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슬립 (시간여행)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 청해호, 미지의 조각

우주선 ‘청해호’의 함교는 칠흑 같은 심우주 속에서 유일한 빛의 섬이었다. 수많은 패널의 조명과 모니터들이 반짝였지만, 그 빛은 바깥의 거대한 어둠을 단 한 뼘도 밀어내지 못했다.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것은 별의 잔해조차 찾아볼 수 없는, 완벽하게 비어 있는 공간뿐이었다. 인류가 도달한 가장 깊은 곳. 인류가 만날 수 있는 가장 거대한 침묵.

“함장님, 6개월째 특이사항 없음입니다. 정기 보고서 송신 완료했습니다.”

항해사 최민준이 나른한 목소리로 보고했다. 그의 등 뒤로 보이는 함교의 풍경은 수백 년 전 심해 잠수정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그 규모와 기술력만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발전했을 뿐.

서정우 함장은 턱을 괴고 멍하니 유리창 밖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의 눈빛은 끝없이 펼쳐진 암흑 속에서 무언가를 찾고 있는 듯했다. 그것은 희망일 수도, 아니면 절망일 수도 있었다.

“그래, 민준아. 오늘도 별 볼일 없군.” 서정우가 한숨처럼 중얼거렸다. “이 광활한 우주에 정말 우리만 있단 말인가?”

그때였다. 조용하던 함교에 삑삑거리는 경고음이 울려 퍼졌다. 동시에 주 모니터에 알 수 없는 에너지 패턴이 붉은색 점멸하며 나타났다.

“이상 신호! 함장님, 비행경로 0.0001도 부근에서 미지의 에너지원 포착!”
최민준의 목소리에 일말의 긴장감이 돌았다. 그는 순식간에 나른함을 지우고 패널을 능숙하게 조작했다.

수석 과학자 이지아 박사의 연구실 문이 자동으로 열리며 그녀가 급히 달려왔다. 항상 깔끔하게 묶어 올렸던 머리카락이 흐트러져 있었다.

“무슨 일입니까, 민준 씨? 제 감지기에도 이상 반응이 잡혔는데….”

“좌표 이탈은 없습니다. 하지만 전방 200만 킬로미터 지점에서… 뭔가 있습니다.” 최민준이 데이터를 분석하며 말했다. “저게 대체… 뭡니까?”

이지아는 모니터에 나타난 에너지 패턴을 보자마자 눈을 가늘게 떴다.
“이건… 기존에 알려진 어떤 우주 현상과도 일치하지 않습니다. 별의 잔해에서 나오는 것도 아니고, 블랙홀의 복사열도 아니에요. 특정 주기를 가지는 파동이에요.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살아있다고요?” 보안 책임자 김태오가 미간을 찌푸렸다. 거친 인상의 그는 항상 어떤 위협에 대비하고 있었다. “위험 요소입니까?”

“위험하다고 단정할 순 없지만… 확실히 미지의 것입니다.” 이지아가 손을 뻗어 모니터를 확대했다. “이 에너지 밀도…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수준입니다. 차원 자체를 뒤흔들 정도예요.”

서정우 함장은 심사숙고하는 표정으로 모니터를 응시했다. 수억 광년을 날아와 만난 첫 번째 ‘무언가’. 인류의 가장 오래된 질문에 대한 답이 될 수도 있었다. 혹은, 인류가 감당할 수 없는 미지의 재앙일 수도 있었다.

“항로를 변경한다. 해당 에너지원의 방향으로 최저 속도로 접근하라.” 서정우가 단호하게 명령했다.

“함장님, 너무 위험합니다! 저것이 적대적인 존재라면…!” 김태오가 반대했다.

“아니. 우리는 탐사를 위해 이곳에 왔다. 인류가 답을 찾기 위해 이 심연으로 뛰어든 것이 아닌가? 게다가… 저건 우리의 관측 범위 밖에서 갑자기 나타났다. 우리가 저것을 피하려 해도, 이미 늦었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서정우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그 속에는 확고한 의지가 담겨 있었다.

청해호는 거대한 암흑 속으로 천천히 나아갔다. 수 시간의 비행 끝에, 모니터 속 점멸하던 붉은 점은 거대한 그림자로 변했다.

“육안으로 확인 가능합니다!” 최민준이 외쳤다.

모든 이들의 시선이 전방 스크린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설명할 수 없는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거대한 다면체 구조물이 허공에 떠 있었다. 그것은 금속 같지도, 돌 같지도 않았다. 마치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표면이 끊임없이 일렁였고, 희미한 빛을 발산했다. 빛은 무지개색으로 변했다가 다시 어두워지기를 반복했다. 그 모든 변화가 우아하고 기괴했다.

“이건… 우리가 아는 물질이 아니야.” 이지아의 목소리에는 경외감과 함께 공포가 서려 있었다. “마치… 시간과 공간이 엉겨 붙어 만들어진 것 같아요.”

“크기를 측정해봐.” 서정우가 지시했다.

최민준이 계측기를 조작했다.
“길이 약 100킬로미터, 폭 50킬로미터… 거의 소행성급입니다!”

이 거대한 물체는 어떤 외력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태초부터 그곳에 존재했거나, 혹은 어떤 존재의 의지에 따라 완벽하게 형태를 갖춘 것처럼 보였다. 아무런 추진 장치도 없이, 그저 유유히 심우주를 떠다니고 있었다.

“함장님, 표면에서 알 수 없는 주파수가 감지됩니다. 특정 패턴을 가지고 있어요. 마치… 메시지처럼.” 이지아가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해석 가능합니까?”

“아직은… 하지만 연구할 가치는 충분합니다. 접근하여 샘플을 채취해야 합니다.”

“안 됩니다, 박사님! 저것이 우리에게 적대적일지 아닐지 알 수 없습니다.” 김태오가 다시 반대했다. 그의 손은 이미 허리춤의 방어구에 얹혀 있었다.

“태오 말도 일리가 있다.” 서정우는 잠시 고민했다. “일단 탐사선을 보내 표면 조사를 먼저 진행한다.”

탐사선 ‘스카우트-1’이 청해호의 도킹 베이에서 분리되어 유물 쪽으로 천천히 이동하기 시작했다. 모든 승무원이 숨을 죽이고 스크린을 주시했다. 스카우트-1이 유물의 표면에 다가가자, 유물의 일렁이던 빛이 더욱 강해지는 것이 보였다. 마치 스카우트-1의 접근을 인지하는 것처럼.

“이상 없습니다. 탐사선 안정적으로 접근 중… 표면 200미터 지점.” 최민준이 보고했다.

이지아는 탐사선 카메라로 전송되는 유물의 표면 영상을 확대했다. 표면은 매끄럽고 불규칙한 문양들로 가득했다. 그것은 문자인가, 아니면 그림인가? 마치 심연의 비밀을 담고 있는 고대 상형문자 같았다.

그때, 유물의 표면에서 파장이 일었다. 아주 미세한 진동이었지만, 스카우트-1의 센서가 포착하기에 충분했다.

“이상 감지! 유물 표면에서 강력한 에너지 파동이 방출됩니다!” 최민준의 목소리가 다급해졌다.

“스카우트-1! 즉시 회수해!” 서정우가 명령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유물에서 뿜어져 나온 파동은 스카우트-1을 덮쳤다. 탐사선은 한순간에 모든 시스템이 먹통이 된 듯 흔들렸다. 스크린에는 지직거리는 노이즈와 함께 탐사선의 마지막 모습이 잡혔다. 유물의 표면과 접촉하기 직전의, 희미한 왜곡과 함께 번뜩이던 그 모습.

“스카우트-1과의 통신 두절! 모든 센서 마비! 함장님, 탐사선이… 사라졌습니다!” 최민준이 경악하며 외쳤다.

‘사라졌다?’ 서정우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파괴된 흔적도, 파편도 없었다. 마치 존재 자체가 지워진 것처럼.

바로 그때, 청해호 전체가 강하게 흔들렸다. 함교의 불빛이 순식간에 암전 되었다가 다시 들어왔다. 시스템 경고음이 사방에서 터져 나왔다.

“주 전원 50% 하락! 보조 시스템 가동! 쉴드 출력 이상! 외부 센서 일부 마비!” 기술 담당 박선우가 비명을 지르듯 보고했다.

“무슨 일이야?!” 서정우가 소리쳤다.

“모릅니다! 유물에서 방출된 파장이 청해호에 직접 영향을 미친 것 같습니다!” 이지아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 순간, 최민준이 앓는 소리를 내며 머리를 움켜쥐었다. 그의 몸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민준아! 괜찮나?” 서정우가 그를 불렀다.

최민준은 고개를 들었지만, 그의 눈빛은 초점을 잃은 듯 멍했다. 그의 얼굴에는 식은땀이 흘렀다.

“함장님… 봤습니다.” 최민준이 헛된 숨을 쉬며 말했다. “봤어요… 제가… 제가 스카우트-1이 됐습니다. 아니… 스카우트-1이… 제가 됐습니다.”

모두가 혼란스러운 눈으로 최민준을 바라봤다. 그가 무슨 헛소리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민준아, 정신 차려!” 김태오가 그에게 다가가 어깨를 붙잡았다.

하지만 최민준은 김태오의 손길을 뿌리치고 비틀거리며 뒷걸음질 쳤다. 그의 눈은 여전히 허공의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었다.

“지금이 아닙니다… 여긴… 여기가 아니에요….” 최민준이 중얼거렸다. 그의 목소리에는 두려움과 함께 알 수 없는 절규가 섞여 있었다.

그의 눈에 다시 초점이 돌아오는가 싶더니, 갑자기 몸이 활처럼 휘었다. 고통에 찬 신음이 그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그리고는 그의 눈에 맺힌 영상이, 마치 깨진 거울 조각처럼 파르르 흔들리며 완전히 다른 풍경을 비춰냈다.

함교의 유리창 너머, 칠흑 같은 심우주 대신, 무수히 많은 인공 구조물들이 하늘을 뒤덮은 푸른 행성의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잠시 동안* 펼쳐져 있었다.
그것은 마치 꿈결 같았고, 모든 승무원이 착각한 것처럼, 너무나도 짧은 순간의 환영이었다.

하지만 최민준만은 그 환영 속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했다. 그는 비틀거리다 결국 쓰러졌다. 그의 몸 주변으로, 보이지 않는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듯했다. 그리고 그의 입에서 마지막으로 튀어나온 단어는, 모든 이들의 심장을 얼어붙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과거.”

유물은 여전히 침묵하며, 섬뜩한 무지개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청해호는 미지의 시간의 심연 속으로, 지금 막 발을 들여놓은 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