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핏빛 맹세**
바람이 불었다. 흙먼지를 실어 나르는 바람은 메마른 대지를 훑고 지나며 모든 것을 잊게 하려는 듯 거칠게 휘몰아쳤다. 그러나 이원의 기억은 바람 앞의 등불처럼 위태롭게 흔들릴지언정, 결코 꺼지지 않았다. 그의 발목에 채워진 쇠사슬은 차가운 현실을 끊임없이 상기시켰다. 덜컥거리는 수레 위에서 그의 몸은 흔들렸지만, 그의 정신만은 예리한 칼날처럼 또렷했다.
“죄인 이원, 속히 끌고 가라!”
수레를 호위하는 병사의 목소리가 찢어질 듯 날카로웠다. 병사들은 그를 ‘죄인’이라 불렀지만, 그들의 눈빛에는 아직 경외심과 두려움이 뒤섞여 있었다. 어쩌면 그들은 기억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불과 몇 달 전, 이원이 이끌던 고려연방의 대군이 북방 연합의 흉악한 철기를 어떻게 무릎 꿇렸는지. 압록강을 넘어 저들의 심장부에 비수를 꽂았던 불패의 전공을.
이원은 고개를 들어 흐릿한 눈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잿빛 하늘은 그의 심장처럼 먹구름으로 뒤덮여 있었다.
‘현수… 대체 어찌하여…’
목구멍에서 피가 쏟아질 것 같은 통증이 느껴졌다. 친구. 형제. 심지어 자신보다 더 깊이 믿었던 사내. 김현수. 그 이름이 뇌리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두 달 전, 모든 것이 완벽했다. 북방 연합과의 10년 전쟁은 마침내 종지부를 찍었다. 대원수 이원은 압록강 이북의 요충지를 모두 수중에 넣고 개선하는 길이었다. 수도 개경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현수는 가장 먼저 달려와 이원을 맞았다. 그의 눈빛은 기쁨으로 번뜩였고, 그를 얼싸안는 팔에서는 진정한 우정이 느껴졌다.
“원아! 네가 해냈다! 네가 고려연방을 구했어!”
그의 목소리는 뜨거웠고, 그를 바라보는 이원의 마음도 벅차올랐다. 현수는 이원의 가장 친한 벗이자, 그의 전략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실행하는 뛰어난 부장이었다. 둘은 어린 시절부터 전장을 함께 누비며 생사고락을 같이 했다. 수많은 밤을 지새우며 탁상에 지도를 펼쳐놓고 미래를 논했고, 술잔을 기울이며 서로의 꿈을 이야기했다. 이원은 현수에게는 숨기는 것 없이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심지어 자신의 심중에 품은 불안감까지도. 어린 폐하의 미숙함과 권력을 노리는 대신들의 암투에 대한 우려를 현수와 나누곤 했다.
하지만 그 포옹은, 그 감격적인 재회는, 현수가 파놓은 가장 깊은 함정이었다.
개경으로 돌아온 이원을 기다린 것은 성대한 환영이 아니었다. 승리의 축배 대신, 그의 목을 조여 오는 차가운 역모죄의 칼날이었다. 조정 대신들은 경악했지만, 누구도 감히 어린 폐하의 명을 거역하지 못했다. 어린 폐하는 현수의 눈물 어린 증언과 그가 제시한 위조된 서찰, 그리고 몇몇 매수된 자들의 거짓 진술에 쉽사리 넘어갔다.
“대원수 이원은 북방 연합과의 전쟁을 핑계로 군권을 장악하고, 폐하를 폐위시킨 후 스스로 황위에 오르려 했습니다!”
현수의 목소리는 온 조정에 울려 퍼졌다. 충심으로 가득한 슬픔과 분노가 뒤섞인 듯한 그 연기는 너무나도 완벽하여, 이원조차 순간 자신이 정말 그런 짓을 꾸몄던가 하고 착각할 뻔했다.
이원은 억울함에 치를 떨었다. 그가 전쟁에서 땀 흘리고 피 흘려 지킨 것이 바로 이 고려연방이고, 바로 그 어린 폐하였는데!
“폐하, 소신은 결코…!”
그의 항변은 냉정하게 잘려 나갔다. 어린 폐하의 눈빛에는 이미 배신감과 두려움이 가득 차 있었다. 현수의 교묘한 이간질과 거짓은 완벽하게 먹혀들었다.
“이원은 모든 관직을 박탈하고, 그의 가솔은 모두 노비로 삼아 변방으로 보낸다. 죄인 이원은… 변방의 오지, 망향도로 유배 보내 영원히 감금하라!”
그것이 이원에게 내려진 최종 판결이었다. 망향도. 바다 끝, 세상의 잊힌 땅. 그곳은 살아서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악명이 높았다.
수레는 덜컹거리며 해안선을 따라 달렸다. 짠 바닷바람이 이원의 상처받은 얼굴을 스쳐 지나갔다. 그의 눈은 더 이상 흐릿하지 않았다. 그 속에는 맹렬한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다. 김현수. 네놈이 나의 모든 것을 빼앗아갔구나. 나의 명예, 나의 가족, 나의 미래, 그리고 내가 목숨 바쳐 지키려 했던 고려연방의 평화까지!
이원은 주먹을 꽉 쥐었다.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었지만, 그는 통증조차 느끼지 못했다.
‘나는 죽지 않는다. 결코 죽지 않아.’
그는 마음속으로 수없이 되뇌었다. 망향도? 좋다. 그곳이 설령 지옥이라 해도, 그는 살아남을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반드시 돌아올 것이다. 폐허가 된 자신의 삶 위에서 웃음 짓고 있을 현수에게, 그리고 그를 쉽게 내쳤던 어린 폐하에게, 지옥이 무엇인지 똑똑히 보여주기 위해.
멀리 수평선 끝에 희미하게 망향도의 그림자가 보였다. 거대한 절벽과 검은 숲이 어우러진, 마치 세상의 끝자락 같은 섬.
그 섬을 바라보는 이원의 눈빛은 더 이상 절망에 물들지 않았다. 차가운 분노와 뜨거운 복수심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김현수… 네놈은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그의 입술 사이로 낮게 읊조리는 맹세가 바람에 실려 바다 너머로 퍼져나갔다. 그의 복수극은 이제 막 시작될 참이었다. 칼날 같은 그의 의지는 핏빛으로 물든 심장에 새겨졌다. 그것은 망향도를 향해 떠나는 죄인의 마지막 발걸음이 아니라, 지옥에서 살아 돌아올 전사의 첫걸음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