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 스릴러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제12화: 폐허의 그림자**

정적이 폐허가 된 백화점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썩어가는 먼지와 곰팡이 냄새가 콧속을 찔렀다. 지우는 부서진 쇼윈도 너머로 회색빛 하늘을 올려다봤다. 언제 봐도 숨이 막히는 풍경이었다. 콘크리트 건물들은 뼈대만 앙상하게 남았고, 그 사이로 기형적으로 자란 덩굴식물들이 거대한 촉수처럼 얽혀 있었다. 인류 문명의 자랑이었던 모든 것이, 이제는 이름 없는 종말의 기념비가 되어 버렸다.

“지우 씨, 뭘 그렇게 봐요? 시간 없어요.”

현의 목소리가 등 뒤에서 날아왔다. 늘 그랬듯, 날카롭고 무심한 어조였다. 지우는 어깨를 으쓱하며 고개를 돌렸다. 현은 이미 총을 든 채 조심스럽게 계산대 잔해를 넘어가고 있었다. 그의 뒤를 따르던 세라는 잔뜩 겁먹은 얼굴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여전히 어린아이처럼 연약한 모습. 지우는 그런 세라의 옆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저 아이를 데리고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여긴 딱히 건질 게 없어 보이는데.” 현이 중얼거렸다. 그의 눈은 빠르게 텅 빈 진열대들을 스캔하고 있었다. “최소한 식량이나 물은커녕, 쓸만한 공구도 없어.”

“어쩌면 지하 창고 같은 데가 있을지도 몰라요.” 지우가 말했다. 그녀는 빛바랜 안내도를 발견하고 손으로 먼지를 닦아냈다. 대부분이 지워져 있었지만, 한쪽 구석에 흐릿하게 표시된 ‘STORAGE B3’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지하 3층에 저장고가 있었네요.”

현의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 “지하 3층? 위험할 텐데.”

“그래도 시도해 볼 만해요. 여기 위에선 뭘 찾기 힘들잖아요.” 지우는 설득하듯 말했다. 며칠째 물 한 모금 제대로 못 마신 상태였다. 배고픔은 이제 익숙했지만, 갈증은 늘 그녀의 신경을 갉아먹었다.

“하아… 알았어요. 그럼 지우 씨가 앞장서요. 세라는 내 옆에 붙어 있고.” 현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은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잠겨 있었다. 휴대용 랜턴 불빛이 좁은 시야를 겨우 확보했다. 삐걱이는 금속음이 들릴 때마다 세라의 몸이 움찔거렸다. 지우는 애써 침착한 표정을 유지하며 앞장섰다. 계단참에 다다르자, 서늘한 공기가 피부에 와닿았다. 지하 특유의 곰팡내와 함께, 알 수 없는 퀴퀴한 냄새가 섞여 있었다. *습하다. 그리고… 축축한 흙냄새?*

지하 2층은 직원 사무실과 창고로 쓰였던 공간 같았다. 서류더미와 찢겨진 상자들이 널려 있었다. 지우는 빠르게 주변을 훑으며 혹시 모를 위협을 경계했다. 그 순간, 그녀의 시야에 뭔가가 스쳤다.

“잠깐.”

지우가 멈춰 서자, 뒤따르던 현과 세라도 멈췄다. 현이 조용히 총을 고쳐 잡았다.

“뭘 본 건가요?” 현이 속삭이듯 물었다.

지우는 랜턴을 한쪽 벽으로 비췄다. 희미한 불빛 아래, 벽에 긁힌 자국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손톱으로 긁은 듯한, 거칠고 깊은 흔적이었다. 문제는 그 높이였다. 사람의 키를 훌쩍 넘는 곳까지 닿아 있었다.

“이건…” 세라가 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사람이 한 짓 같진 않네요.” 현이 낮게 읊조렸다. “아니, 어쩌면… 사람의 짓이 아닐 수도.”

세 명은 침묵 속에 서로를 쳐다봤다. 이 세계에는 ‘사람’이 아닌 존재들이 너무도 많았다. 변형된 동물들, 알 수 없는 균에 감염된 인간들, 그리고…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기괴한 것들. 그들의 존재는 늘 생존자들의 신경을 옥죄는 그림자였다.

지우는 고개를 저었다. “어쨌든, 3층으로 내려가요. 여긴 더 이상 머물고 싶지 않아요.”

지하 3층으로 향하는 계단은 더 깊고 어두웠다. 공기는 더욱 차가워졌고, 퀴퀴한 냄새는 코를 찌를 듯 강해졌다. 계단 끝에 다다르자, 거대한 철문이 나타났다. 녹슨 문은 한눈에 봐도 굳게 잠겨 있었다.

“젠장. 잠겨 있잖아.” 현이 짜증스럽게 중얼거렸다. 그는 문고리를 잡아 흔들었지만, 꼼짝도 하지 않았다.

지우는 문 주변을 살폈다. 문틈으로 새어 나오는 희미한 빛이 그녀의 눈에 포착됐다. “여기, 열려 있어요.”

문 아래쪽 틈새로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낡은 고무 패킹이 찢어져 생긴 틈이었다. 지우는 조심스럽게 랜턴을 그 틈으로 비춰 보았다. 좁은 빛줄기가 어둠 속을 가르자, 그녀의 눈이 순간적으로 크게 뜨였다.

틈새 너머에는… 누군가 있었다.

“뭐… 뭐예요?” 세라가 뒤에서 속삭였다.

지우는 숨을 들이켰다. 틈새로 보인 것은 움직이는 그림자였다. 그것은 사람이 아니었다. 최소한, 온전한 사람의 형태는 아니었다. 길고 비정상적으로 구부러진 팔다리, 기어 다니는 듯한 움직임. 그리고… 뼈와 살이 뒤섞인 듯한, 섬뜩한 윤곽.

“젠장!” 현이 급히 총을 들어 올렸다. “문 열어요! 당장!”

그의 외침과 동시에, 문 안쪽에서 ‘쿵!’ 하는 둔탁한 소리가 울렸다. 무언가 거대한 것이 문에 부딪힌 듯한 소리였다. 문 전체가 울렸다. 틈새로 보이는 그림자의 움직임이 격렬해졌다.

“이게… 대체 뭐야?” 세라의 목소리가 공포에 질려 갈라졌다.

지우는 문고리 주변을 더듬었다. 낡은 번호 자물쇠가 달려 있었다. 숫자판은 녹슬어 있었고, 일부 숫자는 아예 떨어져 나가 있었다.

“비밀번호가… 망가졌어.” 지우가 이를 악물었다. “부술 수밖에 없어.”

“시간 없어! 어서 부숴요!” 현이 소리쳤다. 그는 이미 총 개머리판으로 문을 내리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콰앙! 콰앙!’

문 안쪽에서 충격이 계속됐다. 이번에는 더욱 강하게, 문이 안쪽으로 튀어 오르는 듯했다. 틈새 너머로 기괴한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갈비뼈가 부러지는 듯한 소리, 혹은 짐승이 내는 낮은 으르렁거림 같았다.

현이 총 개머리판으로 자물쇠 부분을 내리쳤다. ‘꽝!’ 둔탁한 소리와 함께 문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하지만 철문은 견고했다.

“안 돼! 이대로는 안 열려!” 현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지우는 순간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이 문을 부수는 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릴 터였다. 그렇다면… 다른 방법은? 그녀의 시야에 희미하게 보존된 벽면의 소화전이 들어왔다. 비상용 도끼가 있을지도 몰랐다.

“현 씨! 저기!” 지우가 소화전을 가리켰다.

현은 지우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하며 다시 문을 내리쳤다. 그는 완전히 패닉에 빠져 있었다.
*이대로는 모두 죽는다.*

지우는 망설임 없이 소화전으로 달려갔다. 녹슨 유리문을 박살내자, 붉은색 비상 도끼가 모습을 드러냈다. 묵직한 손잡이를 잡는 순간, 차가운 금속이 그녀의 손아귀에 감겼다.

그녀는 현에게 다가가며 소리쳤다. “현 씨, 비켜요!”

현은 그녀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계속 문을 내리치고 있었다. ‘쿵! 쿵!’ 내부의 존재는 끊임없이 문을 공격하고 있었다. 이제 틈새가 더 벌어져, 안쪽의 섬뜩한 그림자가 더 선명하게 보였다. 길고 뼈만 앙상한 손가락이 틈새로 스멀스멀 기어 나오는 것 같았다.

“비키라고 했잖아!” 지우는 현을 밀치고 문으로 달려들었다.

도끼를 들어 올렸다. 그녀의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망설일 시간은 없었다. 그녀는 모든 힘을 실어 자물쇠 부분을 내리찍었다.

‘콰앙!’

귀를 찢을 듯한 금속음이 지하 공간을 울렸다. 도끼날이 자물쇠를 그대로 관통하며 철문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그러나 한 번으로는 부족했다.

문 안쪽에서 섬뜩한 울부짖음이 터져 나왔다. 이번엔 더 가까이, 더 분명하게. 마치 문 바로 뒤에서 그 괴물이 울부짖는 듯했다. 소리는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짐승의 포효와 인간의 고통스러운 비명이 기괴하게 뒤섞인 소리였다.

세라가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았다. “엄마… 흐흑…”

지우는 숨을 헐떡이며 도끼를 다시 들어 올렸다. 피로에 지친 팔은 이미 떨리고 있었지만, 그녀는 정신력으로 버텼다. *살아야 해. 살아남아야 해.*

두 번, 세 번, 네 번… 그녀는 미친 듯이 도끼를 내리찍었다. 철문이 찢어지고 자물쇠 부분이 너덜너덜해졌다. 마침내 마지막 일격이 터지자, 낡은 자물쇠가 ‘쨍그랑!’ 하는 소리와 함께 부서져 떨어져 나갔다.

‘끼이이익… 쾅!’

문이 안쪽으로 밀려 열렸다. 동시에, 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썩은 냄새와 함께 거대한 그림자가 튀어나왔다.

“쏴!” 현이 소리쳤다.

현의 총구에서 불꽃이 터져 나왔다. ‘탕! 탕! 탕!’ 총알이 괴물의 몸을 꿰뚫었지만, 그것은 아랑곳하지 않고 지우를 향해 달려들었다.

괴물의 모습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끔찍했다. 피부는 벗겨지고 근육과 뼈가 드러난 형체. 길고 날카로운 손톱, 그리고 텅 비어 있는 듯한 안와. 그것은 비정상적으로 빠르고 기괴하게 움직였다. 팔다리는 관절이 뒤틀린 채로 사방으로 꺾여 있었다.

지우는 간발의 차이로 옆으로 몸을 날렸다. 괴물의 날카로운 손톱이 그녀가 서 있던 자리를 허공으로 갈랐다. 서늘한 바람이 뺨을 스쳤다.

현은 계속해서 총을 쐈다. 그러나 괴물은 마치 총알이 박히는 것을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꾸준히 지우에게 달려들었다. *아니, 나에게?*

괴물은 목표를 바꿨다. 총을 쏘는 현이 아닌, 무방비 상태로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세라를 향해 돌진했다.

“세라!” 지우가 소리쳤다.

하지만 늦었다. 괴물의 길고 기형적인 손이 세라의 어깨를 붙잡았다. 세라의 입에서 짧은 비명이 터져 나왔다.

“안 돼!” 현이 미친 듯이 총을 쏘아댔지만, 괴물은 세라를 방패 삼아 움직였다. 총알이 빗나갔다.

지우의 눈에 싸늘한 광기가 스쳤다. *세라를 놔줄 리 없어. 저 괴물은… 저런 방식으로 사냥하는군.*

그녀는 도끼를 든 채 괴물에게 달려들었다. 괴물의 등에 도끼를 박아 넣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괴물은 예상보다 빨랐다. 세라를 한 손으로 잡은 채, 다른 손을 휘둘러 지우를 막았다. 날카로운 손톱이 지우의 팔을 스쳤다.

‘흐윽…’

피가 솟구쳤다. 아픔이 정신을 아득하게 만들었지만, 지우는 이를 악물었다. *이대로 죽을 순 없어!*

그때, 현이 기지를 발휘했다. 그는 괴물이 세라를 잡고 있는 팔이 아닌, 다리를 겨냥해 사격했다. ‘탕!’ 정확히 무릎 관절을 맞췄다.

괴물의 몸이 휘청거렸다. 세라를 잡고 있던 손의 힘이 약해졌다.

“지금이야! 세라!” 지우가 소리쳤다.

세라는 공포에 질린 얼굴로 지우를 바라봤다. 그녀의 눈빛에는 살려달라는 간절함이 가득했다. 지우는 주저하지 않았다. 그녀는 마지막 남은 힘을 쥐어짜, 괴물의 다리에 박힌 도끼를 깊숙이 밀어 넣었다.

‘꾸웨에엑!’

괴물에게서 끔찍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인간의 성대에서 나올 수 없는, 찢어지는 듯한 소리였다. 괴물은 세라를 놓치고 바닥에 고꾸라졌다.

“뛰어! 지우 씨! 세라!” 현이 외쳤다.

셋은 미친 듯이 지하 3층 문을 뛰쳐나왔다. 뒤에서는 괴물의 끔찍한 울음소리가 계속해서 쫓아오는 듯했다. 그들은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발소리가 폐허 같은 공간에 요란하게 울렸다.

겨우 1층으로 빠져나왔을 때, 세라는 주저앉아 흐느꼈다. 현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총을 든 채 주변을 경계했다. 지우는 팔에서 피가 흐르는 것도 잊은 채, 불안한 시선으로 지하 계단 쪽을 응시했다.

“우리가… 우리가 뭘 본 거죠…?” 세라가 흐느끼며 물었다.

현은 대답 없이 굳은 얼굴로 서 있었다. 그의 눈빛에도 짙은 공포가 드리워져 있었다.

지우는 고개를 숙였다. *저게… 그 저장고를 지키고 있었던 걸까? 아니면… 저곳에서 살아가던 존재였을까?*

그녀의 머릿속에 아까 문틈으로 본 그림자가 다시 떠올랐다. 움직이는 그림자, 비정상적인 형태, 그리고 뼈와 살이 뒤섞인 듯한 윤곽.

이 모든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하나의 섬뜩한 질문이 그녀의 뇌리를 스쳤다.

*저 괴물은… 원래부터 저런 모습이었을까? 아니면… 원래 인간이었던 걸까?*

그녀의 팔에서 흐르는 피가 차가운 바닥에 뚝, 뚝 떨어졌다.
세상에 살아남은 인간이라는 존재의 의미가, 그녀의 심장을 더욱 날카롭게 찔러 들어왔다.
살아남았다고, 과연… 인간으로 남아있는 것일까.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이를 악물었다. 그녀의 심장은 여전히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아니, 뛰어야만 했다. 살아남기 위해. 하지만 무엇을 위해?
그녀의 눈동자에, 폐허가 된 도시의 회색빛 하늘이 그림자처럼 드리워졌다.
그리고 그 하늘 아래, 또 다른 그림자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직 끝나지 않은, 절망적인 생존의 서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