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반 판타지 (현대 판타지)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제37화. 낡은 터널의 메아리**

“젠장, 저번보다 더 심해졌잖아.”

강민의 나직한 중얼거림이 낡은 터널 입구에 부딪혀 희미한 메아리를 남겼다. 도시의 심장부를 가로지르던 고속도로 터널은 이제 거대한 입을 벌린 괴물의 식도처럼 음침했다. 천장은 곳곳이 무너져 내려 철근 뼈대가 흉물스럽게 드러나 있었고, 바닥은 정체 모를 검은 진액과 부스러진 콘크리트 조각, 그리고 무성하게 자란 이끼들로 뒤덮여 있었다. 습하고 퀴퀴한 곰팡이 냄새가 코를 찔렀다.

옆에서 숨을 죽이고 있던 유진이 손전등을 들어 터널 안쪽을 비췄다. 삐걱거리는 빛줄기는 어둠을 온전히 가르지 못하고, 이내 희미한 윤곽만을 드러낸 채 사라졌다. 저 안 어딘가에서 짐승 같은 울음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오는 듯했다.

“더 돌아서 가는 건 무리예요, 오빠. 이쪽이 그나마 제일 빠르고… 안전할 거라고 했잖아요.”

유진의 목소리에 불안감이 묻어났다. 그녀의 눈은 끊임없이 주변을 훑었다. 이곳은 폐허가 된 도시에서도 손꼽히는 위험 구역이었다. 한때는 번화했던 강남 대로 지하를 관통하는 길이었지만, ‘붕괴’ 이후로는 이형(異形)들의 주요 서식지가 되어버렸다.

강민은 대답 대신 등에 멘 낡은 배낭을 고쳐 매고, 손에 든 개량된 쇠파이프의 손잡이를 단단히 쥐었다. 끝부분에 날카롭게 다듬은 철 조각을 박아 넣은 이 무기는 수많은 이형들의 목숨을 앗아갔지만, 동시에 수많은 위험 속에서 그의 목숨을 지켜주기도 했다.

“안전? 이 망할 세상에 안전이란 게 남아있긴 하냐.”

그가 짧게 내뱉었다. 하지만 그의 시선은 이미 터널 안쪽, 어둠 속에 잠긴 길을 응시하고 있었다. 비록 투덜거렸지만, 그는 이미 결정을 내린 상태였다. 다른 길을 찾아 헤매다가는 더 큰 위험에 처할 수도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정보는 정확해야 해. 이번에 얻어야 할 물건이 뭔지 다시 확인해.”

“네, ‘흑요석 결정’ 열 개, 그리고 ‘제련 촉매’ 세 개요.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식량 창고 들렀다가 복귀하는 거요.”

유진이 빠르게 되뇌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이제 긴장감만 남았다. 이곳에서의 모든 움직임은 곧 생존과 직결됐다.

강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내가 먼저 들어간다. 넌 그림자 안쪽에 바싹 붙어. 소리 내지 마. 그리고 내 신호 없이는 절대 움직이지 마.”

그는 유진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유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작게 심호흡했다. 그녀는 강민보다 훨씬 어렸지만, 이 지옥 같은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나이에 걸맞지 않은 냉철함을 지니고 있었다.

강민은 손전등을 켜지 않았다. 어둠에 익숙해진 눈은 희미하게 남아있는 외부의 빛과, 터널 내부를 흐릿하게 밝히는 알 수 없는 발광 이끼의 푸른빛에 의존했다. 한 걸음, 한 걸음. 그의 발소리는 최대한 죽였지만, 신발 밑창과 부스러진 콘크리트 조각이 마찰하는 소리는 피할 수 없었다. 마치 죽은 도시의 심장이 다시 뛰는 듯한 불규칙하고도 느린 박동이었다.

유진은 강민의 등 뒤에 바싹 붙어 따라갔다. 그녀의 손에는 경량 석궁이 들려 있었다. 작은 체구에서 나오는 놀라운 정확도로, 그녀는 이형들의 눈을 정확히 관통하는 데 능숙했다.

터널 안쪽으로 100미터쯤 들어섰을 때, 강민이 갑자기 손을 들어 멈춤 신호를 보냈다. 유진은 즉시 벽에 몸을 숨겼다. 강민은 천천히 무릎을 굽히고 자세를 낮췄다. 그의 예민한 감각이 무언가를 포착한 것이다.

공기 중의 습기가 짙어지는 듯했다. 멀리서 들려오던 짐승의 울음소리는 사라졌고, 그 대신 희미한 긁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쇠붙이가 콘크리트를 긁는 듯한, 혹은 거대한 곤충이 다리를 비비는 듯한 소리였다.

‘철광 이형.’

강민의 뇌리를 스치는 단어. 이놈들은 낡은 철근이나 금속 파편에 의태하여 주변 환경과 완벽하게 섞여들었다. 오직 소리에 의존하거나, 놈들의 미세한 움직임을 포착해야만 그 존재를 알아챌 수 있었다. 그리고 놈들은 청각에 극도로 민감했다.

“오… 오빠…” 유진의 목소리가 귀에 겨우 닿을 정도로 작게 들려왔다.

강민은 시선으로 ‘움직이지 마’라고 지시했다. 그의 눈은 어둠 속을 꿰뚫는 듯 움직였다. 긁는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여러 마리였다.

그때, 강민의 발 바로 옆에 있던 낡은 철근 더미가 꿈틀거렸다. 거의 완벽에 가까운 위장이었다. 녹슨 철근 몇 개가 한데 뭉쳐 있는 것처럼 보였던 그것이, 순식간에 여섯 개의 날카로운 다리를 펴고 일어섰다. 거대한 사마귀를 닮은 몸체는 낡은 철판과 녹슨 못으로 이루어진 듯했고, 핏발 선 여섯 개의 눈동자가 섬뜩하게 빛났다.

쉬이이익-!

철광 이형이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며 강민에게 달려들었다. 놈의 앞다리에는 갈고리처럼 휘어진 낡은 철판 조각이 붙어 있었다. 강민은 몸을 뒤로 젖히며 겨우 공격을 피했다. 놈의 갈고리가 그의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차가운 금속성 비명이 그의 귀를 찢을 듯 울렸다.

“젠장, 들켰군!”

강민은 재빨리 쇠파이프를 휘둘러 놈의 옆구리를 강타했다. 찌걱이는 소리와 함께 놈의 몸체에서 녹슨 철 조각들이 파편처럼 튀어 올랐다. 이형은 잠시 비틀거렸지만, 이내 균형을 잡고 다시 공격 자세를 취했다.

강민은 뒤이어 달려드는 다른 이형들을 시야에 담았다. 벌써 두 마리가 더 나타나 강민을 포위하려 들었다. 놈들은 터널 벽과 바닥에 찰싹 달라붙어 빠르게 기어왔다.

“유진, 후방 지원!”

강민의 외침과 동시에 유진의 석궁이 불을 뿜었다. 휙, 하는 소리와 함께 날아간 화살이 강민의 뒤쪽에서 달려들던 이형의 눈을 정확히 꿰뚫었다. 끼이이익! 이형은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널브러졌다. 하지만 이내 몸을 뒤틀며 다시 일어나려 했다.

‘약점은 눈이다. 혹은 몸통 한가운데의 핵.’

강민은 기억을 더듬으며 첫 번째 이형에게 달려들었다. 쇠파이프를 수직으로 내리찍어 놈의 머리 부분을 노렸다. 이형은 강철로 된 갑옷을 두른 듯 단단했지만, 강민은 수많은 전투를 통해 놈들의 약점을 파고드는 법을 익혔다.

쾅! 쇠파이프가 이형의 머리에 박히자, 녹슨 파편들이 사방으로 튀었다. 이형은 잠시 움찔했지만, 여전히 살아있었다. 놈의 여섯 눈이 강민을 노려보며 더욱 맹렬하게 덤벼들었다.

쉬이이익- 쉬이이익-

두 번째 화살이 날아와 강민의 오른쪽에서 달려들던 이형의 눈을 또다시 관통했다. 유진은 흔들림 없는 정확도로 지원 사격을 퍼부었다. 강민은 그 틈을 타 첫 번째 이형의 움직임을 묶었다. 그는 쇠파이프 끝에 박힌 날카로운 철 조각으로 이형의 다리 관절 부분을 쑤셔 박았다.

끼이이이익! 철근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스러운 비명과 함께 이형의 다리 하나가 떨어져 나갔다. 놈은 균형을 잃고 바닥에 엎어졌다. 강민은 지체 없이 놈의 등 위에 올라타 쇠파이프를 놈의 몸체 중앙에 있는 가장 단단해 보이는 곳에 내리찍었다.

콰지직!

무언가 단단한 것이 부서지는 소리. 이형의 몸에서 푸른빛이 번쩍이더니, 놈의 움직임이 완전히 멈췄다. 녹슨 철 조각들 사이로 미세한 균열이 생기며 스멀스멀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강민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몸을 일으켰다. 그의 팔에는 이미 몇 군데 긁힌 상처가 생겨났다. 피가 배어 나왔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두 번째 놈은 처리됐나?”

그가 유진에게 물었다. 유진은 세 번째 이형을 향해 마지막 화살을 겨냥하고 있었다. 이형은 두 발을 잃고 바닥에서 꿈틀거리고 있었지만, 여전히 위협적이었다.

“네! 마지막 한 발…!”

유진이 방아쇠를 당겼다. 화살은 정확히 놈의 몸통 중심부를 꿰뚫었다. 푸른 섬광이 터지며, 철광 이형은 완전히 침묵했다.

강민은 숨을 고르며 주위를 살폈다. 다행히 더 이상 달려드는 이형은 없었다. 하지만 놈들의 비명 소리가 터널 전체에 울려 퍼졌을 터. 이 소리가 다른 이형들을 불러 모으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빠르게 움직여야겠어. 놈들이 이 소리를 듣고 몰려들 거야.”

그가 유진에게 다가가 쓰러진 이형들을 확인했다. 놈들의 몸을 뒤덮은 철 조각들 사이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작은 결정체들이 보였다. 이형의 핵이었다. 수많은 자원들이 고갈된 이 세상에서, 이형들의 핵은 중요한 에너지원이자 거래 수단이 되었다.

“최대한 회수해. 다음 보급품에 보탤 수 있을 거야.”

강민은 능숙하게 쇠파이프 끝으로 이형의 핵을 끄집어냈다. 끈적하고 차가운 감촉이 손가락에 닿았다. 유진도 옆에서 칼을 이용해 핵을 분리했다.

그들이 채 열 개 남짓 되는 핵을 수확했을 때였다.

**쿵! 쿵! 쿵!**

터널 저 안쪽에서, 아까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거대하고 육중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거대한 짐승이 육중한 몸을 이끌고 다가오는 듯한 진동이 온 터널을 뒤흔들었다. 천장에서 부스러진 콘크리트 조각들이 후드득 떨어졌다.

유진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오빠… 이건… 철광 이형이 아니에요…!”

강민의 눈빛이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발소리의 리듬이 심상치 않았다. 그것은 마치… 거대한 심장이 뛰는 듯한 둔중한 울림이었다. 그리고 그 울림 속에는 알 수 없는 기이한 공포가 스며들어 있었다.

“젠장, 이놈들이 벌써 ‘그것’까지 불러들인 건가…!”

그는 주저할 틈도 없이 유진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뛰어! 전속력으로 뛰어!”

뒤에서 들려오는 거대한 발소리는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터널의 어둠 속에서, 거대한 그림자가 그들을 덮치려는 듯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강민은 온몸의 신경을 곤두세우고 필사적으로 달렸다. 그들의 앞에는 여전히 어둠이, 그리고 알 수 없는 위협이 도사리고 있었다. 이 낡은 터널은, 결코 쉽게 그들을 놓아주지 않을 작정인 듯했다.