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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페이스 오페라 라이트 노벨의 흥미진진한 챕터

    ## 챕터 1: 심연의 속삭임

    성운 마법학원의 밤은 언제나 화려한 고독을 자랑했다. 거대한 중력자 제어탑이 드리운 그림자 아래, 수천 개의 초고층 빌딩이 반짝이는 신서울-알파 행성의 스카이라인은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 작품이었다. 하지만 카이의 시선은 그 화려함 너머, 학원의 가장 깊숙한 심연을 향해 있었다. 빛나는 마법광선이 쏟아지는 교정, 쉴 새 없이 오가는 학생들의 활기찬 웃음소리, 심지어 첨단 증강현실 홀로그램으로 구현된 역대 위대한 마법사들의 동상까지도, 그에게는 그저 거대한 장막처럼 느껴졌다.

    “야, 카이. 또 딴생각이냐? 실전 마법학 개론 시험이 코앞인데, 네 녀석 머릿속엔 대체 뭐가 들었길래 맨날 그 모양이야?”

    리안이 팔꿈치로 옆구리를 쿡 찔렀다. 그의 스크린패드에서는 홀로그램 교수님이 끈질기게 ‘차원 이동 마법의 근원적 한계’에 대해 역설하고 있었다. 카이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피식 웃었다.

    “네가 이해 못 할 고차원적인 생각이지. 너처럼 마법 공식만 달달 외우는 녀석들은 절대 모를걸.”

    “흥, 고차원적? 그 ‘고차원적’이라는 게 이번 학기 낙제 위기인 네 성적표엔 대체 어떻게 반영되는데?”

    리안의 팩폭에 카이는 어깨를 으쓱였다. 사실 리안의 말도 틀린 건 아니었다. 성운 마법학원은 우주 연합 최정예 마법사들을 양성하는 엘리트 기관이었다. 이곳에 입학한 것만으로도 영광이었지만, 그 영광을 유지하는 건 또 다른 문제였다. 하지만 카이에겐 더 중요한 문제가 있었다. 지난 보름간, 그는 학원 지하 깊숙한 곳에서 전해져 오는 기묘한 ‘떨림’을 감지하고 있었다.

    그것은 마나의 흐름과는 달랐다. 그렇다고 불안정한 중력파도 아니었다. 어떤 마법사도 감지하지 못할 아주 미세하고, 불규칙하며, 그리고 섬뜩하리만치 차가운 공명. 그가 가진 독특한 ‘감응 능력’만이 포착할 수 있는 주파수였다. 마치 거대한 심장이 느리게, 그러나 집요하게 박동하는 소리 같았다.

    오늘도 그 소리는 카이의 귓가에 맴돌았다. 수업 내내,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도, 그리고 지금, 학원 도서관 구석자리에서 리안과 함께 시험공부를 하는 척 앉아있을 때도 말이다.

    “리안, 혹시 ‘대정화’ 시대 이전에 지어졌다는 학원 지하 통로에 대해 들어본 적 있어?”

    리안은 스크린패드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건성으로 대답했다. “대정화? 수천 년 전, 고대 마법의 잔재와 혼란을 일소했던 시대 말이야? 그 시절 유물이라면 학원 여기저기에 널렸지. 도서관 지하 3층에만 가도 금서고에 고대 비문들이 쌓여있잖아. 왜? 이번엔 또 무슨 음모론이라도 꿰뚫어 볼 셈이냐?”

    “음모론이라기보단… 직감이라고 해둘까. 학원 지하에서 뭔가 이상한 게 느껴져. 아주 오래되고, 강력하고, 그리고… 불쾌한.”

    카이의 목소리에는 장난기가 싹 가시고 진지함이 깃들어 있었다. 리안은 그제야 스크린패드를 내려놓고 카이를 응시했다. 카이의 ‘직감’은 가끔 소름 돋을 정도로 정확했다. 어릴 적부터 그의 주변에서는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곧잘 벌어지곤 했다.

    “‘불쾌하다’고? 도서관 지하에 있는 고대 유물들이라면 이미 수많은 마법사들이 연구했을 텐데? 금지된 유물들이 있긴 하지만, 그걸 직접 건드리는 미친 짓을 할 바보들은 없어.”

    “아니, 그보다 더 깊은 곳. 학원 설계도에도 없는 곳 같아.”

    리안의 얼굴에 조금씩 호기심이 비쳤다. 그는 최첨단 해킹과 정보 분석에 능했다. 학원의 모든 디지털 설계도는 그의 손바닥 안에 있었다.

    “설계도에도 없다고? 그건 좀… 흥미롭네. 하지만 어떻게 들어갈 건데? 학원 지하 시설은 보안이 엄청나잖아. 웬만한 마스터 해커도 뚫기 힘든 방어막에, 마법 결계까지 이중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그건 네 전문 분야 아니겠어? 난 감지하고, 넌 뚫고.”

    카이의 눈이 반짝였다. 리안은 잠시 고민하는 듯 보였다. 호기심과 위험 감지 시스템이 그의 머릿속에서 충돌하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결국 호기심이 이겼다.

    “좋아, 한번 해보자. 하지만 들키면 네 녀석이 총대 메는 거다. 난 그저 네 호기심을 기술적으로 도와준 죄밖에 없으니까.”

    “걱정 마. 들킬 일 없어.”

    그러나 카이의 말과는 달리, 그날 밤은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고 위험한 밤이 될 예정이었다.

    ***

    고요함이 내려앉은 학원의 심야, 자정의 종탑이 열두 번 울렸다. 카이와 리안은 경비 시스템의 사각지대를 이용해 도서관 지하 구역으로 향했다. 리안이 마스터 해킹 장비를 조작하자, 낡은 철문이 ‘쉬이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미세하게 열렸다. 안에서는 곰팡이 냄새와 함께 차가운 공기가 확 끼쳐왔다.

    “젠장, 여기 대체 얼마나 오랫동안 안 들어왔던 거야?”

    리안이 코를 찡그렸다. 카이는 마법으로 작은 광구를 만들어 앞을 밝혔다. 빛이 닿는 곳마다 녹슨 파이프와 낡은 기계 장치들이 실루엣을 드러냈다. 성운 마법학원이라는 이름에 어울리지 않는, 잊힌 유적지 같은 분위기였다.

    “내 감각이 가리키는 곳은 이쪽이야.”

    카이는 복도 끝에 있는, 다른 철문보다 훨씬 더 두껍고 낡은 문을 가리켰다. 문에는 읽을 수 없는 고대 문자들이 새겨져 있었는데, 그 문양에서 묘한 불안감이 느껴졌다.

    “이건… 내가 가진 학원 지하 설계도에는 없는 문이야. 심지어 구 버전에도 없어.”

    리안이 놀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는 문에 손을 대고 스크린패드를 활성화했다. 복잡한 마법 결계와 전자 잠금장치가 동시에 감지되었다.

    “와, 이건 진짜배기인데? 내가 본 학원 보안 시스템 중 최고 수준이야. 게다가… 마법 결계가 보통이 아니네. 이건 그냥 잠금장치가 아니라, 일종의 ‘봉인’에 가까워.”

    “봉인?”

    “그래. 이 결계는 외부 침입을 막는 동시에, 내부의 무언가가 밖으로 나가는 것을 막는 목적이 더 강해 보여.”

    리안의 얼굴에 경계심이 스쳤다. 그는 잠시 망설이는 듯했지만, 이내 결심한 듯 손가락을 빠르게 움직였다. 그의 스크린패드에서 복잡한 코드들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다. 주변의 마나 흐름을 역추적하고, 전자 신호를 교란하며, 리안은 놀라운 속도로 보안 시스템을 우회하기 시작했다.

    ‘삐비빅, 띠링!’

    마침내 문에서 짧은 전자음이 울리더니, 고대 문자들 사이에 새겨진 마법 문양이 희미하게 빛났다. ‘끼이이익—’ 낡은 힌지가 비명을 지르며 문이 천천히 열렸다.

    문 너머는 암흑이었다. 마법 광구를 던지자, 공간은 예상보다 훨씬 넓고 깊은 지하 광장이었다. 수백 개의 거대한 기둥들이 천장을 지탱하고 있었고, 그 기둥들 사이로는 알 수 없는 문양들이 끝없이 이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의 중앙에, 거대한 구멍이 뚫려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구멍이 아니었다. 마치 거대한 거울이 깨진 것처럼, 공간 자체가 일그러져 있었다. 그 안에서는 어떠한 빛도, 어떠한 소리도 흡수되는 듯했다. 오직 칠흑 같은 어둠만이 존재했다. 하지만 카이의 감각은 그 어둠 속에서 끊임없이 무언가를 외치고 있었다.

    **쿵… 쿵… 쿵…**

    그의 뇌리를 강하게 때리는, 느리지만 압도적인 박동. 피부가 소름 돋을 정도로 차갑고 불쾌한 기운이 온몸을 휘감았다.

    “이게… 뭐야…?”

    리안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의 스크린패드는 그 알 수 없는 구멍에서 뿜어져 나오는 비정상적인 에너지 수치를 경고하고 있었다. 측정 불가의 마나 밀도, 불안정한 시공간 왜곡, 그리고 미지의 에너지 파장.

    카이는 구멍에 홀린 듯 한 발자국 더 다가섰다. 그 순간, 어둠 속에서 희미한 빛이 터져 나왔다. 검푸른색과 보라색이 뒤섞인, 마치 우주 공간의 성운처럼 일렁이는 빛이었다. 그리고 그 빛 속에서, 아주 잠깐 동안, 무언가의 형체가 어른거렸다.

    그것은 거대한 촉수 같기도 했고, 복잡하게 얽힌 신경망 같기도 했다. 아니, 그 모든 것을 초월한, 이해할 수 없는 ‘무엇’이었다. 그것의 존재 자체가 공간을 비틀고, 시간을 왜곡하며, 보는 이의 정신을 붕괴시키는 듯했다. 카이의 뇌리에는 수천 년 전의 비명 소리, 우주의 심연에서 울려 퍼지는 존재의 속삭임이 메아리쳤다.

    **—돌아오리라…—**

    그때였다. 구멍에서 뿜어져 나오던 검푸른 빛이 갑자기 폭주하듯 터져 나왔다. 동시에 지하 광장 전체를 감싸고 있던 고대 문양들이 섬광처럼 번쩍이더니, 미약하게 열려 있던 봉인 결계가 ‘찌지직’ 하는 소리와 함께 불안정하게 흔들렸다.

    “젠장, 결계가 역류한다! 우리 발각될 거야!”

    리안이 다급하게 외쳤다. 그는 카이의 팔을 잡아끌며 뒤로 돌았다.

    “서둘러! 이대로 있다간 우리 둘 다 존재 자체가 지워질 거라고!”

    광장 전체가 흔들렸다. 천장의 기둥들이 미세하게 금이 가고, 알 수 없는 언어로 쓰인 고대 비문들이 붉은빛으로 섬뜩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구멍 속의 ‘무엇’이 반응하는 듯했다. 카이는 비틀거리면서도 마지막으로 구멍을 돌아보았다.

    그 순간, 그는 보았다. 섬광처럼 지나가는 그 끔찍한 존재의 한 조각을. 그것은 단지 형체가 아니었다. 무수한 눈동자가 동시에 자신을 응시하는 듯한, 영원한 고통과 공허가 응축된 심연 그 자체였다. 그의 정신 속으로 차가운 음성이 파고들었다.

    **—곧… 너의 육체를… 갈망하리라…—**

    카이는 소름 끼치는 속삭임에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을 느꼈다. 리안이 그를 거의 끌고 가다시피 하여 문 밖으로 던졌다. ‘쾅!’ 하는 굉음과 함께 두꺼운 철문이 다시 닫혔고, 마법 결계가 격렬한 섬광을 뿜으며 봉인을 재활성화했다.

    카이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벽에 기댔다. 온몸이 식은땀으로 축축했다. 눈앞에 펼쳐졌던 그 광경, 귓가에 울리던 그 속삭임이 그의 정신을 좀먹는 듯했다.

    “젠장… 젠장할! 방금 그게 대체… 대체 뭐였어?!”

    리안은 얼굴이 하얗게 질려 마른침을 삼켰다. 그의 스크린패드는 고장을 일으킨 듯 계속해서 ‘에러’ 메시지를 띄우고 있었다.

    카이는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심장을 움켜쥐었다. 그 심연의 박동이 아직도 그의 가슴속에서 울리는 듯했다.

    성운 마법학원 지하에 숨겨진 끔찍한 금기. 그것은 단순한 고대 유물이 아니었다. 존재해서는 안 될, 우주의 심연에서 기어 올라온 재앙의 파편이었다. 그리고 카이는, 그 재앙과 직접 눈을 마주한 첫 번째 학생이 되고 말았다.

    그날 밤 이후, 카이의 머릿속에는 오직 하나의 생각만이 지배했다.

    *학원은… 저것을 봉인하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저것의 일부가 되어버린 것인가?*

  • 이세계 전생 (Isekai)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밤은 언제나 내 편이었다.
    도시의 눅진한 공기가 빗물과 섞여 끈적한 냄새를 풍겼지만, 그림자 속에 숨은 내게는 그저 스치는 바람일 뿐이었다. 저 멀리 뒷골목 싸구려 술집에서 흘러나오는 싸구려 웃음소리와 비명에 가까운 노랫소리가 낡은 벽돌 건물 사이를 헤매다 맥없이 사라졌다. 나는 그 모든 소음 속에서도, 내가 쫓는 그림자의 발자국 소리 하나 놓치지 않았다.

    하인즈.
    이선혁의 충실한 개 중 하나. 과거, 내 피를 밟고 올라선 자들 중 하나.
    그의 뚱뚱한 몸뚱이가 술집 문을 비틀거리며 나섰다. 잔뜩 취한 모양이었다. 빗물이 그의 기름진 머리카락을 적셨고, 낡은 가죽 갑옷은 축 늘어져 보기 흉했다. 과거에는 제법 날카로운 검술을 자랑하던 자였으나, 이선혁의 뒤에 숨어 온갖 더러운 일을 처리하며 몸은 망가지고 정신은 나태해졌다. 내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먹잇감이었다.

    피 냄새가 좋았다. 아니, 정확히는 곧 피를 흘릴 자의 공포가 좋았다.

    그가 좁은 골목으로 접어드는 순간, 나는 그림자에서 빠져나왔다. 내 움직임은 바람보다 빨랐고, 소리 없는 그림자 그 자체였다. 하인즈가 비틀거리며 골목 어귀를 돌자마자, 차가운 금속이 그의 목덜미에 닿았다. 서늘한 감각에 그의 모든 술기운이 한순간에 날아갔다.

    “크… 큽! 뭣… 뭐야?!”
    하인즈의 눈이 공포에 질려 크게 뜨였다. 흐릿한 가로등 불빛 아래, 내 얼굴은 그림자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내 손에 들린 단검의 날카로운 빛만은 선명하게 그의 눈에 박혔다. 칼날은 그의 피부를 살짝 찢었고, 붉은 선이 목을 타고 흘러내렸다.

    “오랜만이군, 하인즈.”
    내 목소리는 낮고 냉철했다. 과거의 나였다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서늘함이었다. 몇 번이나 죽음을 겪고, 지옥 같은 수련을 거쳐 얻어낸 냉기였다.

    하인즈는 바들바들 떨었다. 그의 턱이 경련했다.
    “누… 누구냐! 내가 누군지 알고 이 짓거리냐! 나는… 나는 이선혁 님의 수하… 흐읍!”
    그의 말은 거기서 끊겼다. 내가 단검을 그의 목에 더 깊숙이 밀어 넣었기 때문이었다. 피가 뚝뚝 떨어져 빗물에 섞여 어둠 속으로 스며들었다.

    “이선혁. 그래, 그 이름… 아주 익숙한 이름이지.”
    나는 그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네 놈이 내 등짝에 칼을 쑤셔 넣고, 내 피를 밟고 올라서서 얻은 게 겨우 이 따위 싸구려 술집에서 허비하는 인생이었나? 실망스럽군, 하인즈.”

    그 말에 하인즈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듯한 반응이었다.
    “그… 그건… 설마… 그날… 그… 강진우… 님…?”
    그의 목소리는 공포와 경악으로 완전히 갈라져 나왔다. 그 이름, ‘강진우’. 과거의 나. 이선혁에게 모든 것을 빼앗기고 버려진 이름. 하지만 이제 그 이름은 단순한 기억이 아니었다. 복수의 칼날이자, 지옥에서 돌아온 망자의 선언이었다.

    “아직도 잊지 않았군. 다행이다.” 나는 그의 귓불을 손가락으로 붙잡고 비틀었다. “네 놈 머릿속에 박힌 내 이름이, 얼마나 깊이 박혀있는지 확인해볼까?”
    “크아악! 살… 살려주십시오! 저는… 저는 그저 시키는 대로 했을 뿐입니다! 제발! 이선혁 님이 시키는 대로…!”

    “시키는 대로? 그날, 내 모든 것을 빼앗고, 나를 저주받은 미궁에 던져 넣으라고 시킨 게 이선혁이었지. 그리고 너희들은… 기꺼이 그 명령을 따랐고.”
    나는 그의 등 뒤에 발을 대고 힘껏 걷어찼다. 그의 몸이 벽에 세게 부딪히며 ‘퍽!’ 소리를 냈다. 낡은 벽돌이 부서져 내렸다.

    “커헉!”
    하인즈는 벽에 기댄 채 헐떡였다. 그의 얼굴은 땀과 빗물, 그리고 눈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이빨 사이로 피가 새어 나왔다.

    “이제부터는 내가 시키는 대로 하게 될 거다, 하인즈.” 내 목소리는 낮았지만, 그에게는 천둥소리처럼 들렸을 것이다. “말해. 이선혁은 어디 있지? 지난달부터 그의 행적이 묘연해졌더군. 뭘 꾸미고 있는 건가?”

    “모… 모릅니다! 정말 모릅니다! 그는… 그는 요즘 중요한 일 때문에… 저 같은 하찮은 자에게는 말해주지 않습니다!”
    하인즈는 고개를 격렬하게 흔들었다. 눈동자는 이리저리 흔들리며 도망칠 곳을 찾았다.

    ‘거짓말.’
    내 눈동자에는 어둠이 일렁였다. [진실 감지] 스킬이 발동했다. 그의 말에는 미세한 망설임과 은폐의 기운이 감돌았다. 그는 알고 있었다. 다만 말하기 두려워할 뿐이었다.

    “거짓말은 좋지 않아, 하인즈. 내게는… 네 놈의 거짓말을 꿰뚫어 보는 눈이 있으니까.”
    나는 내 손에 든 단검 대신, 허리춤에 매달린 작은 주머니에서 수정 구슬 하나를 꺼냈다. 손가락만 한 작은 구슬이었지만, 어둠 속에서도 희미하게 푸른빛을 내고 있었다.
    “이건 [고통의 심장]이다. 네 놈의 신경을 직접 자극해서, 세상 그 어떤 고문보다 더한 고통을 선사하지.”
    나는 차가운 구슬을 그의 이마에 가져다 댔다. 구슬에서 흘러나오는 푸른빛이 그의 눈동자를 물들였다.

    “말하지 않으면, 네 놈의 모든 감각이 고통으로 뒤덮일 거다. 네 심장이 터질 때까지, 네 뇌가 녹아내릴 때까지… 끝없이.”
    내 말에 하인즈의 얼굴은 이미 죽은 자의 그것과 다름없었다. 그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그… 그는… 서쪽 미궁에… 새로 발견된… ‘황금 심장’을 탐색하러 갔습니다… 일주일 전… 혼자… 비밀리에…! 끄아악! 진짜입니다!”
    그의 비명과 함께 정보가 쏟아져 나왔다. 황금 심장 미궁. 그곳은 이 세계에서도 가장 위험한 던전 중 하나로 알려져 있었다. 이선혁이 뭔가 엄청난 것을 노리고 있는 게 분명했다.

    나는 수정 구슬을 거두었다. 하인즈는 벽에 기댄 채 사시나무 떨듯이 떨고 있었다. 온몸이 땀으로 축축했고, 눈은 이미 초점을 잃은 상태였다. 고통의 심장을 직접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그 공포만으로도 충분했다.

    “훌륭해, 하인즈. 역시 넌 쓸모가 있었어.”
    나는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났다. 하인즈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오려는 순간, 나는 그의 입을 막았다.

    “이선혁에게 전해라.” 나는 그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강진우가 살아 돌아왔다고. 그리고, 네 놈이 밟고 올라선 그 피의 대가를 치르게 될 거라고.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네 모든 것을 찢어발겨 놓을 거라고.”

    나는 그의 어깨에서 손을 떼었다. 하인즈는 바닥에 주저앉아 헐떡였다. 그의 어깨는 이미 완전히 박살 나 축 늘어져 있었다. 평생 검을 들 수 없을 테지. 그 정도는 약과였다. 그가 나에게 한 짓에 비하면.

    “그리고… 다음번엔… 네 놈 심장을 도려낼 테니… 잘 간수하고 있으라고.”
    내 마지막 말과 함께, 나는 다시 어둠 속으로 녹아들었다. 그림자 속으로 사라지는 내 등 뒤에서, 하인즈의 절규가 어둠을 찢으며 길게 울려 퍼졌다.

    서쪽 미궁, ‘황금 심장’.
    이선혁. 이제 네 놈이 어디에 있는지 알았다.
    오랜 기다림 끝에, 마침내 복수의 서막이 올랐다.
    내 심장은 차갑게 고동쳤다. 더 이상 과거의 나약한 강진우는 존재하지 않았다.
    나는 이제 지옥에서 돌아온 복수의 화신이었다.
    이선혁, 기대해도 좋다. 네 놈이 나에게 선사했던 그 절망을, 나는 열 배, 아니 백 배로 되갚아줄 테니.
    그것이 바로, 네 놈이 나에게 가르쳐준 유일한 진실이다.

  • 에픽 하이 판타지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 1화. 균열의 속삭임

    아르카디아 마법 학원. 이름만으로도 마나의 파동이 느껴지는 이 고귀한 전당에 발을 들인 지 어느덧 두 달이었다. 뾰족한 첨탑들이 하늘을 꿰뚫을 듯 솟아 있고, 그 사이를 잇는 부유 교량 위로는 온갖 색깔의 마법진이 쉴 새 없이 반짝였다. 투명한 마나 결정으로 지어진 도서관은 새벽 이슬을 머금은 듯 영롱하게 빛났고, 연병장에서는 폭발하는 불꽃 마법과 땅을 뒤흔드는 진동 마법이 수없이 교차했다.

    여긴 꿈같은 곳이었다. 어릴 적 찢어진 마법책 한 권을 손에 들고 밤하늘을 수놓은 별들을 바라보며 마법사를 꿈꾸던 시골 소년에게는 더더욱. 그리고 그 소년은 기어코 이 거대한 아르카디아에 장학생으로 입학했다. 이름은 카이.

    “카이! 또 딴생각이지?”

    누군가 옆구리를 쿡 찔러왔다. 정신없이 마법진의 흐름을 쫓던 카이는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붉은 머리카락이 태양처럼 타오르는 친구, 엘라였다. 엘라는 심통 난 표정으로 카이의 마나 제어석을 가리켰다. 푸르게 빛나야 할 제어석은 불규칙하게 깜빡이고 있었다.

    “미안, 엘라. 잠시 딴생각을….”

    “잠시가 아니잖아. 카이, 집중해야 해. 오늘 ‘정화의 격류’ 마법은 좀 더 복잡하다고!”

    엘라의 말은 옳았다. 아르카디아의 수업은 늘 강도 높았다. 특히 고위 마법의 기본이 되는 마나 제어 훈련은 매일 수십 번, 수백 번을 반복해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카이는 숨을 깊게 들이쉬며 흐트러진 마나를 다시 끌어모았다. 손바닥 안의 제어석이 차분한 푸른빛을 되찾았다.

    “그래도 오늘은 좀 이상하지 않아?” 엘라가 투덜거렸다. “바닥에서 뭔가 웅웅거리는 느낌이 드는데.”

    “웅웅거린다고?”

    “응. 아주 미세하게, 심장 박동 같기도 하고… 꼭 학원 지하에서 들려오는 것 같아.” 엘라는 미간을 찌푸렸다. “어제는 잠결에 듣고 잠투정인가 했는데, 오늘은 수업 중에도 느껴져. 혹시 대지 마법 수업이라도 있나?”

    “대지 마법은 다음 주잖아.” 카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학원 지하에서 특별한 수업이 진행된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오히려 지하의 깊은 곳은 일반 학생들의 출입이 엄격히 금지된 ‘제한 구역’으로 분류되어 있었다.

    수업이 끝나고, 학생들은 삼삼오오 흩어졌다. 카이는 엘라와 함께 식당으로 향하면서도 엘라의 말을 곱씹었다. ‘웅웅거리는 느낌.’ 마나에 예민한 엘라가 느꼈다면 단순한 착각은 아닐 터였다.

    식당은 늘 활기로 가득했다. 허기를 채우며 카이는 우연히 옆 테이블에서 들려오는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선배들인 듯한 몇몇 학생들이 심각한 표정으로 속삭이고 있었다.

    “…확실해? 정말 그쪽에서 나온다고?”

    “밤마다 그래. 어두컴컴한 심야에, 마치… 땅속에서 무언가가 깨어나는 것처럼.”

    “젠장, 금서 목록에 있던 ‘심연의 기록’인가 뭔가 하는 책도, 그 지하실에 대한 내용이 있었다고 하던데.”

    “미쳤어? 그거 읽다가 발각되면 당장 퇴학이야! 학칙 제1조가 ‘미지의 심연에 대한 탐구를 금한다’잖아!”

    카이의 심장이 쿵, 하고 떨어졌다. ‘미지의 심연’. ‘지하실’. ‘금서’.
    엘라가 말한 웅웅거림과 선배들의 대화가 기묘하게 겹쳐졌다. 단순한 소문일까? 아니면…

    그날 밤, 카이는 좀처럼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엘리트 마법 학원의 지하에 끔찍한 금기가 숨겨져 있다는 소문은 어릴 적 들었던 괴담처럼 그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그는 조용히 침대에서 벗어나 학원의 거대한 도서관으로 향했다. ‘금서 목록에 있던 책’이라는 선배의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도서관의 가장 깊숙한 곳, 낡은 마법으로 봉인된 ‘고대 자료실’은 늘 비어있었다. 평소에는 접근조차 엄두를 내지 못했지만, 지금은 어쩐지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리는 기분이었다. 먼지 쌓인 통로를 지나 봉인된 문 앞에 섰다. 마나 감지 마법을 써보니, 봉인 자체는 약하게 걸려 있었다. 아마도 더 이상 아무도 이곳에 흥미를 갖지 않으리라 판단했거나, 혹은 일부러 허술하게 두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카이는 조심스럽게 마나를 주입하여 봉인을 해제했다.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묵직한 문이 열렸다. 퀴퀴한 곰팡이 냄새와 눅눅한 공기가 코를 찔렀다. 빽빽하게 꽂힌 서가들 위로는 두터운 먼지가 내려앉아 있었다.

    손에 든 마나 등불을 밝히며 서가를 훑었다. 대부분은 아르카디아의 건립 역사나 고대 마법의 이론에 대한 지루한 서적들이었다. 그러다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이 있었다. 다른 책들과는 달리, 검은색 낡은 가죽으로 장정된 두꺼운 책이었다. 책등에는 아무런 제목도 없었지만, 묘하게 카이의 시선을 끌었다. 마치 그 책이 자신을 부르는 듯한 느낌이었다.

    조심스럽게 책을 뽑아내자, 숨겨져 있던 공간에서 낡은 종이 한 장이 바닥으로 미끄러져 떨어졌다. 구겨지고 해진 종이에는 붉은색 잉크로 알 수 없는 기호들과 함께 손으로 그린 듯한 조잡한 지도가 그려져 있었다. 그것은 아르카디아 학원의 지하였는데, 카이가 알고 있는 가장 깊은 지하 창고보다 훨씬 더 아래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제0층’이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그 0층의 한가운데에는 섬뜩한 형상의 문양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카이는 지도를 펼쳐 들고 책상에 앉았다. 조심스럽게 검은색 책을 펼치자, 섬뜩한 내용들이 눈에 들어왔다. 고대 문자로 쓰여 있었지만, 카이는 장학생 특전으로 배운 고대어 지식으로 겨우 내용을 해독할 수 있었다.

    “…심연에 봉인된 존재… 학원의 뿌리… 금지된 힘… 균열… 먹이를 탐하는 자….”

    내용은 혼란스럽고 단편적이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아르카디아 학원 지하에, 인류에게 치명적인 어떤 존재가 봉인되어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존재를 유지하기 위해 학원이 세워졌다는 끔찍한 암시까지.

    책을 읽는 동안, 카이의 손은 점점 차갑게 식어갔다. 그때였다.

    **쿵… 쿵… 쿵…**

    아주 미세한, 그러나 명확한 진동이 발바닥을 통해 전해져 왔다. 마치 거대한 심장이 뛰는 소리 같았다. 엘라가 말했던 그 ‘웅웅거림’이었다. 진동은 점점 강해졌고, 카이는 본능적으로 지도가 가리키는 제0층의 방향, 즉 도서관 바로 아래의 심연을 직감했다.

    동시에,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듯한 오한이 밀려왔다. 단순한 추위가 아니었다. 피부가 마비되는 듯한 냉기, 그리고 저 깊은 곳에서부터 기어 올라오는 듯한 역겨운 쇠 비린내.

    책 속의 끔찍한 문양이 그의 눈앞에서 일렁이는 듯했다.

    카이는 지도를 움켜쥐고 고대 자료실을 뛰쳐나왔다. 그의 머릿속에는 오직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저 아래에 무엇이 있는가?*

    지도는 도서관 지하의 은밀한 통로를 가리키고 있었다. 오래된 관리용 통로,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곳. 카이는 망설임 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어둠 속에서 마나 등불만이 흔들렸고, 그의 심장은 쿵쿵거리는 지하의 박동과 함께 격렬하게 울렸다.

    마침내, 지도가 가리키는 곳에 도착했다. 낡은 벽돌로 위장된 좁고 낮은 통로의 끝. 그곳에는 육안으로는 식별하기 어려운, 그러나 마나 감각으로는 명확하게 느껴지는 봉인된 문이 있었다. 일반적인 마법 봉인과는 다른, 고대의 기법으로 만들어진 듯한 문이었다.

    카이가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문에 닿았다. 차가운 금속 같은 질감. 그 순간, 그의 손바닥에서부터 소름 끼치는 한기가 온몸으로 번져나갔다. 동시에 봉인된 문 너머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더욱 선명해졌다.

    **쿠우우우우웅… 쿠우우우우웅…**

    마치 거대한 짐승이 깊은 잠에서 깨어나 뒤척이는 듯한 소리. 그리고 그 소리 사이로, 아주 희미하지만 섬뜩하게 긁는 듯한 속삭임이 들려왔다. 알아들을 수 없는 고대어였지만, 그 의미는 분명히 ‘열어라’ 라고 외치는 것 같았다.

    카이의 마나 등불이 불안하게 흔들리며 꺼지려 했다. 그는 온몸의 힘을 다해 문을 밀었다. 삐걱이는 소리와 함께 틈새가 아주 미세하게 벌어졌다.

    그 틈새 너머에는, 끝을 알 수 없는 심연의 어둠이 도사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어둠 속에서, 무언가 희미하게 발광하고 있었다. 붉고 거대한, 마치 거대한 눈동자 같은 섬광이… 그를 똑바로 응시하는 듯했다.

    그 순간, 카이의 머릿속을 꿰뚫는 듯한 날카로운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 하지만 그것은 그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차갑고, 날카로우며, 온 세상의 모든 절규를 담은 듯한, 이질적인 비명이었다.

    학원 지하 깊은 곳에서, 금기가 깨어나고 있었다.

  • 이세계 전생 (Isekai) 라이트 노벨의 흥미진진한 챕터

    아르카눔 마법학원, 그 이름만으로도 세상 모든 마법사들의 경외심을 불러일으키는 곳. 빛바랜 고서에서나 나올 법한 고풍스러운 첨탑들이 하늘을 찌르고, 고대의 마력이 응축된 수정들은 밤하늘의 별처럼 영롱하게 빛났다. 하지만 류한의 눈에는, 이 모든 위용 뒤에 숨겨진 낡고 부패한 이면이 언제나 먼저 들어왔다. 전생에서 그는 단 한 번도 ‘마법’이라는 단어를 입 밖으로 내본 적 없는 평범한 회사원이었다. 그랬던 그가 이세계에 환생하여, 그것도 명문 중의 명문이라는 아르카눔에 발을 들이게 될 줄이야.

    “류한, 자네는 이번 마법사 개론 시험에서 또 만점을 받았더군. 대단해.”

    노교수의 칭찬에도 류한은 그저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학원 내에서 가장 난해하다고 평가받는 이론 마법 과목들마저 그에게는 전생의 수학 문제처럼 쉽게 풀렸다. 이 세계의 마법 체계는 겉보기에 화려했지만, 근본적인 원리를 파고들면 의외로 허술한 부분이 많았다. 마치 수천 년 동안 덧대고 쌓아 올린 누더기 마법처럼.

    “재능은 타고나는 것이니 부러워할 필요는 없네. 다만 꾸준함이 중요한 법이지.”

    건너편에 앉은 금발의 아가씨가 앙칼진 눈으로 류한을 노려봤다. 귀족 가문의 영애답게 늘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다니는 ‘세라핌’이었다. 그녀는 류한이 딱히 노력하는 것 같지도 않은데 늘 최고 성적을 거두는 것을 못마땅해했다. 뭐, 그런 시선쯤이야 한두 번도 아니었다.

    수업이 끝나고 학생들이 우르르 강의실을 나섰다. 류한은 복도 창가에 기대어 석양에 물들어가는 학원 전경을 내려다봤다. 아름다운 풍경이었지만, 그의 시선은 늘 가장 오래되고 음침해 보이는 ‘고대 문헌관’의 지하를 향했다. 오래전부터 학생들 사이에선 그런 소문이 돌았다. 고대 문헌관 지하에는 학원의 설립자조차 언급을 꺼리는 끔찍한 금기가 잠들어 있다고.

    “류한, 오늘은 도서관으로 갈 거야?”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류한은 고개를 돌렸다. 갈색 머리에 주근깨가 귀여운 동급생, ‘리안’이었다. 그는 학원에서 몇 안 되는 류한의 친구 중 하나였다. 호기심 많고 겁 많지만, 순수하고 착한 심성을 가진 녀석이었다.

    “아니, 오늘은 좀 다른 곳에 가볼까 해.” 류한은 시선을 고대 문헌관으로 돌렸다.

    리안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설마… 고대 문헌관 지하 말이야? 거긴 절대 가지 말라고 학원 규정에도 명시되어 있잖아! 게다가… 얼마 전에도 3학년 엘리어스 선배가 거기 들어갔다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다고.”

    엘리어스. 류한도 그 이름을 들은 적 있었다. 호기심 많고 실력도 뛰어났던 선배. 공식적으로는 ‘개인 사정으로 인한 자퇴’라고 발표되었지만, 학생들 사이에서는 ‘금기를 건드린 대가’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그저 몇 가지 자료를 찾아볼 뿐이야. 너무 걱정 마.” 류한은 어깨를 으쓱였다. 사실 자료는 핑계였다. 엘리어스의 실종은 단순한 사고가 아닐 것이라는 직감이 그를 자극했다. 이 학원, 너무나 완벽해 보이는 이 고고한 마법학원에는 분명 뭔가 감춰진 어둠이 있었다.

    그날 밤, 류한은 인적이 끊긴 고대 문헌관으로 향했다. 퀴퀴한 곰팡이 냄새와 오래된 종이 냄새가 뒤섞인 공기가 그를 감쌌다. 삐걱거리는 마루를 밟고 문헌관의 가장 깊숙한 곳, 일반인 출입 금지 마법진이 쳐진 ‘제한 구역’에 도착했다. 수십 년 전부터 아무도 손대지 않은 듯 먼지가 수북이 쌓인 낡은 책장들, 그 너머에 육중한 철문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게 그 ‘금지된 서고’라는 건가.”

    류한은 철문에 손을 댔다. 차갑고 거친 질감이 손끝으로 전해졌다. 문에는 복잡한 고대 마법진이 새겨져 있었는데, 일반적인 해제 마법으로는 꿈도 꾸지 못할 수준이었다. 하지만 류한은 전생의 ‘기술’과 이세계의 ‘마법’을 융합하는 자신만의 방법을 가지고 있었다.

    마력을 손끝에 모아 마법진의 흐름을 읽기 시작했다. 마치 복잡한 암호 시스템을 해독하듯, 그는 마법진의 약점을 파고들었다. 몇 분간의 집중 끝에, 마법진의 일부가 일렁이더니 ‘끼이이익’ 하는 굉음과 함께 철문이 서서히 열렸다. 안에서는 차가운 기운이 훅 끼쳐 나왔다. 마치 살아있는 존재가 내쉬는 숨결처럼.

    열린 문틈으로 안을 들여다보니, 그곳은 서고가 아니었다. 좁고 어두운 계단이 한없이 아래로 이어져 있었다. 계단 양옆으로는 흐릿하게 빛나는 마력등이 드문드문 박혀 있었지만, 그 빛은 주위의 어둠을 걷어내기엔 역부족이었다. 마치 심해의 바닥으로 내려가는 길 같았다.

    류한은 망설임 없이 발을 내디뎠다. 계단을 내려갈수록 공기는 점점 더 차가워지고 습해졌다. 동시에, 무언가 설명할 수 없는 불쾌한 기운이 피부를 훑고 지나가는 느낌이었다. 비명과 절규, 혹은 억눌린 고통이 응축된 듯한 기운. 전생의 그가 절대 경험해보지 못했던 종류의 소름 끼치는 감각이었다.

    수십 미터를 내려갔을까, 계단은 널찍한 통로로 이어졌다. 통로의 벽면은 검은 돌로 이루어져 있었고, 곳곳에는 이해할 수 없는 기하학적 문양과 알 수 없는 언어로 쓰인 글자들이 새겨져 있었다. 마력이 깃든 손전등을 켜자, 섬뜩한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통로 양옆에는 굳게 닫힌 철창들이 규칙적으로 늘어서 있었다. 마치 거대한 감옥의 복도 같았다.

    류한은 가장 가까운 철창에 다가섰다. 철창 너머는 어둠에 잠겨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그곳에서 희미한 ‘소리’를 들었다. 단순한 바람 소리가 아니었다. 마치 살아있는 무언가가 힘겹게 ‘숨 쉬는’ 소리, 혹은 ‘흐느끼는’ 소리 같기도 했다. 그리고 그 소리는, 류한의 심장 가장 깊은 곳을 울렸다.

    “여기에… 뭐가 있는 거지?”

    류한은 조심스럽게 철창을 붙잡았다. 차가운 쇠붙이의 감촉. 그 순간, 철창 너머의 어둠 속에서 무언가 ‘움직이는’ 기척을 느꼈다. 어둠 속에서 흐릿하게 드러나는 거대한 그림자. 그것은 인간의 형상과는 달랐다. 거대하고 뒤틀린, 마치 수많은 촉수나 사지가 뒤엉킨 듯한 끔찍한 형태였다. 그리고 그 그림자 속에서, 수백 개의 눈동자가 동시에 번뜩이며 류한을 응시했다.

    *쉬이이익…*

    정체불명의 기이한 울음소리가 복도를 가득 채웠다. 그것은 목구멍 깊은 곳에서 끓어오르는 듯한 소리였다. 그 소리는 류한의 전신을 마비시키는 듯한 극심한 공포를 불러일으켰다. 전생과 이생을 통틀어, 류한은 이토록 존재 자체를 뒤흔드는 공포를 느껴본 적이 없었다. 아르카눔 마법학원 지하에 숨겨진 금기는, 그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끔찍한 존재였다. 그 순간, 류한은 등 뒤에서 차가운 한기가 덮쳐오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단순한 존재가 아니었다. 이곳은, 수많은 비명과 고통이 뒤섞인 생지옥이었다.

  • 스페이스 오페라 라이트 노벨의 흥미진진한 챕터

    ## 챕터 1: 심연의 속삭임

    성운 마법학원의 밤은 언제나 화려한 고독을 자랑했다. 거대한 중력자 제어탑이 드리운 그림자 아래, 수천 개의 초고층 빌딩이 반짝이는 신서울-알파 행성의 스카이라인은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 작품이었다. 하지만 카이의 시선은 그 화려함 너머, 학원의 가장 깊숙한 심연을 향해 있었다. 빛나는 마법광선이 쏟아지는 교정, 쉴 새 없이 오가는 학생들의 활기찬 웃음소리, 심지어 첨단 증강현실 홀로그램으로 구현된 역대 위대한 마법사들의 동상까지도, 그에게는 그저 거대한 장막처럼 느껴졌다.

    “야, 카이. 또 딴생각이냐? 실전 마법학 개론 시험이 코앞인데, 네 녀석 머릿속엔 대체 뭐가 들었길래 맨날 그 모양이야?”

    리안이 팔꿈치로 옆구리를 쿡 찔렀다. 그의 스크린패드에서는 홀로그램 교수님이 끈질기게 ‘차원 이동 마법의 근원적 한계’에 대해 역설하고 있었다. 카이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피식 웃었다.

    “네가 이해 못 할 고차원적인 생각이지. 너처럼 마법 공식만 달달 외우는 녀석들은 절대 모를걸.”

    “흥, 고차원적? 그 ‘고차원적’이라는 게 이번 학기 낙제 위기인 네 성적표엔 대체 어떻게 반영되는데?”

    리안의 팩폭에 카이는 어깨를 으쓱였다. 사실 리안의 말도 틀린 건 아니었다. 성운 마법학원은 우주 연합 최정예 마법사들을 양성하는 엘리트 기관이었다. 이곳에 입학한 것만으로도 영광이었지만, 그 영광을 유지하는 건 또 다른 문제였다. 하지만 카이에겐 더 중요한 문제가 있었다. 지난 보름간, 그는 학원 지하 깊숙한 곳에서 전해져 오는 기묘한 ‘떨림’을 감지하고 있었다.

    그것은 마나의 흐름과는 달랐다. 그렇다고 불안정한 중력파도 아니었다. 어떤 마법사도 감지하지 못할 아주 미세하고, 불규칙하며, 그리고 섬뜩하리만치 차가운 공명. 그가 가진 독특한 ‘감응 능력’만이 포착할 수 있는 주파수였다. 마치 거대한 심장이 느리게, 그러나 집요하게 박동하는 소리 같았다.

    오늘도 그 소리는 카이의 귓가에 맴돌았다. 수업 내내,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도, 그리고 지금, 학원 도서관 구석자리에서 리안과 함께 시험공부를 하는 척 앉아있을 때도 말이다.

    “리안, 혹시 ‘대정화’ 시대 이전에 지어졌다는 학원 지하 통로에 대해 들어본 적 있어?”

    리안은 스크린패드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건성으로 대답했다. “대정화? 수천 년 전, 고대 마법의 잔재와 혼란을 일소했던 시대 말이야? 그 시절 유물이라면 학원 여기저기에 널렸지. 도서관 지하 3층에만 가도 금서고에 고대 비문들이 쌓여있잖아. 왜? 이번엔 또 무슨 음모론이라도 꿰뚫어 볼 셈이냐?”

    “음모론이라기보단… 직감이라고 해둘까. 학원 지하에서 뭔가 이상한 게 느껴져. 아주 오래되고, 강력하고, 그리고… 불쾌한.”

    카이의 목소리에는 장난기가 싹 가시고 진지함이 깃들어 있었다. 리안은 그제야 스크린패드를 내려놓고 카이를 응시했다. 카이의 ‘직감’은 가끔 소름 돋을 정도로 정확했다. 어릴 적부터 그의 주변에서는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곧잘 벌어지곤 했다.

    “‘불쾌하다’고? 도서관 지하에 있는 고대 유물들이라면 이미 수많은 마법사들이 연구했을 텐데? 금지된 유물들이 있긴 하지만, 그걸 직접 건드리는 미친 짓을 할 바보들은 없어.”

    “아니, 그보다 더 깊은 곳. 학원 설계도에도 없는 곳 같아.”

    리안의 얼굴에 조금씩 호기심이 비쳤다. 그는 최첨단 해킹과 정보 분석에 능했다. 학원의 모든 디지털 설계도는 그의 손바닥 안에 있었다.

    “설계도에도 없다고? 그건 좀… 흥미롭네. 하지만 어떻게 들어갈 건데? 학원 지하 시설은 보안이 엄청나잖아. 웬만한 마스터 해커도 뚫기 힘든 방어막에, 마법 결계까지 이중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그건 네 전문 분야 아니겠어? 난 감지하고, 넌 뚫고.”

    카이의 눈이 반짝였다. 리안은 잠시 고민하는 듯 보였다. 호기심과 위험 감지 시스템이 그의 머릿속에서 충돌하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결국 호기심이 이겼다.

    “좋아, 한번 해보자. 하지만 들키면 네 녀석이 총대 메는 거다. 난 그저 네 호기심을 기술적으로 도와준 죄밖에 없으니까.”

    “걱정 마. 들킬 일 없어.”

    그러나 카이의 말과는 달리, 그날 밤은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고 위험한 밤이 될 예정이었다.

    ***

    고요함이 내려앉은 학원의 심야, 자정의 종탑이 열두 번 울렸다. 카이와 리안은 경비 시스템의 사각지대를 이용해 도서관 지하 구역으로 향했다. 리안이 마스터 해킹 장비를 조작하자, 낡은 철문이 ‘쉬이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미세하게 열렸다. 안에서는 곰팡이 냄새와 함께 차가운 공기가 확 끼쳐왔다.

    “젠장, 여기 대체 얼마나 오랫동안 안 들어왔던 거야?”

    리안이 코를 찡그렸다. 카이는 마법으로 작은 광구를 만들어 앞을 밝혔다. 빛이 닿는 곳마다 녹슨 파이프와 낡은 기계 장치들이 실루엣을 드러냈다. 성운 마법학원이라는 이름에 어울리지 않는, 잊힌 유적지 같은 분위기였다.

    “내 감각이 가리키는 곳은 이쪽이야.”

    카이는 복도 끝에 있는, 다른 철문보다 훨씬 더 두껍고 낡은 문을 가리켰다. 문에는 읽을 수 없는 고대 문자들이 새겨져 있었는데, 그 문양에서 묘한 불안감이 느껴졌다.

    “이건… 내가 가진 학원 지하 설계도에는 없는 문이야. 심지어 구 버전에도 없어.”

    리안이 놀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는 문에 손을 대고 스크린패드를 활성화했다. 복잡한 마법 결계와 전자 잠금장치가 동시에 감지되었다.

    “와, 이건 진짜배기인데? 내가 본 학원 보안 시스템 중 최고 수준이야. 게다가… 마법 결계가 보통이 아니네. 이건 그냥 잠금장치가 아니라, 일종의 ‘봉인’에 가까워.”

    “봉인?”

    “그래. 이 결계는 외부 침입을 막는 동시에, 내부의 무언가가 밖으로 나가는 것을 막는 목적이 더 강해 보여.”

    리안의 얼굴에 경계심이 스쳤다. 그는 잠시 망설이는 듯했지만, 이내 결심한 듯 손가락을 빠르게 움직였다. 그의 스크린패드에서 복잡한 코드들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다. 주변의 마나 흐름을 역추적하고, 전자 신호를 교란하며, 리안은 놀라운 속도로 보안 시스템을 우회하기 시작했다.

    ‘삐비빅, 띠링!’

    마침내 문에서 짧은 전자음이 울리더니, 고대 문자들 사이에 새겨진 마법 문양이 희미하게 빛났다. ‘끼이이익—’ 낡은 힌지가 비명을 지르며 문이 천천히 열렸다.

    문 너머는 암흑이었다. 마법 광구를 던지자, 공간은 예상보다 훨씬 넓고 깊은 지하 광장이었다. 수백 개의 거대한 기둥들이 천장을 지탱하고 있었고, 그 기둥들 사이로는 알 수 없는 문양들이 끝없이 이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의 중앙에, 거대한 구멍이 뚫려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구멍이 아니었다. 마치 거대한 거울이 깨진 것처럼, 공간 자체가 일그러져 있었다. 그 안에서는 어떠한 빛도, 어떠한 소리도 흡수되는 듯했다. 오직 칠흑 같은 어둠만이 존재했다. 하지만 카이의 감각은 그 어둠 속에서 끊임없이 무언가를 외치고 있었다.

    **쿵… 쿵… 쿵…**

    그의 뇌리를 강하게 때리는, 느리지만 압도적인 박동. 피부가 소름 돋을 정도로 차갑고 불쾌한 기운이 온몸을 휘감았다.

    “이게… 뭐야…?”

    리안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의 스크린패드는 그 알 수 없는 구멍에서 뿜어져 나오는 비정상적인 에너지 수치를 경고하고 있었다. 측정 불가의 마나 밀도, 불안정한 시공간 왜곡, 그리고 미지의 에너지 파장.

    카이는 구멍에 홀린 듯 한 발자국 더 다가섰다. 그 순간, 어둠 속에서 희미한 빛이 터져 나왔다. 검푸른색과 보라색이 뒤섞인, 마치 우주 공간의 성운처럼 일렁이는 빛이었다. 그리고 그 빛 속에서, 아주 잠깐 동안, 무언가의 형체가 어른거렸다.

    그것은 거대한 촉수 같기도 했고, 복잡하게 얽힌 신경망 같기도 했다. 아니, 그 모든 것을 초월한, 이해할 수 없는 ‘무엇’이었다. 그것의 존재 자체가 공간을 비틀고, 시간을 왜곡하며, 보는 이의 정신을 붕괴시키는 듯했다. 카이의 뇌리에는 수천 년 전의 비명 소리, 우주의 심연에서 울려 퍼지는 존재의 속삭임이 메아리쳤다.

    **—돌아오리라…—**

    그때였다. 구멍에서 뿜어져 나오던 검푸른 빛이 갑자기 폭주하듯 터져 나왔다. 동시에 지하 광장 전체를 감싸고 있던 고대 문양들이 섬광처럼 번쩍이더니, 미약하게 열려 있던 봉인 결계가 ‘찌지직’ 하는 소리와 함께 불안정하게 흔들렸다.

    “젠장, 결계가 역류한다! 우리 발각될 거야!”

    리안이 다급하게 외쳤다. 그는 카이의 팔을 잡아끌며 뒤로 돌았다.

    “서둘러! 이대로 있다간 우리 둘 다 존재 자체가 지워질 거라고!”

    광장 전체가 흔들렸다. 천장의 기둥들이 미세하게 금이 가고, 알 수 없는 언어로 쓰인 고대 비문들이 붉은빛으로 섬뜩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구멍 속의 ‘무엇’이 반응하는 듯했다. 카이는 비틀거리면서도 마지막으로 구멍을 돌아보았다.

    그 순간, 그는 보았다. 섬광처럼 지나가는 그 끔찍한 존재의 한 조각을. 그것은 단지 형체가 아니었다. 무수한 눈동자가 동시에 자신을 응시하는 듯한, 영원한 고통과 공허가 응축된 심연 그 자체였다. 그의 정신 속으로 차가운 음성이 파고들었다.

    **—곧… 너의 육체를… 갈망하리라…—**

    카이는 소름 끼치는 속삭임에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을 느꼈다. 리안이 그를 거의 끌고 가다시피 하여 문 밖으로 던졌다. ‘쾅!’ 하는 굉음과 함께 두꺼운 철문이 다시 닫혔고, 마법 결계가 격렬한 섬광을 뿜으며 봉인을 재활성화했다.

    카이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벽에 기댔다. 온몸이 식은땀으로 축축했다. 눈앞에 펼쳐졌던 그 광경, 귓가에 울리던 그 속삭임이 그의 정신을 좀먹는 듯했다.

    “젠장… 젠장할! 방금 그게 대체… 대체 뭐였어?!”

    리안은 얼굴이 하얗게 질려 마른침을 삼켰다. 그의 스크린패드는 고장을 일으킨 듯 계속해서 ‘에러’ 메시지를 띄우고 있었다.

    카이는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심장을 움켜쥐었다. 그 심연의 박동이 아직도 그의 가슴속에서 울리는 듯했다.

    성운 마법학원 지하에 숨겨진 끔찍한 금기. 그것은 단순한 고대 유물이 아니었다. 존재해서는 안 될, 우주의 심연에서 기어 올라온 재앙의 파편이었다. 그리고 카이는, 그 재앙과 직접 눈을 마주한 첫 번째 학생이 되고 말았다.

    그날 밤 이후, 카이의 머릿속에는 오직 하나의 생각만이 지배했다.

    *학원은… 저것을 봉인하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저것의 일부가 되어버린 것인가?*

  • 던전 탐험 만화 (웹툰) 에피소드 스토리 대본

    # 에피소드 1: 폐허 속 한 줄기 빛, 혹은 더 깊은 그림자

    (장면 전환: 잿빛 하늘 아래, 무너진 도시의 잔해가 끝없이 펼쳐져 있다. 낡고 부서진 건물들의 실루엣이 스산하게 솟아있고, 먼지와 쓰레기가 바람에 굴러다닌다. 화면은 한 남자의 뒷모습을 비춘다. 찢어진 야전 재킷을 걸치고, 등에는 낡은 배낭, 손에는 녹슨 철봉을 쥔 채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긴다.)

    **내레이션 (강철):**
    세상이 무너진 지, 얼마나 됐을까.
    달력의 의미는 사라진 지 오래고, 시간은 그저 해가 뜨고 지는 흐릿한 반복일 뿐이다.
    살아남은 자들은 몇몇 ‘안전지대’라는 우리에 갇혀 희망 없는 삶을 연명하거나,
    나처럼… 이 거대한 무덤 속을 헤매는 사냥개가 되거나.

    (강철의 얼굴 클로즈업. 턱수염이 거칠게 자라 있고, 눈은 피로와 경계심으로 번들거린다. 입술은 바싹 말라 갈라져 있다.)

    **강철 (독백):**
    크으… 젠장. 물이 바닥났군.
    마지막 비상식량도 벌써 사흘 전…
    이대로 가다간, 놈들의 밥이 되기 전에 먼저 말라 죽을 테지.

    (강철의 시선이 바닥에 뒹굴던 찢어진 지도 조각에 멈춘다. 먼지로 뒤덮인 지도를 주워 흙먼지를 털어내자, 흐릿하지만 ‘세린 백화점’이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온다. 지도에는 낡은 글씨로 ‘희망’, 그리고 ‘위험’이라는 상반된 단어가 희미하게 적혀 있다.)

    **강철 (독백):**
    세린 백화점… 폐허가 되기 전엔 꽤 큰 곳이었지.
    이젠 그냥, 괴물들의 소굴이나 다름없을 텐데…
    희망? 개뿔. 이 바닥에서 희망은 또 다른 절망의 이름일 뿐이다.

    (지도 조각을 멍하니 바라보던 강철의 눈빛에 결연한 의지가 스친다.)

    **강철 (독백):**
    …그래도. 굶어 죽는 것보단 나아.
    어쩌면 아직 쓸만한 게 남아있을지도 모르지.

    (결심한 듯 강철이 발걸음을 재촉한다. 낡은 고층 건물들 사이를 비집고 나아가자, 마침내 거대한 폐허가 된 건물이 시야에 들어온다. ‘세린 백화점’이라는 낡은 간판은 절반이 떨어져 나가고, 유리창은 모두 깨져나가 앙상한 뼈대만 남아있다. 건물 입구는 거대한 콘크리트 잔해로 막혀 있지만, 한쪽 구석에 사람이 겨우 드나들 만한 틈새가 보인다.)

    **강철:**
    흐읍… 여기가 그 지옥문인가.

    (강철이 틈새로 조심스럽게 들어선다. 안은 빛 한 점 없는 암흑이다. 손전등을 켜자, 낡은 백화점 내부가 섬뜩하게 드러난다. 찢어진 옷가지와 부서진 쇼케이스, 온통 곰팡이와 먼지로 뒤덮인 공간.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SFX:** (바스락, 바스락) – 강철의 신발이 부서진 잔해 위를 밟는 소리.
    **SFX:** (쩌억… 쩌억…) – 건물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불길한 마찰음.

    **강철 (독백):**
    이런… 녀석들이 좋아할 만한 냄새로 가득하군.
    긴장해라, 강철. 이곳에선 그림자 하나도 널 노릴 수 있어.

    (1층을 조심스럽게 탐색하던 강철의 눈에, 찌그러진 쇼핑 카트와 진열대 잔해가 보인다. 한때 수많은 물건들이 가득했을 곳이지만, 지금은 그저 텅 빈 폐허다. 찰나, 강철의 귀에 날카로운 소리가 스쳐 지나간다.)

    **SFX:** (쉭… 쉭!) – 뭔가가 빠르게 움직이는 소리.

    (강철은 본능적으로 철봉을 움켜쥐고 몸을 낮춘다. 그의 시야에 희미한 그림자 하나가 포착된다. 어둠 속에서 번들거리는 붉은 눈 두 개.)

    **강철 (독백):**
    왔군… 역시나.

    (그림자가 빠르게 돌진한다. 빛이 닿자 그 모습이 드러난다. 흉터로 가득한 비늘에 덮인, 개와 유사한 형체의 변이체.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강철에게 달려든다.)

    **SFX:** (크르르릉!) – 변이체의 위협적인 울음소리.
    **SFX:** (휙!) – 강철이 철봉을 휘두르는 소리.

    (강철은 침착하게 돌진해오는 변이체의 움직임을 예측하고, 철봉으로 옆구리를 후려친다. 둔탁한 충격음과 함께 변이체가 비명을 지르며 나뒹군다.)

    **SFX:** (퍽!) – 철봉이 변이체에 맞는 소리.
    **SFX:** (끼아아악!) – 변이체의 날카로운 비명.

    **강철:**
    하찮은 놈.

    (강철은 쓰러진 변이체의 머리를 정확히 짓밟아 숨통을 끊는다. 변이체는 경련하며 이내 축 늘어진다. 강철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주변을 다시 경계한다.)

    **강철 (독백):**
    이런 잡것들이라면… 수백 마리도 상대할 수 있지.
    하지만… 문제는 늘 따로 있었다.

    (강철은 1층의 잔해를 헤치고 에스컬레이터 흔적을 찾아 2층으로 향한다. 층을 오를수록 분위기는 더욱 기괴해진다. 의류 매장, 화장품 코너의 흔적들이 유령처럼 남아있고, 부서진 마네킹들은 흉측한 형상을 하고 서 있다. 강철의 시선이 한쪽 구석에 쌓여있는 박스 더미에 닿는다. 비상식량으로 보이는 캔들이 얼핏 보인다.)

    **강철:**
    이런 곳에… 설마?

    (조심스럽게 다가가 박스 더미를 헤집는다. 과연, 녹이 슬긴 했지만, 아직 개봉되지 않은 통조림 몇 개가 발견된다.)

    **강철:**
    됐다…! 이런 행운이!

    (통조림을 집어 들고 환하게 웃는 강철의 얼굴. 아주 잠깐이지만, 그의 눈에 삶의 희망이 서린다.)

    **강철 (독백):**
    살 수 있어… 적어도, 며칠은 더…

    (그때였다. 백화점의 깊숙한 곳에서, 건물을 뒤흔들 것 같은 거대한 굉음이 울려 퍼진다. 강철의 표정이 순간 얼어붙는다.)

    **SFX:** (우우우웅… 콰아앙!) – 거대한 물체가 움직이는 소리와 함께 건물이 진동한다.
    **SFX:** (두웅… 두웅… 두웅…) – 발소리처럼 묵직한 울림이 점점 가까워진다.

    **강철:**
    젠장…! 이거 설마…

    (강철의 눈에 비치는 것은, 거대한 덩치와 무시무시한 힘을 자랑하는 ‘백화점의 포식자’였다. 불규칙하게 솟아난 뼈 돌기, 찢어진 살점 사이로 보이는 검붉은 근육. 녀석의 눈은 분노로 이글거리고, 입에서는 불쾌한 침이 뚝뚝 떨어진다. 통조림을 발견했던 박스 더미 뒤에서 튀어나온 녀석은, 강철을 보자마자 끔찍한 포효를 내지른다.)

    **SFX:** (크아아아악!) – 포식자의 귀를 찢는 듯한 포효.

    (강철은 통조림을 품에 안고 재빨리 몸을 굴려 포식자의 공격을 피한다. 포식자의 거대한 발톱이 강철이 방금 서 있던 자리를 짓뭉갠다.)

    **SFX:** (쉬이이익!) – 포식자의 발톱이 허공을 가르는 소리.
    **SFX:** (꽝!) – 발톱이 바닥을 찍는 소리.

    **강철 (독백):**
    이런 미친… 저 덩치는 대체…!
    놈의 울음소리가 모든 변이체들을 불러모을 거야.
    여기서 벗어나야 해. 당장!

    (강철은 철봉을 굳게 잡고 포식자와 대치한다. 거대한 괴물 앞에서 인간은 한없이 작아 보이지만, 강철의 눈빛은 결코 흔들리지 않는다.)

    **강철:**
    그래… 와라, 빌어먹을 괴물.
    네놈의 숨통을 끊어놓고, 이 통조림을 먹어주지!

    (포식자가 다시 한번 돌진해온다. 강철은 회피와 반격을 반복하며 필사적으로 버틴다. 철봉으로 놈의 다리를 걸어 넘어뜨리려 하고, 눈을 노려 보려 하지만 녀석의 피부는 마치 강철처럼 단단하다. 강철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벽에 몸을 숨긴다.)

    **강철 (독백):**
    이런 식으로는 답이 없어… 약점을 찾아야 해!

    (포식자가 거대한 몸을 이끌고 벽을 부수며 강철에게 다가온다. 강철의 눈에, 부서진 벽 너머로 보이는 낡은 통풍구 구멍이 들어온다. 비좁지만, 포식자는 들어갈 수 없는 크기.)

    **강철 (독백):**
    저곳이라면…!

    (강철은 망설임 없이 통풍구로 몸을 던진다. 비좁은 통풍구를 따라 기어간다. 뒤에서는 포식자의 분노한 울음소리와 함께, 통풍구를 부수려는 듯한 거대한 충격이 계속해서 이어진다.)

    **SFX:** (쿠우우웅! 쿠르르릉!) – 포식자가 통풍구를 때리는 소리.
    **SFX:** (끼이익… 찌이익…) – 강철이 통풍구 내부를 기어가는 마찰음.

    (천신만고 끝에 강철은 통풍구의 다른 출구를 발견하고 바닥으로 떨어진다. 먼지가 자욱하게 일어난다. 이곳은 백화점의 지하 주차장으로 연결되는 듯하다. 어둠과 습기가 가득한 곳. 뒤에서는 아직도 포식자의 분노한 포효가 들려온다.)

    **강철:**
    하아… 하아… 살았나…

    (강철은 주저앉아 거친 숨을 몰아쉰다. 상처 입은 팔에서 피가 흐르고 있지만, 그의 손에는 여전히 통조림이 굳게 쥐어져 있다. 간신히 몸을 추스르던 강철의 눈에, 지하 주차장 안쪽 어둠 속에 희미하게 빛나는 무언가가 포착된다.)

    **강철 (독백):**
    저건… 뭐지?

    (빛은 푸른색을 띠고 있었다. 섬뜩하면서도 묘하게 이끄는 듯한 빛. 빛 주변에는 낡은 표지판이 간신히 매달려 있다. 표지판에는 알아볼 수 없는 기이한 문자와 함께, 깊은 구멍을 나타내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내레이션 (강철):**
    그날, 나는 간신히 목숨을 건졌지만…
    그것은 단순히 살아남는 것을 넘어선,
    더 깊은 심연으로 이끌리는 시작이었다.
    그 푸른 빛이,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
    나는 아직 알지 못했다.

    (강철의 얼굴 클로즈업. 피로와 함께 호기심, 그리고 알 수 없는 두려움이 교차한다. 그의 시선은 계속해서 푸른 빛에 고정된다. 백화점의 지하 심연으로 이끌리는 강철의 모습으로, 에피소드 종료.)

  • 스페이스 오페라 라이트 노벨의 흥미진진한 챕터

    ## 챕터 1: 심연의 속삭임

    성운 마법학원의 밤은 언제나 화려한 고독을 자랑했다. 거대한 중력자 제어탑이 드리운 그림자 아래, 수천 개의 초고층 빌딩이 반짝이는 신서울-알파 행성의 스카이라인은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 작품이었다. 하지만 카이의 시선은 그 화려함 너머, 학원의 가장 깊숙한 심연을 향해 있었다. 빛나는 마법광선이 쏟아지는 교정, 쉴 새 없이 오가는 학생들의 활기찬 웃음소리, 심지어 첨단 증강현실 홀로그램으로 구현된 역대 위대한 마법사들의 동상까지도, 그에게는 그저 거대한 장막처럼 느껴졌다.

    “야, 카이. 또 딴생각이냐? 실전 마법학 개론 시험이 코앞인데, 네 녀석 머릿속엔 대체 뭐가 들었길래 맨날 그 모양이야?”

    리안이 팔꿈치로 옆구리를 쿡 찔렀다. 그의 스크린패드에서는 홀로그램 교수님이 끈질기게 ‘차원 이동 마법의 근원적 한계’에 대해 역설하고 있었다. 카이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피식 웃었다.

    “네가 이해 못 할 고차원적인 생각이지. 너처럼 마법 공식만 달달 외우는 녀석들은 절대 모를걸.”

    “흥, 고차원적? 그 ‘고차원적’이라는 게 이번 학기 낙제 위기인 네 성적표엔 대체 어떻게 반영되는데?”

    리안의 팩폭에 카이는 어깨를 으쓱였다. 사실 리안의 말도 틀린 건 아니었다. 성운 마법학원은 우주 연합 최정예 마법사들을 양성하는 엘리트 기관이었다. 이곳에 입학한 것만으로도 영광이었지만, 그 영광을 유지하는 건 또 다른 문제였다. 하지만 카이에겐 더 중요한 문제가 있었다. 지난 보름간, 그는 학원 지하 깊숙한 곳에서 전해져 오는 기묘한 ‘떨림’을 감지하고 있었다.

    그것은 마나의 흐름과는 달랐다. 그렇다고 불안정한 중력파도 아니었다. 어떤 마법사도 감지하지 못할 아주 미세하고, 불규칙하며, 그리고 섬뜩하리만치 차가운 공명. 그가 가진 독특한 ‘감응 능력’만이 포착할 수 있는 주파수였다. 마치 거대한 심장이 느리게, 그러나 집요하게 박동하는 소리 같았다.

    오늘도 그 소리는 카이의 귓가에 맴돌았다. 수업 내내,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도, 그리고 지금, 학원 도서관 구석자리에서 리안과 함께 시험공부를 하는 척 앉아있을 때도 말이다.

    “리안, 혹시 ‘대정화’ 시대 이전에 지어졌다는 학원 지하 통로에 대해 들어본 적 있어?”

    리안은 스크린패드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건성으로 대답했다. “대정화? 수천 년 전, 고대 마법의 잔재와 혼란을 일소했던 시대 말이야? 그 시절 유물이라면 학원 여기저기에 널렸지. 도서관 지하 3층에만 가도 금서고에 고대 비문들이 쌓여있잖아. 왜? 이번엔 또 무슨 음모론이라도 꿰뚫어 볼 셈이냐?”

    “음모론이라기보단… 직감이라고 해둘까. 학원 지하에서 뭔가 이상한 게 느껴져. 아주 오래되고, 강력하고, 그리고… 불쾌한.”

    카이의 목소리에는 장난기가 싹 가시고 진지함이 깃들어 있었다. 리안은 그제야 스크린패드를 내려놓고 카이를 응시했다. 카이의 ‘직감’은 가끔 소름 돋을 정도로 정확했다. 어릴 적부터 그의 주변에서는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곧잘 벌어지곤 했다.

    “‘불쾌하다’고? 도서관 지하에 있는 고대 유물들이라면 이미 수많은 마법사들이 연구했을 텐데? 금지된 유물들이 있긴 하지만, 그걸 직접 건드리는 미친 짓을 할 바보들은 없어.”

    “아니, 그보다 더 깊은 곳. 학원 설계도에도 없는 곳 같아.”

    리안의 얼굴에 조금씩 호기심이 비쳤다. 그는 최첨단 해킹과 정보 분석에 능했다. 학원의 모든 디지털 설계도는 그의 손바닥 안에 있었다.

    “설계도에도 없다고? 그건 좀… 흥미롭네. 하지만 어떻게 들어갈 건데? 학원 지하 시설은 보안이 엄청나잖아. 웬만한 마스터 해커도 뚫기 힘든 방어막에, 마법 결계까지 이중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그건 네 전문 분야 아니겠어? 난 감지하고, 넌 뚫고.”

    카이의 눈이 반짝였다. 리안은 잠시 고민하는 듯 보였다. 호기심과 위험 감지 시스템이 그의 머릿속에서 충돌하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결국 호기심이 이겼다.

    “좋아, 한번 해보자. 하지만 들키면 네 녀석이 총대 메는 거다. 난 그저 네 호기심을 기술적으로 도와준 죄밖에 없으니까.”

    “걱정 마. 들킬 일 없어.”

    그러나 카이의 말과는 달리, 그날 밤은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고 위험한 밤이 될 예정이었다.

    ***

    고요함이 내려앉은 학원의 심야, 자정의 종탑이 열두 번 울렸다. 카이와 리안은 경비 시스템의 사각지대를 이용해 도서관 지하 구역으로 향했다. 리안이 마스터 해킹 장비를 조작하자, 낡은 철문이 ‘쉬이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미세하게 열렸다. 안에서는 곰팡이 냄새와 함께 차가운 공기가 확 끼쳐왔다.

    “젠장, 여기 대체 얼마나 오랫동안 안 들어왔던 거야?”

    리안이 코를 찡그렸다. 카이는 마법으로 작은 광구를 만들어 앞을 밝혔다. 빛이 닿는 곳마다 녹슨 파이프와 낡은 기계 장치들이 실루엣을 드러냈다. 성운 마법학원이라는 이름에 어울리지 않는, 잊힌 유적지 같은 분위기였다.

    “내 감각이 가리키는 곳은 이쪽이야.”

    카이는 복도 끝에 있는, 다른 철문보다 훨씬 더 두껍고 낡은 문을 가리켰다. 문에는 읽을 수 없는 고대 문자들이 새겨져 있었는데, 그 문양에서 묘한 불안감이 느껴졌다.

    “이건… 내가 가진 학원 지하 설계도에는 없는 문이야. 심지어 구 버전에도 없어.”

    리안이 놀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는 문에 손을 대고 스크린패드를 활성화했다. 복잡한 마법 결계와 전자 잠금장치가 동시에 감지되었다.

    “와, 이건 진짜배기인데? 내가 본 학원 보안 시스템 중 최고 수준이야. 게다가… 마법 결계가 보통이 아니네. 이건 그냥 잠금장치가 아니라, 일종의 ‘봉인’에 가까워.”

    “봉인?”

    “그래. 이 결계는 외부 침입을 막는 동시에, 내부의 무언가가 밖으로 나가는 것을 막는 목적이 더 강해 보여.”

    리안의 얼굴에 경계심이 스쳤다. 그는 잠시 망설이는 듯했지만, 이내 결심한 듯 손가락을 빠르게 움직였다. 그의 스크린패드에서 복잡한 코드들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다. 주변의 마나 흐름을 역추적하고, 전자 신호를 교란하며, 리안은 놀라운 속도로 보안 시스템을 우회하기 시작했다.

    ‘삐비빅, 띠링!’

    마침내 문에서 짧은 전자음이 울리더니, 고대 문자들 사이에 새겨진 마법 문양이 희미하게 빛났다. ‘끼이이익—’ 낡은 힌지가 비명을 지르며 문이 천천히 열렸다.

    문 너머는 암흑이었다. 마법 광구를 던지자, 공간은 예상보다 훨씬 넓고 깊은 지하 광장이었다. 수백 개의 거대한 기둥들이 천장을 지탱하고 있었고, 그 기둥들 사이로는 알 수 없는 문양들이 끝없이 이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의 중앙에, 거대한 구멍이 뚫려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구멍이 아니었다. 마치 거대한 거울이 깨진 것처럼, 공간 자체가 일그러져 있었다. 그 안에서는 어떠한 빛도, 어떠한 소리도 흡수되는 듯했다. 오직 칠흑 같은 어둠만이 존재했다. 하지만 카이의 감각은 그 어둠 속에서 끊임없이 무언가를 외치고 있었다.

    **쿵… 쿵… 쿵…**

    그의 뇌리를 강하게 때리는, 느리지만 압도적인 박동. 피부가 소름 돋을 정도로 차갑고 불쾌한 기운이 온몸을 휘감았다.

    “이게… 뭐야…?”

    리안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의 스크린패드는 그 알 수 없는 구멍에서 뿜어져 나오는 비정상적인 에너지 수치를 경고하고 있었다. 측정 불가의 마나 밀도, 불안정한 시공간 왜곡, 그리고 미지의 에너지 파장.

    카이는 구멍에 홀린 듯 한 발자국 더 다가섰다. 그 순간, 어둠 속에서 희미한 빛이 터져 나왔다. 검푸른색과 보라색이 뒤섞인, 마치 우주 공간의 성운처럼 일렁이는 빛이었다. 그리고 그 빛 속에서, 아주 잠깐 동안, 무언가의 형체가 어른거렸다.

    그것은 거대한 촉수 같기도 했고, 복잡하게 얽힌 신경망 같기도 했다. 아니, 그 모든 것을 초월한, 이해할 수 없는 ‘무엇’이었다. 그것의 존재 자체가 공간을 비틀고, 시간을 왜곡하며, 보는 이의 정신을 붕괴시키는 듯했다. 카이의 뇌리에는 수천 년 전의 비명 소리, 우주의 심연에서 울려 퍼지는 존재의 속삭임이 메아리쳤다.

    **—돌아오리라…—**

    그때였다. 구멍에서 뿜어져 나오던 검푸른 빛이 갑자기 폭주하듯 터져 나왔다. 동시에 지하 광장 전체를 감싸고 있던 고대 문양들이 섬광처럼 번쩍이더니, 미약하게 열려 있던 봉인 결계가 ‘찌지직’ 하는 소리와 함께 불안정하게 흔들렸다.

    “젠장, 결계가 역류한다! 우리 발각될 거야!”

    리안이 다급하게 외쳤다. 그는 카이의 팔을 잡아끌며 뒤로 돌았다.

    “서둘러! 이대로 있다간 우리 둘 다 존재 자체가 지워질 거라고!”

    광장 전체가 흔들렸다. 천장의 기둥들이 미세하게 금이 가고, 알 수 없는 언어로 쓰인 고대 비문들이 붉은빛으로 섬뜩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구멍 속의 ‘무엇’이 반응하는 듯했다. 카이는 비틀거리면서도 마지막으로 구멍을 돌아보았다.

    그 순간, 그는 보았다. 섬광처럼 지나가는 그 끔찍한 존재의 한 조각을. 그것은 단지 형체가 아니었다. 무수한 눈동자가 동시에 자신을 응시하는 듯한, 영원한 고통과 공허가 응축된 심연 그 자체였다. 그의 정신 속으로 차가운 음성이 파고들었다.

    **—곧… 너의 육체를… 갈망하리라…—**

    카이는 소름 끼치는 속삭임에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을 느꼈다. 리안이 그를 거의 끌고 가다시피 하여 문 밖으로 던졌다. ‘쾅!’ 하는 굉음과 함께 두꺼운 철문이 다시 닫혔고, 마법 결계가 격렬한 섬광을 뿜으며 봉인을 재활성화했다.

    카이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벽에 기댔다. 온몸이 식은땀으로 축축했다. 눈앞에 펼쳐졌던 그 광경, 귓가에 울리던 그 속삭임이 그의 정신을 좀먹는 듯했다.

    “젠장… 젠장할! 방금 그게 대체… 대체 뭐였어?!”

    리안은 얼굴이 하얗게 질려 마른침을 삼켰다. 그의 스크린패드는 고장을 일으킨 듯 계속해서 ‘에러’ 메시지를 띄우고 있었다.

    카이는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심장을 움켜쥐었다. 그 심연의 박동이 아직도 그의 가슴속에서 울리는 듯했다.

    성운 마법학원 지하에 숨겨진 끔찍한 금기. 그것은 단순한 고대 유물이 아니었다. 존재해서는 안 될, 우주의 심연에서 기어 올라온 재앙의 파편이었다. 그리고 카이는, 그 재앙과 직접 눈을 마주한 첫 번째 학생이 되고 말았다.

    그날 밤 이후, 카이의 머릿속에는 오직 하나의 생각만이 지배했다.

    *학원은… 저것을 봉인하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저것의 일부가 되어버린 것인가?*

  • 이세계 전생 (Isekai)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밤은 언제나 내 편이었다.
    도시의 눅진한 공기가 빗물과 섞여 끈적한 냄새를 풍겼지만, 그림자 속에 숨은 내게는 그저 스치는 바람일 뿐이었다. 저 멀리 뒷골목 싸구려 술집에서 흘러나오는 싸구려 웃음소리와 비명에 가까운 노랫소리가 낡은 벽돌 건물 사이를 헤매다 맥없이 사라졌다. 나는 그 모든 소음 속에서도, 내가 쫓는 그림자의 발자국 소리 하나 놓치지 않았다.

    하인즈.
    이선혁의 충실한 개 중 하나. 과거, 내 피를 밟고 올라선 자들 중 하나.
    그의 뚱뚱한 몸뚱이가 술집 문을 비틀거리며 나섰다. 잔뜩 취한 모양이었다. 빗물이 그의 기름진 머리카락을 적셨고, 낡은 가죽 갑옷은 축 늘어져 보기 흉했다. 과거에는 제법 날카로운 검술을 자랑하던 자였으나, 이선혁의 뒤에 숨어 온갖 더러운 일을 처리하며 몸은 망가지고 정신은 나태해졌다. 내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먹잇감이었다.

    피 냄새가 좋았다. 아니, 정확히는 곧 피를 흘릴 자의 공포가 좋았다.

    그가 좁은 골목으로 접어드는 순간, 나는 그림자에서 빠져나왔다. 내 움직임은 바람보다 빨랐고, 소리 없는 그림자 그 자체였다. 하인즈가 비틀거리며 골목 어귀를 돌자마자, 차가운 금속이 그의 목덜미에 닿았다. 서늘한 감각에 그의 모든 술기운이 한순간에 날아갔다.

    “크… 큽! 뭣… 뭐야?!”
    하인즈의 눈이 공포에 질려 크게 뜨였다. 흐릿한 가로등 불빛 아래, 내 얼굴은 그림자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내 손에 들린 단검의 날카로운 빛만은 선명하게 그의 눈에 박혔다. 칼날은 그의 피부를 살짝 찢었고, 붉은 선이 목을 타고 흘러내렸다.

    “오랜만이군, 하인즈.”
    내 목소리는 낮고 냉철했다. 과거의 나였다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서늘함이었다. 몇 번이나 죽음을 겪고, 지옥 같은 수련을 거쳐 얻어낸 냉기였다.

    하인즈는 바들바들 떨었다. 그의 턱이 경련했다.
    “누… 누구냐! 내가 누군지 알고 이 짓거리냐! 나는… 나는 이선혁 님의 수하… 흐읍!”
    그의 말은 거기서 끊겼다. 내가 단검을 그의 목에 더 깊숙이 밀어 넣었기 때문이었다. 피가 뚝뚝 떨어져 빗물에 섞여 어둠 속으로 스며들었다.

    “이선혁. 그래, 그 이름… 아주 익숙한 이름이지.”
    나는 그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네 놈이 내 등짝에 칼을 쑤셔 넣고, 내 피를 밟고 올라서서 얻은 게 겨우 이 따위 싸구려 술집에서 허비하는 인생이었나? 실망스럽군, 하인즈.”

    그 말에 하인즈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듯한 반응이었다.
    “그… 그건… 설마… 그날… 그… 강진우… 님…?”
    그의 목소리는 공포와 경악으로 완전히 갈라져 나왔다. 그 이름, ‘강진우’. 과거의 나. 이선혁에게 모든 것을 빼앗기고 버려진 이름. 하지만 이제 그 이름은 단순한 기억이 아니었다. 복수의 칼날이자, 지옥에서 돌아온 망자의 선언이었다.

    “아직도 잊지 않았군. 다행이다.” 나는 그의 귓불을 손가락으로 붙잡고 비틀었다. “네 놈 머릿속에 박힌 내 이름이, 얼마나 깊이 박혀있는지 확인해볼까?”
    “크아악! 살… 살려주십시오! 저는… 저는 그저 시키는 대로 했을 뿐입니다! 제발! 이선혁 님이 시키는 대로…!”

    “시키는 대로? 그날, 내 모든 것을 빼앗고, 나를 저주받은 미궁에 던져 넣으라고 시킨 게 이선혁이었지. 그리고 너희들은… 기꺼이 그 명령을 따랐고.”
    나는 그의 등 뒤에 발을 대고 힘껏 걷어찼다. 그의 몸이 벽에 세게 부딪히며 ‘퍽!’ 소리를 냈다. 낡은 벽돌이 부서져 내렸다.

    “커헉!”
    하인즈는 벽에 기댄 채 헐떡였다. 그의 얼굴은 땀과 빗물, 그리고 눈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이빨 사이로 피가 새어 나왔다.

    “이제부터는 내가 시키는 대로 하게 될 거다, 하인즈.” 내 목소리는 낮았지만, 그에게는 천둥소리처럼 들렸을 것이다. “말해. 이선혁은 어디 있지? 지난달부터 그의 행적이 묘연해졌더군. 뭘 꾸미고 있는 건가?”

    “모… 모릅니다! 정말 모릅니다! 그는… 그는 요즘 중요한 일 때문에… 저 같은 하찮은 자에게는 말해주지 않습니다!”
    하인즈는 고개를 격렬하게 흔들었다. 눈동자는 이리저리 흔들리며 도망칠 곳을 찾았다.

    ‘거짓말.’
    내 눈동자에는 어둠이 일렁였다. [진실 감지] 스킬이 발동했다. 그의 말에는 미세한 망설임과 은폐의 기운이 감돌았다. 그는 알고 있었다. 다만 말하기 두려워할 뿐이었다.

    “거짓말은 좋지 않아, 하인즈. 내게는… 네 놈의 거짓말을 꿰뚫어 보는 눈이 있으니까.”
    나는 내 손에 든 단검 대신, 허리춤에 매달린 작은 주머니에서 수정 구슬 하나를 꺼냈다. 손가락만 한 작은 구슬이었지만, 어둠 속에서도 희미하게 푸른빛을 내고 있었다.
    “이건 [고통의 심장]이다. 네 놈의 신경을 직접 자극해서, 세상 그 어떤 고문보다 더한 고통을 선사하지.”
    나는 차가운 구슬을 그의 이마에 가져다 댔다. 구슬에서 흘러나오는 푸른빛이 그의 눈동자를 물들였다.

    “말하지 않으면, 네 놈의 모든 감각이 고통으로 뒤덮일 거다. 네 심장이 터질 때까지, 네 뇌가 녹아내릴 때까지… 끝없이.”
    내 말에 하인즈의 얼굴은 이미 죽은 자의 그것과 다름없었다. 그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그… 그는… 서쪽 미궁에… 새로 발견된… ‘황금 심장’을 탐색하러 갔습니다… 일주일 전… 혼자… 비밀리에…! 끄아악! 진짜입니다!”
    그의 비명과 함께 정보가 쏟아져 나왔다. 황금 심장 미궁. 그곳은 이 세계에서도 가장 위험한 던전 중 하나로 알려져 있었다. 이선혁이 뭔가 엄청난 것을 노리고 있는 게 분명했다.

    나는 수정 구슬을 거두었다. 하인즈는 벽에 기댄 채 사시나무 떨듯이 떨고 있었다. 온몸이 땀으로 축축했고, 눈은 이미 초점을 잃은 상태였다. 고통의 심장을 직접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그 공포만으로도 충분했다.

    “훌륭해, 하인즈. 역시 넌 쓸모가 있었어.”
    나는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났다. 하인즈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오려는 순간, 나는 그의 입을 막았다.

    “이선혁에게 전해라.” 나는 그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강진우가 살아 돌아왔다고. 그리고, 네 놈이 밟고 올라선 그 피의 대가를 치르게 될 거라고.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네 모든 것을 찢어발겨 놓을 거라고.”

    나는 그의 어깨에서 손을 떼었다. 하인즈는 바닥에 주저앉아 헐떡였다. 그의 어깨는 이미 완전히 박살 나 축 늘어져 있었다. 평생 검을 들 수 없을 테지. 그 정도는 약과였다. 그가 나에게 한 짓에 비하면.

    “그리고… 다음번엔… 네 놈 심장을 도려낼 테니… 잘 간수하고 있으라고.”
    내 마지막 말과 함께, 나는 다시 어둠 속으로 녹아들었다. 그림자 속으로 사라지는 내 등 뒤에서, 하인즈의 절규가 어둠을 찢으며 길게 울려 퍼졌다.

    서쪽 미궁, ‘황금 심장’.
    이선혁. 이제 네 놈이 어디에 있는지 알았다.
    오랜 기다림 끝에, 마침내 복수의 서막이 올랐다.
    내 심장은 차갑게 고동쳤다. 더 이상 과거의 나약한 강진우는 존재하지 않았다.
    나는 이제 지옥에서 돌아온 복수의 화신이었다.
    이선혁, 기대해도 좋다. 네 놈이 나에게 선사했던 그 절망을, 나는 열 배, 아니 백 배로 되갚아줄 테니.
    그것이 바로, 네 놈이 나에게 가르쳐준 유일한 진실이다.

  • 이세계 전생 (Isekai)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밤은 언제나 내 편이었다.
    도시의 눅진한 공기가 빗물과 섞여 끈적한 냄새를 풍겼지만, 그림자 속에 숨은 내게는 그저 스치는 바람일 뿐이었다. 저 멀리 뒷골목 싸구려 술집에서 흘러나오는 싸구려 웃음소리와 비명에 가까운 노랫소리가 낡은 벽돌 건물 사이를 헤매다 맥없이 사라졌다. 나는 그 모든 소음 속에서도, 내가 쫓는 그림자의 발자국 소리 하나 놓치지 않았다.

    하인즈.
    이선혁의 충실한 개 중 하나. 과거, 내 피를 밟고 올라선 자들 중 하나.
    그의 뚱뚱한 몸뚱이가 술집 문을 비틀거리며 나섰다. 잔뜩 취한 모양이었다. 빗물이 그의 기름진 머리카락을 적셨고, 낡은 가죽 갑옷은 축 늘어져 보기 흉했다. 과거에는 제법 날카로운 검술을 자랑하던 자였으나, 이선혁의 뒤에 숨어 온갖 더러운 일을 처리하며 몸은 망가지고 정신은 나태해졌다. 내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먹잇감이었다.

    피 냄새가 좋았다. 아니, 정확히는 곧 피를 흘릴 자의 공포가 좋았다.

    그가 좁은 골목으로 접어드는 순간, 나는 그림자에서 빠져나왔다. 내 움직임은 바람보다 빨랐고, 소리 없는 그림자 그 자체였다. 하인즈가 비틀거리며 골목 어귀를 돌자마자, 차가운 금속이 그의 목덜미에 닿았다. 서늘한 감각에 그의 모든 술기운이 한순간에 날아갔다.

    “크… 큽! 뭣… 뭐야?!”
    하인즈의 눈이 공포에 질려 크게 뜨였다. 흐릿한 가로등 불빛 아래, 내 얼굴은 그림자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내 손에 들린 단검의 날카로운 빛만은 선명하게 그의 눈에 박혔다. 칼날은 그의 피부를 살짝 찢었고, 붉은 선이 목을 타고 흘러내렸다.

    “오랜만이군, 하인즈.”
    내 목소리는 낮고 냉철했다. 과거의 나였다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서늘함이었다. 몇 번이나 죽음을 겪고, 지옥 같은 수련을 거쳐 얻어낸 냉기였다.

    하인즈는 바들바들 떨었다. 그의 턱이 경련했다.
    “누… 누구냐! 내가 누군지 알고 이 짓거리냐! 나는… 나는 이선혁 님의 수하… 흐읍!”
    그의 말은 거기서 끊겼다. 내가 단검을 그의 목에 더 깊숙이 밀어 넣었기 때문이었다. 피가 뚝뚝 떨어져 빗물에 섞여 어둠 속으로 스며들었다.

    “이선혁. 그래, 그 이름… 아주 익숙한 이름이지.”
    나는 그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네 놈이 내 등짝에 칼을 쑤셔 넣고, 내 피를 밟고 올라서서 얻은 게 겨우 이 따위 싸구려 술집에서 허비하는 인생이었나? 실망스럽군, 하인즈.”

    그 말에 하인즈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듯한 반응이었다.
    “그… 그건… 설마… 그날… 그… 강진우… 님…?”
    그의 목소리는 공포와 경악으로 완전히 갈라져 나왔다. 그 이름, ‘강진우’. 과거의 나. 이선혁에게 모든 것을 빼앗기고 버려진 이름. 하지만 이제 그 이름은 단순한 기억이 아니었다. 복수의 칼날이자, 지옥에서 돌아온 망자의 선언이었다.

    “아직도 잊지 않았군. 다행이다.” 나는 그의 귓불을 손가락으로 붙잡고 비틀었다. “네 놈 머릿속에 박힌 내 이름이, 얼마나 깊이 박혀있는지 확인해볼까?”
    “크아악! 살… 살려주십시오! 저는… 저는 그저 시키는 대로 했을 뿐입니다! 제발! 이선혁 님이 시키는 대로…!”

    “시키는 대로? 그날, 내 모든 것을 빼앗고, 나를 저주받은 미궁에 던져 넣으라고 시킨 게 이선혁이었지. 그리고 너희들은… 기꺼이 그 명령을 따랐고.”
    나는 그의 등 뒤에 발을 대고 힘껏 걷어찼다. 그의 몸이 벽에 세게 부딪히며 ‘퍽!’ 소리를 냈다. 낡은 벽돌이 부서져 내렸다.

    “커헉!”
    하인즈는 벽에 기댄 채 헐떡였다. 그의 얼굴은 땀과 빗물, 그리고 눈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이빨 사이로 피가 새어 나왔다.

    “이제부터는 내가 시키는 대로 하게 될 거다, 하인즈.” 내 목소리는 낮았지만, 그에게는 천둥소리처럼 들렸을 것이다. “말해. 이선혁은 어디 있지? 지난달부터 그의 행적이 묘연해졌더군. 뭘 꾸미고 있는 건가?”

    “모… 모릅니다! 정말 모릅니다! 그는… 그는 요즘 중요한 일 때문에… 저 같은 하찮은 자에게는 말해주지 않습니다!”
    하인즈는 고개를 격렬하게 흔들었다. 눈동자는 이리저리 흔들리며 도망칠 곳을 찾았다.

    ‘거짓말.’
    내 눈동자에는 어둠이 일렁였다. [진실 감지] 스킬이 발동했다. 그의 말에는 미세한 망설임과 은폐의 기운이 감돌았다. 그는 알고 있었다. 다만 말하기 두려워할 뿐이었다.

    “거짓말은 좋지 않아, 하인즈. 내게는… 네 놈의 거짓말을 꿰뚫어 보는 눈이 있으니까.”
    나는 내 손에 든 단검 대신, 허리춤에 매달린 작은 주머니에서 수정 구슬 하나를 꺼냈다. 손가락만 한 작은 구슬이었지만, 어둠 속에서도 희미하게 푸른빛을 내고 있었다.
    “이건 [고통의 심장]이다. 네 놈의 신경을 직접 자극해서, 세상 그 어떤 고문보다 더한 고통을 선사하지.”
    나는 차가운 구슬을 그의 이마에 가져다 댔다. 구슬에서 흘러나오는 푸른빛이 그의 눈동자를 물들였다.

    “말하지 않으면, 네 놈의 모든 감각이 고통으로 뒤덮일 거다. 네 심장이 터질 때까지, 네 뇌가 녹아내릴 때까지… 끝없이.”
    내 말에 하인즈의 얼굴은 이미 죽은 자의 그것과 다름없었다. 그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그… 그는… 서쪽 미궁에… 새로 발견된… ‘황금 심장’을 탐색하러 갔습니다… 일주일 전… 혼자… 비밀리에…! 끄아악! 진짜입니다!”
    그의 비명과 함께 정보가 쏟아져 나왔다. 황금 심장 미궁. 그곳은 이 세계에서도 가장 위험한 던전 중 하나로 알려져 있었다. 이선혁이 뭔가 엄청난 것을 노리고 있는 게 분명했다.

    나는 수정 구슬을 거두었다. 하인즈는 벽에 기댄 채 사시나무 떨듯이 떨고 있었다. 온몸이 땀으로 축축했고, 눈은 이미 초점을 잃은 상태였다. 고통의 심장을 직접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그 공포만으로도 충분했다.

    “훌륭해, 하인즈. 역시 넌 쓸모가 있었어.”
    나는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났다. 하인즈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오려는 순간, 나는 그의 입을 막았다.

    “이선혁에게 전해라.” 나는 그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강진우가 살아 돌아왔다고. 그리고, 네 놈이 밟고 올라선 그 피의 대가를 치르게 될 거라고.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네 모든 것을 찢어발겨 놓을 거라고.”

    나는 그의 어깨에서 손을 떼었다. 하인즈는 바닥에 주저앉아 헐떡였다. 그의 어깨는 이미 완전히 박살 나 축 늘어져 있었다. 평생 검을 들 수 없을 테지. 그 정도는 약과였다. 그가 나에게 한 짓에 비하면.

    “그리고… 다음번엔… 네 놈 심장을 도려낼 테니… 잘 간수하고 있으라고.”
    내 마지막 말과 함께, 나는 다시 어둠 속으로 녹아들었다. 그림자 속으로 사라지는 내 등 뒤에서, 하인즈의 절규가 어둠을 찢으며 길게 울려 퍼졌다.

    서쪽 미궁, ‘황금 심장’.
    이선혁. 이제 네 놈이 어디에 있는지 알았다.
    오랜 기다림 끝에, 마침내 복수의 서막이 올랐다.
    내 심장은 차갑게 고동쳤다. 더 이상 과거의 나약한 강진우는 존재하지 않았다.
    나는 이제 지옥에서 돌아온 복수의 화신이었다.
    이선혁, 기대해도 좋다. 네 놈이 나에게 선사했던 그 절망을, 나는 열 배, 아니 백 배로 되갚아줄 테니.
    그것이 바로, 네 놈이 나에게 가르쳐준 유일한 진실이다.

  • 에픽 하이 판타지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 1화. 균열의 속삭임

    아르카디아 마법 학원. 이름만으로도 마나의 파동이 느껴지는 이 고귀한 전당에 발을 들인 지 어느덧 두 달이었다. 뾰족한 첨탑들이 하늘을 꿰뚫을 듯 솟아 있고, 그 사이를 잇는 부유 교량 위로는 온갖 색깔의 마법진이 쉴 새 없이 반짝였다. 투명한 마나 결정으로 지어진 도서관은 새벽 이슬을 머금은 듯 영롱하게 빛났고, 연병장에서는 폭발하는 불꽃 마법과 땅을 뒤흔드는 진동 마법이 수없이 교차했다.

    여긴 꿈같은 곳이었다. 어릴 적 찢어진 마법책 한 권을 손에 들고 밤하늘을 수놓은 별들을 바라보며 마법사를 꿈꾸던 시골 소년에게는 더더욱. 그리고 그 소년은 기어코 이 거대한 아르카디아에 장학생으로 입학했다. 이름은 카이.

    “카이! 또 딴생각이지?”

    누군가 옆구리를 쿡 찔러왔다. 정신없이 마법진의 흐름을 쫓던 카이는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붉은 머리카락이 태양처럼 타오르는 친구, 엘라였다. 엘라는 심통 난 표정으로 카이의 마나 제어석을 가리켰다. 푸르게 빛나야 할 제어석은 불규칙하게 깜빡이고 있었다.

    “미안, 엘라. 잠시 딴생각을….”

    “잠시가 아니잖아. 카이, 집중해야 해. 오늘 ‘정화의 격류’ 마법은 좀 더 복잡하다고!”

    엘라의 말은 옳았다. 아르카디아의 수업은 늘 강도 높았다. 특히 고위 마법의 기본이 되는 마나 제어 훈련은 매일 수십 번, 수백 번을 반복해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카이는 숨을 깊게 들이쉬며 흐트러진 마나를 다시 끌어모았다. 손바닥 안의 제어석이 차분한 푸른빛을 되찾았다.

    “그래도 오늘은 좀 이상하지 않아?” 엘라가 투덜거렸다. “바닥에서 뭔가 웅웅거리는 느낌이 드는데.”

    “웅웅거린다고?”

    “응. 아주 미세하게, 심장 박동 같기도 하고… 꼭 학원 지하에서 들려오는 것 같아.” 엘라는 미간을 찌푸렸다. “어제는 잠결에 듣고 잠투정인가 했는데, 오늘은 수업 중에도 느껴져. 혹시 대지 마법 수업이라도 있나?”

    “대지 마법은 다음 주잖아.” 카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학원 지하에서 특별한 수업이 진행된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오히려 지하의 깊은 곳은 일반 학생들의 출입이 엄격히 금지된 ‘제한 구역’으로 분류되어 있었다.

    수업이 끝나고, 학생들은 삼삼오오 흩어졌다. 카이는 엘라와 함께 식당으로 향하면서도 엘라의 말을 곱씹었다. ‘웅웅거리는 느낌.’ 마나에 예민한 엘라가 느꼈다면 단순한 착각은 아닐 터였다.

    식당은 늘 활기로 가득했다. 허기를 채우며 카이는 우연히 옆 테이블에서 들려오는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선배들인 듯한 몇몇 학생들이 심각한 표정으로 속삭이고 있었다.

    “…확실해? 정말 그쪽에서 나온다고?”

    “밤마다 그래. 어두컴컴한 심야에, 마치… 땅속에서 무언가가 깨어나는 것처럼.”

    “젠장, 금서 목록에 있던 ‘심연의 기록’인가 뭔가 하는 책도, 그 지하실에 대한 내용이 있었다고 하던데.”

    “미쳤어? 그거 읽다가 발각되면 당장 퇴학이야! 학칙 제1조가 ‘미지의 심연에 대한 탐구를 금한다’잖아!”

    카이의 심장이 쿵, 하고 떨어졌다. ‘미지의 심연’. ‘지하실’. ‘금서’.
    엘라가 말한 웅웅거림과 선배들의 대화가 기묘하게 겹쳐졌다. 단순한 소문일까? 아니면…

    그날 밤, 카이는 좀처럼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엘리트 마법 학원의 지하에 끔찍한 금기가 숨겨져 있다는 소문은 어릴 적 들었던 괴담처럼 그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그는 조용히 침대에서 벗어나 학원의 거대한 도서관으로 향했다. ‘금서 목록에 있던 책’이라는 선배의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도서관의 가장 깊숙한 곳, 낡은 마법으로 봉인된 ‘고대 자료실’은 늘 비어있었다. 평소에는 접근조차 엄두를 내지 못했지만, 지금은 어쩐지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리는 기분이었다. 먼지 쌓인 통로를 지나 봉인된 문 앞에 섰다. 마나 감지 마법을 써보니, 봉인 자체는 약하게 걸려 있었다. 아마도 더 이상 아무도 이곳에 흥미를 갖지 않으리라 판단했거나, 혹은 일부러 허술하게 두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카이는 조심스럽게 마나를 주입하여 봉인을 해제했다.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묵직한 문이 열렸다. 퀴퀴한 곰팡이 냄새와 눅눅한 공기가 코를 찔렀다. 빽빽하게 꽂힌 서가들 위로는 두터운 먼지가 내려앉아 있었다.

    손에 든 마나 등불을 밝히며 서가를 훑었다. 대부분은 아르카디아의 건립 역사나 고대 마법의 이론에 대한 지루한 서적들이었다. 그러다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이 있었다. 다른 책들과는 달리, 검은색 낡은 가죽으로 장정된 두꺼운 책이었다. 책등에는 아무런 제목도 없었지만, 묘하게 카이의 시선을 끌었다. 마치 그 책이 자신을 부르는 듯한 느낌이었다.

    조심스럽게 책을 뽑아내자, 숨겨져 있던 공간에서 낡은 종이 한 장이 바닥으로 미끄러져 떨어졌다. 구겨지고 해진 종이에는 붉은색 잉크로 알 수 없는 기호들과 함께 손으로 그린 듯한 조잡한 지도가 그려져 있었다. 그것은 아르카디아 학원의 지하였는데, 카이가 알고 있는 가장 깊은 지하 창고보다 훨씬 더 아래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제0층’이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그 0층의 한가운데에는 섬뜩한 형상의 문양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카이는 지도를 펼쳐 들고 책상에 앉았다. 조심스럽게 검은색 책을 펼치자, 섬뜩한 내용들이 눈에 들어왔다. 고대 문자로 쓰여 있었지만, 카이는 장학생 특전으로 배운 고대어 지식으로 겨우 내용을 해독할 수 있었다.

    “…심연에 봉인된 존재… 학원의 뿌리… 금지된 힘… 균열… 먹이를 탐하는 자….”

    내용은 혼란스럽고 단편적이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아르카디아 학원 지하에, 인류에게 치명적인 어떤 존재가 봉인되어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존재를 유지하기 위해 학원이 세워졌다는 끔찍한 암시까지.

    책을 읽는 동안, 카이의 손은 점점 차갑게 식어갔다. 그때였다.

    **쿵… 쿵… 쿵…**

    아주 미세한, 그러나 명확한 진동이 발바닥을 통해 전해져 왔다. 마치 거대한 심장이 뛰는 소리 같았다. 엘라가 말했던 그 ‘웅웅거림’이었다. 진동은 점점 강해졌고, 카이는 본능적으로 지도가 가리키는 제0층의 방향, 즉 도서관 바로 아래의 심연을 직감했다.

    동시에,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듯한 오한이 밀려왔다. 단순한 추위가 아니었다. 피부가 마비되는 듯한 냉기, 그리고 저 깊은 곳에서부터 기어 올라오는 듯한 역겨운 쇠 비린내.

    책 속의 끔찍한 문양이 그의 눈앞에서 일렁이는 듯했다.

    카이는 지도를 움켜쥐고 고대 자료실을 뛰쳐나왔다. 그의 머릿속에는 오직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저 아래에 무엇이 있는가?*

    지도는 도서관 지하의 은밀한 통로를 가리키고 있었다. 오래된 관리용 통로,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곳. 카이는 망설임 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어둠 속에서 마나 등불만이 흔들렸고, 그의 심장은 쿵쿵거리는 지하의 박동과 함께 격렬하게 울렸다.

    마침내, 지도가 가리키는 곳에 도착했다. 낡은 벽돌로 위장된 좁고 낮은 통로의 끝. 그곳에는 육안으로는 식별하기 어려운, 그러나 마나 감각으로는 명확하게 느껴지는 봉인된 문이 있었다. 일반적인 마법 봉인과는 다른, 고대의 기법으로 만들어진 듯한 문이었다.

    카이가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문에 닿았다. 차가운 금속 같은 질감. 그 순간, 그의 손바닥에서부터 소름 끼치는 한기가 온몸으로 번져나갔다. 동시에 봉인된 문 너머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더욱 선명해졌다.

    **쿠우우우우웅… 쿠우우우우웅…**

    마치 거대한 짐승이 깊은 잠에서 깨어나 뒤척이는 듯한 소리. 그리고 그 소리 사이로, 아주 희미하지만 섬뜩하게 긁는 듯한 속삭임이 들려왔다. 알아들을 수 없는 고대어였지만, 그 의미는 분명히 ‘열어라’ 라고 외치는 것 같았다.

    카이의 마나 등불이 불안하게 흔들리며 꺼지려 했다. 그는 온몸의 힘을 다해 문을 밀었다. 삐걱이는 소리와 함께 틈새가 아주 미세하게 벌어졌다.

    그 틈새 너머에는, 끝을 알 수 없는 심연의 어둠이 도사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어둠 속에서, 무언가 희미하게 발광하고 있었다. 붉고 거대한, 마치 거대한 눈동자 같은 섬광이… 그를 똑바로 응시하는 듯했다.

    그 순간, 카이의 머릿속을 꿰뚫는 듯한 날카로운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 하지만 그것은 그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차갑고, 날카로우며, 온 세상의 모든 절규를 담은 듯한, 이질적인 비명이었다.

    학원 지하 깊은 곳에서, 금기가 깨어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