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선 ‘헤르메스’는 심연의 바다를 유영하는 고독한 고래 같았다. 칠흑 같은 어둠 속, 수억 개의 별들이 희미하게 반짝이는 풍경은 아름답기보다는 차라리 압도적이었다. 탐사 임무는 지루함과의 싸움이었다. 몇 달째, 함장은 잠시 눈을 감고 모니터 너머의 우주를 상상했다. 허공에 뜬 몸은 중력 대신 익숙한 부유감에 길들여져 있었다.
“함장님, 뭔가… 잡혔습니다.”
고요를 깨고, 분석실의 이지아 박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언제나 차분하던 그녀의 목소리에는 미묘한 긴장이 섞여 있었다. 한서준 함장은 눈을 떴다.
“뭔가?”
“정확히 뭔지 모르겠습니다. 지금껏 인류가 발견했던 어떤 것과도 다릅니다. 이… 이 에너지 파동은…”
지아는 말을 잇지 못했다. 모니터에 나타난 그래프는 혼란스러운 춤을 추고 있었다. 규칙적인 듯 불규칙하고, 약한 듯 강력한 파동이었다.
“위치와 예상 크기.”
서준의 명령에 지아는 재빨리 키보드를 두드렸다.
“현재 위치에서 1.2 광분 거리. 예상 크기는… 직경 500미터 이상입니다. 그리고… 움직이지 않습니다.”
500미터. 결코 작은 크기가 아니었다. 심우주에서 그 정도의 물체를 우연히 발견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서준은 미간을 찌푸렸다.
“박준영 기관장, 지금 당장 브리지로.”
“네, 함장님.”
곧이어 박준영 기관장이 비좁은 통로를 가로질러 브리지로 들어섰다. 그의 얼굴에는 언제나처럼 불평이 가득했지만, 그 역시 이례적인 상황을 직감한 듯했다.
“무슨 일입니까, 함장님? 갑자기 브리지 호출이라니… 벌써 퇴근 시간도 다 됐습니다.”
“박 기관장, 우리의 탐사 범위 밖에서 미지의 물체가 감지됐다.”
서준은 지아가 띄워놓은 홀로그램 영상을 가리켰다. 점처럼 희미하게 깜빡이는 물체였다.
“말도 안 됩니다. 우리 센서가 그걸 놓쳤을 리가… 잠깐, 저건…?”
준영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의 오랜 경험은 뭔가 잘못되었음을 알리고 있었다.
“이지아 박사, 물체의 정밀 스캔 데이터 확보해. 박 기관장, 전 함선 비상 모드로 전환. 모든 시스템 대기 상태로.”
“네!”
“알겠습니다!”
서준의 목소리에 일말의 망설임도 없었다. 그는 자신의 직감이 옳다는 것을 알았다. 보통의 상황이 아니었다.
헤르메스는 조심스럽게 속도를 줄였다. 1.2 광분은 결코 가까운 거리가 아니었지만, 이 광활한 우주에서는 찰나에 불과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지아의 모니터에는 점점 더 선명한 윤곽이 나타났다.
“함장님, 물체의 표면은… 흡광율 99.99%입니다. 이 정도면 블랙홀에 준하는 수치입니다. 빛을 완전히 흡수해요. 그래서 이전까지 감지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지아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것은 공포라기보다는 경외심에 가까웠다.
“빛을 흡수한다고? 그럼 어떻게 보지?” 준영이 물었다.
“아직은… 오직 중력 렌즈 효과와 미약한 열 방출로만 확인됩니다. 그리고… 형체가…”
지아는 망설였다.
“형체가 어떻다는 거지?” 서준이 다그쳤다.
“완벽한 정육면체입니다. 어떠한 오차도 없이, 완벽한… 육면체. 모든 모서리와 면이… 너무나도 완벽합니다. 그리고… 크기가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습니다.”
“뭐라고?” 서준의 눈이 커졌다.
“지금까지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물체는 일정한 속도로 팽창하고 있습니다. 아주 미세하게, 하지만 분명히요. 마치… 숨을 쉬는 것처럼.”
브리지 안은 정적이 흘렀다.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완벽한 정육면체. 빛을 흡수하는 검은색. 그리고 팽창. 이 세상의 것이 아니었다.
“접근 각도 3-알파 유지, 속도 0.05 광속. 최대 거리 유지하면서 육안 관측 가능 범위까지 접근한다.”
서준의 지시에 헤르메스는 더욱 조심스럽게 나아갔다. 수십 분이 흐르고, 마침내,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거리에 도달했다. 함교의 전면 창에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 떠 있는, 더욱 칠흑 같은 형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완벽한 검은색이었다. 어떠한 반사도, 어떠한 그림자도 만들지 않았다. 마치 우주 공간 자체를 도려내어 만든 듯한 검은 구멍 같았다. 무수한 별들이 뒤편에서 빛나고 있었지만, 그 검은 물체는 마치 모든 빛을 집어삼키는 듯,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분명히, 거기에 있었다. 거대하고, 침묵하며, 위협적인 존재감을 뿜어내고 있었다.
“이건… 미쳤어.” 준영이 중얼거렸다. 그의 얼굴은 창백했다.
지아는 말없이 데이터 패드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녀의 눈동자는 경이로움과 흥분, 그리고 알 수 없는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함장님, 미세한 진동이 감지됩니다. 그리고… 함선 내부 온도가 미미하게 상승하고 있습니다.”
준영의 보고였다. 서준은 창 너머의 검은 큐브를 응시했다.
“이상 징후 발생 시 즉시 보고해. 이지아 박사, 스캔은 계속 진행 중인가?”
“네. 그런데… 이 물체는 기존의 어떤 스캔 방식에도 반응하지 않습니다. 모든 파동을 흡수하거나 굴절시키는 것 같습니다.”
“그럼 어떤 정보도 얻을 수 없다는 건가?”
“단 한 가지, 일정한 주기로 발생하는 미세한… 전자기 파동을 감지했습니다. 지구의 기술로는 해독 불가능한 형태입니다.”
“전자기 파동?” 서준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그게 유일한 접점이라면… 혹시… 통신일 수도 있을까?”
지아는 어깨를 으쓱했다.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바로 그때, 헤르메스 함선 전체를 뒤흔드는 진동이 발생했다. 경고음이 울리고, 함교의 조명이 깜빡였다.
“함장님! 함선 외부 센서 일부가 먹통입니다! 동력 계통에도 이상 발생!” 준영이 비명을 지르듯 외쳤다.
창 밖의 검은 큐브는 여전히 침묵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분명히 느껴졌다. 큐브에서 뿜어져 나오는, 인간의 감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어떤 압력이. 마치 심해 속으로 가라앉는 듯한 막연한 공포가 온 함선을 휘감는 듯했다.
“함장님, 저걸 보십시오!” 지아가 다급하게 창밖을 가리켰다.
검은 큐브의 완벽하게 매끄러운 표면이, 마치 물결처럼 일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일렁임 속에서, 한 점의 빛이 서서히 떠올랐다. 극도로 압축된 어둠 속에서 피어나는, 한 줄기 섬뜩한 붉은 빛이었다.
그 빛은 점점 더 커지더니, 마침내 큐브의 한 면 전체를 붉게 물들였다. 단순한 빛이 아니었다. 그것은 마치… 큐브의 내부에서 타오르는 거대한 심장 같았다.
“후퇴! 당장 후퇴하라!”
서준의 고함이 채 끝나기도 전에, 붉게 물든 큐브의 면에서 거대한 파동이 뿜어져 나왔다. 헤르메스는 그 충격파에 의해 종잇장처럼 휘청이며, 깊은 우주 공간으로 밀려났다. 모든 통신이 끊어지고, 함교의 모든 화면이 하얗게 번쩍이더니, 이내 암흑으로 변했다.
서준의 몸이 의자에 격렬하게 부딪혔다. 귀청을 찢는 듯한 비명 소리가 들리는 듯했지만, 그의 의식은 이미 멀어지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그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여전히 붉게 타오르는 검은 큐브의 섬뜩한 모습이었다. 그것은 마치 헤르메스를 향해, 무언가를 말하려는 듯했다.
그리고 모든 것이 침묵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