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 라이트 노벨의 흥미진진한 챕터

벽산문의 문주(門主), 벽산객(碧山客)의 비명은 짧고도 끔찍했다. 밤늦도록 이어지던 연회장의 흥청거림은 그의 비명 한 자락에 거짓말처럼 증발해버렸다. 뒤이어 문주의 방에서 터져 나온 하인들의 경악성. 그것은 혼돈의 서곡이었다.

“문주님! 문주님께서…!”
“이럴 수가! 문이 안에서 잠겨 있어!”

건장한 무사들이 억지로 문을 부수고 들어섰을 때, 방 안은 이미 피로 물든 참극의 현장이었다. 문주는 바닥에 쓰러져 있었고, 그의 가슴에는 검은 손잡이의 비수(匕首)가 깊이 박혀 있었다. 눈은 광기 어린 경악으로 부릅떠 있었고, 입술은 무언가 외치다 굳어버린 듯 반쯤 벌어져 있었다.

무엇보다 모두를 경악시킨 것은, 방의 상태였다. 창문은 쇠창살로 굳게 막혀 있었고, 문은 안에서 철제 빗장과 덧문으로 이중 잠금 되어 있었다. 외부인이 침입할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야말로 완벽한 밀실(密室).

“대체, 대체 누가 이런 짓을…!”
벽산객의 아우인 벽산철(碧山鐵)이 분노와 절망이 뒤섞인 목소리로 외쳤다. 그의 눈은 주변의 모든 이들을 의심하는 듯 번뜩였다.

그때였다. 소란스러운 군중 사이를 비집고 한 사내가 유유히 걸어왔다. 흰 도포 자락을 휘날리며, 한 손에는 늘 그러하듯 접힌 부채를 들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서생처럼 희고 단정했지만, 흔들림 없는 눈빛은 모든 혼돈을 꿰뚫어 보는 듯했다.

“설 명탐정! 이 늦은 시각에 어쩐 일이십니까?”
누군가 그를 알아보며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사내는 고개를 까닥였다. “이런 비명 소리에 잠 못 이루는 것은 비단 벽산문 사람들만이 아니지요. 소란이 잠시 사그라든 틈을 타, 죽은 이의 부름을 받고 왔을 뿐입니다.”

천하제일 명탐정, 설무진(薛無塵). 그는 무림에서 가장 기이한 존재 중 하나였다. 검 한 자루 제대로 휘두르지 못하면서도, 날카로운 지략 하나로 무수한 사건을 해결해온 전설적인 인물. 사람들은 그를 ‘귀안(鬼眼)의 설무진’이라 불렀다. 귀신도 속지 않을 눈을 가졌다는 뜻이었다.

설무진은 아무런 제지도 없이 시체가 있는 방으로 들어섰다. 그는 피에 젖은 바닥을 조심스럽게 피하며 천천히 방을 둘러보았다. 아무것도 만지지 않았다. 오직 눈으로만.

“문은 안에서 굳게 잠겨 있었소. 창문도 마찬가지고. 대체 살인범이 어떻게 들어와서, 어떻게 빠져나갔다는 말입니까?” 벽산철이 설무진의 등 뒤에서 다급하게 설명했다.

설무진은 고개를 젓는 대신, 굳게 다물린 문을 향해 걸어갔다. 그의 시선은 빗장이 걸려 있던 자리와 문틈, 그리고 문설주를 따라 움직였다. 이윽고 그는 만족한 듯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그는 다시 방 중앙으로 돌아와 쓰러진 벽산객을 내려다보았다. 비수가 박힌 가슴. 그의 손은 어딘가를 향해 뻗어 있었고, 그 끝에는 작은 나무 조각이 떨어져 있었다.

“죽은 자의 마지막 행동은 항상 진실을 말해주지.” 설무진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이 나무 조각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주변 무사들이 웅성거렸다. “별 볼 일 없는 나무 조각이오! 아마 문주님께서 평소에 가지고 다니시던 붓통에서 떨어져 나온 것일지도요.”

하지만 설무진은 그 말을 듣지 않는 듯했다. 그는 방 한구석에 놓인 거대한 서안(書案)을 향해 다가갔다. 서안 위에는 수많은 서책과 함께, 벽산문의 역사를 기록한 두루마리가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칠기로 만들어진 작은 상자가 놓여 있었다.

설무진은 상자 뚜껑을 열었다. 안에는 향나무로 만든 정교한 붓들이 들어 있었다. 그는 붓통 하나를 꺼내 유심히 살펴보았다. 그리고는 아까 벽산객의 손에서 발견된 나무 조각과 비교했다. 크기는 비슷했지만, 재질과 색깔이 미묘하게 달랐다.

“이 조각은 이 붓통의 것이 아니오.” 설무진이 말했다. 그의 눈빛이 섬광처럼 번뜩였다. “벽산객은 죽음의 순간, 무언가를 부수려 했던 것 같군.”

그는 다시 방을 둘러보았다. 이번에는 천장과 벽을 더욱 면밀히 살폈다. 촘촘히 짜인 목재 벽과, 그 위에 걸린 거대한 산수화.

설무진의 시선이 산수화의 한 부분에 멈췄다. 다른 부분보다 미묘하게 색이 바랜 곳. 그리고 그 그림 밑의 바닥에, 손톱으로 긁은 듯한 아주 미세한 흔적이 나 있었다. 거의 눈에 띄지 않을 정도의 흔적이었다.

“이곳이군.” 설무진이 읊조렸다. “밀실은 없소.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았지.”

모두가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설무진은 부채를 펼쳤다. “이 방은 완벽한 밀실이 아니오. 살인범은 이 방에서 벽산객을 죽이고, 문을 안에서 잠근 뒤, 유유히 이곳을 통해 빠져나갔지.”

그는 산수화가 걸린 벽면을 손가락으로 툭툭 두드렸다. 나무 조각이 떨어져 나온 곳은 이곳이었다. 벽산객은 죽는 순간, 범인이 빠져나가는 곳을 표시하려 했던 것이다.

“이 벽은 겉보기와 달리 속이 비어 있소. 그리고 그 안에는…”

그가 말을 멈췄을 때, 벽산철이 성난 얼굴로 외쳤다. “무슨 헛소리요! 그 벽은 수십 년 전부터 있던 견고한 벽이오! 당신의 억측으로 형님의 죽음을 모욕하지 마시오!”

설무진은 차갑게 벽산철을 응시했다. “진실은 항상 외면하기 어려운 법이지. 특히 그 진실이 자신에게 불리할 때 더욱 그러하오.”

그는 손짓으로 무사들에게 지시했다. “저 산수화를 떼어내고, 벽을 부숴보시오.”

무사들이 망설이자, 설무진은 다시금 날카로운 눈빛을 보냈다. “그대들의 문주가 명탐정을 부른 이유를 잊었는가? 내 명에 따르지 않겠다면, 이 사건은 영원히 미궁 속에 갇힐 것이다.”

결국, 무사들이 움직였다. 거대한 산수화가 벽에서 떨어져 나가자, 그 아래 낡은 나무 문이 드러났다. 문은 벽과 똑같은 무늬로 정교하게 위장되어 있었지만, 자세히 보면 미세한 틈이 보였다. 그 틈을 따라 벽산객의 손에서 나온 것과 똑같은 재질의 나무 조각들이 떨어져 있었다.

“이럴 수가… 비밀 통로라니!”
모두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설무진은 숨겨진 문을 열어젖혔다. 통로는 길지 않았다. 그 끝은 벽산철의 방과 연결되어 있었다.

“벽산객은 숨겨진 통로를 통해 들어온 살인범에게 당했소. 죽음의 순간, 그는 범인이 도주할 이 비밀 통로의 위치를 알리려 했던 것이지. 자신의 손으로 직접 벽을 긁어 나무 조각을 떨어뜨림으로써.”

설무진은 싸늘하게 벽산철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 통로의 존재를 알고, 이용할 수 있는 자는 벽산문의 극히 일부일 터. 특히, 문주와 가장 가까이 있던 자. 바로 당신이오, 벽산철.”

벽산철의 얼굴은 핏기 하나 없이 창백해졌다. 그의 눈은 공포와 분노, 그리고 체념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는 모든 것을 부정하려는 듯 입술을 파르르 떨었지만, 이미 모든 증거가 그를 가리키고 있었다.

“대체, 왜…!” 한 무사가 분노에 찬 목소리로 물었다.

설무진은 그의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다만, 허공을 응시하며 조용히 부채를 접을 뿐이었다. 그의 얼굴에는 더 이상 희미한 미소도, 날카로운 광채도 없었다. 오직, 모든 진실을 꿰뚫어 본 자의 고독만이 그림자처럼 드리워져 있었다.

벽산객의 방을 감쌌던 밀실의 그림자는, 이제 새로운 진실 아래 그 정체를 드러냈다. 그리고 그 그림자 뒤에 숨어 있던 진짜 범인의 얼굴 또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