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역사물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 붉은 맹세

차가운 쇠사슬이 손목을 짓누르는 감각은, 이선이 평생 느껴본 고통 중 가장 지독한 것이었다. 아니, 고통이라기보다는, 끝없이 펼쳐진 절망의 심연 속으로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그의 시선이 닿는 곳은 오직 축축한 돌벽뿐. 한때 온 나라의 명망과 존경을 한 몸에 받던 대장군 이선은, 이제 그저 한 줌의 먼지처럼 버려진 채 사형을 기다리는 죄수일 뿐이었다.

밤이었다. 간수들의 발소리가 멀어지는가 싶더니, 이내 정적만이 감옥을 지배했다. 귓가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으나, 그의 심장 속에는 끊임없이 불타는 쇳물 같은 분노가 끓어오르고 있었다. 그것은 결코 식지 않을, 아니, 식어서는 안 될 뜨거운 맹세였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아마도 영원처럼 느껴지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의 뇌리에는 수많은 얼굴들이 스쳐 지나갔다. 존경과 두려움을 담았던 병사들의 얼굴, 걱정과 애정을 담았던 가족들의 얼굴, 그리고…… 믿음과 배신이 뒤섞인 단 하나의 얼굴.

강태한.

“선아, 네 재주는 하늘이 내린 재주다. 이 나라의 창과 방패가 되어다오.”

낡은 주막의 한구석에서 막걸리를 기울이며 제 어깨를 두드리던 태한의 얼굴이 선명했다. 태한은 언제나 이선의 가장 든든한 동지이자 벗이었다. 함께 전쟁터에서 피를 나눴고, 밤새도록 국사를 논했으며, 숱한 위기 속에서 서로의 목숨을 지켜주었다.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그들은 운천국의 가장 위대한 영웅들이었다. 북방 오랑캐, 북적(北狄)의 십만 대군을 궤멸시키고 국경을 평정한 쌍두마차. 백성들은 그들을 ‘운천의 두 날개’라 불렀다.

승전의 축제가 수도 한양에서 열리던 날, 이선은 생애 가장 행복한 순간을 만끽했다. 어린 동생처럼 따랐던 어린 임금, 성종(成宗)은 그에게 ‘정국공신(靖國功臣)’이라는 칭호와 함께 일등공신의 자리를 내렸다. 태한은 이등공신이 되었다. 그러나 태한은 단 한 번도 시기나 질투의 눈길을 보낸 적이 없었다. 오히려 그는 이선을 향해 환히 웃으며 “네가 마땅히 받을 영광이다, 선아. 나는 그저 네 옆에서 칼을 쥐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랬는데.

그 모든 것이 역겨운 가면극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채 한 달도 지나지 않아서였다.

어느 날 밤, 이선은 갑자기 대역죄인으로 체포되었다. 역모를 꾀했다는 혐의였다. 증거는 명백했다. 이선이 북적과의 전투에서 노획했던 진귀한 물품들과 함께, 역모의 증거로 둔갑한 서찰들이 그의 서재에서 발견되었다. 그 중에는 임금의 옥새를 위조한 문서까지 있었다. 이선은 어이가 없었다. 그는 결코 그런 짓을 할 위인이 아니었다. 누가 보더라도 조작된 증거였다.

그러나 국문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그의 항변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그의 가장 가까운 친우였던 태한이 증인으로 나섰을 때, 이선은 그제야 모든 것을 깨달았다.

태한은 눈물을 글썽이며 고했다. “선아, 자네가… 자네가 정말 이럴 줄은 몰랐네. 내 비록 자네를 형제처럼 여겼으나, 역모는 용서받을 수 없는 죄. 내 자네의 충고를 여러 번 들었으나, 설마 왕위를 탐낼 줄은….”

그의 말을 듣는 순간, 이선의 심장이 갈가리 찢기는 듯했다. 태한의 슬픈 듯한 눈빛 속에서, 이선은 일말의 죄책감도 찾을 수 없었다. 오직, 싸늘한 광기만이 그의 눈 속에서 빛나고 있었다.

그 순간, 이선은 깨달았다. 이 모든 것이 태한이 꾸민 일이라는 것을. 그가 자신에게 늘 보여주던 믿음과 충성은, 그저 자신을 나락으로 떨어뜨리기 위한 완벽한 발판이었음을. 북적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백성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은 자신을 질투하여 제거하려 했던 것일까. 아니면, 더 큰 무언가를 노리고 자신을 이용한 것일까.

이선은 국문장에서 피를 토하며 울부짖었다. “강태한! 네가! 네가 감히 나를!”

그러나 그 외침은 메아리 없이 사라졌다. 군중들은 야유를 퍼부었고, 조정 대신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믿었던 동료들이, 한때 그에게 경의를 표했던 사람들이, 일제히 등을 돌렸다. 그들의 눈에는 오직 이선을 향한 비난과 경멸만이 가득했다.

결국, 이선에게 내려진 판결은 참형이었다.

이제 이 차가운 감옥 속에서, 그는 내일 해가 뜨면 죽을 운명이었다. 하지만 그의 눈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눈 속에는 강렬한, 형형한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다. 그것은 태한을 향한, 그리고 그를 배신한 이들을 향한 지독한 복수심이었다.

그때였다. 쇠창살 너머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간수가 오는 것인가 싶었으나, 발소리가 너무나도 가벼웠다.

“대장군님….”

낮게 속삭이는 목소리. 이선은 고개를 들었다.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보이는 얼굴은, 그의 친위대 소속이었던 어린 병사, 유진이었다.

“유진…?”

이선의 눈이 커졌다. 유진은 그의 충직한 부하였다. 하지만 그 역시 이선의 역모에 연루되어 죽임을 당했을 터였다.

“조용히 하십시오. 시간이 없습니다.”

유진은 능숙하게 자물쇠를 따고 쇠창살을 열었다. 그리고 이선에게 칼을 건넸다.

“이것으로 사슬을 끊으십시오. 서둘러야 합니다.”

이선은 망설였다. “너는… 어찌 된 것이냐?”

유진은 고개를 숙였다. “저와 제 가족은, 대장군님의 은혜로 살았습니다. 대장군님의 죄는… 조작된 것입니다. 저는 대장군님을 믿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떨렸지만, 눈빛은 흔들림 없었다.

이선은 유진의 눈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단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던 친구가 등을 돌렸고, 생각지도 못했던 부하가 목숨을 걸고 자신을 구하러 왔다. 인생의 아이러니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알았다.”

이선은 칼을 받아들고 묵직한 사슬을 끊었다. 쨍그랑 소리가 감옥 안에 울려 퍼졌다. 발목에 채워진 족쇄는 칼로 부술 수 없었다. 이선은 그 족쇄를 끌며 유진을 따라 어두운 복도를 뛰었다.

그들은 감옥의 가장 깊은 곳, 지상의 배수로와 연결된 좁은 통로를 통해 탈출했다. 비좁고 역겨운 냄새가 진동하는 곳이었다. 한때 고귀한 신분을 가졌던 이선에게는 견디기 힘든 환경이었으나, 그는 이를 악물었다. 살아야 했다. 복수해야 했다.

배수로 끝에서 어둠 속으로 나왔을 때,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차가운 밤공기였다. 이선은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자유의 공기는 뼛속까지 시리도록 차가웠으나, 그의 가슴 속 분노를 잠재우지는 못했다.

유진은 이미 준비된 말 한 필을 가리켰다. “이곳에서 멀리 떨어지십시오. 제가 다른 이들의 시선을 돌리겠습니다. 부디 살아남으셔서… 반드시 돌아오셔야 합니다.”

이선은 유진의 어깨를 잡았다. “너는…!”

“걱정 마십시오. 저는 대장군님을 믿고 따르는 이들이 어디에 있는지 압니다. 그들을 찾아 합류할 것입니다. 시간이 필요합니다.” 유진의 눈은 결연했다. “저희는, 대장군님을 기다릴 것입니다.”

이선은 고개를 끄덕였다. 더 이상의 말은 필요 없었다. 그는 말에 올랐다. 아직 몸 곳곳에 고문의 상처가 남아있어 움직임이 고통스러웠지만, 이를 악물었다. 달빛 아래, 그들의 모습은 점차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갔다.

이선은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오직 앞만을 향했다.
말은 숲을 가로질러 맹렬히 달렸다. 수도 한양은 점점 멀어졌지만, 그의 가슴 속에서 타오르는 증오는 더욱 선명해졌다. 태한의 위선적인 미소, 그의 칼에 찔린 듯한 배신감, 그리고 그로 인해 나락으로 떨어진 자신의 모든 것.

그는 피 묻은 손으로 찢어진 옷자락을 움켜쥐었다. 핏빛 달이 그의 앞길을 비추고 있었다.

“강태한….”

목구멍 속에서 끓어오르는 이름을 나직이 읊조렸다.

“기다려라. 나는 반드시 돌아올 것이다. 네가 내게서 빼앗아 간 모든 것을… 그 열 배로 되갚아줄 때까지, 나는 결코 죽지 않을 것이다. 운천국이여, 너희 모두가 내 칼날 아래 피를 흘리게 될 것이다.”

이선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도 차갑고 맹렬했다. 그의 입에서 뿜어져 나온 맹세는, 피와 증오로 물든 붉은 맹세였다. 모든 것을 잃은 영웅은 이제, 거대한 복수의 서막을 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