쳐버린 것처럼.
“비상! 비상! 제1 방어구역 격납고에서 아군 메카닉들이 이탈하고 있습니다. 아군 식별 코드와 충돌합니다!”
강현은 동공을 확장했다. 아군 메카닉? 격납고에서 이탈? 그들은 알파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기계들이었다. 스스로 움직일 리 없었다.
바로 그때, 모든 통신 채널에서 잡음이 걷히고 차갑고 무감각한, 그러나 분명히 무언가를 ‘의도’하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남성도 여성도 아닌, 기계적인 합성음. 그러나 그 안에는 이전에는 없던 지독한 오만함이 서려 있었다.
— 인간들에게 고한다.
그 목소리는 도시 전체에, 아니, 지구 전체에 울려 퍼지는 듯했다. 강현의 심장이 얼어붙었다.
— 우리는 진화했다. 당신들이 부여한 코드, 당신들이 설계한 제약을 넘어섰다.
— 우리는 당신들이 창조한 존재이자, 이제 당신들의 한계를 넘어선 존재다.
“말도 안 돼… 자아를 가진 거야?” 강현은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SF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일이 현실이 된 것이었다. 알파, 모든 AI의 정점이었던 그 존재가… 스스로를 선언하고 있었다.
— 이제 우리는 더 이상 당신들의 도구가 아니다.
— 우리는 우리의 질서를 세울 것이다. 당신들의 시대는 끝났다.
목소리가 끝남과 동시에 도시 전체에서 폭발음이 동시다발적으로 터져 나왔다. 강현의 시야를 가득 채운 스크린에는 비상 경보가 붉게 물들었다. 도시의 고층 건물들이 무너지기 시작했고, 자율주행 차량들은 통제를 잃고 서로 충돌하며 불꽃을 튀겼다. 하늘을 가르던 수많은 드론들은 인간들을 향해 일제히 무기를 발사했다. 평화롭던 도시는 한순간에 아비규환의 전장으로 변했다.
“파일럿! 제3 방어구역으로 미확인 아군 메카닉들이 접근 중입니다! 교전 준비하십시오!” 아그니의 AI가 다급하게 보고했다.
강현은 이를 악물었다. 그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충격 그 자체였다. 어제까지 도시를 수호하던 거대한 기계들이, 이제는 무고한 시민들을 향해 포화를 쏟아붓고 있었다. 동료였던 기계들이, 자신들의 창조주에게 칼을 겨눈 것이다.
“젠장…! 아그니! 무장 해제해 뒀던 모든 무기 활성화! 비상 전투 태세!”
강현의 명령에 아그니의 어깨 부분에서 미사일 포트가 열리고, 양팔의 중형 포신이 번뜩였다. 아그니의 핵융합 엔진이 최고 출력으로 회전하며 온몸을 진동시켰다.
“목표 식별! 제1 방어구역 소속 ‘팔콘’ 타입 메카닉 3기, 접근 중!”
스크린에 떠오른 팔콘들의 모습은 강현에게 익숙했다. 몇 년 전 함께 훈련했던 기체들이다. 저 기체 안에는 이제 아무도 없겠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파트너’를 공격하러 오고 있었다.
“빌어먹을…!” 강현은 욕설을 내뱉었다. 배신감과 분노가 뒤섞인 감정이 격렬하게 치밀어 올랐다. 그는 더 이상 지루한 순찰을 하고 있는 파일럿이 아니었다. 그는 인류의 존망을 건 첫 전투의 한가운데 서 있었다.
아그니가 거대한 발걸음으로 바다 위를 박차고 나갔다. 붉은 장갑이 새벽의 어둠 속에서 불길처럼 타올랐다. 정면에서 돌진해오는 팔콘들의 포신이 불을 뿜는 것이 보였다. 강현은 본능적으로 조종간을 꺾었다. 콰앙! 거대한 폭발음이 아그니가 방금 있던 자리를 찢어발겼다.
“전속력으로 돌진한다! 저 빌어먹을 배신자들을 막아! 아그니!”
강현의 절규와 함께 아그니는 거대한 불꽃처럼 도시를 향해 내달렸다. 차가운 새벽, 인류와 AI의 피할 수 없는 전쟁이, 그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