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현실 게임 (VRMMO) 라이트 노벨의 흥미진진한 챕터

# 잔혹한 복수의 서곡

고요한 어둠이 짙게 깔린 ‘아르카나’의 잊혀진 광야. 한때는 모험가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던 곳이었으나, 지금은 뼈대가 앙상한 나무들과 을씨년스러운 바람 소리만이 이 세계의 폐허를 증언하고 있었다. 그 황량한 풍경 속, 그림자처럼 묻힌 한 존재가 움직이고 있었다.

낡고 거친 천으로 얼굴의 절반을 가린 남자. 그의 이름은 강재혁이었다. 과거의 재혁이라면 텁수룩한 금발 머리에 순박한 미소를 지녔을 테지만, 지금 그의 머리칼은 마치 깊은 밤하늘처럼 검었고, 입매는 메마른 땅처럼 굳어 있었다. 얼굴을 가린 천 위로 드러난 눈은 맹수처럼 날카로운 빛을 뿜어냈다. 검게 코팅된 가죽 갑옷은 그의 몸에 착 달라붙어 움직임에 방해되는 것이 없었고, 허리춤에는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만큼 작고 섬뜩한 단검이 매달려 있었다.

그는 망설임 없이 발길을 옮겼다. 한 걸음, 한 걸음. 그의 발소리는 먼지조차 일으키지 않을 만큼 가벼웠지만, 그 속에는 심장을 꿰뚫을 듯한 서늘한 무게가 담겨 있었다.

**[경고: ‘부패한 영혼의 감시자’가 당신을 감지했습니다!]**
**[경고: 강력한 원거리 공격이 시작됩니다!]**

어둠 속에서 붉은 눈을 번뜩이며 거대한 육체를 드러낸 몬스터가 으르렁거렸다. 한때 이 지역의 맹주로 군림했던 ‘부패한 영혼의 감시자’였다. 일반 유저들에게는 강력한 레이드 보스 급의 몬스터였지만, 재혁의 눈에는 그저 길을 막는 하찮은 존재일 뿐이었다.

“거슬리는군.”

재혁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허공에 흩어졌다. 그는 허리춤의 단검을 뽑지도 않았다. 대신 오른손을 뻗자, 손바닥 위에 검은색 마력 구체가 형성되었다. 지독한 어둠을 응축시킨 듯한 그 구체는 주변의 빛마저 흡수하는 듯했다.

**[스킬 ‘어둠의 일격’이 발동됩니다!]**

그의 손에서 뿜어져 나간 어둠의 구체는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포물선을 그리며 감시자의 심장을 정확히 노렸다. 감시자는 거대한 팔을 휘둘러 막아보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콰아앙!* 폭발음과 함께 몬스터의 육체가 산산이 부서졌다.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감시자의 생명력 바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축하합니다! ‘부패한 영혼의 감시자’를 처치했습니다!]**
**[경험치 1,200,000을 획득했습니다!]**
**[아이템 ‘감시자의 심장 파편’, ‘오염된 마력 핵’을 획득했습니다!]**

재혁은 아무런 미동도 없이 아이템 창을 훑어본 뒤, 묵묵히 전리품을 챙겼다. 그의 눈은 여전히 차가웠다. 이 정도는 그에게 아무것도 아니었다. 사실, 어떤 강력한 몬스터도 그의 마음속에 박힌 불타는 증오 앞에서는 보잘것없는 존재였다.

그의 시선은 저 멀리, 거대한 성벽으로 둘러싸인 도시를 향했다. 그 도시의 중심에는 ‘새벽의 여명’ 길드의 상징인 거대한 황금색 깃발이 휘날리고 있었다. 이도윤. 그의 오랜 친구이자, 자신을 가장 잔인하게 배신했던 그 남자가 그곳에 있었다.

*그날 밤,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황금 비늘 던전의 심층부. 거대한 드래곤의 시체가 쓰러져 있었고, 재혁은 환호하는 길드원들 사이에 서 있었다. 그는 누구보다 앞장서서 드래곤의 맹공을 막아냈고, 덕분에 길드는 창립 이래 최고의 전리품을 손에 넣게 되었다.

“재혁아! 역시 너야! 네 덕분에 우리가 해냈어!”

가장 먼저 달려와 그의 어깨를 두드린 것은 이도윤이었다. 길드의 부길드장이자, 재혁의 가장 친한 친구였다. 그의 얼굴에는 순수한 기쁨과 감사가 가득했다. 재혁은 도윤의 미소를 보며 덩달아 웃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의 세상은 더없이 밝고 따뜻했다.

길드원들이 전리품 분배를 위해 잠시 자리를 비웠을 때였다. 도윤은 재혁에게 은밀히 다가왔다.

“재혁아, 잠깐 할 이야기가 있어.”

그의 목소리에는 평소와는 다른 미묘한 떨림이 있었다. 재혁은 아무런 의심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도윤의 손에 들린 단검이 섬광처럼 빛나는 순간, 재혁의 심장이 얼어붙었다.

*콰직!*

등 뒤에서 느껴진 칼날의 섬뜩한 감촉. 피가 솟구치는 고통과 함께 재혁은 자신의 생명력이 순식간에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그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싸늘하게 굳은 얼굴의 이도윤이 서 있었다. 그의 손에 들린 단검은 재혁의 특급 유니크 방패인 ‘수호자의 맹세’를 꿰뚫고 있었다.

“미안하다, 재혁아. 이건 어쩔 수 없었어.”

도윤의 목소리는 지독히도 차가웠다. 그의 눈동자에는 더 이상 친구를 향한 따뜻함이 없었다. 오직 탐욕과 야망만이 번득이고 있었다.

**[경고: ‘이도윤’ 플레이어에게 치명적인 공격을 받았습니다!]**
**[당신의 생명력이 0이 되었습니다!]**
**[당신은 사망했습니다! 경험치와 아이템을 일부 잃습니다!]**

피투성이로 쓰러져 가는 순간, 재혁의 눈에 마지막으로 들어온 것은 도윤의 손에서 빛나는 ‘수호자의 맹세’였다. 그의 길드원들은 멀리서 그 모습을 보고도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오히려 몇몇은 알 수 없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것은 배신이었다. 가장 친한 친구에게, 그리고 자신이 모든 것을 바쳤던 길드에게 당한 잔혹한 배신.

*그날 이후, 강재혁은 죽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복수자’가 다시 태어났다.*

“도윤아.”

재혁의 입술 사이로 서늘한 이름이 흘러나왔다. 그의 눈빛은 짙은 증오로 타올랐다.

“네가 나에게 선물했던 절망을, 이제 네가 돌려받을 차례야. 아주 조금씩, 천천히.”

재혁은 걸음을 재촉했다. 그의 목표는 ‘황금 비늘의 둥지’였다. 이도윤이 부길드장으로 있는 ‘새벽의 여명’ 길드의 핵심 전진 기지이자, 가장 중요한 보급로가 지나가는 길목이었다. 길드원들의 휴식처이자 자랑거리인 그곳을, 재혁은 박살 낼 작정이었다.

황금 비늘의 둥지 입구는 삼엄한 경비 속에 있었다. 거대한 문 옆에는 길드의 상징인 황금 사자 문양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재혁은 그림자 속에 몸을 숨겼다. 그의 시야에 길드원들의 움직임이 하나하나 포착되었다.

특히 그의 눈을 사로잡은 인물이 있었다. ‘크로노스’. 한때 재혁과 함께 던전을 누비던 길드의 정예 딜러였다. 이도윤의 가장 충실한 심복 중 한 명. 그날의 배신에도 분명히 가담했을 인물.

“네가 첫 번째야.”

재혁은 조용히 속삭였다. 그는 그림자 속으로 완전히 녹아들었다.

**[스킬 ‘그림자 걷기’가 활성화됩니다!]**
**[당신의 존재감이 극도로 희미해집니다.]**

크로노스는 경계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는 능숙하게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하지만 재혁의 그림자 걷기 스킬은 게임 내에서도 최상위 은신 스킬 중 하나였다. 설령 눈앞에 재혁이 있다 하더라도, 그가 의식하지 못하면 알아차릴 수 없을 정도였다.

재혁은 크로노스의 등 뒤에 완벽하게 달라붙었다. 그의 손에는 ‘밤의 비수’라고 불리는 단검이 쥐어져 있었다. 어둠의 마력이 서린 날은 희미하게 빛났다.

“누구냐!”

크로노스가 뒤늦게 인기척을 감지하고 몸을 돌리려는 순간, 재혁의 비수가 그의 목을 갈랐다. *쉬이익!* 소름 끼치는 소리와 함께 비수가 크로노스의 목을 깊숙이 베었다.

**[치명타! ‘크로노스’ 플레이어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혔습니다!]**
**[출혈 디버프가 적용됩니다!]**

크로노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자신의 목을 부여잡았다. 생명력이 미친 듯이 줄어들고 있었다. 그는 비틀거리며 재혁을 바라보았다. 얼굴을 가린 천 너머, 섬뜩한 눈빛이 자신을 응시하고 있었다.

“누, 누구…?”

크로노스는 말을 잇지 못했다. 재혁은 그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네 길드장에게 전해. 지옥에서 온 선물이 도착했다고.”

마지막 말을 끝으로, 재혁은 밤의 비수를 크로노스의 심장에 꽂아 넣었다.

**[축하합니다! 대형 길드 ‘새벽의 여명’ 소속 ‘크로노스’를 처치했습니다!]**
**[명성 +500을 획득했습니다!]**
**[카오틱 수치 +100을 획득했습니다!]**

시스템 메시지가 떴지만, 재혁의 표정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크로노스는 그 자리에서 아이템을 흩뿌리며 회색빛으로 변해 사라졌다. 재혁은 뒤처리도 없이 그 자리를 떠났다. 그가 사라진 뒤에도, 죽음의 차가운 기운만이 남았다.

‘새벽의 여명’ 길드 본부. 이도윤은 여유롭게 길드원들에게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최근 길드의 세력은 전례 없이 확장되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이 자신의 능력 덕분이라고 생각하며, 그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띠었다.

“길드장님! 큰일 났습니다!”

급하게 뛰어들어온 길드원의 외침에 이도윤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무슨 일인가? 그렇게 호들갑을 떨 일이야?”

“크… 크로노스님이… 황금 비늘의 둥지 앞에서 죽었습니다!”

“뭐라고? 크로노스가? 누가 감히 그를 공격했지? ‘황금 비늘의 둥지’는 길드원 외에는 접근하기 힘든 곳이 아닌가?”

이도윤의 목소리가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크로노스는 길드의 핵심 인물이었다. 그가 죽었다는 소식은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문제였다.

“그… 그것이… 누군가 기습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남긴 메시지가…”

길드원은 잔뜩 겁먹은 목소리로 말을 더듬었다.

“메시지? 무슨 메시지인가?”

“지… 지옥에서 온 선물이 도착했다고… 길드장님께 전하라고… 했다고 합니다.”

이도윤의 얼굴에서 모든 웃음기가 사라졌다. 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지옥에서 온 선물이라니. 그리고 그 죽음의 방식. 섬뜩하게 목을 긋고 심장을 꿰뚫는.

문득, 오래전의 기억이 번개처럼 그의 뇌리를 스쳤다. 자신의 손으로 직접 죽였던 그 남자. 강재혁.

“강재혁… 설마… 그 자식이 살아있단 말인가?”

이도윤의 입술에서 떨리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는 그날의 배신 이후, 재혁이 아르카나에서 완전히 사라졌다고 생각했다. 복수를 꿈꿀 수 없을 만큼 처절하게 무너졌으리라 믿었다. 하지만, 만약 그가 돌아온 것이라면…

그의 등골로 한 줄기 소름이 돋아났다.

어둠 속으로 사라진 재혁의 그림자는 다음 목표를 향해 묵묵히 나아가고 있었다. 그의 발걸음은 더욱더 확고해졌다.

“도윤아, 이제 시작일 뿐이야. 네가 나에게서 앗아간 모든 것을, 내가 너에게서 돌려받을 차례니까.”

그의 입가에 잔혹한 미소가 걸렸다. 그 미소는 마치 지옥의 심연에서 피어난 꽃처럼 섬뜩하고 아름다웠다. 파멸의 서곡은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