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첫사랑을 찾는 탐정 – 제272화

오래된 책갈피, 희미한 약속

지훈의 손에 들린 낡은 책갈피는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희미한 꽃잎 무늬와 끝자락에 겨우 알아볼 수 있는 수아의 서툰 그림. 며칠 전, 헌책방에서 우연히 발견한 오래된 시집 속에 끼워져 있던 그것은, 마치 시간을 거슬러 도착한 수아의 메시지 같았다. 그 시집은 분명 지훈이 오래전 수아에게 선물했던 책이었다.

책갈피를 뒤집자, 거의 지워질 뻔한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책향기’ 그리고 어렴풋한 주소. 지훈과 수아가 학생 시절, 둘만의 아지트로 삼았던 작은 서점의 이름이었다. 그 시절, 시험 기간에도 몰래 숨어들어 책을 읽고 꿈을 나누던 곳. 그곳이 아직 존재할 리 없다고 생각했지만, 심장이 격렬하게 반응했다. 그는 망설임 없이 차 키를 들었다.

익숙하면서도 낯선 길을 한참 달렸다. 고층 빌딩과 프랜차이즈 상점들 사이에서, ‘책향기’는 기적처럼 그대로 남아 있었다. 낡은 간판은 녹이 슬었고, 나무로 된 문은 삐걱거렸지만, 분명 그곳이었다. 지훈은 심장이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것을 느끼며 천천히 문을 열었다. 낡은 종이와 먼지, 그리고 희미한 커피 향이 뒤섞인 오래된 서점 특유의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마치 시간이 멈춘 듯, 모든 것이 그때 그대로였다.

“어서 오세요… 어서 오세요…”

깊은 주름이 새겨진 노인이 카운터 뒤에서 고개를 들었다. 지훈은 그 노인이 서점의 주인이었음을 단번에 알아봤다. 수아와 함께 책을 고르던 자신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그 눈빛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지훈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사장님… 혹시… 오래전에, 여기 자주 오던 학생들 기억하세요? 제가… 제 첫사랑을 찾고 있습니다.”

노인은 희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아… 책을 좋아하던 예쁜 아가씨와… 그 아가씨만 바라보던 청년 말이구나. 종종 오곤 했지… 서로에게 시를 읽어주던 모습이 얼마나 보기 좋았는지…”

지훈의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때 저희가 함께 읽던 시집이 있습니다. ‘밤하늘의 노래’라는 시집인데… 혹시 아직 있을까요?”

노인은 손가락으로 서점 안쪽의 낡은 서가를 가리켰다. “아마 저 구석에 있을 거야. 워낙 오래된 책이라… 가끔 어떤 손님이 와서 찾는 것을 본 적이 있지.”

지훈은 떨리는 손으로 서가를 뒤졌다. 먼지가 수북이 쌓인 낡은 책들 사이에서, 익숙한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밤하늘의 노래’. 표지는 너덜너덜했고, 모서리는 닳아 있었지만, 분명 그 책이었다. 조심스럽게 책을 펼치자, 그들이 함께 밑줄을 그었던 구절이 보였다. 그리고 그 구절 아래, 손때 묻은 작은 종이가 접혀 있었다.

수아의 글씨였다. ‘지훈아, 이 시집 속에서 나는 늘 너를 기다릴 거야. 설령 우리가 다른 길을 걷게 되더라도, 언젠가 다시 이 시를 함께 읽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그때까지, 나는 나의 세상을 만들어갈게. 우리의 밤하늘이 다시 만날 때까지.’

지훈은 그 문구 하나하나에 담긴 수아의 오랜 감정을 느꼈다. 그녀는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단지, 자신의 세상을 만들어가는 중이었고, 언젠가 그와 다시 만나기를 바랐던 것이다. 희미해져 가던 희망의 불꽃이 다시 뜨겁게 타올랐다. 그녀는 여전히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지훈의 가슴은 터질 듯 부풀어 올랐다.

그 순간, 서점의 낡은 문이 다시 삐걱거리며 열렸다. 작은 종이 울림과 함께 한 여인의 실루엣이 들어섰다. 늦은 오후의 역광에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지훈의 심장이 다시 한 번 크게 울렸다. 그 여인의 손에는 낯익은 빛깔의 스카프가 들려 있었다. 수아와 함께 시집을 사던 날, 지훈이 선물했던 그 스카프와 너무나도 닮은… 아니, 그 스카프와 똑같은 것이었다.

지훈은 숨을 멈췄다. 그의 눈은 그 여인의 실루엣에 고정되었다. 272화에 걸친 긴 여정의 끝이, 드디어 눈앞에 펼쳐지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