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화. 푸른 달이 드리운 그림자
아득한 창공 위, 푸른 기운을 머금은 구름들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리는 곳. 그곳이 바로 천상계의 심장이자, 모든 영적 기운의 근원인 ‘청운봉’이었다. 희고 투명한 영석들이 끝없이 펼쳐진 봉우리마다 영험한 기운이 서려 있었고, 맑은 폭포수는 영롱한 소리를 내며 아래로 곤두박질쳤다. 바위틈에서 피어난 영지버섯은 오색찬란한 빛을 내뿜었고, 허공에는 은은한 향이 감돌았다. 이곳은 세상의 온갖 더러움으로부터 격리된, 신성하고 완벽한 공간이었다.
청운봉 정상에 자리한 ‘벽운궁’의 가장 높은 전각, ‘심원루’에서 이청운은 고요히 좌정하고 있었다. 아직 그의 나이는 수천 년에 불과했지만, 이미 천상계에서 손꼽히는 신선들조차 감탄할 만한 경지에 도달해 있었다. 그의 푸른 도포 자락은 바람 한 점 없는 실내에서 미동조차 없었고, 매듭 없이 길게 늘어트린 검은 머리카락은 마치 심연의 밤하늘 같았다. 차분히 감긴 눈꺼풀 아래로 그의 내면세계가 얼마나 고요하고 깊은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는 천상계 제일 검술 문파인 ‘운검문’의 현 문주이자, 차기 천제 후보로 거론되는 인물이었다. 타고난 재능과 끊임없는 수련으로 그는 이미 천하제일검이라는 칭호를 얻었으나, 그의 얼굴에는 늘 어딘가 모를 그림자가 드리워 있었다. 그것은 천상계의 엄격한 규율과 짊어진 무게 때문만은 아니었다.
수련을 끝내고 눈을 뜬 청운의 시선은 늘 벽운궁의 북쪽, 짙은 안개로 뒤덮인 ‘천마령’ 쪽을 향했다. 천상계와 마계를 가르는 마지막 경계선. 그곳은 모든 신선이 접근 금지된, 금단의 영역이었다. 천상계의 모든 서적은 마계가 얼마나 사악하고 더러운 존재들로 가득한지, 얼마나 위험하고 교활한지 강조했다. 그곳의 마물들은 오직 파괴만을 추구하며 천상계를 끊임없이 위협하고, 그들의 피는 세상의 모든 정기를 더럽힌다고 했다.
그러나 청운은 어릴 적부터 그 천마령에 대한 묘한 이끌림을 느껴왔다. 때로는 꿈속에서, 때로는 명상 중, 안개 너머에서 들려오는 듯한 알 수 없는 노랫소리나, 붉은 꽃이 흩날리는 환영을 보곤 했다. 그럴 때마다 그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정체 모를 갈증이 피어올랐다.
“문주님, 천제께서 부르십니다.”
청운의 생각은 문밖에서 들려오는 시자의 목소리에 끊겼다. 그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흐트러짐 없는 자세로 궁을 나섰다. 천제는 늘 그에게 더 큰 기대를 걸고 있었다. 마계와의 전면전을 앞두고 천상계의 기강을 다잡고, 젊은 신선들을 이끌어 줄 차세대 지도자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 모든 것이 청운의 어깨 위에 놓여 있었다.
천제의 부름을 받고 돌아온 청운은 다시 심원루에 앉았다. 천제는 그에게 마계와의 경계를 더욱 강화하고, 불순한 기운을 감지하면 즉시 보고하라는 명을 내렸다. 늘 같은 내용이었지만, 오늘은 유난히 천제의 목소리에 날이 서 있었다. 최근 천마령 부근에서 심상치 않은 마기의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언젠가 이 모든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그의 손이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검, ‘청월검’의 손잡이를 어루만졌다. 얼음처럼 차가운 강철의 감촉이 그의 심장을 아프게 울렸다. 그는 오랜 시간 억눌러 왔던 충동에 사로잡혔다. 단 한 번만이라도, 그 금단의 경계를 넘어 마계의 모습을 직접 보고 싶었다. 과연 그들이 천상계의 기록처럼 오직 파괴만을 추구하는 존재들일까? 아니면 그 안에도 다른 진실이 숨겨져 있을까?
어둠이 짙게 깔리고, 푸른 달이 천상계를 비추는 시각. 청운은 발소리조차 내지 않고 벽운궁을 빠져나왔다. 그의 몸은 희미한 푸른빛으로 감싸여 있었고, 그 빛은 그의 존재를 주위 풍경에 완벽하게 녹아들게 했다. 그는 평소 천마령 순찰 때에도 신선들이 가는 길을 벗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은 달랐다. 그의 발길은 금단의 구역, 천마령으로 곧장 향했다.
천마령에 가까워질수록 공기는 차갑고 습해졌다. 영험한 기운 대신 짙은 마기가 감돌기 시작했고, 주위의 풍경도 기이하게 뒤틀려 보였다. 영석의 찬란함 대신 어둡고 날카로운 암석들이 솟아 있었고, 맑은 폭포수 대신 검붉은 물줄기가 굉음을 내며 흘러내렸다. 그 모든 것이 천상계와는 극명한 대비를 이루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마계와의 경계선, ‘칠흑의 장막’이라 불리는 곳에 다다랐다. 장막은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꿈틀거리는 검은 안개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 너머에는 어떤 세계가 펼쳐져 있을까? 두려움과 호기심이 뒤섞인 감정이 청운의 심장을 거세게 두드렸다.
그때였다. 장막 저편에서 희미한 빛줄기가 새어 나왔다. 빛은 붉은색이었다. 보통 마계의 기운은 검거나 보라색이었지만, 이 빛은 이상하게도 따뜻하고 생명력 있는 붉은빛이었다. 그리고 그 빛과 함께, 그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울리던 바로 그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애절하면서도 아름다운 선율.
청운은 홀린 듯 칠흑의 장막으로 손을 뻗었다. 그의 손이 장막에 닿자, 검은 안개가 마치 살아있는 문처럼 양옆으로 갈라졌다. 그 틈새로 펼쳐진 풍경은 그의 예상을 완전히 뒤엎었다.
그곳은 암흑과 파괴로 가득 찬 마계의 모습이 아니었다. 오히려 장막 뒤에는 작은 숲이 펼쳐져 있었고, 그 숲은 보랏빛 잎사귀를 가진 나무들로 가득했다. 그리고 그 나무들 사이, 붉은 달빛이 쏟아져 내리는 작은 연못가에 한 여인이 앉아 있었다.
그녀는 검은색이 아닌, 짙은 붉은색 비단옷을 입고 있었다. 새카만 머리카락은 길게 늘어져 연못 수면에 닿을 듯했고, 백옥 같은 피부는 붉은 달빛 아래 더욱 창백해 보였다. 그녀의 등 뒤에서는 거대한 날개가 접혀 있었다. 평범한 신선들의 날개와는 확연히 다른, 검고 거대한 깃털로 이루어진 날개였다. 마계의 고귀한 종족, ‘야마족’의 특징이었다.
그녀는 연못을 바라보며 조용히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 노랫소리는 너무나 슬프고도 아름다워, 청운의 심장을 꿰뚫는 듯했다. 그는 숨 쉬는 것조차 잊은 채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천상계에서는 단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선율이었다.
노래가 끝나자 여인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눈동자는 깊이를 알 수 없는 검은색이었으나, 그 안에는 붉은 달빛이 반짝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눈동자가 정확히 청운이 서 있는 곳을 향했다.
순간, 그들의 시선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여인의 입술이 아주 살짝 벌어졌고, 그녀의 눈빛에는 놀라움과 함께 알 수 없는 슬픔이 스쳐 지나갔다. 청운은 심장이 쿵 하고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들켜버렸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가 생전 처음 보는 존재에게서 단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강렬한 이끌림을 받았다는 사실이었다. 천상계의 엄격한 규율과 마계에 대한 금기가 한순간에 무너져 내리는 듯한 기분이었다.
푸른 달빛 아래, 금단의 경계를 넘어 마주 선 천상계의 신선과 마계의 여인. 그들의 만남은 천지를 뒤흔들 거대한 운명의 서막에 불과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