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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선 ‘별똥별’의 생활은 단조로웠다. 끝없는 심우주를 헤치며 미지의 영역을 탐사하는 것은 인류의 오랜 꿈이었지만, 막상 그 꿈의 한복판에 와보니 꿈보다는 현실이, 현실보다는 끝없는 커피와 인스턴트 식량의 굴레였다. 함선 내 최고 외계어 및 고대 문명 전문가인 이하은 박사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녀는 오늘도 데이터 패드를 붙들고 우주 먼지 성분표를 분석하는 시늉을 하고 있었다. 사실은 어제 밤 몰래 다운받은 고전 로맨스 드라마를 보고 잠이 부족했을 뿐이었다.
“하아… 또 먼지야.”
깊은 한숨을 쉬며 헤드셋을 고쳐 썼다. 우주 먼지 하나를 놓고 온갖 과학적 상상력을 동원해야 하는 이 지루한 일상. 차라리 외계인이 나타나서 ‘까르르르륵!’ 하고 소리 지르며 침략이라도 해줬으면 좋으련만. 물론 농담이다. 진짜 나타나면 가장 먼저 도망칠 자신 있었다.
그때였다. 찌르르륵! 하는 요란한 알림음이 함선 전체에 울려 퍼졌다. 정숙해야 할 함교 내에서 이렇게 시끄러운 알림은 오직 비상상황, 혹은 아주 중요한 발견이 있을 때뿐이었다. 하은의 얼굴에 만연하던 지루함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호기심과 긴장감이 교차했다.
“전 대원, 함교로 집결! 반복한다, 전 대원, 함교로 집결!”
강지훈 함장의 낮고 단호한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들려왔다. 그의 목소리에는 평소와는 다른 미묘한 떨림이 서려 있었다. 하은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데이터 패드를 내던지듯 책상에 놓고 함교를 향해 냅다 달렸다. 발걸음이 너무 급했던 탓일까, 복도 코너를 돌다가 정비반장 박선우와 그대로 부딪히고 말았다.
“아야야… 선우 씨, 괜찮아요?”
“하은 박사님이야말로 괜찮으십니까? 이 속도로 달리시면 이 함선, 언제 폭발해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선우는 특유의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흩어진 공구를 주섬주섬 줍고 있었다. 그는 언제나 침착하고 논리적이었으며, 하은처럼 감정 기복이 심한 사람과는 정반대에 위치한 인간이었다.
“지금 그런 농담할 때가 아니잖아요! 함장님이 전 대원 집결이라뇨! 혹시 외계인이라도 발견했나?”
하은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선우는 안경을 고쳐 쓰며 말했다. “글쎄요. 외계인보다는… 더 흥미로운 것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함교 문이 ‘쉬이이익’ 소리를 내며 열렸다. 안으로 들어서자마 이미 모든 대원들이 각자의 자리에 착석해 있었다. 함장 강지훈은 홀로그램 스크린을 노려보며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 그의 표정은 좀처럼 읽기 힘들었지만, 미간에 잡힌 깊은 주름은 그가 심각하게 고민 중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하은 박사, 선우 씨, 늦었군.”
지훈의 날카로운 시선이 하은에게 향했다. 그녀는 움찔하며 자세를 고쳐 잡았다.
“죄송합니다, 함장님! 급하게 오느라 그만…”
“됐고. 상황 보고한다.”
지훈은 스크린을 손으로 가리켰다. 홀로그램에는 거대한 암흑 공간에 떠 있는, 정체불명의 물체가 확대되어 보였다. 그것은 완벽한 정육면체의 형태를 띠고 있었는데, 표면은 흡수성 높은 흑색이었고 어떤 에너지도 방출하지 않았다.
“방금 전, ‘별똥별’ 호의 장거리 센서가 미탐사 심우주 영역에서 미지의 물체를 감지했다. 스캔 결과, 인공 구조물로 추정되며, 재질은 현재 분석 불능이다. 어떤 에너지원도 감지되지 않고, 무작위적인 중력 교란만 미미하게 확인된다.”
“인공 구조물이라고요? 그럼 외계 문명? 선행 탐사팀의 보고서에는 이 구역에 어떤 생명체 흔적도 없다고 했는데!”
하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녀의 전공 분야인 외계 문명과의 첫 접촉 가능성에 온몸의 세포가 들썩이는 기분이었다.
지훈은 스크린을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아직은 단정할 수 없다. 하지만… 위험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하지만 함장님, 이렇게 완벽한 형태의 물체는 자연적으로 형성될 수 없어요. 분명 지적 생명체가 만든 겁니다!”
옆에 있던 조종사 최유리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하은 박사님, 흥분은 좀 자제하시죠. 위험하다고 말씀하시는데 무작정 들이댈 순 없지 않습니까.”
“탐사선은 원래 미지를 탐사하는 게 목적 아닙니까? 이런 거 발견하려고 온 거잖아요!”
하은의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지훈은 그녀의 의견을 묵묵히 듣다가 고개를 들었다. 그의 시선이 하은에게 고정되었다.
“하은 박사의 의견을 수렴하여… 근접 조사를 결정한다. 단, 함선은 안전거리를 유지하고, 외부 활동은 최소화한다.”
하은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지훈은 그녀의 반응을 보고 살짝 미소 지을 뻔했지만, 이내 표정을 굳혔다.
“외부 활동조는 하은 박사와 박선우 반장으로 한다. 유리 씨는 함선에서 대기하며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네, 함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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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까만 우주복을 입은 하은과 선우는 ‘별똥별’ 호의 에어록을 통해 서서히 우주 공간으로 나왔다. 주변은 차가운 암흑과 별들의 반짝임으로 가득했다. 그리고 그 가운데, 웅장하고 미스터리한 정육면체 유물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와아… 진짜 크다.”
하은은 감탄사를 내뱉었다. 홀로그램으로 보던 것보다 훨씬 거대하고 위압적인 모습이었다. 표면은 빛을 흡수하는 듯, 주변 별빛마저 집어삼키는 듯한 묘한 질감을 가지고 있었다. 마치 우주 자체의 일부인 양,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그 자리에 떠 있었다.
“박선우 반장, 유물 표면 스캔 시작해 주십시오.”
지훈의 목소리가 통신기를 통해 들려왔다.
“알겠습니다, 함장님. 초정밀 스캔 중… 표면 재질은 기존 데이터베이스에 없는 물질입니다. 특이점은… 표면에 미세한 진동이 감지됩니다. 주기는 불규칙적입니다.”
선우는 손목에 달린 장비로 유물 표면을 탐색했다. 하은은 조심스럽게 유물에 다가갔다. 검은 표면에는 아무런 문양도, 연결 부위도 보이지 않았다. 완벽한 하나의 덩어리였다.
“함장님, 아무런 문양도… 아니, 잠시만요.”
하은은 손전등을 유물 표면에 비췄다. 그러자 빛이 닿는 순간, 검은 표면이 마치 물결처럼 일렁였다. 그리고 곧, 빛이 닿았던 자리에 아주 희미한, 하지만 분명한 기하학적인 문양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세상에…!”
하은은 숨을 들이켰다. 마치 그녀의 존재를 인식한 듯, 유물이 반응한 것이었다. 문양은 복잡했지만, 그녀의 외계어 전문가로서의 직감이 소리쳤다. ‘이건 언어다!’
“함장님! 반응합니다! 빛에 반응해서 문양이 나타났어요! 이쪽은… 삼각형과 원형이 조합된 형태네요. 이건 분명 인공적인, 그것도 고도의 기술력을 가진 문명의 흔적입니다!”
“섣불리 접촉하지 마십시오, 하은 박사!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지훈의 목소리에 경고음이 섞여 있었다.
하지만 하은은 이미 흥분에 휩싸여 있었다. 그녀의 눈은 오직 유물의 문양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녀는 장갑 낀 손을 뻗어, 가장 선명하게 빛나는 삼각형 문양을 조심스럽게 건드렸다.
그 순간, 유물 전체가 ‘웅—’ 하는 낮은 공명음을 내며 진동하기 시작했다. 검은 표면 위로 수많은 문양들이 번개처럼 빠르게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동시에, 유물에서 부드러운 오렌지색 빛이 퍼져 나오며 하은을 감쌌다.
“하은 박사! 괜찮습니까?” 선우가 다급하게 외쳤다.
“모르겠어요… 따뜻해요… 이상한 느낌… 머리가 멍해지는 것 같기도 하고…”
하은은 뭔가에 홀린 듯 중얼거렸다. 오렌지색 빛은 그녀의 우주복을 투과하여 몸속으로 스며드는 듯했다. 그녀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평소 같으면 두려움에 떨었겠지만, 지금은 알 수 없는 벅찬 감정이 그녀를 지배했다. 마치 오랫동안 잊고 있던 무언가를 떠올린 듯한, 아련하고도 강렬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때, 그녀의 머릿속에 강지훈 함장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의 엄격한 표정, 하지만 가끔씩 드러나는 인간적인 면모, 그리고 그가 자신을 걱정할 때의 미묘한 시선…
‘아… 함장님… 사실 저, 저 말이에요…!’
하은은 무언가에 이끌린 듯, 통신 버튼에 손을 댔다. 그녀의 입술이 저절로 움직였다.
“…함장님은 사실, 제가 보기엔 말이죠… 겉으론 철벽처럼 딱딱해 보여도, 속으로는 따뜻하고… 그… 사실은 좀… 귀여워요! 특히 화내실 때 미간 찌푸리는 거, 완전 깨방정 토끼 같다고 할까! 크흡! 제가 한 번 만져보고 싶다니까요!”
*사악!*
그녀의 말이 끝나자마자, 우주복 내부의 스피커에서 날카로운 잡음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그녀의 눈앞에 선우가 경악한 표정으로 외쳤다.
“하은 박사님! 통신 채널 연결됐습니다!”
하은의 머릿속을 강타하는 싸늘한 현실.
‘뭐… 뭐라고? 통신 채널이 연결됐다고? 설마… 함장님이… 다 들으셨다는 거야?!’
그 순간, 오렌지색 빛은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유물은 다시 고요하고 검은 정육면체로 돌아왔다. 하은의 얼굴은 우주복 헬멧 안에서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함선 내부의 통신 채널은 정적에 휩싸였다. 마치 모든 대원이 숨을 멈춘 듯,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잠시 후, 강지훈 함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평소보다 한 옥타브 낮고, 어딘가 차가우면서도 묘하게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목소리였다.
“…하은 박사, 박선우 반장. 즉시 함선으로 복귀한다. 유물에 대한 추가 조사는… 추후 결정한다.”
“네… 넷! 함장님!”
하은은 거의 울먹이는 목소리로 대답하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서둘러 ‘별똥별’ 호를 향해 날아갔다. 그녀의 심장은 우주 공간을 유영하는 것보다 더 빠르게 뛰고 있었다. 방금 그 유물은… 그녀에게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걸까? 그리고 그 망할 유물 때문에, 그녀는 함장님에게 돌이킬 수 없는 말을 해버리고 말았다!
함교에서는 최유리가 겨우 웃음을 참으며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그리고 함장실, 강지훈은 홀로그램 스크린에 비친 검은 유물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뇌리에는 방금 전 하은의 목소리가 끊임없이 메아리치고 있었다.
*“…깨방정 토끼 같다고 할까! 크흡! 제가 한 번 만져보고 싶다니까요!”*
강지훈의 굳건했던 표정에 아주 미묘한 균열이 생겼다. 미간이… 살짝 붉어진 것 같기도 했다. 심우주에서 발견된 정체불명의 유물은, 인류에게 새로운 미스터리를 안겨주었을 뿐만 아니라… ‘별똥별’ 호의 냉철한 함장과 천방지축 외계어 전문가 사이에도 예상치 못한 파문을 일으키고 있었다. 다음 행보는 과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