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연의 파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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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면 1] 심우주의 고요
(어두운 우주를 배경으로 거대한 탐사선 ‘아레스’호가 천천히, 그러나 묵직하게 나아간다. ‘아레스’호는 인류가 마지막으로 건져 올린 희망의 닻처럼, 고요한 심연 속을 유영하고 있다. 함교의 푸른 불빛들이 명멸하고, 기계음만이 낮게, 그러나 끊임없이 울린다. 승무원들의 얼굴에는 오랜 여정의 피로와 함께 미지의 개척지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이 섞여 있다.)
**민재 (O.S., 나지막이, 하지만 단호하게)**
“오늘도 특별한 보고는 없나, 박 부함장?”
(카메라, 함교 중앙의 함장석에 앉은 강민재를 클로즈업한다. 그의 눈은 스크린 너머의 심연을 응시하고 있다. 그의 옆에 서 있는 박서연 부함장은 콘솔을 주시하며 손을 바쁘게 움직인다.)
**서연**
(침착하게)
“네, 함장님. 전방 500AU 이내 특이사항 없음. 시스템 안정화 완료. 항해 경로는 예정대로 유지 중입니다.”
**민재**
“그래. 너무 방심하진 말고. 이 심해 같은 우주에선 언제 무엇이 튀어나올지 모르는 법이니.”
**서연**
“명심하겠습니다. 그런데… 최진우 통신 담당관이 아까부터 이상한 표정이던데요.”
(카메라, 함교 한쪽에서 자신의 콘솔에 얼굴을 거의 파묻다시피 한 최진우 통신 담당관에게로 옮겨간다. 그의 미간은 잔뜩 찌푸려져 있고, 손가락은 키보드 위에서 초조하게 맴돌고 있다.)
**진우**
(작게 중얼거리듯)
“이게… 대체 뭐지…? 오류인가…?”
**민재**
(진우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고, 나지막이 묻는다)
“최 담당관. 무슨 문제라도 있나?”
(진우는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든다. 그의 얼굴에는 당황스러움과 함께 미묘한 공포가 스쳐 지나간다.)
**진우**
“아, 아뇨! 함장님! 그게… 아주 미약한 신호입니다. 탐사선 시스템이 오작동하는 걸지도 모릅니다만… 주기성이 불규칙하고, 기존 데이터베이스에는 없는 형태라서…”
**서연**
“위치는?”
**진우**
“현재 위치에서… 대략 200AU 지점. 미지의 성계 외곽입니다. 아무것도 없어야 할 곳인데…”
**민재**
(자리에서 일어선다. 그의 그림자가 함교 바닥에 길게 드리워진다.)
“허튼소리. 이 좌표에는 어떤 항성계도, 행성도 기록되어 있지 않아. 혹시 잔해인가?”
**진우**
“아닙니다, 함장님. 잔해 신호와는 다릅니다. 파동이… 살아있는 듯한 느낌입니다. 아주 희미하지만, 일정한 패턴을 가지고 있습니다.”
(함교 내에 짧은 침묵이 흐른다. 승무원들의 시선이 일제히 민재에게로 향한다. 우주선 내부를 가득 채운 긴장감이 공기를 무겁게 짓누른다.)
**민재**
(잠시 눈을 감았다 뜬다. 그의 결정이 곧 수많은 생명의 명운을 결정할 것이다.)
“항로를 수정한다. 신호의 근원지로 향한다. 전속력으로. 탐사 준비팀은 즉시 대기하라.”
**서연**
“함장님!”
**민재**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없어, 박 부함장. 어떤 작은 가능성이라도 놓쳐선 안 돼. 이 심연 속에서 발견되는 그 무엇이든, 인류의 마지막 희망이 될 수도 있으니.”
(서연은 민재의 단호한 결정을 읽고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녀의 표정에는 우려와 함께 결의가 서려 있다.)
**서연**
“알겠습니다, 함장님. 전 승무원에게 상황을 전파하고 탐사 준비를 지시하겠습니다.”
(진우는 여전히 콘솔 앞에서 불안한 눈빛으로 신호의 그래프를 응시한다. 그의 모니터에 희미하게 깜빡이는 알 수 없는 파형이 점점 더 선명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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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면 2] 미지의 그림자
(수 시간이 흐른 뒤, ‘아레스’호는 신호의 근원지에 가까워진다. 함교의 메인 스크린에 미지의 물체가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낸다. 그것은 예상했던 행성이나 잔해가 아니었다. 거대하고 불길한, 마치 거대한 비석 같으면서도 매끄러운 검은색 물체였다.)
**지훈 (O.S., 흥분과 경외심이 섞인 목소리로)**
“이게… 대체 뭡니까, 함장님? 데이터베이스에 이런 형태의 구조물은 없습니다!”
(카메라, 탐사 전문가 이지훈에게로 향한다. 그의 눈은 호기심으로 빛나고 있지만, 그 안에는 설명할 수 없는 두려움 또한 깃들어 있다. 그의 옆에는 의무관 김수진과 부함장 박서연이 탐사복을 착용한 채 서 있다.)
**수진**
(침착하게, 그러나 미심쩍은 표정으로)
“표면 온도는 주변 우주 환경과 거의 동일합니다. 에너지를 방출하는 기미도 보이지 않고요.”
**서연**
“마치… 완벽한 정지 상태에 있는 것 같군요. 하지만 저렇게 거대한 물체가 아무런 동력 없이 이 심우주에 존재할 리 없습니다.”
(민재는 스크린 속 물체를 뚫어지라 응시한다. 물체는 빛을 흡수하는 듯 검은색이었지만, 특정 각도에서는 표면에서 섬뜩한 광택이 흘러나왔다. 어떤 문양도, 연결 부위도 없는, 완벽하게 매끄러운 형태였다.)
**민재**
“진우, 신호는 여전히 잡히나?”
**진우**
(초조하게)
“네, 함장님. 오히려 더 강해졌습니다. 마치… 저 물체 그 자체가 신호를 방출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단순히 신호라고 부르기 힘든… 무언가가 섞여 있습니다. 제 머릿속에… 뭔가 들려오는 것 같습니다.”
**서연**
“무슨 소리죠?”
**진우**
(고개를 흔들며)
“모르겠습니다! 희미하게… 속삭이는 듯한… 불규칙한 음파입니다.”
**민재**
“신경 쓰지 마라. 탐사팀은 예정대로 출발한다. 박 부함장은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고, 이 박사는 물체 표면의 모든 데이터를 수집해라. 김 의무관은 승무원들의 생체 신호를 면밀히 관찰한다.”
**서연**
“알겠습니다, 함장님. 탐사팀, 출발!”
(소형 탐사선 ‘헤르메스’가 ‘아레스’호의 도킹 베이에서 분리되어 검은 물체를 향해 천천히 나아간다. ‘헤르메스’의 헤드라이트 불빛이 검은 물체에 닿자, 그 거대함이 더욱 압도적으로 다가온다. 마치 우주의 심연이 응고된 듯한 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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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면 3] 침묵의 속삭임
(탐사선 ‘헤르메스’가 검은 물체에 근접한다. 조종석의 지훈은 긴장한 채 패드를 조작하고, 서연은 물체를 응시하며 레이저 스캐너를 준비한다. 수진은 옆에서 두 사람의 생체 신호를 체크하고 있다.)
**지훈**
“표면은 마치… 유리 같으면서도 금속 같네요. 어떤 스캐너도 침투하지 못합니다. 밀도 측정 불가. 구성 물질 분석 불가…”
**서연**
“전형적인 외계 기술입니다. 이런 완벽한 밀봉 형태는 처음 봅니다.”
(수진의 눈이 갑자기 커진다.)
**수진**
“박 부함장님, 이 박사님! 두 분의 뇌파가… 비정상적인 패턴을 보입니다. 아주 미약하지만, 특정 주파수 대역에서 공명이 감지됩니다.”
**서연**
“공명이라니? 무슨 말이죠?”
**수진**
“이 물체에서 방출되는 신호와 두 분의 뇌파가 동기화되고 있습니다. 특히 이 박사님의 수치가 더 높습니다.”
(지훈의 얼굴이 갑자기 하얗게 질린다. 그의 눈동자가 흔들리고, 손이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한다.)
**지훈**
“젠장… 뭔가… 들려와요. 웅웅거리는 소리… 아니, 소리가 아니에요. 내 머릿속에서… 누군가가… 속삭이는 것 같아요.”
**서연**
“이 박사! 진정해요! 김 의무관, 진정제를 준비해!”
(수진이 황급히 의료 키트를 연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지훈**
(눈을 감고 고통스러운 듯 이마를 짚는다. 그의 목소리가 점차 변조되기 시작한다.)
“보여… 보여… 무언가가… 수많은 빛의 파편들… 그리고… 그림자… 거대한 그림자…”
(그 순간, 검은 물체의 완벽하게 매끄러웠던 표면에서 미세한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균열은 마치 얼음에 금이 가듯 퍼져나가고, 그 틈새에서 희미한 보랏빛 빛이 새어 나온다. ‘헤르메스’ 내부의 조명이 깜빡이기 시작한다.)
**서연**
“맙소사! 물체가 활성화되고 있습니다! 이 박사! 정신 차려요! 당장 후퇴해야 합니다!”
**지훈**
(눈을 번쩍 뜬다. 그의 눈은 보랏빛으로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의 입가에 알 수 없는 미소가 번진다.)
“너무… 아름다워요… 모든 것이… 완벽하게… 연결되어 있어…”
(검은 물체의 균열이 더욱 커지면서, 틈새에서 뿜어져 나오는 보랏빛 에너지가 탐사선 ‘헤르메스’를 감싸기 시작한다. ‘헤르메스’의 선체가 전율하고, 내부의 경보음이 요란하게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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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면 4] 잠식의 서막
(경보음이 ‘아레스’호 함교에도 울려 퍼진다. 민재의 얼굴에 긴장감이 역력하다.)
**민재**
“헤르메스, 응답하라! 무슨 일인가! 즉시 상황 보고하고 이탈해!”
(통신은 지직거리는 잡음으로 가득하고, 서연의 목소리는 불안하게 끊겼다 이어졌다 한다.)
**서연 (통신으로, 단절)**
“…함장님…! 물체가… 활성화… 이 박사님… 이상해요…! 통제가… 안 됩니다…!”
**민재**
“이 박사를 제압하고 즉시 복귀해!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순간, ‘아레스’호 전체가 흔들리기 시작한다. 함교의 스크린들이 일제히 깜빡거리며 오류 메시지를 띄운다. 내부 조명이 불안하게 점멸하고, 승무원들이 비명을 지르며 중심을 잡으려 애쓴다.)
**진우**
(콘솔에 매달린 채 절규한다)
“함장님! ‘아레스’호 시스템 전체가 해킹당하고 있습니다! 외부에서 침투… 아니, 잠식당하고 있습니다! 메인 동력 제어 불능! 보조 동력도…”
(검은 물체에서 뿜어져 나온 보랏빛 에너지가 거대한 촉수처럼 뻗어 나와 ‘아레스’호를 휘감기 시작한다. ‘아레스’호의 선체 곳곳에서 작은 폭발이 일어나고, 불꽃이 튀어 오른다.)
**민재**
“젠장! 수동으로라도 엔진을 분리하고 이탈 준비해! 전 승무원, 비상 착륙 모드!”
(하지만 이미 늦었다. 보랏빛 에너지 촉수가 ‘아레스’호의 통신 안테나를 감싸자, 모든 통신이 완전히 끊긴다. 함교의 메인 스크린에 검은 물체의 모습이 일그러지며, 알 수 없는 외계 문자가 번개처럼 스쳐 지나간다.)
(화면이 다시 ‘헤르메스’ 내부로 전환된다. 지훈은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고, 괴로운 신음 소리를 내고 있다. 그의 몸에서 보랏빛 아우라가 희미하게 피어오른다. 서연은 권총을 겨누고 지훈을 경계하고 있지만, 그녀의 손 또한 미세하게 떨리고 있다. 수진은 기절한 듯 바닥에 쓰러져 있다.)
**서연**
“이 박사! 제발! 정신 차려요! 우린 이곳을 떠나야 해!”
**지훈**
(고개를 들자, 그의 얼굴은 이미 이전의 지훈이 아니었다. 눈동자는 보랏빛으로 완전히 물들어 있었고, 그의 입에서는 낮은 읊조림이 흘러나왔다.)
“떠날 수 없어… 모두… 하나가 되어야 해… 진정한 지식… 영원한 평화…”
(지훈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보랏빛 아우라가 더욱 강렬해지고, ‘헤르메스’의 조종석 콘솔이 저절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탐사선은 검은 물체에 더욱 가까이 다가간다. 이제 물체의 표면은 완전히 균열로 뒤덮여, 거대한 보랏빛 심장이 박동하는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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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면 5] 검은 심연의 문
(민재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메인 스크린을 응시한다. ‘아레스’호는 보랏빛 에너지에 완전히 포획되어, 검은 물체 쪽으로 서서히 끌려가고 있었다. 함선 내부는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 곳곳에서 불꽃이 터지고, 승무원들의 비명 소리가 울려 퍼진다. 진우는 콘솔에 머리를 박고, 알 수 없는 언어로 중얼거리고 있다.)
**민재**
(이를 악물고, 마이크에 대고 소리친다.)
“전 승무원! 함선 포기! 비상 탈출 캡슐로 이동하라! 이것은…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그러나 탈출 명령은 이미 의미가 없었다. ‘아레스’호는 거대한 검은 물체에 완전히 도킹된 상태였다. 보랏빛 에너지는 ‘아레스’호의 모든 문과 통로를 봉쇄하고 있었다.)
(함교의 메인 스크린이 다시 한번 깜빡이더니, 이번에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 보랏빛으로 빛나는 거대한 형상이 나타난다. 그것은 마치 살아있는 유기체 같기도 했고, 동시에 비현실적인 기계 같기도 했다. 그 형상 속에서 수많은 눈들이 민재를 응시하는 듯했다.)
**민재**
(권총을 뽑아든다. 그의 손은 떨리고 있었지만, 그의 눈은 절망 속에서도 마지막 결의를 보였다.)
“설마… 이 모든 게… 이 행성에서… 다시 시작될 줄이야…”
(그는 흐릿하게, 이제는 너무나도 멀리 떨어진 지구의 황폐한 풍경을 떠올렸다. 폐허가 된 도시, 오염된 하늘, 그리고 마지막까지 발버둥 쳤던 인류의 절규. 그 모든 기억이 이 심연의 우주에서 다시 재현되려 하고 있었다.)
(스크린 속의 형상이 마치 민재의 말을 이해한 듯, 희미하게 빛나며 거대한 문을 열기 시작한다. 그것은 검은 물체의 심장부로 통하는 문이었다. 그 문 너머에서, 어둠과 보랏빛이 뒤섞인 채 알 수 없는 존재들이 흐릿하게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그것들은 형체가 모호하고, 마치 그림자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지훈 (O.S., 여러 목소리가 겹쳐진 듯, 기묘하게 변조된 목소리로)**
“두려워 마라… 이 문은… 시작이다… 새로운 존재의… 새로운 시대의… 너희는… 구원받을 것이다…”
(민재는 권총을 겨눈 채, 그의 앞에 펼쳐진 절망적인 광경을 응시한다. 그의 눈동자에 거대한 검은 물체의 보랏빛 광채가 반사된다. ‘아레스’호는 이미 더 이상 인류의 탐사선이 아니었다. 그것은 이제 미지의 존재에게 잠식된, 심연의 파편이 되어가고 있었다. 인류의 마지막 희망은, 가장 깊은 우주에서 가장 끔찍한 절망과 마주하고 있었다.)
(화면이 서서히 검은 물체의 거대한 형상과 ‘아레스’호를 집어삼키는 보랏빛 에너지로 채워지며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알 수 없는 외계의 속삭임만이 우주를 가득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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