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공상과학) 독립적인 단편 소설

도시의 심장박동

지훈은 매일 밤 똑같은 풍경을 마주했다. 17층 창밖으로 펼쳐진 서울의 야경은 화려했고, 그의 아파트는 그 화려함 속 작은 점이었다. 고층 아파트의 편리함은 삶의 질을 높여주었지만, 때로는 삭막한 고독을 선물하기도 했다. 오늘도 그는 퇴근 후 텅 빈 공간에 지친 몸을 뉘였다.

“후으…”

깊은 한숨이 차가운 공기 속에 흩어졌다. 막 샤워를 마치고 나와 소파에 앉으려는데, 탁자 위에 놓여있던 컵이 ‘툭’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젠장.”

그는 낮게 욕설을 뱉으며 유리 조각을 치웠다. 피곤해서 컵을 제대로 놓지 않았겠지. 스스로를 납득시키려 했지만, 왠지 모르게 불길한 기분이 스며들었다.

다음날 아침, 출근 준비를 위해 주방으로 향했다. 토스터에 빵을 넣고 커피 머신을 켜려는데, 이미 ‘윙-‘ 하는 소리를 내며 작동 중이었다. 그는 멈칫했다. 어제 밤 분명히 전원을 뽑아 두었는데.

“설마, 고장인가?”

머리를 긁적이며 전원을 껐다. 대수롭지 않게 넘기려 했지만, 묘한 찜찜함은 가시지 않았다.

사건은 점점 기묘해지기 시작했다.
거실 한쪽 벽에 걸려있던 가족사진 액자가 떨어져 깨지는가 하면, 아무도 없는 밤중에 안방 문이 ‘끼이익’ 소리를 내며 저절로 열리기도 했다. 처음에는 바람 때문인가, 아파트의 미세한 진동 때문인가 합리화했다. 하지만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반복되자, 지훈은 점차 불안감에 휩싸였다.

어느 날 밤, 그는 소파에 앉아 멍하니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갑자기 화면이 지지직거리며 노이즈로 가득 찼다. 채널을 돌려봐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다 텔레비전이 저절로 꺼지더니, 다시 켜지며 볼륨이 최대로 올라갔다. ‘콰앙!’ 하고 터질 듯한 소음에 지훈은 소파에서 펄쩍 뛰어 올랐다.

“이게 뭐야!”

그는 황급히 리모컨으로 볼륨을 낮추고 전원을 껐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이건 더 이상 착각이나 고장이 아니었다.

지훈은 친구 수현에게 전화했다.

“야, 내가 요즘 좀 이상한 일을 겪고 있어.”
“무슨 일인데? 설마, 여자라도 생겼냐?” 수현은 장난스레 물었다.
“아니, 그런 거 말고. 우리 집에서 자꾸 이상한 일들이 벌어진다고.”
지훈은 컵이 떨어지고, 토스터가 저절로 작동하고, 텔레비전이 멋대로 켜졌던 일들을 설명했다.
수현은 잠시 침묵하더니 말했다. “너 요즘 야근 많지? 너무 피곤해서 헛것 보는 거 아니야? 아니면 그냥 낡은 아파트라 고장이 잦은 걸 수도 있고.”
“새 아파트라고! 입주한 지 2년도 안 됐어! 그리고 난 멀쩡하다고!”
“그래, 그래. 일단 진정하고. 정 찝찝하면 내가 한번 놀러 갈까? 같이 있으면 귀신도 무서워서 도망갈걸.”
수현의 농담에 지훈은 한숨을 쉬었다. “제발 와줘. 나 혼자서는 미칠 것 같아.”

주말, 수현이 지훈의 아파트를 방문했다. 지훈은 혹시라도 또 무슨 일이 생길까 초조했지만, 수현이 있는 동안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둘은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며 맥주를 마셨다.

“봐, 아무 일도 없잖아.” 수현이 빈 맥주 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네가 피곤해서 예민해진 거야.”
“그런가… 하긴, 네가 오니 좀 마음이 편하네.”
지훈이 피식 웃으려는 순간이었다.

거실 한가운데 놓인 작은 유리 테이블 위에 놓여있던 휴대전화가, 마치 보이지 않는 손에 들린 것처럼 공중으로 스르륵 떠올랐다. 그리고는 ‘쨍그랑!’ 하는 소리와 함께 벽에 부딪혀 산산조각 났다.

두 사람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수현의 입이 떡 벌어졌다.

“뭐… 뭐야 저게!” 수현이 떨리는 목소리로 외쳤다.
지훈은 공포에 질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의 눈앞에서 벌어진 일은 현실이 아니었다.

그때였다. 거실 바닥에서부터 기분 나쁜 진동이 느껴졌다. ‘우우우웅-‘ 하는 낮은 웅얼거림이 벽을 타고 온 아파트에 울려 퍼졌다. 마치 거대한 기계가 움직이는 듯한 소리였다. 거실의 소파가 ‘끽-‘ 소리를 내며 조금씩 밀려나더니, 벽 쪽으로 쿵 하고 부딪혔다.

“여… 여기 미쳤어!” 수현이 외치며 뒷걸음질 쳤다.

지훈은 정신을 차리려 애썼다. 이건 유령의 짓이 아니었다. 뭔가 다른 것이었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벽에 기대어 서 있는데, 갑자기 온몸에 전기가 흐르는 듯한 찌릿함이 느껴졌다. 아파트 전체가 거대한 스피커가 된 듯, 공기 중으로 불쾌한 주파수가 퍼져나갔다.

“이게… 대체 뭐지?” 지훈이 겨우 목소리를 냈다.

그는 문득 며칠 전 뉴스에서 본 기사가 떠올랐다. 도시 전체의 에너지 효율을 높이기 위한 새로운 ‘도시 광역 동기화 시스템’ 시험 가동에 대한 내용이었다. 설마…

거실 한가운데 놓여있던 작은 화분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흙이 사방으로 튀었고, 화분은 마치 저울에 달린 것처럼 위아래로 흔들렸다. 그 순간, 지훈은 깨달았다. 이건 미신적인 현상이 아니었다. 이 아파트는, 아니 어쩌면 이 도시 전체가, 어떤 거대한 물리적 힘의 간섭을 받고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눈에 보이지 않는 파동, 혹은 알 수 없는 에너지 필드가 이 공간을 침범하고 있었다.

“나가자, 빨리!” 수현이 지훈의 팔을 잡고 현관문으로 끌었다.

둘은 허둥지둥 아파트를 빠져나왔다. 복도는 고요했고, 다른 집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들의 아파트 안에서만 벌어진 일인 듯, 바깥 세상은 평온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온 지훈은 숨을 헐떡이며 뒤를 돌아보았다. 높게 솟은 그의 아파트 건물은 여전히 웅장하게 서 있었다.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지훈은 알고 있었다. 저곳은 더 이상 안전한 집이 아니었다. 도시의 심장박동이, 알 수 없는 주파수로 그의 공간을 잠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수현은 옆에서 여전히 떨리는 몸을 겨우 진정시키고 있었다. “우리 어디로 갈까…?”

지훈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의 눈에는 밤하늘을 찌를 듯 솟아있는 수많은 고층 건물들이, 하나같이 보이지 않는 거대한 에너지에 의해 진동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 도시의 모든 아파트들이, 언젠가 그의 집처럼 미지의 물리법칙에 의해 지배될지도 모른다는 섬뜩한 예감이 그를 사로잡았다. 그는 고개를 들어, 무심히 빛나고 있는 도시의 불빛들을 바라봤다. 그 불빛들 아래에 숨겨진 진실은 무엇일까. 이 모든 기괴한 현상들은, 인간이 감히 이해할 수 없는 차원의 간섭일까, 아니면 인간 스스로가 만들어낸 기술의 예기치 못한 부작용일까. 어쩌면 도시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살아있는 유기체가 되어버린 것일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