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소녀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햇빛은 기억 속의 유물 같았다. 뿌연 재와 먼지가 뒤섞인 하늘은 언제나 희미한 회색빛이었다. 시아는 잔해 더미 위를 조심스럽게 걸었다. 발밑에서 부서지는 돌멩이 소리조차 주변의 정적을 깨트리는 칼날 같았다. 낡은 전투화 밑창은 이미 수없이 닳아 해졌지만, 그녀의 발은 굳건했다. 십 대 후반의 몸은 마르지만 단단했고, 흙먼지에 뒤덮인 얼굴은 또래의 소녀에게서 찾아볼 수 없는 강인함으로 가득했다.

오랜 시간 버려진 건물들은 뼈대만 앙상하게 남았고, 가끔 바람이 불면 녹슨 철근이 비명 같은 소리를 냈다. 이곳은 더 이상 사람이 살 수 있는 땅이 아니었다. 재앙 이후, 모든 것이 변했다. 문명은 무너졌고, 익숙한 세계는 사라졌다. 그리고 밤이 되면 그림자처럼 기어 나오는 변이체들이 세상을 지배했다. 시아 같은 생존자들에게 낮 또한 안심할 수 있는 시간은 아니었다.

시아는 무너진 병원 건물의 입구를 응시했다. 과거의 흔적들이 먼지 속에서 희미하게 빛났다. 이곳에서 뭔가 건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감, 혹은 절박함이 그녀를 이끌었다. 그녀의 등에는 배낭이 짊어져 있었고, 손에는 낡은 철 파이프가 들려 있었다. 최소한의 도구, 최대한의 경계심. 그것이 그녀의 생존 방식이었다.

“젠장, 냄새가 더 지독해졌잖아.”

코를 찌르는 곰팡이와 썩은 내, 그리고 피비린내가 섞인 역겨운 공기가 그녀의 폐를 파고들었다. 병원은 언제나 위험했다. 죽음의 기운이 짙게 깔려있었고, 그 기운에 이끌려 온 변이체들이 종종 발견되곤 했다. 시아는 숨을 참고 천천히 안으로 들어섰다. 부서진 유리 조각들이 바닥에 흩어져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서걱거리는 소리를 냈다.

복도는 어둠에 잠겨 있었다. 손전등을 켜자 희미한 불빛이 길게 늘어진 그림자들을 흔들었다. 벽에는 핏자국이 말라붙어 있었고, 여기저기 찢어진 의류 조각들이 널려 있었다. 과거의 비극을 웅변하는 풍경이었다. 시아는 속으로 되뇌었다. ‘정신 차려, 시아. 과거는 이미 죽었어. 중요한 건 지금이야.’

폐허가 된 의약품 보관실에서 텅 빈 선반과 부서진 약병들을 발견했다. 건질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녀는 실망감과 익숙한 절망감을 애써 눌렀다.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매일이 사냥이자 채집이었고, 실패는 일상이었다.

그때였다. 귓가에 희미한 소리가 스쳤다. ‘바스락.’

시아는 동작을 멈췄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바람 소리는 아니었다. 너무나 미세했지만, 분명히 ‘움직임’의 소리였다. 그녀는 손전등을 끄고 주위를 경계했다. 어둠이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숨죽이며 귀를 기울이자, 저 안쪽에서 낮은 ‘그르륵’ 소리가 들려왔다.

‘변이체.’

한 마리인지, 아니면 여러 마리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소리가 나는 방향은 확실했다. 복도 끝, 한때 중환자실이었을 법한 문 안쪽이었다. 시아는 철 파이프를 고쳐 잡았다. 손에 땀이 찼지만, 그녀의 눈은 얼어붙은 호수처럼 차분했다. 도망칠까? 아니, 여기까지 와서 빈손으로 돌아갈 순 없었다. 어제는 겨우 썩은 통조림 하나를 건졌을 뿐이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며칠 안에 굶주릴 것이다.

시아는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겼다. 소리가 나는 문에 거의 다다랐을 때, 갑자기 문이 ‘쾅’ 하고 열렸다.

어둠 속에서 튀어나온 것은 거대한 그림자였다. 인간의 형상을 흉내 냈지만, 피부는 검붉은 비늘로 덮여 있었고, 길고 날카로운 손톱이 달린 팔은 비정상적으로 길었다. 입에서는 역겨운 악취가 뿜어져 나왔다. ‘식인 변이체.’ 가장 흔하고, 가장 위험한 존재였다.

“크아아악!”

괴성이 좁은 복도를 가득 채웠다. 시아는 반사적으로 몸을 뒤로 던지며 공격을 피했다. 변이체의 손톱이 그녀가 서 있던 벽을 깊게 파고들었다. 흙먼지가 사방으로 튀었다.

숨 쉬는 것조차 아까운 순간, 시아는 망설임 없이 손목의 낡은 팔찌를 움켜쥐었다. 차가운 금속이 피부에 닿자마자, 온몸에 익숙한 열기가 솟구쳤다. 회색빛 세상에 순간적으로 강렬한 빛이 터져 나왔다.

“빛이여, 꿰뚫어라!”

짧은 주문과 함께, 낡은 작업복 대신 은은한 빛을 머금은 전투복이 몸을 감쌌다. 검은 장갑 낀 손에는 에너지가 응축된 짧은 블레이드가 형성되었다. 눈부신 은빛으로 빛나는 검은색 전투복. 길고 어두웠던 머리카락은 새하얀 백발로 변했고, 끝이 살짝 붉게 물든 채 바람에 흩날렸다. 차갑고 푸른빛이 감도는 눈동자에는 결연한 의지가 담겨 있었다. 이것이 그녀의 또 다른 모습, 마법소녀 ‘노바’였다.

변이체는 순간적으로 터져 나온 빛에 움찔했지만, 곧바로 다시 덤벼들었다. 시아는 변이체가 휘두르는 거대한 발톱을 날렵하게 피하며 블레이드를 휘둘렀다. ‘쉬이익!’ 금속이 부딪히는 소리가 날카롭게 울렸다. 변이체의 비늘은 단단했지만, 그녀의 블레이드는 더욱 날카로웠다. 팔뚝에 깊은 상처를 내자, 검붉은 피가 터져 나왔다.

“크르르…!”

변이체는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뱉으며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시아는 추격을 멈추지 않았다. 이런 틈을 주면 안 된다. 한 놈이라도 놓치면 더 큰 위험에 처할 수 있었다. 그녀는 가속하며 변이체의 다리를 노렸다.

그때였다. 어둠 속에 숨어 있던 또 다른 두 마리의 변이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등 뒤에서 동시에 공격이 들어왔다. 시아는 본능적으로 몸을 틀며 회피했지만, 한 마리의 발톱이 그녀의 어깨를 스치고 지나갔다. 전투복의 한 부분이 찢어지며 날카로운 통증이 밀려왔다.

“젠장!”

혼잣말이 터져 나왔다. 세 마리라니. 예상 밖의 숫자였다. 이런 폐허에서 세 마리의 식인 변이체와 동시에 싸우는 건 매우 위험했다. 그녀의 마법은 무한하지 않았다. 체력도 마찬가지였다.

시아는 블레이드를 휘둘러 가장 가까이 있는 변이체의 안면을 강타했다. 에너지가 실린 블레이드는 놈의 턱을 박살 냈고, 변이체는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하지만 나머지 두 마리는 더욱 광폭하게 덤벼들었다. 한 놈은 양팔을 휘두르며 시아를 압박했고, 다른 한 놈은 그녀의 뒤를 노렸다.

‘젠장, 불리해. 하지만 여기서 물러설 순 없어.’

시아는 한 손을 들어올려 푸른빛의 보호막을 생성했다. ‘푸쉬시식!’ 보호막이 변이체의 발톱 공격을 막아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녀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보호막을 폭발시키며 변이체를 뒤로 밀쳐낸 후, 다른 한 손에 에너지를 집중했다.

“섬광탄!”

손바닥에서 강렬한 빛이 터져 나왔다. 어둠에 익숙해진 변이체들은 순간적으로 눈을 가리며 비틀거렸다. 시아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빛에 눈이 멀어 허둥대는 변이체 중 하나에게 빠르게 다가가 블레이드를 심장 부위에 꽂아 넣었다.

‘끄아아악!’

고통스러운 절규와 함께 변이체는 푸른빛의 에너지에 감싸여 서서히 재로 변해갔다. 이제 남은 건 한 마리. 하지만 마지막 한 마리는 더욱 영악했다. 동료의 죽음을 보고도 전혀 위축되지 않고, 오히려 더욱 격렬하게 달려들었다.

시아는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어깨의 상처는 계속해서 통증을 보냈고, 마법 에너지도 거의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블레이드가 약해지는 것을 느꼈다.

변이체는 시아의 지친 모습을 놓치지 않았다. 거대한 몸을 날려 그녀에게 덮쳐들었다. 피할 틈도 주지 않는 맹렬한 공격이었다.

‘이대로 당할 순 없어!’

시아는 마지막 남은 힘을 쥐어짰다. 블레이드를 포기하고, 대신 두 손에 푸른빛 에너지를 집중했다. 에너지는 구 형태로 압축되어 강력하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광휘포!”

축적된 에너지를 변이체의 복부에 직접 쏘아붙였다. ‘콰아앙!’ 폭발음과 함께 변이체의 몸이 산산조각 났다. 검붉은 피와 살점이 사방으로 흩뿌려졌다.

전투가 끝났다.

시아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변이체들의 시체를 내려다봤다. 끈적이는 검붉은 피가 바닥에 흥건했다. 그녀의 몸을 감쌌던 빛나는 전투복이 서서히 사라지고, 다시 낡은 작업복으로 돌아왔다. 변신을 해제하자 몸의 피로가 급격하게 밀려왔다. 이제야 어깨가 욱신거리고, 옆구리가 따끔거렸다.

“하아… 하아…”

철 파이프를 지팡이 삼아 겨우 몸을 지탱했다. 폐허가 된 병원의 어둠 속에서 그녀의 심장 소리만이 격렬하게 울렸다. 이런 싸움은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었다.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

그래도 오늘은 건진 것이 있었다. 변이체들이 지키고 있던 방 안에는 낡았지만 멀쩡해 보이는 의료 상자가 놓여 있었다. 상자 안에는 몇 개의 멸균된 붕대와 소독약, 그리고 아주 오래된 항생제가 들어 있었다. 더불어 먼지 쌓인 통조림 몇 개도 발견했다. 사치스러운 수확이었다.

시아는 대충 상처를 소독하고 붕대를 감았다. 마법으로 얻은 상처는 치유 속도가 빠르지만, 그렇다고 고통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이 모든 것이 과거의 영광스러운 ‘마법소녀’들과는 너무나 다른 현실이었다. 그들은 세상을 구했지만, 그 대가로 세상은 폐허가 되었고, 남은 마법소녀들은 생존자들의 그림자 속에서 하루하루를 연명해야 했다.

밤이 다가오고 있었다. 희미했던 하늘은 더욱 짙은 회색으로 물들어갔고, 곧 어둠이 찾아올 터였다. 시아는 폐허를 벗어나 안전한 은신처를 찾아야 했다. 오늘 얻은 물품들을 배낭에 조심스럽게 넣으며, 그녀는 다시 한번 다짐했다. ‘살아남아야 해. 반드시 살아남아서…’

그녀의 시선은 폐허 너머, 아득히 멀리 빛나는 탑의 실루엣을 향했다. 재앙 이전의 문명을 상징하듯 홀로 우뚝 솟아 있는 거대한 탑. 그곳이 모든 것의 시작이자, 어쩌면 이 모든 고통의 끝을 찾을 수 있는 곳일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희망. 그곳으로 향하는 길은 여전히 멀었고, 험난한 싸움이 끝없이 이어질 터였다.

하지만 시아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녀는 어둠 속을 뚫고 걸었다. 언젠가 그 탑에 도달하여, 이 회색빛 세상에 다시 빛을 가져올 수 있기를 바라면서.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그녀는 계속 살아남아야 했다. 홀로, 그리고 강인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